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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15 23:58
연재수 :
242 회
조회수 :
10,926
추천수 :
680
글자수 :
1,287,640

작성
23.01.05 12:21
조회
48
추천
2
글자
12쪽

144. 너의 여정에 내가 함께할게

DUMMY

데클락 정상의 성전.

보좌의 방에는 넷과 듀시아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보좌에 앉아있는 넷은 잠에 들어있었으며 듀시아는 그런 넷을 올려다 보고있는 상태였다.


- 으아아악! 이! 빌어먹을! 권능자 같으니라고!


넷의 몸을 하고서 정식으로 대현자의 자리에 오른 기만이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이제는 죽은 떼르 가주의 지팡이였다.

얇은 줄기를 엮어 만든 가주의 지팡이를 기만은 검은 기운을 끌어내 우악스럽게 뜯어냈다.

그 안에서 떨어져 내린 가죽 두루마리를 펼쳐서 확인한 기만은 이 세상의 창조주라 불리는 신에게 욕을 한바가지 쏟아내었다.


- 잠깐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얌전히 있어라.


그러더니 이 말을 마지막으로 줄곧 저 상태였다.

듀시아가 추측하건데 현재 기만은 잠시 넷의 몸에서 떠나있는 모양이었다.


얌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듀시아가 움직이기 위해서 몸에 힘을 줬다.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어설프게 움직이며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컥."


기만이 넷의 몸을 차지한 이후 그는 성전에서 지내며 꾸준히 소포르를 마시고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만의 조치였다.

그 덕에 그는 몇 발자국도 안되는 거리를 가기 위해 기어야 하는 처지였다.


한심한 꼬락서니로 꿈틀대며 넷이 잠들어있는 보좌에 다가간 그는 마침내 목표로 하던 것에 도달했다.

기만이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던 가죽 두루마리였다.

화가 난 그녀는 두루마리를 사정없이 꾸겨 바닥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기만이 저리 화를 냈던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도 두루마리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들거리는 팔을 뻗어 두루마리를 집어든 그는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하... 하하하."


사정없이 구겨져도 여전히 환하게 빛나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인한 그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은 그가 이미 잘 아는 것이었다.


'모든 마법에 능한 자의 이름은 멸마의 씨앗이라.

마법의 땅에 뿌리내린 멸마는 가장 큰 마법을 집어 삼키리니.

마법의 땅이 황폐할 것이요, 모든 마법은 온땅으로 흩어지리라.'


이것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말이었다.

넷의 탄생과 그녀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예언.

모든 마법에 능한 자인 트리아트 셋의 이름을 이어받아 태어난 넷.

그녀가 기만을 죽이고는 이 거짓된 나라 카밀로테를 멸망시킨다는 내용.


옛말은 넷이 기만에게 먹혔음에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듀시아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마치 이 옛말을 한 존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결코 늦지 않았어. 나는 넷을 포기하지 않아.'


아무리 그가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의 말을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눈앞에서 기만에게 먹힌 넷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안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게모르게 깎여 나가던 그의 마음은 눈앞에서 환히 빛나는 옛말에 다시금 힘을 얻어 견딜 수 있었다.


"그래. 넷.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는 결코 넷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


비록 현재 그는 몸에 힘이 없어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모습이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태도 아니던가?


저에게 들이닥친 상황에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가?

그는 불평하며 원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받아들이고 견딜 수도 있었다.

원망이나 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한심한 꼬락서니라도 이 자리를 지키고 견딘다면 그도 모르는 기회가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듀시아가 한참 의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그의 경험상 지금 들어온 사람은 호위군이 아니었다.

주춤거리는 발소리에 쇳소리가 섞여있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들은 대현자의 허락 없이 보좌의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는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일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성전에 있는 사람은 넷, 호위군, 그리고 자신뿐이다.

넷은 잠들어있고 자신은 아니다.


'호위군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또 다른 누군가라는 소리인데...'


이 역시 불가능한 것이 대현자의 공간 이동 없이 어떻게 데클락 정상에 오를 것이며, 설령 올랐다고 해도 성전을 지키고 있는 호위군에 의해 막힐 것이었다.

기만과 며칠 지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성전에서 지내는 호위군은 모두 이미 기만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꼭두각시라는 것이었다.


성전에 지내며 오랜시간 세뇌된 그들은 기만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의지로 명령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기만이 심어 놓은 생각이었다.

요컨대 대현자의 허락 없이 성전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이라면 호위군에 의해 처리된다는 뜻이었다.


문이 열리고도 한참이나 가만히 있던 발걸음이 드디어 결심했는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듀시아에게 다가왔다.


"얘. 혹시 죽었니?"


귀에 속삭이며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그의 눈으로 빨간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다...날 아주머니?"


성전에 들어온 사람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트리아트 율레 대장의 여동생이자 엑살라니스에 사는 에우랄의 엄마.

미치광이라 알려진 그녀는 실제로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보이곤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미치기만 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듀시아는 잘 알고 있었다.


다날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안 죽었네! 다행이다."

"여기는 어떻게..."

"에우랄이 나를 하도 재촉해서 올 수밖에 없었어."


성전이 누가 재촉한다고 올 수 있는 곳이었나?


"자고 있는데 에우랄이 막 시끄럽게 나를 깨우는 거야. 막 지금이 기회라고. 지금 아니면 안된다면서..."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가죽 부대에서 커다란 마법석을 꺼냈다.

제 얼굴만한 크기의 백수정이었다.

대충 살펴도 최상급의 품질의 백수정은 매끄럽게 세공되어 있었다.

그가 단언하건데 저 정도 품질에 저 정도 등급의 백수정은 카밀로테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 백수정을 두 개나 꺼내 든 그녀가 말했다.


"선택해. 나랑 같이 도망칠 건지. 아니면 여기 남아서 넷을 구할 건지."

"그게 무슨 말인지..."


다날이 백수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쓰면 한 번뿐이지만 공간 이동을 쓸 수 있대."


그녀 역시 이 백수정을 사용해서 데클락 정상에 왔단다.

그러고보니 가죽 부대에 볼록하니 뭔가 하나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저건 그녀가 여기까지 오는데 사용한 백수정인 모양이었다.


이로써 다날이 데클락 정상에 어떻게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은 해결이 되었다.


"에우랄이 그랬는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래. 그러니까 빨리 선택해줄래?"

"아까 넷을 구한다고 하셨죠?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요?"

"우웅... 있긴 한데. 그냥 나랑 도망치면 안될까?"


그녀는 보좌에 잠들어있는 넷을 보며 말했다.


"지금 넷은 무섭단 말이야."


하지만 듀시아에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전 남겠습니다."

"그렇지? 역시 나랑 도망을... 응? 뭐라고?"

"남아서 넷을 구하겠습니다."

"... 우이씨."


다날은 입을 배쭉 내밀더니 곧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난데없이 꺼내든 날붙이에 듀시아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저... 아주머니?"

"가만히 있어."


그녀는 단검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듀시아의 손가락 끝을 찔렀다.

찔끔흐른 피를 제 손에 조심스레 받은 다날이 눈을 감으니 듀시아의 핏방울에 옅은 빛이 어렸다 사라졌다.


"다음은..."


그녀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넷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번 부탁을 들어주면 에우랄이 만나 준다고 그랬으니까. 후우..."


망설임도 잠시, 다날은 넷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가락 끝으로 단검을 가져갔다.

다행히 단검에 손가락이 찔린 넷은 깨어나지 않았다.


"됐어."


듀시아 때와 마찬가지로 넷의 핏방울로 무엇인가 한 그녀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듀시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 위로 보라색 빛이 흘러나왔다.

보라색 빛은 흔히 정신과 관련된 마법이었다.


정신 관련 마법은 자체의 난도도 높을 뿐더러 대상의 정신에 관여하려면 그만큼 대상의 정신을 약하게 해야 한다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쓰기 까다로운 마법 중 하나였다.


다날이 정신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지만 듀시아는 회의적이었다.

정신 마법은 넷에게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신 마법으로 넷의 정신을 되돌리실 생각이라면 무리에요. 넷의 정신이 약해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가 넷을 차지한 거니까요."


지금은 기만이 없으니 다날의 마법에 의해 넷이 잠깐 깨어날 수도 있지만 이미 기만에게 주도권을 넘긴 상태다.

기만이 되돌아오면 다시 몸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알아. 단순히 넷의 정신이 밖에 있는 군인들처럼 약해진 상태라면 재우든 기억을 덧씌우든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게 아니니 이러는 거 아니니... 그나저나 너 은근히 참견이 심하구나? 참견이 심한 남자는 인기 없어."

"..."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정신 마법을 꽤나 정통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호위군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정신 마법을 이용해서일 것이다.


하여튼.

다날이 정신 마법에 정통했든 아니든.

정신 마법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은 다날의 설명과 함께 곧바로 해소되었다.


"지금부터 너와 넷 사이에 통로를 낼 거야."

"통로요?"

"응. 에우랄과 나 사이에 만들어진 통로처럼 말이야. 통로가 있다면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영혼이 교감할 수 있어."


영혼의 교감?

영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만 듀시아는 남의 영혼은 커녕 제 영혼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영혼과 교감을 하라니.


"걱정하지마. 그건 해보면 금방 감을 잡을 거야."


응?

방금 전에 내가 생각을 입 밖으로 소리내서 말했던가?


"영혼과 영혼으로 이어진 통로는 다른 존재가 끊을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넷의 영혼은 저 괴물에 의해 갇힌 상태야."


영혼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수 있다는 것이 다날이 하는 말의 요지였다.


"결코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개척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언젠가 넷의 영혼에 닿을 수 있을 거야."


양손에 맺힌 보라색 집광체가 잠들어 있는 넷과 듀시아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면 행운을 빌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날은 곧바로 커다란 백수정을 이용해 성전에서 떠났다.


"아니. 그 통로라는 게 잘 연결되었는지 확인은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듀시아는 투덜거리면서도 영혼이라는 것을 느껴보겠다고 애를 썼다.


"끄응."


도무지 모르겠다.

눈을 감기도 하고 생각을 비우기도 하는 등.

별의별 시도를 해봤지만 듀시아는 제 영혼을 도통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시점.


"잠깐..."


듀시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찾아야하는 것이 넷의 영혼이라면..."


제 영혼을 느낄 것이 아니라 넷의 영혼을 찾아야 했다.

그러자 줄곧 가만히 있던 그의 감각에 곧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넷의 얼굴이.

넷이 내는 소리가.

넷의 굳은살 투성이의 손이.

너무나 소중해 가슴 한 켠 켜켜이 쌓아뒀던, 그가 경험한 넷과 관련된 모든 경험들이.


하나의 방향이 되어 그를 이끌고 있었다.


저를 잡아끄는 힘에 듀시아가 한 걸음 내딛자 그의 눈앞으로 환한 빛무리가 몰아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 그는 어느새 어딘가 익숙한 허름한 집에 서있었다.


신음하며 부푼 배를 움켜쥐고 있는 여인, 그녀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사내.

그들을 보며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두 사람의 치안군.

치안군의 손에는 빨간 머리칼을 한 아기가 들려있었다.


"... 넷?"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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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1. 으악 24.04.13 6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5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8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6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6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7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6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5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6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6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6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9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0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7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9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7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7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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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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