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화. 생일 선물 수확 시간 (1)
재밌으니까요는 씨··· 진짜 깜짝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 근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프라이즈는 인정이긴 하지. 이것보다 재미있는 게 솔직히 없긴 하다, 당하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뿐이지.
어쨌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나와 한진의 기대치를 낮췄다가 깜짝 놀라게 하려는 의도였겠지.
“하하하, 그래서 저희 반응에 재미가 좀 있으셨습니까?”
“호호호, 그럼요. 다들 이렇게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잔치는 처음이라 그런지, 준비부터 해서 두 분 놀라게 하는 거까지 전부 재밌어했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렇게 해맑은 눈으로 너무 재밌었다는데 뭐 어쩔 수 있겠는가, 긍정해 줘야지.
“다들 재밌으셨다니 제가 뭐라도 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깜짝 놀란 것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축하를 해주시니, 크게 감동까지 받았습니다. 그럼 다시 들어가 보실까요?”
“네! 케이크도 드시고 마저 축하도 받으셔야죠! 다들 선물도 준비했답니다.”
선물이라···? 이거 좀 궁금해지는데? 어서 가봐야겠다.
나는 혜림을 따라서 다시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손탁이 이미 케이크를 조금씩 잘라내어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한 조각씩 배분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꽤 큰 케이크기도 했고, 나와 한진 몫으로 하나씩 준비했기 때문에 단원 전체에게 고르게 한조각씩 돌아갈 수 있었다.
케이크를 받아든 단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케이크를 입에 쑤셔 넣었고, 다들 그 맛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마 이곳에서 케이크를 먹어본 사람은 길례태와 혜림과 나와 한진뿐일 것이다. 거기에서 손탁의 케이크로 한정한다면 길례태와 나, 그리고 혜림뿐일 것이다.
영복이와 만복이 같은 젊은 피는 당연하고, 정훈 같은 아재도 케이크를 맛있게 해치웠다. 특히나 손님들중 혜월과 함께 기방에서 온 일행들은 한입 먹더니, 눈을 휘둥그레지게 뜨고는 저마다 케이크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 어머, 이게 말로만 듣던 케이크네요.
- 입 안에서 살살 녹네요?
- 이거 맨날 먹고 싶어요!
손탁은 그런 반응을 보고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부터 손탁의 호텔에 신규 손님이 마구마구 추가되는 소리가 들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들 케이크를 해치우고 나서 감질난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혜림이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자! 이제 우리 준비해온 선물을 영준씨와 한진씨에게 전달하도록 할까요?”
영복이와 만복이부터 선물 전달이 시작되었다.
“형님들 저희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가 매일 조금씩 깎아 만든 나무 조각상입니다!”
영복이와 만복이가 준 선물은 웬지 그 나이답다는 생각이 드는 수제로 깎아만든 나무 조각상이었다. 나와 한진의 모습을 각각 만든 것이었는데, 솔직히 크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 정성 하나는 엿보이는 조각상이었다.
특이점은 나는 타자의 모습으로 조각을 했는데, 한진은 어째 아직 던져보지도 않은 투수의 모습으로 조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얘네가 어떻게 한진이 원래 투수인 것을 알았지?
“영복아 만복아 너무 고맙다. 근데 나는 타자로 조각했는데, 한진이는 왜 투수로 조각을 해놓은 거냐?”
“아··· 그야 한 분을 타자로 조각했으니, 다른 한 분은 투수로 조각하는 게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어떤 분을 할까 생각했는데, 한진 형님이 김훈 형님의 투구 동작을 교정해 주시던게 생각나서 한진형님이 투수를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조각해봤습니다.”
휴··· 역시나 얻어걸린 거였구만. 근데 얻어걸린 것이라고 해도, 한진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 기분이 좋아보였다. 역시 거의 평생을 투수로만 뛰어온 한진이어서 그런가, 웬지 짠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한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한진을 반드시 투수로 복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다음은 배재학당의 김현장과 구현일 학생!”
“저··· 영준 형님, 한진 형님 여기···.”
김현장과 구현일은 조금 민망한 듯, 기어들어가게 말을 하면서 우리에게 선물을 건넸다. 그들이 건넨 것은 글씨가 써져 있는 종이였다.
“배재학당 학생 동원권 2회···?”
내가 글씨를 쭉 읽자, 다시 한번 민망한 듯이 헤헷거리는 둘이었다. 아마 급하게 준비한 듯한 소원권 비스므리한 느낌의 선물인 듯했다.
“네. 앞으로 어떤 일이 되었건 제 밑으로는 영준 형님과 한진 형님을 도우러 두번까지 출동하겠습니다!”
흠··· 얼마나 쓸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영복이와 만복이가 준 선물보다는 쓸모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그래, 고맙다~.”
“다음은 상혁군과 윤상군 나와주세요~.”
이제 보니, 대충 감이 오는 것 같았다. 혜림은 선물을 살펴 보고는 뒷사람이 민망하지않게, 약한 선물부터 차례대로 부르는 것 같았다.
“영준 형님, 한진 형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여기 선물입니다!”
그들이 건네준 선물은 야구공 한세트였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 당장 쓰기 좋은 선물이다. 나는 선물을 받으면서 상혁과 윤상을 살펴 봤는데, 둘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꽤 친해진 것 같았다.
둘다 기구하다고 할 수 있는 청소년기를 보내며 힘들게 자라온 공통점이 있다보니 더욱 빠르게 친해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봤을 때, 아마 혜림이 선물을 둘 정도씩 짝지어서 준비하게 시켰나 본데, 그런 혜림의 의도가 잘 들어맞은 듯했다.
단순히 선물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잘 어울릴 만한 사람끼리 잘 짝지어준 것 같았다.
“흠흠··· 내가 석전을 그만두다보니, 요즘 벌이가 시원치 않은 건 사실이네. 그래도 그렇지 이런 핏덩이와 나를 엮어주는 것은 자존심이 상당히 상한단 말이지···.”
“거, 쉰소리 마시고 빨리 선물이나 건네 주고 갑시다.”
“에잉, 이것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이 체면이라는 것을 세워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 녀석아.”
역시나 또 이 둘을 붙여놨네. 참 볼때마다 티격태격하고 있는 배터리다. 그래도 영수가 다쳤을 때, 김훈이 영수를 걱정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해서, 둘의 사이가 많이 훈훈해졌을줄 알았는데, 여전하네.
“영준 형님, 한진 형님. 따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가르침을 주는 두분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두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다시 한번 생일 축하드립니다.”
“끌끌끌, 요녀석 봐라? 귀빠진 날이 뭐 그리 특별한 날이라고 유난까지 떠느냐? 그렇게 고마운 마음이 컸으면 평소에 고맙다고 해야지.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자네들 둘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긴 하다네. 자, 이거 받게나.”
영수와 김훈은 티격태격하다가 의견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듯이 나와 한진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영수와 김훈이 준 선물은 홍삼이었다.
<홍삼>
인삼을 푹 찌고 잘 말려서 만든 고급 한약재. 원기를 회복하고 재생력을 높여준다. 인삼에 비해 쓴 맛이 줄어들고 단맛이 늘어나 먹기 편해졌다.
내구도 2/2, 피로도 –20, 재생력 +20, 회복력 +10
홍삼 캔디로 워낙 많이 들어본 바로 그 한약재! 무려 홍삼을 어떻게 선물로 가져온 김훈과 영수였다. 아니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구한 것일까?
“영수야! 그리고 김훈 양반! 정말 고맙네 고마워!”
아무리 귀한 물건일지라도 이런 정도로 고마움을 표하지는 않을 텐데, 내가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그 수혜의 대상이 바로 한진이기 때문이다. 재생력이 높아지는 것이라면 어떤 음식이건 한약재이건 환영이다!
이 정도로 내가 고마워 할 줄은 몰랐는지 김훈과 영수는 살짝 나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고마워하니 내심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둘이었다.
"자~ 다음은 우리 단원 중에는 마지막 순서로 김산과 현정훈씨!"
"하하 영준 형님, 한진 형님 정말로 생일 축하 드립니다! 우리가 만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거하게 축하도 드리고, 정말 두 분은 대단하십니다!"
"우하하하, 나도 축하한다네. 여담이지만, 이번에는 힘을 보태지 못했어도 다음에는 꼭 힘을 보탤 수 있게 하겠네.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우리가 줄 선물은··· 자, 일단은 나와 김산과의 1회 술자리이네!"
엥? 아니, 그래도 단원 중에 마지막 순서인데 겨우 술자리라고? 게다가 김산. 너와의 술자리는 선물이 아니라 고문이잖아! 이걸 어디서 선물이라고 들고 오는 것이냐!
"김산아, 음··· 이걸 진정 선물이라고 주는 것이냐?"
내가 참다참다 속마음을 얘기하자, 김산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님, 정말 그게 전부겠습니까? 저와 함께 선물을 준 사람이 누군지 보십시오. 분명 형님이 마음에 들어할 선물일 것입니다.'
김산의 그 말을 듣자, 번뜩하기는 했다. 바로 현정훈, 단원 중에서 제일 베일에 쌓여있는 그와의 술자리에서는 무슨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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