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화. 조별 과제 역할 분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쓰러진 석화단 선수들을 회복시켜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파악하는 것.
둘째, 기자들에게 대처를 어떻게 할지, 함구하여 없던 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사건을 설명할 것인지.
셋째, 이번 사건을 본 대중들의 민심에 대해 파악할 것.
넷째, 신사혁이라는 수상한 인물에 대한 신상파악.
다섯째, 분명 고종의 귀에도 들어갔을 텐데,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길례태는 이 다섯 가지의 안건을 얘기하면서, 회의를 시작했다.
“자, 우선 첫 번째, 석화단 선수들을 회복시켜서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파악하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우리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혜림이 나섰다.
“쓰러진 석화단 선수들에 대한 관리는 기본적으로 제가 관리를 할 것이에요. 그렇다고 재정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들 중 특히 기웅을 저대로 놔두지 않을 분이 계시기 때문이죠.
의원에서 말하길, 사람마다 증상의 경중이 다른데 가벼운 이는 2주에서 심각한 이는 4주 정도 걸린다고 했었네요. 증상이 심각한 이들은 경기중에 활약이 컸던 선수들이더라고요.
즉, 제대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한 달 정도가 소요될 것 같아요.”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고 했던가? 대충 보아하니, 잠재력 이상으로 폭발했더라도 최대 능력치가 높지 않으면 후유증이 덜했고, 기웅이나 성훈 같은 선수들은 거의 폐인으로 보일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석화단의 일반단원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캐낼 정보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결국 이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려면 기웅이나 성훈의 입을 열게 해야 했다.
하지만 이게 억지로 열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은 혜림의 말대로 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럼 첫 번째 안건은 혜림씨가 중점적으로 처리해주시는 것이 좋겠군요. 저도 틈틈이 의원에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앞으로 언론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건입니다.”
이건 대한매일신보와 연이 있는 내가 나서는 게 좋겠지?
“우선 우리 단원들은 어제 긴급히 공지했던 대로, 앞으로도 개별적으로 만남을 요구하는 기자들은 원천 차단해주기를 바랍니다. 대신 저와 길례태씨, 한진이 정식 창구가 되어 언론과 하나하나씩 대화를 이어나가는 겁니다.
취재 우선권이 있는 대한매일신보를 시작으로, 한곳 한곳 상대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경기 막바지에 있었던 석화단의 일은 이미 우리와 기자단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관중까지 다 목격한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도 잘 모르겠다고 반응하면 되겠고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아무리 이 시대가 인터넷이 없다고 해도, 인터넷보다 더 무서운 입소문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세상이다. 확실한 오피셜을 박아주지 않고 함구하려고 든다면, 오히려 이를 목격한 관중들과 기자들에 의해 낭설만이 퍼질 것이다.
헛소문으로 우리 이미지를 깎아 먹을 바에는 아직 부족하더라도 확실한 사실은 못을 박아 놓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우리 편이 될만한 곳과 적대하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럼 두 번째 안건은 영준씨를 중심으로 저와 한진씨가 처리를 하면 되겠군요. 다음 안건은 이번 사태로 인한 대중들의 민심에 대한 건입니다.”
아마 우리에 대한 대중들의 민심이 반전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기를 봤다면 우리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안 그래도 대한제국이 망국으로 향하고 있는 분위기에 이런 흉흉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좋은 영향이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그건 저와 만복이가 해볼게요!”
“네, 저희가 또 잘하는 일이죠.”
영복이와 만복이가 확실히 출신이 그렇다 보니, 밑바닥 민심 훑고 다니는 것은 잘한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따로 임무가 없는 단원들도 이에 동참하라고 했다.
“끌끌끌, 나도 술 한 잔씩 하고 다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소식 하나는 빠르게 듣는 편이지. 절대 술이 고파서 자처하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나.”
“저도 냉면 배달을 여기저기 하고 다니던 경험이 있다 보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김훈에 남상혁까지 참여하기로 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조별 과제에서 자료조사 열심히 하려는 인원들이 많네. 역시 조별 과제는 자료조사하고 묻어가는 게 최고지. 지금 나는 어쩌다가 ppt에 발표까지 맡게 된 건지···.
내 성격상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지금은 아무래도 내가 그 누구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길례태나 혜림, 한진 등의 존재가 나의 짐을 크게 덜어주었고, 다른 단원들도 자료조사 하나는 기막히게 잘해오는 조원 같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할만은 했다.
“세 번째 안건은 많은 분이 지원을 해주신 덕분에 빨리 끝나겠군요. 다음 안건은 우리가 의원에 사람을 나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석화단 단원 중에 신사혁이라는 자만 발견되지 않고 증발했다고 하는군요.
그 신사혁이라는 자에 관해 뭐라도 알아내기 위해 탐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중에 할 수 있는 자가 단 한 사람 있지. 바로 신사혁과 유년 시절부터 알던 자인 이윤상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공개된 회의 장소에서 그를 콕 집어내기는 그렇지.
“그 역시 제가 한번 알아내 보겠습니다. 다른 단원들이 민심파악을 하면서 이 또한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아, 그리고 함께 가고 싶은 단원이 있는데, 이윤상 단원과 함께 알아보고 싶습니다.”
윤상은 잠깐 흠칫하더니, 자신이 뭔가 말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네, 제가 지금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으니, 저도 그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영준 형님을 도와서 그 신사혁이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해 한양 이곳저곳, 한양에서 찾지 못한다면 저 멀리 개성까지 가서 그에 대해 알아봐서 꼭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오, 또 고봉밥 꽉꽉 눌러 담은 윤상의 대답이었다. 윤상아, 본론만 딱 말하자, 본론만.
그런 윤상의 고봉밥에 길례태는 흐믓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윤상씨의 진지한 각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영준씨와 윤상씨 위주로 알아봐 주시고, 다른 단원분들이 겸사겸사 알아보는 것으로 하도록 하죠. 그리고 마지막은··· 높은 분의 귀에도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인데···.”
길례태는 이 건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눈치를 슬쩍 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와 혜림에게 부탁해야 할 일인데, 이미 우리 둘은 많은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어쩌겠는가, 기왕 조별 과제 조장을 맡았으면 끝까지 해내 봐야지.
“안 그래도 이제 곧 그분을 뵈어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으니, 그 얘기를 꺼내는 김에 이 역시 제가 해명을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아, 혜림씨도 함께 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혜림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언제든지요. 그럼 이제 모든 안건이 정리된 것일까요?”
“네! 맞습니다. 영준씨와 혜림씨가 높은 분과 대화를 해주신다는 내용을 끝으로 일단 오늘의 회의는 끝마쳐도 될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다시 소집하겠습니다.
그럼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맡은 임무를 해내셨다면, 다른 임무를 돕는 것은 자유니,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길었던 오늘의 회의가 끝났다. 대부분이 내가 독박 쓰고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인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나는 YMCA 건물을 나오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차례대로 생각해봤다. 내가 해야 할 주요 임무는 언론을 상대하기, 신사혁의 행보에 대해 추적하기, 그리고 고종과 이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고종과의 대화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혜림을 통해 따로 날짜를 잡아야 하는 사안이니 가장 후순위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으로 신사혁의 행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기는 했지만, 이미 증발해버린 그를 지금 와서 무언가를 한다고 딱히 발견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당장 할 일은 바로 언론을 대하는 일, 특히 우선 협상권을 가진 대한매일신보와의 대화이다.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라면 일 처리도 쉬울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슬며시 신사혁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그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다면 내가 혼자 알아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낼 수 있겠지.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의 상황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선 윤상과 대화를 나누고, 대한매일신보에 찾아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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