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본격 야구장 건축 계획
“우선 야구장 건립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승리를 쟁취했으니, 당당하게 돈 좀 더 써도 되겠죠?”
혜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긍정했다.
“황제 폐하께서 비용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으니, 너무 터무니없는 비용만 아니라면 괜찮을 거예요!
특히 어제 야구장을 직접 관람하시더니, 오히려 황제께서 이대로면 너무 작고 볼품없지 않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거 잘 됐군요. 비용에 대한 제한이 있을 때부터, 저는 향후 몇 년이 아니라 100년 뒤의 후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야구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황제께서 이렇게 팍팍 밀어주시면서 돈을 마음껏 쓰라고 하시니, 제대로 제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혜림은 내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호, 좋아요. 영준씨 꿈을 한번 저에게도 보여주세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획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경기장을 최대 2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규모로 지으려고 합니다.”
내 말을 듣자, 혜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2만 명이나요? 한양의 인구가 외국인을 합쳐야 30만 명 정도인데, 경기장에 그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너무 터무니없는 규모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렇다, 사실 현대면 모를까, 지금의 한양의 규모만 생각한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규모로 지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노림수가 있다.
“맞습니다. 사실 너무 큰 게 맞죠. 하지만 아직 야구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미 4천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관중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곧 야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1만 명 가까이 관중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말씀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너무 큰 규모라고 생각됩니다. 그 외에 관중을 더 확보할 방법으로 생각해 두신 것이 있을까요?”
“네, 우선 교통이 점차 발달해 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그 목적이 어떠하든지 개발 중인 철도들이 있죠. 이로 인해 지방에서 찾아올 잠재적 관중이 장차 못해도 천여 명은 넘어갈 것입니다.”
“교통의 발달로 지방에서도 관중들이 모여 든다라···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네요. 그리고요?”
“다음은 계속해서 말씀드렸던 이유인데, 국민의 관심거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담배나 각종 도박이나 시원찮은 놀이 등의 잡기가 유행하는 이유가 바로 국민을 사로잡을 놀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에 야구는 눈요깃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심심풀이 수단이 될 것입니다.”
혜림은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더니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야구는 제대로 배우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놀이잖아요? 자신이 직접 해보기 힘든 놀이인데,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예리한 질문이다. 현대에도 야구 위기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파토리이니 말이다.
“야구가 직접 하는 것은 힘든 운동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경기의 규칙만 안다면 보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죠.
그리고 이 단점이 야구 이외에 볼거리가 많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겠지만, 다른 볼거리가 크게 없는 지금은 그리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혜림씨부터가 이에 대한 산증인 아니겠습니까? 미국에서 그저 야구경기를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야구에 푹 빠져서 오셨으니 말이죠.”
혜림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내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저부터가 그렇게 야구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또 다른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네, 그리고 2만 석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2만 석이라는 규모는 어디까지나 외야석까지 모두 꽉꽉 채웠다는 최대치를 가정한 숫자입니다.
제가 구상하는 야구장의 좌석은 그때그때 가변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좌석을 좀 여유가 있게 띄워놓는다든지, 외야석은 좌석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자유로이 누워서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혜림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 거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관중의 추이를 보고 조절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처음에는 1만여 5천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작할 겁니다. 아무래도 처음 개장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테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운영을 하면서, 관중들이 얼마나 오는지에 대해 분석을 해봐야죠. 날씨나 어떤 요일인지, 몇 시에 시작하는지 등등 여러 변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입니다.”
이 설명을 듣더니 혜림은 살짝 감탄한 것 같았다.
“변수라··· 그렇네요··· 관중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조건에는 정말 생각할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계시다니 대단하세요!”
“하하··· 제가 좀 잡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이런 것까지 고민하게 된 것 같네요.”
“이제 충분히 설명된 것 같네요. 의문이 많이 풀렸고, 영준씨를 전적으로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경기장 규모에 대한 논의는 정리된 것 같으니, 이제 디테일한 계획을 얘기해봐야겠다.
“이제 경기장 시설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는 우선 화장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구라는 운동의 특성상 경기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배변 욕구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화장실도 중요하겠네요···. 경기보다가 갑자기 나가서 경기장 주변에 해결해버리는 상황이 오면 안 되니까요.”
그렇다. 안 그래도 이 시대에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화장실이다. 아직 상하수도가 보급되지 않았고, 그래서 위생 문제가 많이 심각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 코를 찌르던 냄새도 이와 연관이 많았다.
그렇다고 진성 문돌이인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어떤 방식으로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혜림이 그 답을 찾아냈다.
“물을 내려서 변을 처리하는 서양식 화장실을 말하는 거라면, 석조궁전이 그런 식으로 지어질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아마 영국회사가 설계를 맡았다고 했던 거 같고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얼마가 들건 화장실만큼은 꼭 서양식으로 짓는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데, 혜림씨께서 잘 해결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화장실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온 덕분에, 앓던 이가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빠지는 게 있다면 들어오는 것도 있어야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음식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야구장의 음식점은 이익을 많이 남기기보다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게 할 계기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궁 밖의 백성들은 풍족하게 먹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사하는 이들도 많고요. 경기장의 설립 취지 중 하나가 백성을 하나로 모으자는 것도 있는데, 먹거리야말로 그런 백성들을 취합하는데 좋은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좋은 취지네요. 저도 주기적으로 구휼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많은 이들을 돕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더욱 잘됐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음식만을 취급하지는 않을 겁니다. 야구장을 찾는 사람 중에는 큰 손이 될만한 고객들도 많을 테니, 이들을 공략할 특별한 음식도 필요합니다.”
“특별한 음식이라··· 뭐가 있을까요? 경기장 안에 취사시설을 넣는다고 해도, 실제 음식점보다는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복잡한 조리 과정은 힘들지 않을까요?”
옳은 지적이다. 지금은 현대처럼 협소한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는 시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디까지나 부대시설인 식당의 규모를 엄청나게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간단한 조리 과정에도 독특한 맛을 내야 한다는 건데··· 머리가 아파진다.
“우선 일반 관중을 위한 음식은 몇 개 생각해 놨습니다. 죽이나 밥을 볶거나 비비는 등, 그나마 구하기 쉬운 쌀을 이용한 음식을 준비 중입니다.
특별한 음식은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한양 내 유명 음식점 중에서 공개 입찰을 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상혁이 일했던 냉면집 같은 곳으로요.”
“공개 입찰이라··· 괜찮은 것 같네요. 이미 도성 안에는 소문이 나 있는 상태라 경쟁이 꽤 붙을 것 같군요. 그래도 우리가 고안해낸 음식도 하나 있어야 하긴 할 것 같네요.”
“맞습니다. 외부에서 자리를 채우는 건 결국 수익을 나눠야 하니, 수익을 많이 내려면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선수들을 위한 시설 또한 생각해야 한다. 선수들이 거저 성장하고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시설 역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야구장 내에서 훈련도 진행해야 하므로, 이와 관련된 시설의 확충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수들의 훈련 시설도 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YMCA 공터에서도 연습하고 있지만, 앞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도입하게 되면 야구장에서만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장비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생각할 것은, 투수가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선수들이 대기할 더그아웃, 그리고 선수들이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훈련 뒤에 씻을 수 있는 목욕 시설과 식사가 가능한 식당도 필요합니다.”
혜림 역시 격하게 공감했다.
“그거 좋네요! 안 그래도 선수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다른 어떤 돈을 벌 시설보다 선수를 위한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 혜림은 정말 야구단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 이를 알 수 있던 것은 저번 합숙훈련 때이다. 그때 갑작스러운 훈련일정에도 정말 많은 지원을 해줬었지. 키다리 아저씨가 따로 없다.
“그 외에는 회의실 같은 공간을 몇 개 부탁드립니다. 이건 아직 구상하고 있는 건데, 사람이 늘어나면 전문적으로 분야를 나누어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력 분석 담당, 경영 담당 등이 따로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씀도 맞네요. 지금이야 몇 명이 하고 있지만, 제가 봐도 이대로 쭉 가면 힘이 부칠 것 같네요.”
그렇게 경기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에 우리는 다른 일들에 대한 일정도 논의하였다.
“기방분들과는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습니까?”
“우선, 제가 YMCA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진행 중인 서양 음악 시간에 기방에서도 하루에 6명씩 돌아가면서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혜월이를 포함한 3명은 따로 날을 더 잡아서 응원에 필요한 춤과 노래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영준씨도 그날은 웬만하면 오셔야 해요?”
“네, 제가 얘기를 꺼낸 일인데 당연히 가야죠. 이미 생각해놓은 게 몇 개 있습니다. 혜림씨가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바로 곡과 가사가 나올 것 같군요.”
직관을 간 적은 없지만, 워낙 야구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귀에 익어버린 응원가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간간이 알고리즘으로 치어리더 동영상 등을 접하면서 응원 동작 또한 눈에 익은 게 있고 말이다.
그렇게 혜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오늘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네요. 그럼 슬슬 일어나 보실까요?”
“네, 아 저는 집에 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집에는 늦게 들어갈 것 같은데, 영준씨 먼저 집에 가시겠어요?”
“아 그러십니까? 근데 늦게 오시면 혼자서는 위험하실 텐데···.”
“호호호,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안 그래도 이따가 근처에서 고용인에게 만나서 오기로 해놨어요. 그럼 오늘도 너무 즐거웠고, 내일 아침에 봬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손탁호텔만 오면 참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아니지, 장소의 때문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 때문인 것일까?
여운을 남기며 나 역시 손탁호텔에서 발걸음을 뗐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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