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석화단과의 혈투, 그 이후
경기가 우리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우리는 서로 얼싸안으며 잠깐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승리는 승리고, 이제 결산을 해야지. 일단 우리는 다시 길례태의 양 팀 모두 경기장 가운데로 모이라는 말에 다 같이 중앙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째 석화단 쪽 선수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패배 이후 더그아웃으로 들어갔었는데 갑자기 석화단 쪽 더그아웃에서 비명이 들렸다.
- 끄아아아아아악!!!
- 끼에에에에에에엑!!!!
- 흐아아아아아악!!!!!
석화단의 선수들은 제각각 인간의 목소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괴이한 목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우리는 물론 관중석의 시선까지 모두 석화단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방금 전의 근육이 터질 듯한 괴물 같은 모습의 석화단원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온몸이 뼈밖에 없어 보이는 삐쩍 말라버린 사내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선수들을 불러 모았을 길례태였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비상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급하게 단원들을 불러 모으고는 석화단의 상태를 살피기로 했다.
우리는 바로 석화단의 더그아웃으로 달려갔는데, 그곳에는 지독한 냄새와 함께 어떠한 약물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난 상혁이에게 그 병들을 조심해서 모두 수거할 것을 명령하고, 본격적으로 석화단 선수들을 살피러 갔다.
그들은 아직 맥박이 뛰고 호흡은 느껴지고 있었으나, 눈이 까뒤집혀 있었고, 핏기가 없어 보이는 창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례태는 스윽 보고는 곧바로 이건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단원 몇 명을 통해 관중들에게 오늘의 경기 결과를 통보하고, 그들을 돌려보내게 했다.
그리고 남은 단원들을 동원하여, 석화단의 모든 선수를 의원으로 긴급하게 이송하였다.
그렇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근데 선수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바로 신사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 석화단이 끌고 온 조무래기들까지 모두 신원 파악이 되었는데, 단 한 사람, 신사혁만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4타수 3안타라는 엄청난 활약과 더불어, 우리의 주전 포수인 영수에게 부상을 당하게 했고, 그 뒤로 나온 민수 또한 고자가 될 뻔한 아찔한 장면을 만드는 등, 우리를 굉장히 많이 괴롭힌 그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 많은 선수 중 홀로 이 경기장에서 증발해버리다니, 이 조선시대에 떨어진 뒤로 가장 미스테리한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는 전조 현상이 보이기는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윤상이 해준 얘기도 의미심장했고, 경기 중간중간의 모습들도 그랬다.
보통 이러면 언젠가 다시 악연으로 만나던데 어떻게 되려나······.
어쨌든 오늘은 우리가 이겼다! 잠깐은 승리를 만끽해도 되겠지···?
對 석화단 전
장성훈 9이닝 6실점 19탈삼진 6피안타 1볼넷
3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 1볼넷(1고의사구)
신사혁 4타수 3안타 2득점 1삼진
이기웅 3타수 2안타 2루타 2 1타점 1득점 1볼넷
유성인 4타수 1안타 1타점 1삼진
이상 석화단
김훈 9이닝 4실점 11탈삼진 7피안타 1볼넷(1고의사구)
4타수 2안타 1삼진
김영복 4타수 2안타 2타점 1삼진
김만복 4타수 0안타 1삼진
허영수 2타수 0안타 1삼진
한민수 4타수 1안타 1득점 3삼진
우한진 2타수 2안타 2홈런 2타점 2득점
채영준 3타수 0안타 3삼진 1득점
남상혁 3타수 0안타 3삼진 1볼넷 1득점
김현장 4타수 0안타 4삼진
이윤상 4타수 1안타 2루타 1 2타점 1득점 3삼진
이상 황성 YMCA 야구단
6:4 황성 YMCA 야구단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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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6월 3일 YMCA 건물]
어제는 정말 조선에 온 이후로 가장 바빴던 하루였던 것 같다.
보통 바쁜 날이라고 하면 경기 날일 텐데, 그래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뒤풀이와 함께 경기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일종의 힐링하는 시간을 가지고는 했기 때문에 크게 바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경기 막바지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그 뒷수습을 하느라 무지하게 고생하였다.
일단 관중들을 돌려보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현대에도 뭔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몰려들면 이를 통제하는 데에도 많은 인력이 소모되는데, 이 시대는 오죽하겠는가.
특히나 지금은 야구장에 몇천 명이 몰려들어 있는 상태라,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안 그래도 심심해서 뭐 구경거리가 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기라, 사람들을 돌려보내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다행히도 사태를 빠르게 파악한 혜림이 사람들을 보내어 통제에 도움을 준 덕분에 간신히 돌려보낼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를 넘기긴 했지만, 그 외에도 문제는 가득했다. 우선 관중들이 물러나니, 이번에는 기자들이 난리였다.
안 그래도 저번 성남 구락부 전 이후에, 야구라는 제목이 붙었다 하면 이슈가 잘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우리의 다음 경기만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기에서 상대 팀 선수들이 단체로 실려 가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으니, 기사를 싣기만 한다면 대서특필 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매일신보와 우선 취재권을 계약한 상태였다. 그래서 경기장에 몰린 기자들에게 이에 대해 말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이에 수긍한 기자들도 있었지만, 반발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그 기자들은 자신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러한 기레기들은 대부분이 친일언론으로 분류된 신문의 기자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무력을 행사하여 이들의 취재를 막았으나, 이들의 뒤끝은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이 기사를 써봤자 대다수 국민은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취재 우선권이 있는 대한매일신보도 당장은 취재를 못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현장의 뒷수습을 마무리 지었다.
우선 경기장, 특히 석화단의 더그아웃을 확실하게 정리했다. 냄새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곳에 있던 수상한 병은 모두 회수했다.
그 뒤, 석화단이 실려 간 의원으로 향했다. 그곳의 의관에게 석화단원들의 상태에 관하여 물어봤는데, 자신들도 이런 상태는 처음 본다고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단, 회복에 얼마나 되는 기간이 소요될지는 자신들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한 거겠지만, 누워있는 석화단원들은 그 누구도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오늘은 무사히 입원시킨 것이 어디냐 하고 우리는 의원에서 나왔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우리는 함께 고생했던 단원들을 일단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오늘의 일은 단원들 모두 함구시키기로 했다.
이제 우리 단원 하나하나가 기자들이 붙을 가능성이 생겼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주의사항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대부분의 단원이 아직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 밥이나 한 끼 사준다고 하면 멋모르고 따라가서 뭐 하나 물어보자는 말에 술술 대답할 것 같다는 상황이 예측되었다.
아니지, 밥까지 안가고 그저 팬이라면서 다가가서 뭐하나 물어보자고 하면 술술 대답을 하는 단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누가 묻거든 모르쇠로 일관하라고 얘기해놨는데, 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교육을 좀 해야겠다.
그리고 석화단을 입원시킨 김에 영수의 상태도 좀 보러 갔는데, 다행히도 멍만 좀 들었고, 그 외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 영수는 우리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오? 사람이 무더기로 실려 왔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저들은 아까 전까지 우리와 경기를 했던 자들 아니오? 저들이 갑자기 저런 몰골이 되어서 실려 온 거요?”
“지금 다 말해주기는 너무 복잡한 상황이라 나중에 말해주겠네. 그보다 우선 몸이나 잘 챙기고 있게나.”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어제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 YMCA 건물로 모여서 우리는 상황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
“우선 단원 여러분 모두 어제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석화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길례태는 우선 우리의 승리를 자축하는 멘트로 시작하고는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일들 역시 많이 생겼던 승리였습니다. 오늘 회의를 통해 우리에게 닥친 일,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봅시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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