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배재학당 훈련장 완공
[1906년 9월 3일 배재학당 임시야구장]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빠르게 지어진 배재학당의 임시야구 훈련장 완공을 소소하게 축하하려고 우리 단원들은 단체로 배재학당을 찾았다.
원래는 날씨 때문에 훈련할 수 없는 겨울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어떻게든 완성이 되고 올해가 가기 전에 맛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배재학당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형 등 관계자들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덕분에 한 달 정도의 시간 만에 훈련장이 완공되었다.
“셰필드씨, 훈련장을 이렇게 빨리 지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로써 겨울이 되기 전에 저희도 훈련에 들어가고 배재학당 학생들도 한 번씩 지도해줄 수 있게 되었군요.”
“하하. 다 우리 배재학당 학생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지 저한테 고마우실 건 없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YMCA에서 식사를 한번 대접해주신 것도 학생들의 의욕을 많이 상승시켜줬었네요. 챙겨주신 돈도 학생들을 위해 잘 썼습니다.”
“그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완성된 기념으로 학생들과 함께 다과라도 간단하게 즐기며 축하하려고 하는데 어떠십니까?”
“저희야 너무 좋습니다.”
이때 한진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축하하며 다과도 좋지만, 명색이 훈련장이 완성되었는데 다 같이 뛰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땀을 좀 빼고 난 뒤에 먹는 음식이 더 맛이 좋기도 하고요. 아, 오늘 준비한 훈련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동안 비좁은 YMCA 앞마당이나 넓긴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공터들을 전전하며 훈련을 진행했어야 했던 한진이라 그런지, 임시라지만 그럴싸하게 지어진 배재학당의 훈련장을 보고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셰필드는 몇 번 만나보지 않았지만, 한진이 참 투명한 사람이라 파악하기 쉬워서 그런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진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마침 오늘은 수업도 다 빼놓은 날이라 훈련을 진행해도 괜찮을 겁니다.”
다만 이를 듣고 있던 학생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다행히도 한진이 준비해온 훈련들은 진짜 힘들지 않고 몸을 푸는 정도로 진행되었다.
현대에서 사용하던 훈련 장비 중 지금도 구현할 수 있는 장비들도 미리 주문을 넣어 제작해 뒀었는데, 주로 그러한 장비들을 한 바퀴씩 이용해보는 맛보기 식 훈련을 진행했다.
그 뒤로 개운하게 땀을 흘렸다는 표정의 학생들과 함께 식사 후, 마저 훈련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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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우리는 겨울이 되기 전까지 이전과 같은 훈련 일정을 소화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틈틈이 소설을 집필하였고, 경쟁작이었던 혈의 누의 인기를 압도해서 그런지, 조금 판매 부수가 올라가고 있었던 만세보를 대한매일신보가 다시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앞서가게 되었다.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게 되자 내가 전에 희망했던 단행본에 관한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불법으로 엮은 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시절에 저작권 관련한 법안은 물론 개념조차 희미했기에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지금이라도 단물을 빨자는 생각에 서두르기로 했다.
[1906년 10월 19일 대한매일신보]
“그동안의 연재분을 책으로 내는 일을 빨리 진행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진행이 가능한 일이긴 한데 무슨 연유로 서두르는 거요?”
“제 소설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조선해방기의 신문 연재 본을 짜깁기하여 책으로 만들어 파는 장사치들이 생겨났다는데, 가격이라도 싸면 모를까 품귀현상 때문에 웃돈까지 주고 구매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음 들어보긴 했던 얘기인데 딱히 제재할 방법도 없고, 우리와 엮여있는 문제도 아니라서 그냥 넘겼던 얘기인데, 그 일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까지 준다면 어서 우리가 힘을 쓰긴 해야겠소.”
“네, 빨리 힘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의 가격은 10전으로 했으면 하니, 품질은 낮아도 상관없으니 가격에 맞춰서 책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10전이라고 했소? 시중에 돌아다니는 책이 보통 30전 정도 받는데 1/3 가격이면 너무 저렴한 것 같소만. 내가 알기로는 불법으로 짜깁기한 책들도 25전 정도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맞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확 낮은 가격으로 팔려는 것이죠. 지금 이 나라의 책값은 비싸도 너무 비쌉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직접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보니 좋지 못한 품질의 사본을 빌려보는 게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일은 가장 앞서가는 사람이 다소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다수가 행복해지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으니 그리하려고 하는 거고요.”
그 말을 듣더니 양기탁은 감탄하며 말했다.
“오호, 과연 그런 깊은 뜻이 있었기에 책값을 손해 보는 것임에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거였소? 그렇다면 나 역시 당연히 동참하도록 하겠소. 이미 구독자가 많이 늘었고, 판매 부수도 이전과는 상상도 못 할 정도니 우리 역시 조금 덜 가져가도 상관없겠소.”
“아, 그렇다고 제가 손해만 볼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향으로 수익을 창출할 방법도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번에는 반대로 고급화를 하여 책을 파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10전으로 출간할 책과 내용 자체는 차이가 없지만, 표지나 종이의 품질에 더 공을 들여 여윳돈이 있다면 당연히 이쪽을 고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죠.”
“음, 그건 참 좋은 방법 같소. 하지만 고급의 책을 원하는 수요가 얼마나 될지 예상이 잘 안 되오. 내가 봤을 때는 그것만으로 끽해야 손해를 메꾸는 정도일 것 같소. 물론 그 정도로도 우리로서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니 환영이지만 말이오.”
“그래서 생각해 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미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라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 등장인물들의 인상착의를 공들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한준이 삿갓과 안대를 착용하고 있다든지, 팔에 토시를 착용하고 있다든지 하는 설정 말입니다.
제가 왜 이런 설정을 붙였는지는 지금 도성 내의 소년들을 보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소설을 읽어본 아이들은 한준의 복장을 그대로 따라 한 옷을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준이라도 된 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용해야 합니다. 소설과 관련된 상품을 만들어 부가적인 수입을 얻어내는 것 말이죠.”
양기탁은 이 말을 듣더니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아하, 그래서 소설에 간혹 유치한 대사나 인상착의가 있던 것이었구려. 어른의 시선에서는 이해 못 할 수 있겠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그게 멋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말이겠고 말이오.”
“바로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 야구단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포목상과 이에 대해 입을 맞춰두었습니다. 그러한 부가 상품들을 이제 정식 단행본과 함께 묶어서 판다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 구매하려는 이들의 부담도 줄이면서 판매량을 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좋소! 내일부터 바로 단행본 발간에 힘을 쏟아보겠소!”
이렇게 스스로 돈을 벌어보자는 내 계획이 또 한 단계 성공적으로 나아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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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훈련장이 건설된 이후 정신없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훈련하는 동시에 학생들까지 지도하는 바쁜 나날을 잠시 보냈지만, 이제 입김을 불면 하얀 김이 올라오고, 흘린 땀이 얼마 가지 않아 식어버리는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많은 곳에서 월동 준비를 하는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훈련장도 사용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곧 사용을 중지하고 내년을 기약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해 마지막으로 한양의 백성들이 다 같이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경기를 기획하고 있었다.
“어디 초청할 만한 팀이 없을까요?”
“연습경기로 우리에게 배워가려는 팀은 많이 있지만, 우리의 실력이 압도적이다 보니 정식으로 붙으려는 팀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점수 차가 많이 난다면 보는 사람의 흥미가 떨어질 것 같고 말입니다.
물론 한진 선수가 빠진다면 경기 자체는 팽팽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 같고 말입니다.”
“확실히 그런 문제들이 있을 수 있겠군요. 혹시 일본팀 중에는 없을까요?”
“그쪽은 더 씨가 말랐지요. 조선 내에서는 최강의 위치에 있던 성남구락부가 우리 YMCA 야구단에게 졌다는 소식이 전국에 퍼졌으니 말입니다. 그냥 지기만 했으면 모르겠는데, 경기 결과가 신문 1면을 몇 날 며칠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니 치를 떠는 것 같소.”
음··· 이기고 나서는 나 역시 정말 신나게 즐겼던 일이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굴러갈 줄은 몰랐네. 너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했다는 점이 이런 단점으로 이어질 줄은 미처 생각을 못 했다.
근데 미리 생각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한진이 봐주라고 봐줄 위인이 아니니 말이다. 한진은 상대가 누구든 야구라고 한다면 최선을 다한다. 그게 비록 초등학생일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신인 시절 팬서비스데이 때 어린이 야구단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전력투구를 했다가 공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어 울음을 터트린 학생 때문에 뒤에서 크게 혼이 났었다는 썰은 한진의 팬이라면 너무 잘 아는 일화이다.
어쨌든 아이를 상대로도 그러는데 어른들 상대로는 당연했을 것이니 이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올해뿐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문제다. 관중들이 열광할 수 있는 경기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에는 YMCA 야구단 내전으로 가봅시다. 우리만으로는 수가 모자라니 배재학당, 덕어학교 등등 우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한번 끌어모아 봅시다!”
역시 외부에 적이 없을 때는 청백전이 답이지. 근데 이 역시 한진 때문에 밸런스 맞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한진을 상대하는 쪽에서 전 타석을 거르는 방법도 있지만, 기껏 사람들 모아놓고 짜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한번 썩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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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11월 4일 배재학당 임시 야구경기장]
어느덧 날씨는 이제 눈만 내리면 겨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쌀쌀해졌다. 그래도 아직 몸을 확실히 풀고 나면 충분히 움직일 만은 했다. 그렇기에 올해 최후의 야구 경기를 이렇게 기획한 것이지.
오랜만의 경기라 그런지 들떠서 그런지, 경기에 참석하는 선수들 모두가 빠르게 경기장에 도착해서 다 함께 몸을 풀고 있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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