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화. 석화단과의 혈투 (4)
4회 말. 석화단의 공격.
석화단 역시 사실상 주요 타자가 모두 타석에 서게 되는 회가 되었다. 그 시작은 2번 타자 신사혁.
근데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나니, 석화단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의 눈빛부터가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진, 거의 살기까지 띠는 듯한 분위기였다.
우리 선수단도 그런 석화단의 위화감을 눈치챈 듯했고, 긴장감이 살짝 맴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던지게 된 김훈의 제1구.
휙!
부-웅 퍽!
-악!
-···스트라이크!
공은 방망이에 스치지도 않았는데, 퍽 소리와 함께 영수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신사혁은 스윙의 마무리 동작인 척하면서 교묘하게 영수를 한 대 때린 것이었다.
주심인 셰필드도 잠깐 판정을 멈칫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스윙 마무리 자세이기도 하고 배트 끝에만 닿은 듯하여, 당장 경기에 빠져야 한다거나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기를 계속 뛸 수 있는 정도라는 거지, 의식하고 있지 않을 때, 갑자기 봉변을 당한 경우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주심에게 경기를 끊어갈 것을 요청했고, 주심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규정집에 선수의 부상 상황에 대한 내용을 넣어놨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파스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고, 얼음도 없었다. 그나마 멍에 바르는 연고 같은 게 있어서 이걸 바르고 붕대를 감게 했으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듣기로는 이 시대의 스포츠 선수들은 부상이 생긴 경우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주사했다고 하는데, 아직 조선까지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선수들에게 그런 조치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충분히 괜찮아진 것 같소이다. 이제 경기에 다시 나가보겠습니다.”
영수는 임시로 치료를 받더니, 그 특유의 근성으로 이를 악물고 다시 경기에 나가겠다고 했다. 중요한 경기만 아니었다면, 나는 당장 영수를 빼고 민수를 그 자리에 대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4회밖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만약에 대타로 들어간 민수마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그대로 게임이 끝나버릴 것이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영수의 출전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하나 생겨버렸다. 바로 김훈의 공의 위력이 약해진 것이다.
제2구.
휙!
딱!
-안타!
아까의 그 매섭고 날카로웠던 공은 어디 가고 갑자기 배팅볼 투수가 되어버린 김훈이었다. 아마 영수가 다치는 것을 눈앞에서 본 그였기에, 영수가 센 공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이기웅이 나왔다.
제1구.
휙!
-볼!
제2구.
휙!
-볼!
제3구.
휙!
-볼!
제4구.
휙!
-볼! 볼넷!
김훈은 감소한 구속 대신에 제구에 신경을 더 씀으로써 기웅을 공략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기웅은 의외로 침착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애매하게 걸친 공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 구속이 느려진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내린 판단 같았다. 어느새 4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아직 한 점도 못 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나가는 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뒤 타자는 석화단의 4번 타자로 나온 장성훈이었다. 이 선수에게는 진짜 제대로 걸리면 넘어갈 것이 뻔했는데, 지금 같은 김훈의 공 상태면 미래가 훤히 보였다.
제1구.
휙!
딱!
-파울!
폴대를 크게 빗나갔지만, 간담이 서늘해지기 충분한 대형 파울이었다. 얻어맞을 뻔한 김훈의 얼굴에도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영수가 타임을 요청하고는 김훈에게 다가갔다. 외야에 있던 나는 둘의 대화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딱 봐도 둘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주심이 돌아오라고 하기 전까지 그렇게 둘은 언쟁을 벌였는데, 영수가 다시 포수석으로 돌아가자 김훈의 분위기가 다시 바뀐 것 같았다.
김훈은 땀을 충분히 닦아내고는 다시 공을 꽉 쥐고 다음 공을 던졌다.
제2구.
휘익!
부-웅
-스트라이크!
김훈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바깥쪽 위주로 공략해나가던 김훈이었지만, 이번에는 기습적으로 몸쪽을 파고들었다.
맥없이 뻗어나갔던 1구와 달리, 묵직함이 느껴지는 빠른 공이었기 때문에 장성훈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제3구.
휘익!
딱!
착!
-만복아! 받아라!
휙! 착!
-더블 플레이!
장성훈은 2스트라이크라는 불리한 카운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에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는 맥없이 유격수 영복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영복이는 침착하게 공을 잡아내고는 2루수 만복이에게 토스했고, 만복이는 2루를 밟아 주자인 기웅을 아웃시키고는 다시 1루로 공을 보내 성훈까지 아웃시켰다.
기웅이 그답지 않게 나름의 전력 질주를 했지만, 워낙 병살타가 나오기 좋은 코스였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난 게 아니었다. 투아웃이었지만, 주자는 3루에 있는 득점권 위기 상황이었다.
다음 타자도 앞선 석화단의 3인방에 비해 무게감이 없어진 거지, 명색이 5번 타자를 맡은 유성인이라는 선수였다.
<이름: 유성인>
소속: 석화단, 나이: 21세
키 : 167cm, 몸무게: 66kg 우투우타
[타자]
정확도: 65 (69), 힘: 62 (66), 선구안: 74 (79), 주루: 72 (76)
수비: 66 (69), 번트: 48 (71), 정신력: 63 (66)
유격적성: 65 (67)
포구: 67 (68), 송구: 65 (69), 어깨: 65 (69), 반응속도: 67 (69)
힘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는 선구안과 주루 능력에 강점이 있는 선수였는데, 희한하게도 클린업 자리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아마 정확도가 그나마 뒤 타자들보다는 좋아서 그런 것일까?
제1구.
휙!
-볼!
이 선수는 선구안에 강점이 있었기에 확실히 바깥으로 빠지는 공은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제2구.
휙!
-스트라이크!
안쪽으로 들어오는 공에 반응을 못 하더니, 성인은 뭔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3구.
휙!
딱!
몸쪽 공이 약점인 듯해서 다시 한번 몸쪽을 공략하려는데 허를 찔려버렸다. 성인은 그대로 공을 잡아당겼는데, 공은 3루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우리의 3루수는 땜빵으로 들어가 있는 이윤상 과연 결과는······.
툭···.
윤상은 자신에게 향한 타구를 글러브에 갖다 대며 가까스로 빠지지는 않게 했으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윤상은 떨어진 공을 바로 찾아내어 포수에게 던졌다.
주자인 신사혁은 주력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상황 판단이 빨랐다. 투아웃 상황이라 타자가 공을 맞힌 것을 보자마자 바로 전력으로 홈을 향해 달려갔다.
거기에 더해 공을 살짝 늦은 타이밍으로 던진 윤상으로 인해 영수는 신사혁과 홈 승부를 해야했다. 그래도 영수가 빠른 판단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공을 잡아내어 태그를 한줄 알았는데···.
- 크악!
- ···세이프!
영수가 소리를 지르며 공을 놓쳤다. 영수는 데미지를 입었는지 잠깐동안 아무 동작도 못 하고 있었고, 김훈이 달려와서 2루로 향하는 1루 주자에게 공을 던졌다.
아웃이 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간신히 주자를 2루에서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영수는 컥컥 소리와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일어섰다. 그때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우~
-저 쓰레기 녀석 YMCA 포수를 때리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심판은 뭐하냐! 저 자식이 반칙을 저질렀잖아!
영수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관중들은 일제히 신사혁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덤으로 그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셰필드까지 욕을 먹어서 조금 안쓰러웠다.
셰필드가 이번에도 판정을 조금 늦게 내렸는데, 아마 신사혁이 주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잘 노려서 영수를 가격한 거 같다.
이 시대에는 비디오 판독은커녕, 경기 녹화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장면을 두고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어쩔 수 없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이 와중에 관중석에서 신사혁이 영수를 가격한 장면을 본 눈썰미가 좋은 관중은 심판으로 스카웃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영수가 크게 다쳤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놀라서 잠깐 쓰러졌던 것 같다.
영수는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포수석을 지켰고, 김훈도 이번에는 동요하지 않고 다시 전력을 다해 다음 타자를 잡아냈고, 위기의 4회를 단 1실점으로 마칠 수 있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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