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고종의 하사품
나와 혜림은 고종을 성공적으로 설득하였고, 이후 고종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번처럼 티타임을 몇 시간 동안 갖게 되었다.
오늘도 저번처럼, 케이크, 푸딩, 젤리, 카스텔라 등등 차를 마시면서 먹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디저트류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혜림은 아까의 긴장한 모습은 어디 어디로 갔는지, 디저트 귀신답게 식탁에 차려진 디저트들을 차례대로 흡입 중이었다.
그리고 고종은 그런 혜림의 모습을 보면서 흡족한 아빠 미소를 한번 짓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채영준 자네는 왜 가만히 있는가? 자네도 디저트 좀 들게나. 그건 그렇고, 우한진이라고 했던가? 그 장군감인 자 말일세. 그자는 혹시 올 생각이 없다고 했나? 같이 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일세.”
저번에 경기가 끝나고 한진을 바라보는 고종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더니, 오늘 이렇게 한진의 이름이 나왔다. 역시 마성의 남자 우한진···.
사실 한진은 높은 사람과의 자리가 매우 익숙한 자이다. 한진이 가진 외적인 모습과 능력이 보여주는 매력은 여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남자들마저 홀리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일국의 황제까지는 아니어도, 대전 호크스의 모그룹 회장과도 자주 독대를 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었고, 심지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 대통령마다 모두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자리 중, 단 한 번도 한진이 원해서 만들어진 자리는 없었다. 다들 한진을 만나길 원하니 알아서 만들어낸 자리였지.
한진은 높은 분들을 만날 시간에 공 한 번이라도 더 던지는 야구에 미친 녀석이니 말이다.
“네, 오늘도 참 다채로운 음식들이라 우선 눈에 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한진이 같은 경우에는 이 시간에도 방망이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려고 하는 자이기에, 어명으로 따로 부르시는 게 아니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런가? 그렇다면 따로 한번 불러야겠군. 안 그래도 황성 YMCA 야구단 전원을 따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었네.
아,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오늘 하사하려던 게 있네. 여봐라, 준비한 하사품을 가져오너라.”
오호라, 황제의 하사품이라고? 오늘 야구장 지원이 성사된 것만으로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물건을 하사하실지, 기대되는데?
고종의 명을 받고 가져온 하사품은 꽤 묵직해 보이는 크기로, 휘황찬란한 보자기에 싸여있었다.
“저번 경기에서 일본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것과 오늘 보여준 야구장 계획은 짐은 물론 이 나라의 백성들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이를 치하하기 위하여, 친히 하사하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앞으로도 더욱 좋은 경기로 폐하를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하사품을 받자마자 까보는 건 안 되겠지? 이만한 크기면 뭐가 들어있을지 너무 궁금해지는데?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하사품을 받은 이후에는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적당히 이것저것 얘기를 더 하고 난 뒤에 고종과 만남을 마치게 되었다.
“그래,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구나. 그럼 다음에는 야구장 기공식 때 다시 보자꾸나.”
“저 역시 너무나 뜻깊은 시간이었사옵니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무려 그 고종 황제께서 직접 기공식에 참여하기로 약속까지 하였다. 그만큼 우리를 확실하게 밀어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겠지.
이렇게 우리는 조금의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종의 신임을 단단하게 얻어낸 채로 궁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좋았어! 이거거든~!”
나는 궁에서 나오게 되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는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옆에 있던 혜림이 깜짝 놀랐다.
“어머, 놀래라. 야구장 건설 지원을 받은 게, 그렇게 좋으셨어요? 호호호.”
살짝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하하하···. 뭐라고 할까요. 앓던 이가 쏙 빠진 것 같은 기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리고 말았네요.”
“기쁘실만하죠! 사실 저도 너무나 기쁘거든요. 황제 폐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으니, 웬만하면 지원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100만 원이 불렸을 때, 흠칫하시는 것을 보고 혹시나 했거든요. 정말 잘 됐어요!”
혜림 역시 그때는 가슴 졸이는 순간이었나보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었기 때문에, 한진이 오기까지는 많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 먼저 한번 고종의 하사품을 좀 풀어볼까?
고이고이 모셔온 이 녀석의 정체는? 스카우터 on.
<고급 공진단>
황제의 보약.
사향, 녹용, 인삼, 산수유, 당귀 등의 고급 약재를 배합하여 반죽하고 빚어낸 약으로 그 효능이 매우 뛰어나다. 사향의 함유량이 높기 때문에, 고급으로 분류된다. 꾸준히 복용해야 그 효과를 온전하게 다 볼 수 있다.
내구도 10/10, 피로도 –30, 재생력 +30, 회복력 +30
우와아앗! 와, 캬, 괜히 황제가 하사한 약이 아니구나. 지금까지 보았던 어떠한 약재보다도 효능이 뛰어났다. 저번에 날린 녹용이 전혀 아깝지가 않을 정도이다.
한진아 언제 오냐~ 너 먹일 생각에 기대가 잔뜩 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공진단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고는 소설을 집필하면서 한진을 기다렸다.
음··· 근데 한진이가 너무 안 오는데? 밥 먹을 때가 다 되어가는데도 한진은 올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까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
···
···
부-웅
부-웅
부-웅
오래간만에 익숙한 소리에 반응하여 잠에서 깨어났다. 으으으, 어제는 술도 안 마셨는데도 고종을 설득하는 데에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한진이 집에 들어와 있기는 했다. 오늘도 여전히 아침부터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말이다.
“한진아 어제 언제 들어왔냐? 너 줄 거 있어서 계속 기다렸는데.”
“응? 저녁 시간 조금 넘어서 들어왔는데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너는 자고 있더라. 황제를 만나고 왔다길래 많이 피곤했나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지.”
“아, 그래? 근데 평소보다 좀 늦게 들어온 것 같은데, 뭐하다가 온 거냐?”
“아, 우리 내일부터 야구 교육하러 나가잖아. 엊그제는 먼저 간 사람들부터 다시 한번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 알려주었고, 어제는 오늘 출발할 영복이와 만복이에게 알려주고 왔지.”
아, 맞다. 오늘부터 다른 팀으로 파견 나가서 교육해야 했지? 어제 너무 바빠서 그걸 잊고 있었네.
“맞다, 오늘부터 교육이었지? 만복이한테 잘 가르쳐줬냐? 나는 요 며칠간 황제를 설득하는 것에 몰두해 있느라 교육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 했다.”
“에휴··· 그래, 내가 만복이를 단단히 교육해 놨다. 그리고 그냥 교본 쓰면서 했던 것들 위주로 가르치면 될 거야.”
“휴, 다행이네. 그럼 난 만복이를 가르친 너만 믿고 간다? 맞다, 너한테 줄 게 있다. 자, 여기.”
나는 공진단을 한진에게 건냈다.
“이게 뭐야? 이번에도 무슨 한약 종류야?”
“어, 공진단이라고 황제가 먹는 보약이라고 하더라. 저번에 먹었던 소환단은 물론, 내가 먹었던 고급 녹용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을 거야. 자, 츄라이 츄라이~”
한진은 내 말을 듣더니,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공진단을 꼭꼭 씹더니,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물로 꿀꺽 삼켰다.
“어우, 이거 좀 한약 향이 확 풍기고 많이 씁쓸한 맛이 나네.”
“원래,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하지 않냐. 어때, 효과는 좀 어떤 것 같아?”
“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음··· 잠시만···.”
한진은 일전에 소환단을 복용했을 때처럼 단전에 손을 모으고 명상하는 자세를 취했다. 다행히도 한진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났기 때문에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한진은 그렇게 30분 정도를 식은땀을 흘리면서 명상을 하다가 눈을 떴다.
“하아···. 저번보다 조금 더 기운을 쓴 느낌이네.”
자, 이쯤이면 됐겠지? 스카우터 on!
<이름: 우한진>
소속: 황성 YMCA 야구단, 나이: 26세
키 : 187cm, 몸무게: 97kg 좌투좌타
[타자]
정확도: 80 (89), 힘: 79 (89), 선구안: 79 (86), 주루: 69 (75)
수비: 77 (89), 번트: 67 (85), 정신력: 96 (99)
1루적성: 77 (88), 외야적성: 74 (85)
포구: 85 (89), 송구: 69 (95), 어깨: 70 (99), 반응속도: 89 (89)
[투수] 비활성화
[코치] 타자: 73 (86), 투수: 78 (89), 수비: 77 (88)
흠···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좀···? 아, 잠시만. 스카우터 on.
<고급 공진단>
황제의 보약.
사향, 녹용, 인삼, 산수유, 당귀 등의 고급 약재를 배합하여 반죽하고 빚어낸 약으로 그 효능이 매우 뛰어나다. 사향의 함유량이 높기 때문에, 고급으로 분류된다. 꾸준히 복용해야 그 효과를 완전하게 다 볼 수 있다.
내구도 9/10, 피로도 –30, 재생력 +30, 회복력 +30
아··· 함정카드가 있었구나. 이번 약은 끝까지 복용하고 나서야, 그 효과를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아직 한 번만 복용했는데도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래, 어차피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닌데 천천히 복용하자. 한약은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본인이 느끼는 것은 이와 좀 다를 수도 있으니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한진아, 이제 효과가 좀 느껴져?”
“저번에는 먹고 약을 몸에 흡수시키니, 바로 효과가 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네? 몸이 좀 편안해진 느낌이 있기는 해.”
음··· 역시 본인이 느끼는 것도 딱 그 정도인가 보네.
“아, 맞다. 그 약은 꾸준히 전부 섭취해야 효과를 완전히 볼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이번 한 번으로는 효과가 좀 약할 거야.”
“그래? 뭐, 어차피 아직 시간의 여유는 있으니까 천천히 복용하면 되겠지. 근데 이제 좀 한이 풀리냐?”
“응? 무슨 한이 풀려?”
“너 저번에 녹용을 내가 안 먹고 네가 먹게 되었다고, 그거 가지고 며칠 동안 계속 꽁해 있었잖아. 그거 때문에 신경 쓰여서 다음에 약을 구해오면 꼭 내가 다 먹으려고 했지.”
와, 이걸 기억해 준다고? 하긴, 내가 그때 좀 유난을 떨긴 했었지. 어쨌든 이번에는 한진이 꼭 다 먹는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아, 그거? 그래 이 자식아. 나도 몸 사리면서 다닐 테니, 이제 핑계도 없겠다. 꼭 네가 다 먹어야 한다?”
“알았다니까. 이제 밥이나 먹자. 약을 흡수시켰더니, 배가 좀 많이 고파오네.”
웬일로 한진이 밥을 먼저 찾았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마침 밥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고기반찬이 수북했다. 아무래도 오늘부터 교육에 나가니 그런가 보다.
한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한진도 참 투명하다. 메뉴에 따라서 이렇게 표정이 대놓고 변하다니···.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예정대로 교육 파견 준비를 위해서 YMCA 건물로 향하였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