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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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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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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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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3

DUMMY

최말동 선단의 천방지축어리둥절빙글빙글 돌아가는 모험은 그렇게 끝나고, 돌아와 조정에 보고도 올렸고, 유구에서 보내 온 서계도 접수되었다.


그들이 가져온 후추며 소목이며 설탕 등 남방 물산의 값은 단번에 대선의 건조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점에서는 경식의 관점에서 생각보다 성공적인 결과였다.


기본 목표인 유구로의 항로를 확보했고, 수군훈련원에 항해 기록을 남겨서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에게 항구를 열어줄 일본의 영주도 한 명 확보했다.


이건 앞으로 여러 번 걸쳐 선단을 파견해서 서서히 확인하려고 한거라 '하면 좋고 못하면 말고' 정도 생각으로 준 임무지만 해냈다니 좋은 일이다.


대선이 항해성능이 충분하다는 것도 확인되었고, 숙련된 선원들이라면 외양에서 대선으로 역풍이나 역해류에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유구에서 거래되는 남방 물자들의 종류를 확인했으며, 유구에서 직접 구매해서 들여오면 일본을 경유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것도 알았다.


화약의 재료인 유황, 대포의 재료인 구리, 활의 재료인 물소뿔 등도 유구에서 들여올 수 있으니 군사력 유지에 중요한 무역선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선단들을 더 파견해서, 이 뼈대만 갖춰진 남방 항로 관련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채워넣으면 된다.


천문관이나 지관도 같이 태워서 지도도 만들고, 계절에 따른 바람이나 해류 변화도 조사하고, 사카이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일본 영주들이랑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부만호 최말동은 전혀 선원들을 통제하지 못했군."


최말동이 선원들에게 개무시 당하고 선원들이 마라톤 회의로 선단을 굴리는 것은 말이 민주적인 것이지 그냥 권위가 없이 개판으로 굴러갔다는 것이다.


말동의 부만호직이 돈 주고 산 자리라서 별거 아닐 거 같아 보이지만 현대 군 계급으로 치환하면 최소 소령에서 중령급이다.


그리고 선원들은 이전에는 수십명이 타는 배에서 사공 정도 일을 해본 이들로, 7~9품 정도의 벼슬을 받았다.


현대 군계급으로 치면 상사나 중사 쯤 되는 이들이 중령을 생까고 자기들끼리 토론해서 부대 운영을 정한 상황이나 다름 없다.


물론 이 사공들이 하는 직무는 많이 중요하기는 하다. 대한민국에선 사공이라고 하면 그냥 배 노 젓는 사람인줄 알고, 실제로 작은 배에서는 그 정도 역할이지만, 큰 배에서 사공이면 항해사 정도는 된다.


그야말로 배에 사공이 너무 많아서 산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운이 좋게 성공한 것이다.


목적지가 중산(* 中山, 유구의 별칭)이었으니 산으로 간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 꼴로 이 정도의 사고만 치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다 마치고 돌아온 건, 선원들이 전부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전근대인 치고는 과도하게) 갖춘 인원들이었다는 점, 괴혈병으로 수십 명 씩 죽는 것이 기본이었던 서양의 대양항해와 달리 언제든지 육지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는 근해항해 수준이었다는 점, 항해일지 쓰라고 넣은 성균관 출신 유생들이 의외로 통제 역할을 해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운이 좋았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주인의식이랑 책임감이 높은 선원들만 탑승한건 우연이 아니다. 인원을 선발하는 취재에서 묻는 문제로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선별하는 항목을 경식이 직접 넣어서 그렇다.


그게 선단장을 생까는 결과로 나타날 줄은 생각 못했지만.


이런 조직 수준으로, 지금 서양이 대서양에서 하고 있는 수준의 항해를 시도했으면 선상반란이 일어나서 그대로 해적선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부분 때문에 조정 신료들 사이에서도 오만 의견이 다 오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선원들에 대한 두둔 의견이었다.


"사절을 파견할 때는 하민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런 것으로 일일히 벌해서는 사절들이 어찌 외방에서 위엄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사용 유표가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기 위해 짐짓 과장되게 쓴 것이 아닌가 따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상놈들은 가는 길에 싸움 좀 한다는 주장이다. 유표가 뻥을 좀 친 거 같고.


유표가 뻥을 쳤는지와는 별개로, 상놈들은 외국을 다닐 때면 존나게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동시대 해양세력들과 비교하면 최말동 선단은 선량한 편에 속했다.


이번 최말동의 유구 항로 탐사 선단이 출발할 때, 지구 반대편 포르투갈에서는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 탐사 선단을 꾸려 출발한 상태였다.


한 달 좀 넘겨서 유구를 찍고 돌아온 최말동 선단과 달리 바스쿠 다 가마 선단은 아직도 인도를 향해 가고 있기는 하다.


이들과 비교하면 최말동 선단은 얼마나 평화롭게 다닌 편이었는지 드러난다.


포르투갈 놈들은 정말로 가는 곳마다 도둑질, 살인, 납치 등등을 다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다 가마의 선단보다 포르투갈은 피에 굶주린 악마들이라는 소문이 더 빨리 인도에 도달했을까.


외국의 선단과 교섭할 때는 일단 납치부터 했고, 장사하다가 가격이 맘에 안 들면 도시에 대포를 쐈고, 노략한 배에서 나온 시체를 매달아서 포격 연습을 했고, 이슬람 상인들의 시체를 토막 내서 인도 토후들에게 보내며 카레 해먹으라는 편지도 같이 보냈다.


해병 수육 이전에 일찍이 포르투갈 카레가 존재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놈들에 비하면, 일단 포격하려던 해적 출신 선원들을 말리거나, 유구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역향으로 찍힌 곳이나 좀 털고, 유구 본섬에서는 멀쩡하게 장사하고, 고토 병사들이 활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비단을 주고 보급을 받으려고 했던 최말동 선단은 이미 양심에서 19세기 대영제국조차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 기준이면 이 정도면 아주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주장도 존재했다.


"병사들이 주장의 명을 따르지 않고 군령을 어지러이 하는 것이 어찌 가볍게 다룰 일이겠습니까. 엄히 징치하여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 놈은 뭐라는 거야?


"공로를 세운 이들을 처벌하면 앞으로는 누가 스스로 나서서 물길을 나라에 아뢰고, 누가 유구까지 드나들며 통교할 것이며, 누가 수군훈련원에 배속되어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고 하겠는가. 불가하다."


사실 최말동이 선원들을 통제 못 한 이유 중 하나는, '군령을 빙자하여 함부로 처벌하지 못한다' 는 조항 때문이다.


왜 이런 조항을 넣었느냐고? 그야 지금 저걸 상언하는 유순정 때문이다. 첫 공성 강무 때 통제가 안되는 병사들을 참수한 수성측 지휘관이다.


사실 전근대인들은 근대인과 다르게 법과 규율과 통제라는 개념과 동떨어진채로 평생을 산다. 전근대에는 범법을 저질러도 잡으러 올 경찰 같은 게 없다. 대부분 자력구제와 관습법으로 굴러가지.


근대 이후 사람들이나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체화하도록 교육 받으며 살아간다.


초등학교조차 별 거 없어보이지만 프로이센이 전국민을 병사로 만들기 위해 만든 제도로, 국민에게 국가의 규율과 통제를 내면화 시키는 작용을 한다.


경찰이란 개념도 낯설고, 의무교육도 없는 전근대 국가의 백성들이 갑자기 군대에 배속된다고 지휘관 명령대로 딱딱 움직이는게 될리가 있나.


그래서 병사들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근대인들이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로 엄격한 군율을 적용해서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경식이 보기에는, 군율이 엄한 것 치고는 조선 병사들은 영 통제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지금 조선군을 유순정이 원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통제하려면 절반 정도는 참수해야할 것이다.


경식도 무작정 엄격한 군율보다는 더 나은 해결책을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분석해보니 이 현상의 원인과 그 궁극적인 해결법은, 지금 바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해동제국사로 납전하여 들어온 관헌이 자질이 용렬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니, 납전 관헌을 혁파하고 문무관을 서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산직에 있어 바로 등용할 수 있는 관헌의 수가, 납전 관헌들의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있소?"


"충의위나 족친위의 군관들을 쓴다면..."


"허참,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경식은 3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관직을 늘이고, 세수를 늘이고를 반복해왔다.


조선의 양반 관료들은 전문화된 업무체계를 각기 나눠 맡는 근대적인 관료제 조직이 아니다. 굳이 근현대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같은 정치가들에 더 가깝다.


그래서 과거제에서 실무적인 지식이랑 많이 거리가 먼 글짓기나 형이상학 문제나 내놓고 그런 놈들을 등용해도 대충 돌아간 것이다.


실무는 알다시피 서리 등 중인들이 한다. 관아에 진짜로 능력 있는 관리가 오는 것은 거의 운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여태 경식이 뜯어고친 건 이 부분이었다. 자치적이고 세습적이던 실무진인 서리 계층을 공식 관료 계층으로 편입시켜서 재배치했고, 임용대기 중이던 양반들은 중간관리직과 실무진에 박아넣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후보자들 수가 공무원의 중간관리직과 실무진 조직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을 리가 있나. 결국 인력풀은 금방 바닥났다.


여기에 군대 조직의 팽창이 더해지니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경식이 해동제국사 관헌을 납전으로 모집한 건 그저 돈 아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조선군은 부사관이나 소대, 중대급을 통제할 지휘자 등 하부 조직을 통제할 지휘자들이 부족했다. 경식이 보기에 조선군의 규율 문제는 여기서 기인했다.


미래 한국 육군으로 비유하면 소대장이랑 분대장을 병사들끼리 알아서 뽑는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낮은 무관은 중대장부터 시작이고.


육군은 서정 준비 때 이 조직 구조를 뜯어고치면서 해결했다.


문제는 수군이었다. 무과를 보고도 임용 대기 상태이던 인력이 상당했던 육군과 달리 수군은 세습을 시켜야 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했다.


조선의 제도는 항해 기술을 가진 영선(선장)이나 사공 등은 선원 중에 짬 좀 찬 놈을 하나 뽑는거고, 무관은 그런 배들 여럿을 묶은 부대를 통솔하게 하는 구조다.


수군에 임명되는 무관은 수군으로써 항해술 등의 전문화 된 교육은 안 받고, 저런 배들 여럿을 통솔하는 역할부터 맡는다.


이순신도 육군이었다가 수군으로 배속될 때 바로 만호직부터 맡았다.


즉, 원래 조선군의 수군 체계는 선장조차도 정식 무관이 없이 병사급들이 알아서 하는게 원래 제도다.


최말동 선단이 멋대로 민주적으로 굴러간 이유가 있다. 선원들이 항해술을 더 잘 알고, 통령은 선원들을 처벌할 권한이 없는데 왜 명령을 듣겠는가.


그래서 하부 조직도 통제할 정도로 수가 충분한, 항해기술을 가진 전문화 된 수군 무관을 만들려고 세운 것이 수군훈련원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력이 뭐 세운다고 바로 뽑혀 나올리가 있나.


지금 당장 병사들을 엄격히 통제하려면 유순정 말대로 군율을 FM대로 적용해서 목을 댕겅댕겅 날리는 수 밖에 없다.


또는 전국민이 규율과 통제를 내면화한 근대국가라는 모델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 개판은 용인하고 넘어가는게 맞다. 유럽에서 지금 하는 것이나, 이전까지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그야말로 중간이 없는 선택지다.


그리고 경식이 원하는 근대성을 내면화한 국가를 만들려면, 수십 년을 들일 수 밖에 없다.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와 조직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마법 같은 방법은 없었다.




지금 조정과 경식이 신경쓰는 것은 남쪽의 일본과 유구로 이어지는 항로지만, 북서쪽에서도 해동제국사는 활약하고 있었다.


요동반도의 남쪽에는, 성종 시절부터 해랑도(*海浪島, 현 중국 창하이 현 장산군도 일대.)라는 섬이 문제시 되기 시작했다.


또 앞서 말했듯, 조선의 민간 상선들은 이미 요동 및 산동으로 가는 밀무역 항로를 이미 발견한 상태다. 조정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들이 해동제국사로 들어오면서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 항로가 바로 요동 근처에 있던, 해적들의 굴혈로 알려진 해랑도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 해적과 상인들이 다 그렇듯, 해랑도로 들어가는 상인들도 시시때때로 해적과 상인의 경계를 넘어들었다.


황해도와 평안도의 선상들은 밀무역을 위해 해랑도로 드나들었고, 중국인들 범죄자들 역시 해금 때문에 섬들의 치안이 공백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이용해 해랑도로 도망쳐 해적이 되었다.


그 결과 해랑도는 해적의 소굴이자 밀무역자들의 거점이 된 곳이자, 중국인과 조선인이 섞인 경계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조선은 이제 바다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해동제국사에 의해 해랑도의 위치가 밝혀진 바,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승정원에서는 이렇게 보고했다.


"해랑도라 하는 곳은 그 위치를 보아 중국에 속하는 곳입니다. 이전 성종 때에 요동도사에게 공문을 보내 우리 백성은 쇄환해달라고 하였으나 아무런 답이 없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야 요동도사는 전대는 밀무역을 자기가 하는 쪽이었고, 이번 요동도사는 인수인계도 못 받아서 그런 섬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어서 그렇다.


인수인계가 한 번 잘못 된 일이 다 그렇듯 앞으로도 영원히 요동도사는 신경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갑자기 신경 써서 부랴부랴 전수조사를 한다면 그런 섬이 있었다고?! 하고 알아챌지도 모르지만, 지금 명은 해금령 때문에 작은 섬들 따위 일일히 신경 쓰지 못한다.


조선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왕은 달랐다.


"굳이 섬에 사는 백성들을 쇄환하도록 하여 중국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듣자하니 이미 해랑도에서는 중국인과 우리나라 사람이 섞여 살며 말과 의복도 서로 분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섬의 백성들이 어물과 강치 가죽을 팔아 생계를 잇는다니, 해동제국사 관헌들이 관할하게 하여 해적들이 우리 백성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우리나라로 드나들려 하는 배에 대해서만 세를 걷도록 해라.

또 해동제국사가 해랑도에서 어물 등을 얻어오거든, 다른 예에 준하여 화매소에서 거래하게 하여 세를 걷으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그냥 회색 지대로 방치하되 세금은 뜯겠다는 소리다.


중국에서는 대충이나마 해랑도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고, 진짜 요동 코앞이라서 대놓고 조선이 손을 뻗으면 진짜 문제가 될만 했다.


그러니까 가끔 배만 보내서 알맹이만 빼먹는다.


강치 가죽도 사치품으로 무척 비싸고, 어물도 이 시대에는 고부가가치 물품이니, 해동제국사가 그것만 해랑도에서 얻어와도 돈이 꽤 나오긴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미 해랑도는 중국 요동 및 산동, 황해도와 평안도를 잇는 무역 중개지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곧 해랑도에서 밀무역 경험이 있는 해동제국사 소속 배들이 돈냄새를 맡고 해랑도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평안도 정주에 새로 설치된 해랑진에는 첨절제사로 전임(田霖)이 임명되어 해랑도를 드나드는 해동제국사 소속 배들을 통제하게 되었다.


해랑진에 온 전임은 배를 타고 나와 해랑도를 정찰했다.


"저 섬이 그 해랑도라는 섬인가? 그야말로 포구를 짓기에 완벽한 섬이군."


"그렇습니다. 근래에 요동에서 범죄하고 도망친 당인(중국인)들이 몰려와서는 자기들을 총병관이라 칭하며 수적질을 하고 있지요."


"비록 백성들을 억지로 추쇄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대국과 우리나라의 바다를 어지럽히는 적을 내버려둘 수 없다."


전임이 용맹하고 엄정하여 변경의 장수로 적합하다고 추천이 들어와 쓰인 것인데, 사실 전임은 좋게 말하면 강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또라이 타입이다.


한성부윤 시절에는 왕족이 집 짓는데 자를 들이대서 재고는 규정을 어긴 집이라고 들이받아서 공사를 중지 시켰고, 포도대장 시절에는 세도가 하인들 중 횡포를 부리는 놈들을 포졸들을 매복시켜서 생포하여 두들겨팼고, 병사들 중 군율을 어기는 놈이 나오면 썽둥썽둥 참수했고, 아들이 술먹고 횡포 부리고 다니자 망설임 없이 패죽였다.


원래 명나라 백성이 하국인 조선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면, 조선에서는 명나라랑 마찰을 우려해서 명의 백성은 처벌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전임에게는 그런 거 없다. 명나라 백성이고 뭐고 해적 새끼면 다 죽여야 한다.


하지만 해동제국사 선원들은 전임이 무섭지 않았다. 배 타고 해랑도까지 돌아다니는 것들은 자기들이고, 전임은 정주에서 머물러야하지 않는가.


해랑도로 온 해동제국사 배들은 이리저리로 흩어져서 자기들과 친했던 조선 출신들과 만나며 위세를 부렸다.


"어이, 정남이! 이제 무슨 벼슬을 한다며. 출세했구만?"


"하하하! 이제 여기서 중국놈들이 괴롭히면 나한테 말만 하라고!"


해동제국사 소속 배들은 해랑도에 들어와선 평소에는 물고기를 잡다가, 중국 배 같은 것이 보이면 번개 같이 달려가 소리쳤다.


"거기 네놈들! 이 해랑도로 멋대로 들어온 것으로 보아 분명 중국에서 범죄하고 도망친 놈이렷다!"


"뭐야, 무슨 조선 놈들이...우리가 누군지 몰라? 우린 곽성 총병관께서 지휘하시는..."


펑! 퍼벙!


배에 무기라고는 커다란 돌이나 몽둥이 뿐이었던 중국 해적들에게는 해동사 배들이 보유한 2~3문 정도의 대포만으로도 충분했다.


"...원하는게 뭐냐."


"배를 대서 가진 물건을 다 내려라."


이 부분만 보면 일방적인 약탈 같으나, 해동사 소속들도 상인이라, 그렇게 일방적인 약탈로는 지속가능한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동사 배들은 해랑도에 들어오는 중국 해적들에게도 '안전'을 보장하고, 자신들과의 거래를 허락해줬다.


거부하면? 법대로 해적은 전부 참살하라는 전림에게 그대로 보고한다.


"아니, 쌀도 아니고 무슨 조를 팔면서 비단을 달라고 하는 거야! 이 비단이 여진족들한테는 얼마에 팔리는지 알기나 해?"


"몰라. 우리가 여진족이랑 거래할 것도 아닌데 알게 뭐야?

그럼 여진족한테 팔든지. 할 수 있으면 말이야. 싫으면 밥 없이 비단을 먹고 살든지."


"이런 썩을..."


중국 해적들은 터무니 없이 싼 값으로 중국에서 훔쳐온 물건들을 조선인들에게 팔아야 했다.


해랑도는 이미 땅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을 외부에서 유입해오지 않고는 유지할 수 없었다.


요동이나 산동에서 식량을 들이려고 해도, 이놈들이 돌아다니며 잡아대니 식량을 들여올 유일한 루트는 조선이 되어버렸다.


중국인 해적들이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고, 그걸 해랑도로 가져오면 해동제국사는 싼 값에 사가는 하청 해적질 구조가 만들어졌다.


엄정한 첨절제사가 버티고 있는데 자기들이 백성들을 토색질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해적질은 중국인들이 하면 된다.


역시 비용을 아끼고 날로 먹으려면 하청에 외주 주는 것이 최고라는 미래 자본주의 시대에나 나타날 지혜를 해동사 소속들은 너무나도 빨리 깨닫고 말았다.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 화매소가 설치된 도시들에는 해동사 배들이 해랑도로 떠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어물에, 온갖 중국 물품, 강치 가죽 등 물산들이 들어왔다.


평안도와 황해도는 이전부터 중국 사신이 드나들 때마다 발생한 사무역 때문에 상업이 발달한 곳. 이젠 더욱 중국 물산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멍청이가 아니면 다들 해동사 배가 들어 올 때마다 중국 물품들을 사들여서 쟁여뒀다가, 남도의 상인들이 올라올 때 팔아서 가산에 보탰다.


그리고 중국 물품들을 사러 오는 남도의 상인들이 뿌리는 돈과 물자는, 다시 평안도와 황해도 사람들의 창고를 가득 채워줬다.


남도 상인들은 평양에 들렀다 오고선 "요새 평양은 거지도 소매에 당물(중국 물건)을 넣고 다니고 개도 당물을 물고 다닌다니까!" 라고 뻥을 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평안도와 황해도의 화매소들은, 갑자기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 물산들에 대해서 올해 초에 도입한 관세를 걷기 위해서 서리들을 더 늘여야 했다.


이 서리들도, 지금까지 학당에서 글자만 배운 수준인 인원들보다 질적으로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2년 간 향교에서 배웠으나 유학에는 영 재능이 없던 선비나, 향교를 4년 간 배우고 졸업해도 딱히 벼슬로 나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던 상민들은, 향교 과정을 중도 포기해가며 화매소에 관세 서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부는 아예 돈을 모아서 배를 산 후 해동제국사에 바치고 들어가기도 했다.


남도에서 나주 등지 도시가 흉년으로 위기를 맞은 것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


*1 : 본문에서 묘사한대로, 해랑도는 요동 반도 남쪽의, 현 장산군도 일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원래 역사에선 연산군 1년에도 한번 이야기가 됐지만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가, 연산 4년에서야 관심을 기울여서 토벌을 논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요동도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미뤄지다가, 연산군 6년에 명 황제로부터 토벌 허가 칙서를 받아서 수토하게 되지요. 오늘 등장한 전림은 원래 역사에서 해랑도 초무사를 담당한 무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측에서는 1천호에 달하는 범죄자들이 살고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조선의 해랑도 토벌은 중국인 78명, 조선인 34명을 잡았을 뿐으로 대단한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국 측이 주장한 것을 보면 당시 해랑도에 이미 중국 해적 군벌들도 나타난 모양입니다. 곽성이라고 하는 자가 총병을 자칭하며 그 휘하의 사람들 역시 천호, 백호 등의 무관직을 자칭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물론 그냥 민병대들이다보니, 조선에서 파악하기로는 큰 돌이나 몽둥이 정도의 무장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류창호. (2016-02). (특집논문) 서해 북부 해역에서의 海浪賊 활동과 조선정부의 대응. 耽羅文化, 제51호, 6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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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 잡았다 3 +67 24.06.19 9,883 507 24쪽
41 봉 잡았다 2 +79 24.06.18 10,011 473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10,601 510 23쪽
39 탈상 +88 24.06.15 11,002 487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933 495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10,625 473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810 481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60 24.06.11 10,690 478 21쪽
34 돈과 전쟁 +55 24.06.10 11,485 507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2,504 522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2,628 558 25쪽
31 서울의 여름 +38 24.06.05 12,035 50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782 510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2,450 53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5 24.06.02 12,811 58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8 24.06.01 12,842 574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2 24.05.31 12,884 577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3,223 565 22쪽
24 뒷수습 +50 24.05.29 13,831 512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3,341 56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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