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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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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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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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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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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09.12.17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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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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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8쪽

로라시아 연대기 - 9.명예로운 자와 거짓말쟁이(3)

DUMMY

2시간에 걸친 살롱에서의 대화는 프레이르를 녹초로 만들어버렸다. 프레이르는 만약 매일 같이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는 자신이 얼마 안 가 다 써버린 양초처럼 영혼이 흘러내려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지치고 말았다. 살롱의 손님들은 모두 세르티프 백작이 이미 아르첼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것은 백작의 지원세력인 그들에게 있어서 프레이르가 적으로 선포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 덕택에 프레이르와 레드포드 자작은 이들의 신랄한 비아냥거림과 경멸이 담겨 있는 말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은 역시 리처드 대공이었다. 프레이르의 지식 밑천이 포르테빌에게서 배운 것이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집요하게 프레이르를 추궁했다. 결국 참다못한 프레이르는 머리가 아파 잠깐 바깥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살롱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에 레드포드 자작은 프레이르를 따라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포르테빌 대공이 그러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기에 다시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이 광경을 지켜 본 리처드 대공이 빈정거렸다.

“유년기를 레드포드 자작가에서 보내신 전하께서는 확실히 이런 우아한 분위기에 아직 적응을 못하시는군요. 레드포드 가문의 가정교육은 아무래도 군인이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포르테빌은 리처드 대공이 ‘가정교육’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복동생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리처드의 말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예 프레이르를 레드포드 가문 사람으로 매도하려는 듯 보였다.

“아, ‘가정교육’이란 것은 단순히 관용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별다른 악의는 없습니다.”

리처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레드포드 자작에게 손을 휘저어 보이며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심술궂은 미소는 그의 말과는 달리 명백히 악의를 띠고 있었다.

‘관용 표현이라니... 참 잘도 지껄이는군.’

포르테빌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이런 도발에도 레드포드 자작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살롱 전에 포르테빌이 섣불리 도발에 말려들지 말라고 그에게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군인, 마틴 경이었으면 진작에 리처드 대공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이미 이 점을 꿰뚫고 있는 리처드 대공은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재차 빈정거렸다.

“물론 저는 전하께서 용감하고 당당한 군인인 레드포드 자작의 덕목을 본받는 것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레인가드에는 한 사람이다로 더 용감한 군인이 필요하거든요. 그 군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면 충분할 것이고요.”

이제 레드포드 자작은 이를 악물고 이 악담을 참고 있었다. 프레이르와 레드포드 가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지만 어쨌든 오늘 밤만이라도 넘기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리처드는 쉴새 없이 신랄한 악담을 늘어놓았다. 마치 오늘 마틴 경을 끝장내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 알타미라 후작부인의 살롱에서는 프레이르 전하께서 재치있는 입담을 구사하셨다면서요? 그... 뭐냐... 독사 이야기라고 했던가요? 허허... 확실히 맞는 말이군요. 독사는 그 머리가 가장 위험하죠.”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가 나간 문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독사를 잡을 때 그 머리를 막대기로 눌러버린 다음 머리를 쪼개버립니다. 독사가 그 독니를 드러내기 전에 말이죠."

프레이르와 샤를을 가리켜 독사의 머리라 지칭한 이 거친 조롱에 앉아 있는 일동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레드포드 자작을 지탱해주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리처드 대공에게 달려갔다. 그가 리처드에게 주먹을 날리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포르테빌이 깜짝 놀라 리처드를 보호하며 마틴 경을 저지했다. 다행히도 레드포드 자작의 주먹은 리처드에게 닿지 않았다. 레드포드 자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포르테빌을 떠밀려 했으나 포르테빌은 그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이런 식으로 난투극을 벌인다면 그것은 프레이르와 마틴 경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했으므로 그는 필사적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리처드 대공이 유유자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더러운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경멸이 섞인 비웃음을 지으며 레드포드 자작에게 말했다.

“흥, 역시 이런 우아한 밤에 못 배워먹은 신분은 어울리지 않군. 흥이 깨졌어.”

“그만 하게, 리처드! 그리고 레드포드 자작에게 사과해.”

보다 못한 포르테빌이 리처드에게 외쳤다. 그러나 리처드는 고개를 저었다.

“무엇을 사과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포르테빌 형님. 전 단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이 말에 격분한 레드포드 자작이 마침내 포르테빌에게 묶인 손을 풀었다. 그리고 그는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흰장갑을 꺼내 리처드 대공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찰싹’

장갑이 리처드의 안면을 강타했다. 동시에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고요해졌다. 리처드의 뺨을 때린 레드포드 자작은 그의 장갑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리처드 대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장갑을 집어 들었다. 포르테빌 대공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장갑으로 뺨을 때리다니... 그는 레드포드 자작이 이 최악의 방법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에 빠졌다. 장갑으로 뺨을 때리는 결투는 ‘한쪽이 죽을 때까지’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레드포드 자작은 분노로 씩씩거리며 리처드 대공에게 물었다.

“무기를 정해라, 이 개자식아.”

“왕족답게 검으로 하죠. 과연 레드포드 자작님의 그 고결함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리처드 대공의 시원한 대답에 레드포드 자작이 ‘뿌득’하며 이를 갈았다. 누구보다 검에 자신 있는 그였다. 이런 모욕은 역시 참기 힘들었다.

“원하는 바다. 시체도 못 찾을 정도로 조각을 내주지.”

“훗, 기대하지요. 장소는 카시네예프 외곽 이냐크 대성당 뒤편 정원. 일시는 내일 새벽 6시. 겁먹었다면 지금 취소하시는 것이 그나마 덜 망신당하는 길일겁니다.”

“그 때까지 유언장이나 써두시지. 마차에 큼지막한 관도 하나 준비하고 말야.”

“흥,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준비한 관에는 자작님을 모셔다드리죠. 마침 장소도 성당 뒤편이니 원하신다면 매장해줄 친구가 없으시다면 제가 대신 묻어드리는 아량 정도는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리처드 대공은 레드포드 자작의 말에 비웃음을 날렸다. 마틴 경은 당장이라도 그 사내의 입에 검을 꽂아 넣고 싶다는 듯 이를 갈았다. 잠시 동안 그렇게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리처드를 노려보던 그는 ‘쾅’하며 문을 닫고 방을 나가버렸다. 온 복도가 그의 발걸음 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리처드는 그 발소리를 들으며 다시 빈정거렸다.

“저것이 진정한 평민의 퇴장법이지요. 솔직히 저 마틴 경이라는 거짓말쟁이가 결투라는 우아한 의식이 얼마나 명예로운 것인지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대공의 여유 있는 농담에 살롱의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포르테빌은 도저히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응접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먼저 나가는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말을 남긴 채 프레이르와 함께 급히 궁성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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