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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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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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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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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09.12.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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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1)

DUMMY

레드포드 자작과 리처드 대공 간의 결투가 벌어진 지 2주일이 흘렀다. 비록 리처드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은 실패했지만 레드포드 자작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투로 인하여 레드포드 자작가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프레이르에 대한 소문 역시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또한 귀족들은 레드포드 자작이 리처드 대공의 어깨뼈와 코뼈를 부숴놓았다는 소식에 더 이상 레드포드 자작 앞에서 함부로 ‘사생아’ 운운하며 프레이르의 이름을 거론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 리처드처럼 잔디밭에 나동그라져 레드포드 자작의 검에 어깨를 꿰뚫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용감하게 레드포드 자작에게 맞섰던 리처드 대공 역시 명성을 높일 수는 있었으나 그것 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시종들의 말에 의하면 오른쪽 날개뼈가 부서진 그는 뼛조각을 맞추는 수술을 받았는데 그 수술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수술 도중 세 번이나 혼절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리처드는 왕족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과연 지독한 독종이 아닐 수 없었다.

살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결투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롱은 새로운 화젯거리로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국왕 샤를이 다가올 3월의 여신을 맞이하기 위해서 성대한 무도회를 개최하기로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카시네예프의 대귀족들은 물론, 지방의 군소 귀족들,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 성직자들, 마법사들, 각국의 대사들, 그리고 지체 높은 부르주아들까지 초대 받은 이 무도회는 총 2000장의 초대장이 보내진 대행사였다. 엘리스 에인절 왕비와의 결혼식 이래로 가장 큰 규모의 무도회였다.

국왕에게 아첨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출세를 원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초대장을 얻기 위해서 안달이 났고 지방 귀족들은 국왕 폐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먼저 보기 위해서 부랴부랴 수도로 달려왔다. 일부 귀족들이 초대장을 얻기 위해서 이 행사의 총 책임자인 포르테빌 대공과 궁내부 대신에게 뇌물까지 건네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이 대행사는 성황리에 준비되고 있었다.(포르테빌 대공이 뇌물을 받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지만 그 뇌물 중 상당수가 샤를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샤를은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

이 무도회에 관해 들뜬 것은 어른들 뿐만이 아니었다. 초대장을 받은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학생들 모두 역시 열에 들떠 있었다. 이것은 남자, 여자, 고학년, 저학년 할 것 없는 공통적인 현상으로서 너나할 것 없이 서로 만났다 하면 무도회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2000장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야.”

루크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프레이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장이 2000장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일까? 그는 입학식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2000명이었으므로 2000장의 초대장이라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왜냐하면 초대장을 받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아내와 자녀들까지 궁성에 올 자격을 부여 받기 때문이었다. 즉 2000장의 초대장이라면 대충 계산해 봐도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무도회를 위해 이 궁성에 모이게 되는 것이다. 1만 명!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험, 알고 있겠지만 내 아버지께서 그 행사를 경비하는 총 책임자시지. 국왕 폐하께서 친히 명령하셔서 말이야.”

아르넷이 이미 몇 번이나 들려준 사실을 다시 들먹이며 우쭐거렸다. 결투 사건에서 그의 아버지가 승리한 이후로 아르넷의 오만방자함은 이미 프레이르를 넘어서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 무도회의 경비라는 명예로운 임무의 총책임자로 수도경비사령관인 레드포드 자작이 임명되면서 레드포드 자작가와 아르넷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래, 대단하다. 정말이지 네 콧대를 보아하니 행여 하늘이 꿰뚫릴까 걱정이 될 지경이구나.”

프레이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약간의 비꼼이 들어가 있었지만 최근 자신감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아르넷은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프레이르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다니...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어제는 우리 저택에 로네이 백작부인과 고티에 백작부인이 내 어머니를 찾아와서 날 그 쪽 영애의 파트너로 삼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니까.”

아르넷의 말에 루크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평소 평민 출신인 레드포드 자작부인을 은근히 깔보아왔던 고티에 백작부인이 레드포드 자작가에 찾아가서 파트너 신청을 청탁하는 것은 참으로 볼만한 광경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콧대 높은 고티에 백작부인이 지었을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난 세르티프 백작가의 로잔느에게 직접 파트너 신청을 했어. 아버님 명령도 있었지만 로잔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파트너잖아. 행여 빼앗길까봐 얼른 파트너 신청을 해서 받아냈지.”

루크가 그의 머리를 슥 넘기며 말했다. 마치 신청해서 허락 받은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레이르는 문득 한 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루크와 아르넷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도 파트너 신청을 해야하는 거야?”

순간 루크와 아르넷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읽은 프레이르는 자신이 참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아르넷이 입을 열었다.

“바보냐?”

루크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되물었다.

“설마... 너 아직?”

“난 아이들은 파트너가 필요 없는 줄 알았지.”

프레이르는 조금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 이상하게 남자아이들이 동분서주하며 여자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프레이르는 결투 사건 이후로 쉴 새 없이 살롱에 불려 다니고 시종장에게 예절교육을 받고, 화술을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터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언가 쓰잘데기 없는 짓을 벌이는 것이라 생각했더니 파트너 신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넌 설마 춤을 혼자 출 생각이었냐?”

“정말 바보로군.”

아르넷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자 프레이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다. 이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다니... 프레이르는 투덜거렸다. 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무도회에 가기 위해서 파트너 신청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일단 일정이 바쁜 샤를과 엘리스는 어쩔 수 없었고, 리처드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레드포드 자작 또한 최근 만나지 못했고, 그의 예절교육의 스승격인 포르테빌 대공은...

“...바로 그 무도회를 기획하고 있군. 제기랄.”

설명해줄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프레이르의 살롱 교육을 시종장에게 맡겼겠는가? 아니, 어쩌면 아무리 귀족사회에 문외한인 프레이르라도 무도회에 파트너를 데려가는 것쯤은 상식이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프레이르는 자신이 큰 곤경에 처할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쳇, 지금 신청하면 되는 거지.”

프레이르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루크와 아르넷은 그 모습을 보며 킬킬거렸다.

“그럼. 너한테는 카스티야 양이 있잖아.”

“그래, 너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

아르넷이 휘파람을 휙휙 불며 천박하게 프레이르를 놀렸다. 프레이르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 애는 이미 신청 받은 거 아냐? 웬만한 남자아이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았을 텐데?”

프레이르의 말에 아르넷과 루크가 다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프레이르를 다시 쳐다보았다. 루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모른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루크를 대신하여 아르넷이 말했다.

“너 진짜 바보냐? 누가 감히 카스티야 양에게 파트너 신청을 했겠어? 카스티야 에버딘 양은 프레이르 전하가 가장 총애하는 영애인데.”

하루에 두 번이나 아르넷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프레이르는 귀족 사회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면 이런 취급을 당한다는 것을 오늘 똑똑히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이 굴욕을 평생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 프레이르에게 루크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우린 진작에 네가 카스티야 양에게 신청을 한 줄 알고 있었지. 휴우... 카스티야 양만 딱하게 되었군. 지금 카스티야 양이 너 때문에 다른 귀족 영애들한테 얼마나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루크의 입에서 나온 이 엉뚱한 말에 프레이르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런 말은 전혀 금시초문이었다. 최근 그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시종장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전속력으로 뛰어가 살롱에 갈 준비를 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 때문에 수업이 끝난 뒤 그는 에버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모두들 지체 높은 카시네예프 귀족 영애들을 제쳐두고 그런 촌구석 여자아이를 전하께서 총애하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아이와 네가 친하게 다니니까 다른 영애들이 질투하는 거지. 더구나 사람들은 이미 네가 그녀에게 파트너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구. 우리도 그렇고 말야. 그러니 다른 고귀한 숙녀 분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두겠어?”

루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추궁이었다. 눈치 빠른 프레이르였지만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영애들은 그의 앞에서는 모두들 예의를 갖추며 공손히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색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지. 그럼 네 앞에서 대놓고 카스티야 양을 무시하겠냐?”

아르넷이 건방진 말투로 그것도 모르냐는 듯 몰아세웠다. 프레이르는 할 말이 없어졌다. 나름 그런 쪽에 감각이 좋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는 아르넷만도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에는 분명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물론 모든 영애들이 무시하는 것은 아니야. 몇몇 영애들은 카스티야 양이 너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어떻게든 친분을 만드려고 안달이지. 너에게 줄을 대보려는 속셈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카스티야 양이 그런 것을 이용할 만한 성격은 아니잖아. 그녀는 그런 상황을 굉장히 거북해하고 있어."

루크가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프레이르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행동이 매우 경솔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에버딘과 카스티야 가문에게 폐를 끼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도 행동에 나서야 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겠지. 지금 바로 찾아 봐야겠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이 근처에 에버딘이 있을 리 없었다.

“카스티야 양은 자주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분수대에 있더군. 그 쪽에서 찾아보는 게 어때?”

루크가 제안했다. 프레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 쪽으로 가보자.”

프레이르는 그 두 사람을 이끌고 이전에 그가 낮잠을 잔 적이 있었던 분수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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