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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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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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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10.06.2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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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2)

DUMMY

에우로텐의 위대한 신학자인 성 프란체스코 바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세 가지다. 돈, 지나친 교만함, 그리고 레인가드의 무도회다.”

레인가드의 무도회는 사치와 향락의 절정을 이루는 행사로서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 이름을 떨쳐왔다. 물론 어느 나라나 궁성에서 열리는 무도회는 화려하기 마련이지만 그 어느 것도 레인가드의 무도회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로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가장 평화롭고, 강력하며, 문화가 발달한 레인가드의 무도회는 목석과 같은 사람이라도 매료시킬 수 있을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비롯하여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성직자들은 레인가드의 이러한 무도회 문화가 이교도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금욕적인 성품을 지닌 프란체스코 수도회원들은 무도회가 이교도들의 종교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방탕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아벨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세력이 약한데다가 무도회에 열광하는 레인가드에서 귀족들에게 그들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나 다름 없었다.

무도회 문화가 워낙 발달한 나라이다보니 레인가드에서는 춤 실력이 교양의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정도였다. 우아하고 능숙하게 춤을 추는 사람일수록 더 귀족적인 인물로 대접 받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저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더 우아하고 완벽한 춤을 구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렇게 춤을 배우는데 혈안이 된 레인가드 귀족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춤 실력을 지닌 인물은 포르테빌 대공으로서 수백 가지에 이르는 춤곡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샤를은 안심하고 포르테빌 대공에게 무도회의 총책임을 맡긴 것이었다.

과연 포르테빌이 주도한 무도회답게 이번 무도회는 호화스럽기 짝이 없었다. 마치 여신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궁성은 온통 금빛으로 치장되었고, 귀족들의 입장을 알리는 은빛 트럼펫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5일 밤낮으로 열리는 무도회는 무도회뿐만이 아니라, 오페라, 연극, 가면 무도회도 함께 열리는 대행사였는데 참여하는 사람은 귀족만 무려 1천여명으로서 샤를이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최대 규모였다. 곳곳에 귀빈들을 위한 무도회장이 설치되었고, 시종들은 부지런히 무도회장을 치장하였다.

궁성 곳곳에 마련된 무도회장 중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곳은 ‘영광의 홀’이라 불리는 거대한 홀이었다. 오직 다섯 개의 금빛 독수리가 붙어 있는 초대장을 받은 인물들만이 이 홀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들은 대개 왕족이거나 상급 귀족, 혹은 외국의 손님들이었다. 오로지 백수십명의 선택 받은 인물들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손님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사람은 영광의 홀의 시종장과 국왕의 비서관이었다. 그들은 홀의 입구에 서서 손님들이 건네주는 초대장을 받아들고 그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며 입장을 알렸다. 이들은 마치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려는 듯 일부러 뜸을 들이며 귀빈들의 이름을 외쳤는데, 이것은 무도회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시종장과 비서관이 손님들의 내방을 알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프레이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항상 대담하게 행동하는 그였지만 이토록 화려한 무도회에 주인공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옆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연상의 파트너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처음 경험해보는 프레이르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행여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릴까 두려워진 프레이르는 일부러 여유를 보이려 애썼다.

베아트리체 알타미라는 그런 프레이르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무리 왕자님이고 남의 시선을 즐기는 아이라지만 결국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무도회장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 주제에 태연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프레이르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다.

곧 프레이르와 베아트리체는 시종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초대장을 건네받은 시종장은 목청을 가다듬고,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외쳤다.

“랭카스터와 아키텐의 공작이시자 레인가드의 왕자이신 프레이르 전하와 그 파트너인 베아트리체 알타미라 양이십니다!”

왕족의 등장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와 함께 프레이르가 베아트리체를 에스코트하며 등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국왕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첨하기 좋아하는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국왕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감탄하기를 좋아하는 귀부인들은 두 사람의 입장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혹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체 했다.)

사실 프레이르는 그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즐기는 그였지만 이렇게 휘황찬란한 무도회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거물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부러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으며 씩 웃어보였다. 긴장된 마음을 군중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베아트리체는 다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마음 편히 즐긴다 생각하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전하시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시면 돼요.”

프레이르는 눈을 돌려 베아트리체를 바라보았다. 베아트리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어보였다. 프레이르는 베아트리체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하고 잠시 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베아트리체는 그 요염한 금발 머리를 한 갈래 옆쪽으로 길게 넘기며 프레이르에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값비싼 보석인 호박빛을 띠고 있었는데 약간 거만하면서도 애교가 넘쳐 흘렀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아이는 지금까지 에버딘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에버딘이 청초한 제비꽃과 같은 매력이라면, 베아트리체는 활짝 핀 장미꽃과 같았다.

베아트리체는 프레이르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고정된 것을 알아차리고 프레이르의 손을 살짝 두드렸다. 정신을 차린 프레이르가 멋쩍게 웃자 베아트리체는 키득거리며 다시 말했다.

“프레이르 전하, 그렇게 절 바라보시면 제가 전하께 반해버릴지도 몰라요.”

“아, 미안해요. 베아트리체 양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하고 생각하다보니 정신을 빠트렸네요.”

프레이르가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전혀 우아하지 못한 답변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불쾌한 기색 없이 마치 귀여운 친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프레이르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럼 들어가죠, 아가씨.”

프레이르가 능청스럽게 말하며 베아트리체를 이끌었다. 그들이 홀의 중앙으로 향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프레이르와 베아트리체에게 아첨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프레이르의 늠름한 모습과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그런 귀찮은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어린 아이답게 다른 귀족들은 본 체 만 체하며 쏜살같이 지나간 다음 사냥복과 비슷하게 생긴 예복을 입고 있는 한 귀족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름다운 파트너인 아르넷트는 잘 따돌렸는가, 레스터 후작?”

프레이르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목소리로 루크에게 말했다. 그가 일부러 남성적인 아르넷 대신 여자 이름인 아르넷트를 들먹이는 것을 보고 루크는 쿡하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와 베아트리체에게 파트너인 로잔느를 소개했다.

"이 쪽은 로잔느 세르티프 양입니다. 세르티프 양, 이 분은 프레이르 전하시고, 이 분은 그 파트너이신 베아트리체 알타미라 양이십니다."

"세르티프 백작의 장녀인 로잔느 세르티프입니다. 전하를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로잔느가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를 하며 신분을 밝혔다. 총명하고 재기발랄한 눈빛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에게는 베아트리체와 같은 화려한 매력은 없었지만 주변에 활기를 불어 넣는 타입의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또한 그녀의 말투에는 중간중간에 힘이 들어가는 이국적인 악센트가 들어 있었는데 니블헤임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악센트를 그녀를 한층 더 귀엽게 만들어주었고 발랄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와 한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 프레이르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러 다녔다.

“로잔느 세르티프 양을 만나 본 소감은 어떠세요?”

베아트리체가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프레이르는 자신이 느낀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약간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상당히 총명하고 재기가 넘치면서도 발랄한 아이고요. 세르티프 백작부인을 많이 닮았다고 여겨져요.”

프레이르의 대답에 베아트리체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웠다.

“겉모습은 세르티프 백작부인을 닮았지만 저 아이의 내면은 세르티프 백작을 더 많이 닮았어요. 보이는 것과 달리 저 아이는 상당히 의지가 굳세고, 고집이 있답니다. 한번 믿은 신념은 끝까지 관철하려는 성격이에요. 마치 군인과도 같죠. 저 아이처럼 강인한 아이도 드물거에요.”

베아트리체의 인물평은 전혀 뜻밖이었다. 저 가녀린 아이가 군인과도 같다고?

“그런가요? 그저 총명하고 발랄한 영애로만 봤는데요?”

“쿡쿡, 여자란 겉모습만이 진짜가 아니에요. 진짜 모습은 같은 여자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죠.”

“헤에? 그럼 베아트리체 양도 보이는 것만이 진짜가 아니라는 거에요?”

프레이르의 바보스런 질문에 베아트리체는 윙크를 하며 ‘쉿’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프레이르는 다시 한 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왕당파, 귀족파할 것 없이 레인가드의 실세란 실세는 모두 이곳에 모인 듯했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정신없이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느라 애써야했다. 다행히 눈치 빠르고 재치 있는 파트너인 베아트리체가 옆에서 계속 도와줬기 때문에 그는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으며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이윽고 국왕 내외의 입장을 알리는 팡파르와 함께 샤를과 엘리스가 홀 안에 들어섰다. 프레이르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샤를에게 향했다. 샤를과 엘리스는 두 사람을 보며 활짝 웃었다.

“정말 아름다워요. 과연 알타미라 살롱의 꽃이라 불리는 알타미라 양이에요. 전 레인가드를 뒤져봐도 알타미라 양 같은 숙녀는 없겠지요.”

엘리스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베아트리체에게 찬사를 전했다.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숙이며 답례를 표했다.

“과찬이세요. 왕비 전하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십니다.”

엘리스는 베아트리체의 말에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샤를은 프레이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프레이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알타미라 양을 부탁한다, 프레이르.”

프레이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흐뭇하게 웃으며 엘리스를 데리고 상석으로 올라갔다. 프레이르와 대화를 나눈 뒤 걸어가는 국왕 부부를 향해 귀족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샤를은 상석에 앉아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며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소. 먹고, 마시고, 즐깁시다.”

“만수무강하십시오, 폐하!”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잔을 들며 샤를에게 화답했다. 동시에 5일간의 궁성 무도회가 그 장엄한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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