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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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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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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2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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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3)

DUMMY

프레이르를 시종장에게 방치함으로서 프레이르로 하여금 앞으로 길이 기억에 남을 만한 파트너 신청을 하도록 만든 것은 결코 포르테빌 대공의 잘못이라 할 수 없었다. 포르테빌 대공은 현재 무도회의 준비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샤를은 무도회만큼이나 중요한 한 사안을, 포르테빌 대공 대신 브라쇼브 호민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브라쇼브 호민관은 현재 국민회의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제쳐둔 채 알타미라 후작의 저택으로 말을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게 내린 샤를의 명령은 간단했다.

‘프레이르 왕자 전하의 왕위 계승에서 알타미라 후작의 협력을 얻어 낼 것!’

브라쇼브는 그의 고삐를 단단히 쥐며 샤를이 내렸던 명령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성사시키기는 그 어느 것보다도 어려운 임무였다.

알타미라 후작이라면 국왕 샤를과 대학에서 동문수학했던 사이로서 브라쇼브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귀족이었다. 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후작은 풍채 좋은 30대 후반의 남성으로서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내였다. 그러나 브라쇼브는 그런 너그러운 귀족의 모습만이 알타미라 후작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속내를 알 수 없는 후작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알타미라 후작의 살롱은 어떠한 당파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려 하지 않고 어떠한 당파도 함부로 적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것은 알타미라 후작의 온화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와 포르테빌 대공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샤를의 명령을 받은 이상 알타미라 후작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는 알타미라 후작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프레이르 왕자와 아르첼 왕자 중 어느 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를 확실히 판명하겠다고 다짐하며 그의 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알타미라 후작과의 대화는 어느 때처럼 평온하고 나긋나긋했다. 예정에도 없이 불쑥 찾아온 브라쇼브 호민관을 후작은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이 젊은 귀족은 브라쇼브 호민관을 자신의 서재로 초대해 차와 함께 비스킷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서재의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을 자랑하며 혹시 마음에 드는 도서가 있다면 가져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진행했다.

브라쇼브는 초조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알타미라 후작은 분명히 자신이 어째서 이 저택을 이토록 급작스럽게 방문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작은 시치미를 뚝 뗀 채 도서가 어떻다는 둥, 신학이 어떻다는 둥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브라쇼브는 이 귀족이 굳이 자신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어쩔 수 없이 브라쇼브는 자신이 먼저 본론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결투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브라쇼브의 물음에 티스푼으로 찻잔을 휘젓던 후작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나 후작은 별다른 동요 없이 마저 차를 잘 저은 후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으며 차를 음미한 뒤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브라쇼브는 손에 깍지를 낀 채 초조하게 이 귀족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 유명한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살롱에서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호민관 님께서는 그 현장에서 입회인으로 계셨던 분이시군요. 허허, 어땠습니까? 과연 레드포드 자작의 검에서 불이라도 뿜던가요?”

“하하, 설마요. 다만 국왕 폐하께서 결투를 중지시키셨을 때 눈에서 불을 뿜으려고는 하더군요.”

“핫핫하. 역시 혈기왕성한 레드포드 자작이로군요.”

알타미라 후작이 유쾌하게 웃으며 그의 찻잔을 내려놓았다. 브라쇼브도 후작에 동조하여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다시 레드포드 자작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레드포드 자작이야말로 국왕 폐하의 진정한 충신이지요. 프레이르 전하의 명예를 위해서 결투까지 벌일 정도이니 말입니다. 정말 보기 드문 인재입니다.”

레드포드 자작을 치켜세우는 말이었으나 이 속에는 다른 암시가 담겨 있었다. 그는 넌지시 프레이르를 돕는 행동이 충성스런 행동이라는 것을 슬쩍 흘린 것이다. 살롱에서 20여년을 보낸 후작이 이 숨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러나 후작은 그저 ‘허허’하며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브라쇼브의 말을 흘러 넘겼다.

“과연 그렇군요. 레드포드 자작은 훌륭한 인재입니다. 레인가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지요.”

한동안 이런 형태의 대화가 오갔다. 브라쇼브 호민관이 프레이르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고 하면 알타미라 후작이 적당히 응대하면서 그 주제를 흘리는 패턴이었다. 분명 나쁘지 않은 대화였으나 브라쇼브는 불만족스러웠다. 이런 애매모호한 대답은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자신은 떠들어대고 후작은 그저 맞장구만 치다가 대화가 끝나는 형국이 아닌가? 그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대화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레드포드 자작은 국왕 폐하는 물론 프레이르 전하께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왕 폐하께서는 알타미라 후작님께서도 이런 충성을 보이실 것으로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브라쇼브는 그의 의자를 잡아당기며 알타미라 후작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는 알타미라 후작에게 도전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알타미라 후작 또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브라쇼브를 차분히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항상 국왕 폐하께 충성을 바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국왕 폐하의 기대에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왔습니다만...”

역시 후작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며 결코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브라쇼브는 이 조심성 많은 후작에게 다시 말했다. 아까보다 더욱 노골적인 말이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후작님의 충성뿐만 아니라 후작님께서 프레이르 전하께 보다 친밀한 우정을 보이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브라쇼브는 진지한 눈빛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알타미라 후작은 그 눈빛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온화하기 그지없는 미소였으나 브라쇼브는 그 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는 숨겨져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후작은 여전히 능청스럽게 그의 태도를 가장했다.

“우정이란 것은 일순간 보이고자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긴 시간 동안의 신뢰 관계와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프레이르 전하에 대한 우정이라... 폐하께서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는군요. 허허.”

‘이 능구렁이가.’

브라쇼브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후작은 도무지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속셈이 무엇인가? 아르첼 일파와 손을 잡은 것도 아니면서 왜 샤를이 내미는 손마저 거절하려 하는가? 알타미라 후작의 속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먼저 몸이 달아오른 그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국왕 폐하께서는 후작님께서 프레이르 전하께 우정을 증명해보이시기만 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후작님과 프레이르 전하 사이에 굳건한 우정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말이죠.”

“허허, 보상이라... 과연 국왕 폐하께서 무슨 선물을 건네주실까 굉장히 궁금하군요.”

알타미라 후작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브라쇼브는 이제야 이 능구렁이 후작이 제안에 관심을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후작은 프레이르와의 우정에 대한 대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샤를이 제안했던 ‘선물’을 이야기해주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프레이르 전하와 후작님 사이의 우정을 위하여 기꺼이 공작의 작위와 연간 10억 아리온의 수입이 나오는 영지를 제공하실 의향이 있습니다. 물론 후작님께서 프레이르 전하에 대한 우정을 증명해보이시면 말이죠.”

처음 브라쇼브가 샤를로부터 이런 제안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어마어마한 선물의 규모에 자칫 뒤로 쓰러질 뻔했다. 10억 아리온의 영지라면 레인가드 왕실 수입의 5%에 해당한다. 이런 영지를 그대로 넘겨주겠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공작 작위까지 하사한다는 것은 레스터 공작가를 제치고 알타미라 후작가문을 제1귀족 가문으로 밀어주도록 대놓고 협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이 후한 ‘선물’에 알타미라 후작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라쇼브는 이제 사실상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알타미라 후작은 분명히 이 제안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잠시 동안 생각을 하던 후작은 그의 기대를 철저히 깨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선물이라 받을 수 없군요. 저로서는 그 정도의 선물에 대해 얼마나 우정을 증명해보여야 할 지 부담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정중히 거절해야겠군요.”

놀란 쪽은 브라쇼브였다. 알타미라 후작이 설마 이렇게 관대한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그마치 10억 아리온의 영지와 공작 작위였다! 도대체 이 후작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단 말인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브라쇼브에게 알타미라 후작이 말했다.

“폐하께는 브라쇼브 공이 잘 말씀드려주십시오. 아무래도 저는 그런 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 하지만 알타미라 후작님...”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알타미라 후작이 브라쇼브의 말을 끊으며 그의 말을 다시 강조했다. 브라쇼브는 이 후작이 더 이상 거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음을 알아챘다. 후작이 이 단호한 말투는 이미 협상은 결렬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브라쇼브는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브라쇼브가 말했다.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알타미라 후작님."

브라쇼브의 말이 이어졌다.

"우정이라는 것에 시한이란 없지만 빠를수록 좋을 테니까요."

브라쇼브의 말에 알타미라 후작은 빙긋 웃었다.

"글쎄요.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군요."

알타미라 후작이 말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습니까?"

브라쇼브는 알타미라 후작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부터 알타미라 후작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본론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만큼 구미가 당기는 것도 없지요."

브라쇼브가 알타미라 후작에게 말했다.

"꼭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브라쇼브의 말에 알타미라 후작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브라쇼브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건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한 에우로텐의 귀족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에우로텐의 한 소년이 그 가족들이 바닷가에 소풍을 나갔다고 합니다. 소년은 그 누나와 함께 아이답게 해변을 거닐며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로 뛰어들기도 하고, 모래성도 쌓으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죠.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부모님이 점심식사를 먹기 위해 하인들을 보내 두 사람을 찾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인들이 두 아이를 찾았을 때 그들은 알을 낳기 위해 바닷가로 올라온 바다거북을 발견하여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인들이 다가오자 소년은 그들에게 이 거북을 잘 지켜보라고 말했죠. 하인들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소년은 이 거북의 알을 저녁식사로 먹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인들은 갖고 있던 몽둥이을 꺼내 당장 거북을 죽이고 알을 꺼내려 했죠. 그러자 소년은 하인들을 막았습니다.

'이 거북을 가만히 내버려 둬요.'

하인들은 소년이 거북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다거북을 살려주었죠.

잠시 후 소년은 점식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바닷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하인들에게 거북이 알을 낳은 장소에서 알을 파내라고 지시한 다음 자신은 검을 들고,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기어가고 있는 거북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숨에 그 목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하인들은 깜짝 놀랐죠. 아까는 거북을 살려주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거북의 목을 잘라버렸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제 와서 거북의 목을 치는 이유를 말이죠.

그러자 어린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괜히 거북이를 죽이다 그 알까지 깨지면 어떻게 해요? 어차피 가만히 기다리면 저 거북이는 알을 낳잖아요. 우리는 그 것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쓸데없이 힘쓸 필요 없죠.'

그 말을 마친 후 소년은 하인들에게 바다거북과 그 알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으로 맛있는 바다거북 고기와 알을 먹을 수 있었죠. 물론 모두 성한 상태로요."

알타미라 후작이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여전히 빈틈없이 웃고 있었다.

"교훈적인 이야기군요."

브라쇼브가 입을 열었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기다려라...... 좋은 말씀입니다."

"거북의 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안다면 말이죠."

알타미라 후작이 덧붙였다.

"그럼 외람되지만 후작님께서는 어떤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브라쇼브가 말했다. 그러자 알타미라 후작은 다시 한 번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저는 의자의 다리가 2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타미라 후작이 그 미소만큼이나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했다. 브라쇼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브라쇼브의 말에 알타미라 후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옆에 놓인 탁자를 짚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르 전하와 저로 하여금 우정을 쌓게 만드시고 싶다면 굳이 그런 선물은 필요 없습니다. 조금 더... 뭐랄까요... 친근한 관계를 형성할 계기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알타미라 후작의 말이 이어졌다.

“곧 있으면 궁성에서 무도회가 열리지 않습니까? 만약 프레이르 전하께서 저희 가문의 한 사람을 파트너로 삼아주시는 영광을 베풀어주신다면 자연스레 우정도 싹트지 않을까요? 우정은 본래 이런 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지요.”

“......!!!”

브라쇼브는 알타미라 후작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이제야 알타미라 후작이 품고 있는 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타미라 후작의 속셈은 레스터 공작을 누르고 제1귀족이 된다거나 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알타미라 후작이 말하는 ‘저희 가문의 한 사람’은 알타미라 후작의 장녀인 18세의 베아트리체 알타미라임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알타미라 후작은 이번 무도회에서 프레이르 왕자가 베아트리체를 파트너로 삼아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1만 명의 관중들 앞에서 프레이르와 베아트리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곧 프레이르와 알타미라 후작가가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과시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알타미라 후작이 원하는 것은 단지 이 무도회에서의 동맹선언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사실 공작 작위와 10억 아리온짜리 영지에 비하면 이런 무도회의 파트너 자리는 길가의 돌멩이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즉 알타미라 후작이 말하는 ‘무도회의 파트너’는 말 그대로의 의미 이상의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브라쇼브는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알타미라 후작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바로 프레이르 왕자와 베아트리체의 결혼이었던 것이다. 야심에 찬 알타미라 후작은 왕가의 외척을 노리고 있었다. 그가 숨기고 있었던 속셈은 바로 이것이었다.

브라쇼브는 이제 알타미라 후작의 실체를 파악하자 온 몸에 소름끼쳤다. 알타미라 후작은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꺼낼 순간을 숨죽여 기다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무리한 제안을 샤를이 보통 때라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사냥꾼이 동물이 먼저 움직여서 수풀을 건드리기를 기다리듯 레스터 공작이 먼저 나서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는 레스터 공작의 활발한 움직임에 국왕 샤를이 위기감을 느껴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레스터 공작과 세르티프 백작이 손을 잡는 이런 절박한 상황을 기다려, 자신의 이 무리한 제안을 샤를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게 만들 속셈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두 가문의 동맹을 과시할 무도회라는 무대가 완성되는 것까지 기다릴 정도로 알타미라 후작은 주도면밀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브라쇼브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이 미소를 짓고 있는 알타미라 후작을 바라보며 경외심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발톱을 드러낸 알타미라 후작의 야심과 모략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허허, 제가 손님을 너무 오래 붙들어두었군요. 그만 가셔도 좋습니다. 아, 그리고..."

브라쇼브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던 알타미라 후작이 다시 무엇인가 생각난 듯 브라쇼브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그 특유의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아무리 튼튼한 의자라도 세 개의 다리가 받치기를 거부하면 결코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브라쇼브는 이 비유의 의미를 똑똑히 알아들었다. 브라쇼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살핀 알타미라 후작이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만 나가도 좋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40대의 호민관은 잠시 동안 멍하니 후작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방문을 빠져나갔다. 그의 머리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이 알타미라 후작의 제안을 어떻게 샤를에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알타미라 후작이 더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고민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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