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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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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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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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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16.이단자와 아라스 금화(2)

DUMMY

“존경하는 대주교님, 그리고 중추원 의원 여러분,”

프레이르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경솔하게 말했다간 자신의 허점을 노리고 있는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 일파가 곧바로 프레이르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릴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에 프레이르에게 이단의 혐의가 돌아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대주교 님의 말씀에 저는 동의합니다. 레인가드는 정통 칼레타 교인들의 나라이며, 아벨 신의 신실한 종들로 구성된 국가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이단자를 근절하는 것은 분명 아벨 신의 뜻일 것입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라시드 대주교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프레이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프레이르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그가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대주교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것으로 이단이 근절될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대주교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동시에 포르테빌과 샤를의 얼굴에서는 조금 곤란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프레이르가 이단자를 옹호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단을 화형에 처하지 않는다면...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어떤 방법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대주교가 의혹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은 어느새 한 마리의 매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과거 수많은 이단자들을 화형대에 세웠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대주교는 마치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 매처럼 프레이르의 발언에 일말이라도 이단의 냄새가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그 눈빛에 주눅 들지 않기 위해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그는 평소처럼 태연자약한 어조로 대주교에게 말했다.

“에우로텐의 경우를 보십시오, 대주교 님. 에우로텐의 그림볼드 광장에서는 매일 같이 뷔그노들이 화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내내 이단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화형장의 불길은 꺼질 새가 없이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단자들의 성행만을 낳았습니다. 에우로텐의 예를 보아도 단순히 힘으로서 이단자를 억눌러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존경하는 프레이르 전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처드 대공이 샤를에게 발언권을 얻으며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조롱의 빛이 어려 있었다.

“전하께서는 화형이 이단의 성행을 낳았다고 여기시지만 제 생각은 그 반대입니다. 저는 교회의 강력한 대처가 있었기에 이단의 확산을 이 정도까지 억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에우로텐이 뷔그노들에게 유화책을 폈다면 에우로텐은 진작 이단자들이 다수파가 되었을 것입니다.”

리처드 대공의 말에 레스터 공작이 동의한다는 듯이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공작이 거수하자 톨리 남작과 세르티프 백작, 트라바나스 백작도 재빨리 손을 들어올렸다. 라시드 대주교는 거수를 하지 않았지만 대공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의원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리처드 대공은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화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역설했다.

“에우로텐에서 이단이 성행하는 이유는 단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로버트 마일러가 화형을 당하지 않아서입니다.”

대공은 이렇게 말하며 프레이르에게로 눈을 돌렸다. 프레이르는 그 파란 색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똑바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아시다시피 뷔그노들의 정신적 지주인 로버트 마일러는 현재 에우로텐에서 추방당하여 니블헤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에우로텐 어로 성서를 번역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뷔그노들에게 펴고 있습니다. 뷔그노들의 모든 논리는 사실상 성서를 번역하는 로버트 마일러 교수 한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단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마일러 교수를 체포하여 화형에 처한다면 에우로텐의 이단은 수그러들 것입니다. 그것은 레인가드도 마찬가지고요. 이단자들이란 그 주동자를 화형 시키면 추종자들은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 법칙입니다. 이 뷔그노들 역시 여타 이단들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리처드 대공의 말에 레스터 공작과 톨리 남작, 세르티프 백작 등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라시드 대주교 역시 다시 한 번 대공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의기양양해진 리처드가 프레이르를 조롱하듯이 말했다.

“심성이 착하신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이단자들에게도 온정을 베푸시고 싶으신 모양입니다만... 전하, 아벨 신의 뜻을 거역한 이단자들에게는 꺼지지 않는 불길만이 그 해답입니다. 주님의 자연법을 거스른 그 자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은 유약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리처드 대공이 은밀하게 말했다. 이제 그의 눈은 프레이르가 아닌 대주교에게로 향해 있었다.

“이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리처드의 말에 포르테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리처드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라시드 대주교 앞에서 프레이르에게 이단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더없이 야비한 술책이었다.

“방금 발언을 취소하십시오, 리처드 대공! 대공은 지금 프레이르 전하와 이단을 연관 지으며 전하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포르테빌의 호통에 리처드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포르테빌 대공 각하. 프레이르 전하가 이단이라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하를 잘 모르는 어리석은 민중들이 자칫 전하의 온정을 이단적인 행위로 오해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별 뜻은 없었습니다.”

리처드의 말에 포르테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샤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레스터 공작 일파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리처드 대공에게 미소를 건네었다. 프레이르에 관해 조금이라도 이단의 냄새를 풍기게 만드는 것은 라시드 대주교로 하여금 프레이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기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알베로는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프레이르의 발언은 리처드 대공에게 꼬투리를 잡혀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프레이르의 실수였다. 알베로는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정작 프레이르 본인은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 정도는 그가 예상했던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처드 대공이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며 이단의 그물을 드리우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했던 일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위험한 상황에도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끄러워진 회의장을 조용히 시키며 샤를에게 다시 발언권을 요청했다. 샤를은 곧바로 프레이르에게 발언을 허락했다. 그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초조한 낯빛을 띠고 있었지만 여전히 프레이르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리처드 대공 각하께서는 제 말을 조금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을 하며 리처드에게 웃어보였다. 리처드 대공은 작게 코웃음을 쳤지만 별다른 반박 없이 프레이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시 프레이르의 말을 받아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힘으로서 억누르는 것에 회의를 가진다는 것이 곧바로 유화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들을 묵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화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이단자를 축출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전하, 그렇다면 전하의 그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브라쇼브 호민관이 리처드가 끼어들기 전에 얼른 프레이르에게 질문을 건넸다. 훌륭한 타이밍의 개입이었다. 프레이르는 호민관에게 작게 감사의 표시를 한 뒤, 입을 열었다.

“현재 뷔그노들은 대학가를 비롯하여 교수, 학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숨을 골랐다.

“뷔그노들이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서 주로 전파되고 있다는 점. 우리는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합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라시드 대주교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주교는 프레이르에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것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뷔그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뷔그노 교수와 학생들은 스스로를 신학에 정통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와 신학에 관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니까요. 따라서 저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뷔그노의 교리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청중들의 주의가 다시 집중되기를 기다렸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말이 그가 구상한 계획의 핵심이었기 때문이엇다.

“중추원 의원님,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교리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통 교회의 교리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들 스스로는 정통 교회에 대해 지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의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반박하기 전에 프레이르는 재빨리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따라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단자들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바로 그들의 지적인 우월감을 꺾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단적인 교리의 모순을 파헤치고 정통 교리의 당위성을 증명한다면 대학을 중심으로 한 뷔그노들의 기세는 한 풀 꺾일 것이라 저는 장담합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라시드 대주교는 그 하얀 수염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프레이르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 말투는 장중하고 느릿느릿했지만 여전히 딱 부러졌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그들의 지적인 우월감을 꺾을만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프레이르가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프레이르는 가만히 숨을 고르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완전히 집중하기를 기다렸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프레이르는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청중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프레이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었다. 회의장은 어느새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생각한 프레이르는 더없이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카시네예프 대학에서 대규모 공개 토론을 여는 것입니다. 뷔그노로 선서한 교수들과 교황청의 신학자들을 한데 모아 어느 쪽의 교리가 더 우월한지, 그리고 어느 쪽이 진정한 신앙의 수호자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의원들은 입을 딱 벌렸다. 항상 그랬듯이 프레이르의 제안은 파격적이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단자와 정통 교회 신학자를 한데 모아 토론회를 열자는 프레이르의 제안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곧바로 수많은 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 발언권을 요청하고 나섰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어낸 것은 레스터 공작이었다.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단자들을 한데 불러 모아 공개 토론을 여시겠다고요? 전하, 뷔그노들은 악마의 꾐을 받은 자들로서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의 혓바닥의 독사와도 같으며 그들이 내뱉는 말은 독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듭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입을 여는 기회를 주는 것은 레인가드에 독소를 내뱉도록 놔두는 것과 다름 없는 행동입니다. 토론회를 통해서 레인가드로 온 이단자들을 끌어 모으실 생각이십니까?”

레스터 공작의 강력한 반발에 몇몇 의원들이 찬동하였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곧바로 공작의 말을 반박했다.

“어째서 그들에게 입을 여는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까, 레스터 공작 각하? 설마 아벨 신의 진리의 말씀이 이단자들의 모순투성이인 교리에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프레이르의 날카로운 힐문에 공작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주도권을 쥔 프레이르가 밀어 붙였다.

“아벨 신의 말씀은 진리이며, 칼레타 교회의 교리는 그 어떤 이단자의 주장보다도 논리정연하며 완벽합니다. 따라서 저는 공개 토론을 통해서 정통 교리의 우월성과 뷔그노들의 모순성을 보여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프레이르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소리 높여 외쳤다.

“종교 재판과 화형이 폭력을 통한 전쟁이라면, 이 공개 토론은 성서를 통한 성스러운 전쟁, 곧 성전(聖戰)입니다. 그리고 정통 교회의 교리는 이단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또한 정통 교회는 어떤 것이 진리의 말씀인지 모든 카시네예프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것입니다. 이것으로 뷔그노들의 이단 논쟁은 마침표를 찍을 것이고요. 어째서 이 성전을 마다하시려는 겁니까?”

“그것은 이단자들을 정통 교회와 대등한 위치에 놓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톨리 남작이 발언권도 얻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따지고 들었다.

“토론이라는 것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쪽이 우월한 상태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통 교회의 교리는 주장이 아닌 절대적인 사실이므로 논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톨리 남작님.”

포르테빌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의 주장에 찬성한다는 듯이 오른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는 프레이르 전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정통 교리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뷔그노의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서 뷔그노들의 지적 우월감을 붕괴시키는 것은 분명히 뷔그노들에게 가장 유효한 타격이 될 것입니다. 천 사람의 화형보다도 한 마디의 성서가 훨씬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아벨 신의 말씀으로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에게 정의를 보여 주십시오!”

포르테빌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브라쇼브 호민관이 포르테빌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오른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국가 마법사 대표인 브로츠와프 또한 포르테빌의 말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레스터 공작을 비롯한 대다수의 귀족 의원들은 포르테빌 대공의 찬동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르의 제안에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이단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단 일주일입니다.”

프레이르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는 의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 일주일만 있으면 이 이단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리인지, 어느 쪽이 우월한지를 보여주는 데는 단 일주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전 정통 칼레타 교회가 결코 이단자들의 주장에 패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공개 토론의 승자는 이미 정통 교회로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토론회를 통해서 사람들은 이단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적인 교수나 학생들은 더 이상 이단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런 토론회를 목격하고도 정통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악독한 이단자임에 틀림없으므로 그 자들을 화형에 처하면 되는 것입니다.”

프레이르가 열변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는 대주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주교는 아무 말 없이 프레이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한편 프레이르의 주장이 끝나자 다시 회의장은 시끄러워졌다. 의원들은 저마다 침을 튀겨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느새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이미 어느 누구도 발언권 따위는 기억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말도 안 됩니다! 이단자들과 공개 토론이라니요!”

“이단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레인가드에 해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공개 토론을 무지몽매한 민중들을 미혹시키는 도구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작님은 아벨 신의 진리의 말씀이 고작 이단자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만도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통 교회의 교리는 분명히 뷔그노들의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무너뜨리느냐, 무너뜨리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단자와 정통 교회를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동등한 위치에 두고 토론을 벌인 다음, 만인 앞에 뷔그노들의 패배를 보여준다면 그들의 패배감은 갑절이 될 것입니다. 어째서 그것을 모르십니까?”

“만에 하나라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주님의 교회에 패배란 없습니다!”

회의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의원들은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격렬한 논쟁의 사이에서 마침내 참다 못한 샤를이 탁자를 두드리며 정숙을 요청했다.

“이게 무슨 추태요? 이처럼 중요한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샤를의 노기 어린 음성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리처드 대공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샤를의 매서운 눈빛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발언권을 얻지 않고 말한 의견들은 모두 회의록에서 지우도록 하겠소. 따라서 지금까지 정식으로 제출 된 의견은 프레이르의 제안뿐이오.”

샤를의 말에 리처드 대공이 무언가 항변하려 했다. 그러나 샤를은 그를 무시해버렸다.

프레이르는 샤를이 발언권을 빌미 삼아 자신의 제안 외의 모든 의견을 기각해버린 것을 눈치 챘다. 역시 샤를은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원군이었다. 그는 회의장의 규칙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프레이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오직 공개 토론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선택만이 남아 있소. 아무래도 이대로 시간을 보내봤자 더 이상 합의점을 찾는 것은 무리일 것 같기 때문이오. 따라서 짐은 프레이르의 제안에 대해 의원들의 최종적인 의향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오.”

샤를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샤를의 말에 리처드 대공은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발언권을 얻지 못한 발언은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는 샤를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확인한 샤를이 일동에게 말했다.

“공개 토론을 열자는 의견에 최종적으로 찬동하는 의원은 손을 들어주시오.”

프레이르와 포르테빌 대공, 브라쇼브 호민관, 국가 마법사 대표 브로츠와프가 곧바로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잠자코 논쟁을 지켜보기만 했던 알타미라 후작 또한 천천히 손을 올렸다. 알타미라 후작의 거수에 대다수의 귀족들은 적개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후작을 노려보았다.

“더 없소?”

샤를이 의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프레이르는 샤를이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프레이르의 제안에 대해 재고해 볼 시간을 줌으로서 샤를 자신 또한 프레이르의 제안에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샤를의 이러한 의중을 의원들 또한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은 완고한 표정으로 거수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세르티프 백작을 비롯한 다른 귀족들은 난처하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 때, 한 손이 느릿느릿 위로 올라왔다. 바로 라시드 대주교의 오른 손이었다. 다른 의원들은 깜짝 놀라 대주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귀가 어두운 대주교가 실수로 손을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얼굴들이었다.

이러한 의원들의 기색을 알아차린 대주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레이르 전하의 말씀이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공개 토론을 통해서 이단자들의 주장을 분쇄하는 것이야말로 분명 이단자들을 근절하는데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입니다.”

대주교의 말에 프레이르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대주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대주교는 손을 내저으며 프레이르를 말렸다. 그리고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일동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 공개 토론에는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개 토론이라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이단적인 주장을 하는 악질적인 뷔그노들은 화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토론의 과정을 거치고도 여전히 이단에 동조하는 자들은 교회를 의식적으로 무너뜨리려 하는 악의 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지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의식적인 악행은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대주교는 이렇게 말하며 프레이르와 샤를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러자 샤를은 곧바로 대주교에게 대답했다.

“물론이오, 라시드 대주교. 짐은 이단자들에게도 최대한 관용을 베풀겠지만 그런 악질적인 이단자까지 용서할 생각은 없소. 공개 토론의 이후에도 이단적인 주장을 그치지 않는 뷔그노 주동자들은 철저히 종교 재판소에 넘기겠다고 약속하리다.”

샤를의 확답에 대주교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오른 손을 더욱 높게 들어올리며 다른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대주교의 거수에 의원들은 동요했다. 종교 문제에 있어서 레인가드 교회의 수장인 라시드 대주교의 무게감은 국왕에 필적했기 때문이었다. 국왕과 대주교 모두가 찬성한 의견에 반대할 만큼 그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윽고 트라바나스 백작을 시작으로 귀족들은 하나둘씩 오른 손을 들었다. 그들은 영 꺼림칙한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패배감과 함께 죄책감이 떠올라 있었다.

마침내 레스터 공작과 리처드 대공도 회의장의 분위기를 따라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프레이르의 제안이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그들은 분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론이 난 것 같군.”

샤를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한 것에 대해 짐은 더없이 기쁘오.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조만간 대규모 신학 공개 토론회를 열겠소. 이 토론에는 뷔그노 측 인사와 교황청 측 인사를 초청하여 열 것이며, 그 자세한 일정과 장소, 그리고 연사는 모두 라시드 대주교에게 일임하겠소.”

샤를이 대주교에게 시선을 건네며 말했다. 대주교는 샤를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프레이르는 샤를의 이 선택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그는 곧바로 토론회를 주최하는데 대주교를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대주교를 배려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자칫 토론회에 잡음이 생길 경우 왕실은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교묘한 술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샤를은 항상 종교와 같이 골치 아픈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을 꺼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일단 이단자의 문제는 일단락 짓겠소.”

샤를은 이렇게 말하며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프레이르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커다란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자신의 뜻대로 결정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포르테빌 대공과 알베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알베로는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르는 그런 알베로에게 씩 웃어보였다.

“그럼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알타미라 후작이 가져온 다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샤를은 이렇게 말하며 휴식을 선언했다. 동시에 그는 비서관에게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 샤를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자크 경은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활짝 열었다.

“잠깐 나가도록 해요.”

한숨을 돌린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제안했다. 방 안의 더운 공기를 피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함께 복도로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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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68 바나바다
    작성일
    10.08.10 00:40
    No. 1

    다행히 잘 해나가고 있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제르미스
    작성일
    10.08.10 04:32
    No. 2

    신 . 구 의 대결이군요.
    유럽에서는 신 . 구의 종교전쟁으로 참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한 나라의 주가 반으로 갈려 버리는 사태까지 나왓는데, 로리시아연대기에서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제르미스
    작성일
    10.08.10 04:32
    No. 3

    종교 전쟁에서 교리 전쟁으로 수정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제크
    작성일
    10.08.10 07:55
    No. 4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종교란 것이 결국 믿음의 문제라
    토론으로는 결론이 안나는데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 될지 기대되네요.
    그 와중에 프레이르가 최대한 정치적 이익을 챙겼으면 좋겠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요호이
    작성일
    10.08.10 09:30
    No. 5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짱유
    작성일
    10.08.10 11:22
    No. 6

    프레이르가 신종교쪽으로 넘어갈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우현(遇賢)
    작성일
    10.08.10 11:23
    No. 7

    종교 논쟁이 기대가 되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유정
    작성일
    10.08.10 12:37
    No. 8

    크헉 너무 좋은거 같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Enya
    작성일
    10.08.13 18:08
    No. 9

    우악 ㅠㅠㅠㅠㅠ 너무 재밌네요ㅠㅠㅠ 긴장감 백배 ㅠㅠㅠ ㅋㅋㅋ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밀려서ㅠㅠ 달리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다훈
    작성일
    10.09.08 13:02
    No. 10

    선생과 학생이 싸우면 선생 손해.

    대통령과 검사가 싸우면 대통령 손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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