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시아 연대기 - 홀트 백작의 보고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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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국왕 폐하께
이 나라의 주권자이시며 아벨 신의 대리인이신 국왕 폐하께 미천한 종인 발리안이 이 글을 올립니다. 폐하의 명에 따라 카스티야 백작가, 특히 알베로 경과 에버딘 아가씨에 관하여 조사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어 보고드립니다.
카스티야 가문은 레인가드 남동부의 이스트리아 지역에 영지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가주인 알베로 드 노르베르 카스티야 백작까지 17대에 이르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그러나 가문의 힘은 그 작위에 비해 상당히 미약하며 중앙 정계에 진출한 조상들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선조들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 바로 전(前) 카스티야 가주인 고(故) 시리우스 드 사우스웰스 카스티야 백작입니다.
이 시리우스 드 사우스웰스 카스티야 백작은 조사 결과, 폐하의 말씀대로 궁내부의 감사관으로 재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주요 업무 내용은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비밀리에 리처드 대공의 비리를 조사하고 그를 탄핵할만한 근거를 적발해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극비리로서, 이 인명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어째서 이러한 조사를 진행했는지도 마찬가지로 불분명합니다.
그는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는데 그 죽음의 경위에도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거의 동시에 열병을 앓으며 급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전염병인 발한병의 일종이 아닐까하고 의심하였으나 나머지 하인들과 가족들이 모두 무사한 점과, 이들 부부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발병했다는 하인의 증언으로 보았을 때 이 병은 타살, 특히 독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당시 수사관들과 의사는 이 열병을 단순한 질병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지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병사한 뒤, 알베로 경과 카스티야 양은 시리우스 드 사우스웰스 카스티야 백작의 절친한 친구였던 샤퓌르 백작 부인에게 맡겨졌습니다. 고 카스티야 백작과 샤퓌르 백작 부인은 알타미라 후작의 살롱에서 알게 된 사이이며 한 때 연인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깊은 친분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에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종종 다른 귀족 가문을 방문할 때마다 예술 작품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샤퓌르 백작 부인의 부군은 예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 점은 주치의가 확실히 증언한 부분이므로 고 카스티야 백작의 경우와는 달리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이 미망인은 신앙심 깊고 자애가 넘치는 부인으로서 아벨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고아가 된 두 남매를 기꺼이 자신의 품에 받아들여 자녀처럼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나 샤퓌르 백작가 또한 카스티야 백작가와 마찬가지로 그 재정 상태가 결코 양호하지 못하여 이들을 양육하느라 알타미라 후작에게 상당한 채무를 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39세의 샤퓌르 백작부인은 경건하고 정숙한 인물로 명성이 높기 때문에 알타미라 후작 내외는 그녀에게 채무 관계를 이행하라고 강요하거나, 담보를 잡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알타미라 후작부인은 그녀를 살롱에서 상석으로 초대하며 그녀를 최대한의 예우로 관대하게 대우 해주고 있습니다.
두 남매 중 오빠인 알베로 드 노르베르 카스티야는 현재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의 4학년 학생으로서 그 학년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우수한 학생입니다. 그는 알타미라 후작의 장남인 세자르 드 칼라일 알타미라 백작과 어렸을 적부터 깊은 친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두 사람의 상황으로 볼 때 알베로 경이 세자르 경의 가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여동생인 카스티야 에버딘의 경우 왕립 학교의 1학년 학생이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입궁한데다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정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종들의 말에 따르면 프레이르 전하께서 이 소녀에게 특별히 총애를 베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습니다.
이상이 카스티야 가문과 두 남매에 관한 홀트 백작의 보고서입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 국왕 폐하의 결단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발리안 드 레이비스 홀트 백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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