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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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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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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9.12.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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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1)

DUMMY

프레이르는 침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방 바깥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 온 무도회를 준비하느라 활기가 넘쳤지만 그는 도저히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가 신청했던 무도회 파트너인 에버딘을 놓친데다가 샤를에게 그 문제로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1시간 전, 그는 에버딘에게서 무도회 파트너를 새로 고르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에요.’라고 말하며 그 질문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거짓말에 영 서툰데다 순진하기까지 한 그녀는 곧바로 프레이르의 유도 심문에 넘어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녀는 알타미라 후작가의 요구 때문에 파트너 신청을 거절해야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고 프레이르는 이 사실에 분개하여 곧바로 아버지 샤를에게 달려가 알타미라 후작의 괘씸한 행동에 대해 험담했다.

그러나 샤를은 프레이르의 말에 동조해주기는커녕 경솔하게 굴지 말고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알타미라 양에게 파트너 신청을 하라며 프레이르를 호되게 꾸짖었다. 프레이르는 끝까지 베아트리체 알타미라를 파트너로 삼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서슬 퍼런 샤를의 명령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프레이르는 무력하게 물러나 에버딘에게 자신은 베아트리체 알타미라 양과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대견하게도 에버딘은 ‘전하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며 오히려 프레이르를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에버딘의 따뜻한 마음씨에 프레이르의 기분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렸다. 이처럼 사려 깊고 착한 파트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어쨌든 프레이르는 샤를에게 명령을 받은 이상 파트너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알타미라 후작의 저택에 직접 방문하여 파트너 신청을 하는 대신 알타미라 양에게 파트너 신청을 한다는 짤막한 편지를 대충 휘갈겨 쓴 뒤 전령을 통해 알타미라 후작가에 보냈다. 만약 지금 당장 그 알타미라 후작의 얼굴을 본다면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타미라 후작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후작에게 갖고 있던 호의가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알타미라 후작에게 편지를 보낸 다음 그는 시녀들이 무도회에서 입을 의상들이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의기소침하게 시종들에게 의상이 도착할 때까지 밖에 나가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알아챈 시종들은 조용히 방 바깥으로 나갔다. 시종들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프레이르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낮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충실한 시녀들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의상을 가져왔다. 프레이르가 입어 봐야 할 마흔 벌의 옷들이 문 밖에 도착하자 시종들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막 잠이 드려던 프레이르는 그 소리에 다시 잠이 확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알타미라 후작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전혀 상쇄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의 짜증을 증폭시키고 말았다. 프레이르는 노기 띤 음성으로 문 밖을 향해 버럭 외쳤다.

“30분 뒤에 다시 노크 해. 지금은 조금만 눈 좀 붙여야겠어.”

프레이르의 이 외침에 노크 소리가 멈추었다. 프레이르는 '칫'이라고 말하며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그리고 그는 다리를 쭉 펴며 다시 잠이 들 채비를 했다.

그 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였다. 프레이르는 이 무엄한 노크 소리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났다. 자신의 명령을 무시했다고 여긴 프레이르는 그 무엄한 시종을 꾸짖기 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방문을 벌컥 열고 시종에게 폭언을 날리려는 순간 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프레이르 전하. 저입니다.”

포르테빌 대공의 목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시종을 후려칠 듯이 문으로 달려왔던 프레이르는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찌푸렸던 얼굴을 폈다. 짜증 대신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그는 문을 활짝 열고 이 친근한 삼촌을 맞이했다.

“포르테빌 대공이었군요! 전 시종인 줄 알고 그 안면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어요.”

프레이르의 말에 포르테빌 대공은 껄껄 웃으며 프레이르에게 대답했다.

“허허, 문을 열기 전에 미리 저라고 말씀드리길 잘 했군요. 안 그랬다면 전하께서 제 코뼈를 부러뜨렸을 테니까요.”

포르테빌은 어느 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프레이르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의 침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낮잠을 주무시려던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의상을 맞추어야 해서요.”

“아아, 괜찮아요. 그 쪽이 낮잠보다 더 중요하죠.”

프레이르는 삼촌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어차피 그가 자려던 것은 피곤해서가 아니라 기분전환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 친절한 대공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어졌으므로 잠을 자는 대신 너그럽게 의상을 입어보기로 했다.

프레이르가 의상 선정 의식을 순순히 승낙하자 대공은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의전관(의식에 관련된 의상을 담당하는 직책)과 재단사들, 그리고 수많은 옷의 견본들을 양 손에 든 시녀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곧 프레이르의 작지 않은 방은 형형색색의 옷들로 가득 차고 말았다. 프레이르는 그 화려한 옷들을 보며 물었다.

“어... 아무리 춥다지만 이 옷들을 다 껴입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요.”

프레이르의 농담에 포르테빌 대공은 빙그레 웃었다. 그 옆에 있던 의전관과 재단사, 시녀들도 작게 쿡쿡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프레이르 역시 이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추워지면 그 때 다 껴입도록 하죠. 아직은 아닙니다.”

포르테빌 대공은 곧바로 프레이르의 농담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딱’하는 소리를 내며 프레이르에게 견본을 하나하나 대어보라고 지시했다. 이미 프레이르와 체격이 비슷한 시동을 통해 맞춰 놓은 옷들이었기에 길이나 크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무도회의 분위기와 프레이르의 성격을 고려하여 그는 세심하게 옷들을 견주어 보기 시작했다.

지겨운 행동의 반복이었지만 재치 있는 입담을 지닌 포르테빌 덕분에 프레이르는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옷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거울 앞을 서성인 끝에 그는 마침내 의상 몇 벌을 선택하였다. 전적으로 포르테빌 대공과 의전관의 선택에 의해 선택된 이 옷들은 그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수정되기 위해 다시 재단사들이 가져갔다.

“전 이런 부분을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프레이르는 선택된 옷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말했다. 아직 이런 행사에 익숙하지 않은 그로서는 이 의상들이 어떤 이유에서 선택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코발트색과 바다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그에게 의상 선택은 확실히 어려운 주문이었다.

포르테빌은 그런 프레이르에게 웃으며 말했다.

“곧 전하께서도 이런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실 겁니다. 왕실의 어른이신 전하야말로 유행을 선도하셔야지요.”

“하하, 전 부르주아들이 입는 그 검은 복장이 가장 마음에 들던데요? 특히 국민회의 의원들의 그 옷은 수수하고 맘에 들어요.”

프레이르의 말에 포르테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누구도 입고 싶어하지 않는데다가 유행과 동떨어진 그 검은 옷을 프레이르가 입고 나타나, 카시네예프의 유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을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언젠가 전하께서 그 옷을 입으신 광경을 보고 싶군요. 전하께서 또다시 살롱의 화젯거리로 급부상할거라 생각됩니다.”

포르테빌은 이 말을 마치고 옷들을 가져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의전관과 재단사, 시녀들은 그 손짓에 공손히 뒤로 물러나 차례대로 방을 나갔다.

“저 옷들은 알타미라 양에게도 보내질 겁니다. 파트너니까 서로 의상을 맞춰보라는 배려지요.”

“아... 알타미라 양.”

포르테빌의 말에 프레이르는 다시 알타미라 후작가의 일을 떠올렸다. 그 덕분에 그는 포르테빌을 만나 들떴던 기분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알타미라 후작에 대한 불쾌감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렇게 프레이르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떠오르자 포르테빌 대공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폐하께 들었습니다. 알타미라 후작이 잔인한 일을 저질렀더군요.”

포르테빌 역시 샤를이 한 짓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알타미라 후작을 비난하며 프레이르를 위로했다. 샤를의 꾸지람에 기분이 상해있던 프레이르는 이 대공의 말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서 그... 카스티야 양이었나요? 아무튼 그 아가씨를 두둔한답시고 전하께서 나서시다가는 카스티야 양과 알타미라 양 모두에게 더 큰 상처만을 안기실 뿐입니다.”

논리정연하고 반박할 데가 없는 말이었다. 프레이르는 포르테빌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알타미라 후작에 대한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프레이르의 마음을 읽었는지 포르테빌 대공이 덧붙였다.

“일단은 알타미라 양에게 파트너로서의 대우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카스티야 양과는 나중에 좋은 관계를 맺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일단 왕자님이시니까요. 저도 힘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포르테빌이 말했다. 아직 어린 프레이르는 바람기 많은 이 대공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그는 포르테빌의 말에서 알타미라 양에게 파트너로서의 대우를 해주라는 말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듣고 보니 대공님 말씀이 옳은 것 같네요. 제가 경솔했던 것 같아요.”

프레이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알타미라 양에게 편지로 파트너 신청을 한 사실을 말했다. 그 말에 포르테빌은 프레이르가 경솔했다면서 혀를 찼다.

“제 생각에는 전하께서 실수하셨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식의 행동은 알타미라 양은 물론 카스티야 양도 곤경에 처하게 만들 겁니다. 그런 편지를 받은 알타미라 양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포르테빌의 말에 프레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르 자신도 조금 머리가 식은 상태에서 생각해보니 이 행동이 경솔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공 말이 맞아요. 제가 실수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직접 알타미라 후작가를 방문해야 할 것 같네요.”

포르테빌은 뜻대로 하시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에게 마차를 대령하기 위해서 방을 나갔다.

포르테빌 대공과 대화하며 프레이르는 확실히 자신이 경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알타미라 후작이 혐오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작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에버딘과 파트너가 깨져버린 이상 그는 알타미라 양에게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무도회를 최대한 즐기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모두의 기대에 보답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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