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Stellar 님의 서재입니다.

로라시아연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조회수 :
272,770
추천수 :
2,587
글자수 :
788,474

작성
09.12.19 22:18
조회
1,976
추천
14
글자
10쪽

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2)

DUMMY

어디서 얻어 낸 정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크의 말은 정확했다. 에버딘은 꽃밭 사이에 위치한 분수대 옆에 서서 멍하니 꽃밭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라면 다른 여자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놀아야 할 시간이지만 그녀는 이렇게 홀로 떨어져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질시의 눈빛과 프레이르와 줄을 대고 싶어 하는 다른 영애들의 관심이 거북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는 아르넷과 루크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해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행여 이 소심한 소녀가 세 명의 남자아이에게 갑자기 둘러싸여 파트너 신청을 받으면 놀라서 도망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의 발걸음 소리에 에버딘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반갑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했다.

“왕자 전하.”

그 순수한 미소에 프레이르 역시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그녀는 프레이르를 원망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걱정이 조금 덜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세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겁을 먹고 더듬거리지 않는 말투였다. 이제 더 이상 프레이르를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프레이르는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응. 에버딘, 네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그래. 루크가 네가 여기 있다고 말해주더라구.”

프레이르의 말에 에버딘은 기쁜 듯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낮은 가문의 지위와 주변 영애들의 태도 때문에 그녀는 평소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느라 웃을 만한 여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마음 놓고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빠인 알베로와 사실상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프레이르와 루크, 아르넷 정도 밖에 없었다.

“제게 무슨 볼 일이 있으세요?”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그 말을 듣자 프레이르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파트너 신청을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말을 삼켰다. 잘 생각해보니 그는 아직 어떻게 파트너 신청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루크에게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는 낭패에 빠진 심정으로 에버딘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이 프레이르는 그가 알고 있는 예의범절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선택지를 고르고 있었다. 무릎을 굽혀야 하나? 손을 잡아야 하나? 아니면 그냥 말만으로도 충분하나?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올바르게 파트너 신청을 하는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프레이르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빤히 에버딘을 바라보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프레이르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되돌아가 루크에게 물어 본 다음 다시 돌아와 신청하는 것도 꼴사나운 행동이었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그는 한 쪽 무릎을 꿇기로 했다. 일단 어차피 예절에 어긋날 바에야 건방진 것보다는 과도한 예의를 베푸는 쪽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프레이르의 이 돌발적인 행동에 에버딘은 깜짝 놀라 뒤로 반 발짝 정도 물러났다. 역시나 이렇게 파트너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일이었다. 프레이르는 또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 카스티야 양. 이번 무도회에 제 파트너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승낙해주셔서 이 사랑스런 손을 잡고 무도회에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에버딘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광경을 보이게 되면 얼마나 곤경에 처하게 될지는 프레이르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다른 여자아이나 시종은 없었지만 아르넷과 루크는 이미 에버딘의 시야 밖에서 그들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훔쳐 보고 있었다. 그들은 당황한 에버딘의 표정과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프레이르를 번갈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윽고 에버딘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전하. 저는...”

“승낙해줬으면 해, 에버딘.”

프레이르가 손에 힘을 실었다. 이미 정식으로 하는 파트너 신청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린지 오래였다. 이제는 진심이라는 모습을 보여줘서 에버딘의 승낙을 받아내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프레이르는 그의 고개를 들어 에버딘의 갈색 눈과 마주했다. 더욱 당황한 에버딘이 우물거렸다.

“저, 전하... 저는... 그, 춤도 잘 못 추고... 말도 제대로 못 해서... 그런 곳은... 저, 익숙하지가 않아요.”

“괜찮아, 춤은 배우면 되는 거고 말하는 것은 내가 맡을게.”

프레이르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겨우 살롱에 입문한지 1달 된 남자아이의 호언장담이었다. 무도회에서 출 춤의 종류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객기였다.

“그래도... 저는...”

“괜찮다니까. 내가 다 해결해줄게.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가 있어?”

프레이르는 이번에는 두 손을 에버딘의 손 위에 얹으며 물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프레이르에게 다른 영애들을 흉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레이르는 이미 루크와 아르넷에게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뒤였기 때문에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경솔하게 굴었다는 것 잘 알아. 정말 미안해. 그래도 그게 다 너랑 지내면 즐거워서 그런 거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프레이르는 자신 때문에 상처를 입은 에버딘을 달랬다. 이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라는 말투는 코라가 아내인 메르센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마다 써먹는 말투였다. 코라가 나긋나긋하게 이 말을 할 때마다 메르센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락을 해주었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이 방법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허락해줘. 너 아니면 무도회에 안 나가고 싶을거야.”

그는 마지막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에버딘을 졸랐다. 그의 이 철딱서니 없는 말에 에버딘의 얼굴은 정말이지 한여름의 태양보다 더욱 새빨갛게 물들었다. 자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프레이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달아오른 얼굴을 프레이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마음 속 깊이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프레이르의 고집에 넘어갔다.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프레이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와, 정말? 지금 ‘네’라고 한 것 맞지?”

프레이르가 활짝 웃으며 재차 물었다. 에버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더욱 힘껏 붙잡았다.

“정말 고마워, 에버딘. 이 일은 아벨 신께 맹세코 잊지 않을게. 너라서 정말 다행이야.”

프레이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며 에버딘에게 말했다. 에버딘은 여전히 이 낯뜨거운 말에 얼굴이 달아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봐. 알베로 경에게도 이야기 해둘게.”

프레이르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숙녀를 놔두고 가는 무례한 짓이었지만 이미 그의 머리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것은 바로 에버딘을 파트너로 삼는 것에 성공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루크와 아르넷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 프레이르의 뒷모습을, 에버딘은 기쁨과 걱정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끝까지 응시하고 있었다.


“난 네가 무릎을 꿇기에 정말 청혼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루크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프레이르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그들은 이 프레이르만의 독창적인 파트너 신청 방식에 포복절도 하고 있었다. 아르넷은 이미 배꼽을 움켜 쥔 채 그 자리에서 뒹굴고 있었다. 프레이르의 이 어이없는 파트너 신청과 에버딘의 당황하는 얼굴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흠, 지금 청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에버딘이라면.”

프레이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아르넷은 이제 숨까지 헐떡이며 웃었다.

“왁!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정말! 와하하하하하하! 카스티야 양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 바보가... 하하하! 청혼하는 것 마냥 무릎을 꿇은 다음 한다는 것이 고작 무도회 파트너 신청이라니... 와하하하!”

“뭐, 다 처음은 이런 식으로 사랑이 싹트는 것 아니겠어?”

프레이르의 능청스런 대답에 이제는 루크마저 옆에 있던 의자를 두드리며 웃어댔다. 정말이지 프레이르란 일반인의 상식 범위를 벗어나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파트너 신청 방법을 몰랐다지만 일반인이라면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정중한 말로 신청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파트너 신청 방법으로서, 별도의 의식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파트너 신청을 프레이르는 마치 청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놀랍도록 우아하게 에버딘에게 보여주었으니 그녀가 그토록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걸 다른 여자아이들이 보았다면 기절했겠군.”

루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여전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프레이르는 다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 때부터 에버딘의 부케를 받을 준비를 시작했겠지.”

프레이르의 말에 루크와 아르넷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기 많고 소년들다운 이들의 시원한 웃음소리에 시종들 또한 빙그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웃음은 배를 움켜잡고 웃던 아르넷이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라시아연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8 로라시아 연대기 - 16.이단자와 아라스 금화(4) +6 10.08.13 1,498 21 14쪽
57 로라시아 연대기 - 16.이단자와 아라스 금화(3) +6 10.08.11 1,433 24 14쪽
56 로라시아 연대기 - 16.이단자와 아라스 금화(2) +10 10.08.09 1,519 25 24쪽
55 로라시아 연대기 - 16.이단자와 아라스 금화(1) +6 10.08.06 1,621 22 22쪽
54 로라시아 연대기 - 15.새로운 시작(3) +6 10.08.05 1,656 22 21쪽
53 로라시아 연대기 - 15.새로운 시작(2) +14 10.08.01 2,144 24 23쪽
52 로라시아 연대기 - 15.새로운 시작(1) +9 10.07.29 1,838 25 27쪽
51 로라시아 연대기 - 포르테빌의 결혼식(1부 에필로그) +15 10.07.22 1,719 19 13쪽
50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6) +20 10.07.20 1,716 19 26쪽
49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5) +15 10.07.19 1,687 18 20쪽
48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4) +11 10.07.12 1,769 17 23쪽
47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3) +7 10.07.10 1,738 18 10쪽
46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2) +2 10.07.08 1,770 15 9쪽
45 로라시아 연대기 - 14.공작의 갈등(1) +6 10.07.07 1,846 21 23쪽
44 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5) +3 10.07.03 1,765 16 13쪽
43 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5) +2 10.06.30 1,760 13 22쪽
42 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3) +2 10.06.29 1,800 19 12쪽
41 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2) +2 10.06.29 1,807 16 12쪽
40 로라시아 연대기 - 13.무도회(1) +5 09.12.24 1,941 13 12쪽
39 로라시아 연대기 - 12.인명록(3) +8 09.12.22 1,989 15 19쪽
38 로라시아 연대기 - 홀트 백작의 보고서 전문 +6 09.12.22 1,967 13 5쪽
37 로라시아 연대기 - 12.인명록(2) +4 09.12.21 1,881 15 8쪽
36 로라시아 연대기 - 12.인명록(1) +6 09.12.20 1,907 17 11쪽
35 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3) +9 09.12.20 1,997 14 19쪽
» 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2) +4 09.12.19 1,977 14 10쪽
33 로라시아 연대기 - 11.우정의 대가(1) +6 09.12.19 2,025 15 12쪽
32 로라시아 연대기 - 10.결투의 미학(3) +3 09.12.18 2,101 17 9쪽
31 로라시아 연대기 - 10.결투의 미학(2) +7 09.12.18 2,097 17 6쪽
30 로라시아 연대기 - 10.결투의 미학(1) +5 09.12.17 2,171 14 11쪽
29 로라시아 연대기 - 결투 +3 09.12.17 2,179 1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