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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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우드가 어느 날 새로운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해 왔다.
들어보니 털보가 사정을 했단다.
자신들 서른 한 명이 따로 다른 땅을 개간할 테니 제발 따로 지내게 해 달라고 말이다.
착취가 너무 심해서 이렇게 지내다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나오겠다고 했단 거다.
그리고 호위 놈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죽어라 일한 대가를 받아서 잘 먹고 지내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단다.
어차피 그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지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그냥 두라고 하려다가, 원래 소속이니 서로 경쟁을 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새로 다리를 만들어서 털보 놈들을 그리고 옮기게 했다.
그리고 두 무리가 일을 하는 성과를 비교해서 배급에 차이를 두게 했는데, 이게 아주 효과가 좋았다.
딱 봐도 차이가 있는 배급품을 받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서른 남짓의 무리 속에서도 또 꼴같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놈이 있지만, 그건 정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호수 정원으로 물을 끌어 들이는 수관의 수를 늘렸다.
아무래도 앞으로 다른 땅으로 물을 공급하려면 호수 정원에 더 많은 물을 공급할 필요가 있는 거다.
아넬림은 자신이 나서서 아예 폭포가 있는 곳에서부터 이곳 호수 정원까지 수로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이름하여 ‘아넬림의 대지의 틈 하늘수로’ 뭐 이런 거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거보다 급한 것이 있으니 그건 나중으로 미뤘다.
급한 게 뭐냐고?
풍차를 만드는 거다.
호수 정원에서 다른 땅으로 물을 공급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높은 곳에 수조를 만들고 거기에 물을 담아서 낙차를 이용해서 먼 곳으로 물을 보내는 방법이 제일 좋다.
그럼 높은 단을 세우고 그 위에 수조나 물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물통에 물을 매번 지고 나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마법을 이용해서 무슨 자동 펌프를 만들 재주는 없다.
그러니 풍차를 만들어서 그 회전력을 이용해서 물을 위쪽의 수조까지 올리는 것을 생각한 거다.
그래서 아넬림과 함께 열심히 풍차를 만들었다.
아주 큰 공사고 또 시행착오가 몇 번이나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만들어 내고 말았다.
풍차가 돌면 그 회전력을 이용해서 물을 끌어 올리는 거다.
아주 간단한 모양인데 벨트 형태를 위에서 아래로 길게 연결했고, 그 벨트에는 무수한 그릇들이 달려 있다.
물론 아래쪽은 벨트가 물 속에 잠겨 있다.
이 벨트가 돌아가면 그릇에 물이 담겨서 올라오고 위로 올라온 그릇은 회전을 하면서 물을 쏟고, 쏟아진 물은 통로를 따라서 수조 안에 모이는 거다.
물론 그렇게 모인 물은 관을 따라서 다른 땅으로 흘러가게 된다.
멋지지.
다 만들어 놓고 나는 매일같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풍차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했다.
거기에 풍차는 방앗간과 제분소의 일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남는 힘이 있으니 그리 써도 되겠다 싶어서 간단한 조작으로 방아를 찧거나 제분기를 돌리게 만들었다.
우리 주방장인 낸시와 그 딸인 제이니가 제일 좋아했다.
아무래도 곡물을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만드는 것은 아낙들의 제일 큰 노동이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거다.
물론 남정네라고 싫어할 이유는 없다.
일이 하나라도 편해지면 그만큼 남는 힘이 생기고, 다른 일을 도울 여력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 호수 정원의 호수에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한 그루 자라기 시작했는데 아넬림의 말로는 우리가 만든 열매 중에서 호수에 던진 것이 싹이 난 거라고 했다.
그런데 자라는 속도가 굉장해서 한 달이 가기 전에 풍차보다 커졌다.
호수 정 중앙에서 자란 나무는 아넬림의 말로는 정화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거란다.
어떻게 그런 녀석이 나왔는지 물었는데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제가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녀석이 나왔냐면 그걸 내가 알겠어요?’였다.
꽤나 새침한 목소리와 표정이어서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하간 그 커다란 나무는 뿌리가 호수 전체에 뻗어 있는데 굵은 뿌리들이 얽혀서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뿌리가 물 밖으로도 드러나 있는데 몇 미터는 될 정도로 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에 가지가 좌우로 뻗지 않은 굵은 밑줄기가 십여 미터 자라고 그 위에 다시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이 자란다.
잎은 활엽수로 내 손바닥 크긴데 단풍나무나 마로니에 나무의 잎을 닮았다.
나는 종종 아넬림과 함께 작은 보트를 타고 그 녀석에게 가서 뿌리 위를 걸어서 기둥이 있는 곳까지 가곤 했다.
거긴 우리 둘이 나란히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딱 그 정도의 공간이 있고, 그곳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밀회를 즐기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를 녀석이 지켜보는데 이렇게 서로 안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아넬림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아넬림은
“부모의 다정한 모습은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아직 이 아이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에요. 특별한 아이지만 숲지기는 아니죠.”
“그래도 그동안 심은 열매 중에서는 제일 잘 자란 아이가 아닌가?”
“마나의 숲에 있는 씨앗들이 어떻게 자랐을지 모르지만 이 아이 정도가 되긴 어려울 것 같기는 하네요. 정말 특별한 아이죠.”
“이름이라도 붙여 줘야 하나?”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호수 정원의 하늘나무’라고 부르더군요. 그렇게 알려졌으니 그리 불리도록 둬야죠. 대신에 언젠가 숲지기가 된다면 그 때 쓸 이름을 정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좋아. 그럼 이 아이가 숲지기가 되면 쓸 이름을 고민해 보자고.”
“그래요. 이 아이도 좋아할 거예요.”
“그래.”
***
“그래 무슨 일이지? 이번 달의 이익금이라면 지나는 상단 편에 보내도 될 텐데?”
“특별히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탁, 니가 나에게 부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나?”
“부탁이 아니라면 거래로 하겠습니다.”
“그래? 어디 말이나 해 봐.”
저번 상단 사건에서 만난 둘째 아들 녀석이다.
이름이 소모이라고 했다.
소모이, 여물도 아니고 모이는 무슨.
아, 웃자고 하는 말이니 죽자고 덤비지 마라.
“밖에 만들어 놓은 풍자, 방앗간, 제분기라는 것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이용료는 따로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겠군. 귀찮겠는데?”
“그럼 다른 곳에 방앗간과 제분시를 만들어 주시면 어떻습니까. 그걸 제가 사거나 임대를 하겠습니다.”
으음.
그거 원래 돈 있는 놈들이 독점해서 돈 벌던 그 사업이지.
옛날에도 저 세상에서 지역 유지들이 방앗간하고 양조장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었어.
그걸로 한 몫을 단단히 잡았었지.
그걸 이놈이 하겠다는 거네?
확실히 돈 냄새는 잘 맡는 놈인 것 같다.
“귀찮은데? 그거 만드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거든.”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저 쪽에 떠있는 땅 중에서 한 곳으로 하늘 다리를 놓아 주시면 거기에 제가 사람들을 부려서 풍차와 방앗간, 제분기를 놓겠습니다.”
“그럴 재주가 있는 모양이군.”
“상단에 기술자가 없기는 하지만 재주가 있는 이들을 데리고 올 돈은 있습니다. 그들에게 페커님께서 만드신 풍차와 방앗간, 제분기를 보게 하면 흉내를 낼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위험한 생각인데? 내 지식을 훔쳐 가겠다는 소리잖아.”
“아, 아닙니다. 그들은 책임지고 상단에서 관리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뭐 그럴 일이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소문이 나면 어떻게든 흉내를 내려는 놈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또 차차 그럴 듯한 놈이 만들어지겠지.
그걸 나 혼자 알고 있겠다고 움켜쥐고 있는 것도 꼴불견이다.
그래, 니가 알아서 하겠다면 해 봐라.
하지만 대지의 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을 할 수가 없다.
여긴 내 땅이거든. 앞으로도 그럴 거고 말이지.
“기술자가 와서 살피는 것은 허락한다. 하지만 대지의 틈에 있는 떠 있는 땅들은 허락할 수 없다. 풍차를 지어도 부란타에 가까운 곳에 짓는 것이 네게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해라. 다만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삼분의 일은 나에게 보내라.”
“정말이십니까?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커님.”
그래, 그래야지.
그나저나 저 소모이란 놈도 독한 놈이다.
제 아비와 형을 유폐시켰다지?
정확히는 유폐라기 보다는 아비를 상단에서 손을 떼게 하고 소일거리와 생계 대책으로 형에겐 작은 상점 하나를 줬단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아비와 형에 대한 사랑이 깊은 놈이니 더 이상 더러운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지 않나 싶다.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상단에서 금력을 휘두르며 사는 것 보다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물론 당하는 형이나 아비의 입장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뭐 그것도 저 놈이 잘 정리를 한 모양이니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소작을 들이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응? 그것도 들었어?
“새로 땅이 생겼으니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
무임금 노동자들이 개간을 하고 있는 땅을 말하는 거다.
“그럼 다른 땅도 정리가 되면 거기도 사람들을 들이실 생각이십니까?”
두 패로 나누어서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한 곳도 곧 마무리가 될 거다.
호수 정원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두 개의 떠 있는 땅을 지나야 대지의 틈을 벗어날 수 있고, 남쪽으로는 하나의 떠 있는 땅을 벗어나야 부란타에 속하는 지역에 들어선다.
털보 무리와 호위전사 무리는 호수 정원에서 북쪽 첫 번째 떠 있는 땅에서 동서로 갈라져 양쪽에 있는 떠 있는 땅을 개간하고 있다.
“그렇지. 하나하나 늘려 갈 생각이야.”
털보 쪽이 마무리를 짓고 한 단계 더 나가서 동쪽으로 건너갔고, 호위전사 무리는 아직 일이 조금 더 남았다.
원래 땅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털보 쪽이 더 성실한 것도 이유가 된다.
그래서 요즈음 우드는 호위전사 패거리를 바짝 조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뭐 그래봐야 먹고 입는 것을 가지고 차별을 두는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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