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반짝반짝 빛나는 똥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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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F&B 음용식 회장의 집.
“그래서, 그 K-휴게소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묻자, 채영은 여느 때처럼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잘 되고 있어요.”
“너무 무리하게 빨리 진행하는 거 아니야.”
“아빠. 제가 여태까지 한 신(新)사업 중에 망한 게 하나라도 있었나요?”
<불떡> 이후로는 없다.
사실 망한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채영이 트리 그룹과 손을 잡은 이후로 회사 시총에 몇 배나 늘어났다.
음용식은 사실상 채영에게 경영을 물려 준 상황이었다.
“그냥 우려돼서 하는 말이야. 사람은 잘나갈 때 한 번씩 멈춰서고 뒤를 돌아봐야 해. 안 그러면, 운마저 자기 실력인 줄 알고 리스크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게 돼. 그렇게 망한 사람 많이 봤다.”
“알겠습니다, 음 회장님.”
채영은 미소를 지으며 용식을 안심시켰다.
“근데, 채영아.”
“네.”
“너 정말 세한그룹 둘째는 아닌 거야?”
“아빠! 내 앞에서 그 인간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니, 나는 자꾸 세한 한 회장님께서 혼사 얘기를 꺼내니까···.”
“걔랑 결혼 안 해요. 말했잖아요. 걔랑 결혼하느니 머리 밀고 절에 들어갈 거라고!”
채영은 눈을 부릅뜨며 말하자, 용식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주제를 이어갔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해도 오빠한테 걔가 뭐니? 그래도 이제는 한 회사의 사장인데. 듣자 하니, 주성사료 합병도 재림이 그 녀석 작품이라고 하고. 외모도 훤칠하니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왜? 여자관계가 복잡해? 남자가 잘나면 주위에 여자가···.”
“아빠!”
“아이고 깜짝이야.”
“걔가 여자관계가 복잡하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양다리, 삼다리, 오백 다리를 걸치든,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해요. 그냥 내 근처에만 오지 말라고 해요.”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그놈이 싫냐고. 그렇게 싫은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싫은 게 아니라 짜증 나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왜?”
“자꾸 알짱거리니까.”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집안하고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그만하면 머리도 나쁘지 않고 실력도 있는데, 왜 그렇게 짜증이 나냐고?”
“아빠.”
“왜?”
“아빠는 똥파리가 자꾸 옆에 날라와 붙으면 짜증이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똥파리?”
“응. 똥파리.”
“지금 세한그룹 둘째가 똥파리라는 거야?”
“응.”
“하-.”
음용식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난감했다. 세한그룹 한경수 회장은 자꾸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러브콜을 보내는데, 마땅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똥파리가 아니야. 그거 있지, 등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 소름 돋는 거.”
내 딸이 당신 아들을 등이 반짝반짝 빛나는 똥파리로 생각한다고 얘기할 수도 없고···.
“그래도 쉬파리보다는···”
“아빠!”
---*---
“오호, 한재림. 차 새로 뽑은 거야?”
황금색으로 빛나는 차에서 한재림이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썬엔터 고용재가 부러운 시선으로 말했다.
황소 로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재로 제작한 순금 로고가 붙어있다.
“왜 불렀어?”
“아이- 내가 널 왜 불렀겠니? 진짜 괜찮은 애를 길거리 캐스팅했는데, 너한테 먼저 보여주려고 불렀지.”
썬엔터 고용재는 브로커였다.
한재림이 마음에 들어 하는 연예인이 있거나, 혹은 괜찮은 연예인 지망생이 들어오면 연결해주곤 한다.
“됐어.”
“아- 진짜야. 얘 일 년 안에 백퍼 떠. 보면, 딱 느낌 올 거야. 걔 누구지? 니가 좋아하는 애. 왜 있잖아. 옛날 마블 영화에서 위치로 나왔던.”
“엘리자베스 올슨.”
“그래, 걔. 엘리자베스 올슨. 걔 닮았어.”
엘리자베스 올슨을 닮았다는 말에 없었던 관심이 생겼다. 재림은 진짜냐는 표정으로 고용재를 봤다.
“진짜. 보면 딱 느낌 올 거야.”
재림은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용재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
사무실에는 고용재가 말한 가짜 ‘엘리자베스 올슨’이 이미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림은 똥 씹은 얼굴로 용재를 째려봤다.
닮기는커녕, 시속 350km로 달리는 람보르기니에서 지나쳐도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다르게 생겼다.
표정에서 그의 기분을 눈치챈 고용재는 지망생에게 나가라고 눈짓을 했다.
민망해진 지망생이 조용히 나가자, 고용재는 괜히 넉살을 부린다.
“왜? 닮지 않았어? 느낌 있는데. 오른쪽은 진짜 닮았는데···.”
“뭐야? 왜 부른 거야?”
“아니, 요새 니가 연락도 없고 술 먹자고 해도 자꾸 거절하길래. 내 딴에는 치얼업 해주려고···.”
술 먹을 기분이 아니다.
삼천억 원을 강탈당했는데, 어디 가서 말할 때도 없다.
그리고 결혼해야 하는 여자는 자기를 무슨 벌레 보듯 취급한다.
놀고 싶어도 도무지 흥이 나질 않는다.
“혹시 사람 하나 죽일 수 없어?”
“어?”
“됐다. 니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겠냐.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당분간 연락하지 마.”
“쩝···아···알았어.”
기분만 상한 한재림은 들어온 지 오 분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때.
“왜? 왜 재림아?”
썬엔터 회의실에 걸린 여러 모니터 중 하나가 재림의 시선에 들어온다.
처음 보는 여가수의 라이브무대가 방송 중이다.
“쟤는 누구야?”
“누구? 아- 쟤. <숲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신인 여가수.”
그녀야말로 ‘스칼릿 위치’의 느낌이 난다.
“이름이 뭐야?”
“쟤? 아 뭐였더라. 채···아! 채서온. 그래, 채서온. 왜? 한번 알아봐?”
누구만큼은 아니여도.
“자리 한번 만들어 봐.”
“오케이. 알았쓰.”
---*---
조선호텔, 스시 조.
“정말 언니까지 이러기야?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오랜만에 만나는 정수연. 음채영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요새 정신없게 바빠.”
“왜? 그 신도시 프로젝트 때문에?”
“신도시 프로젝트도 프로젝트인데, 갑자기 중국 쪽으로 사업을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익스팬드하고 있어서···.”
“중국? 아, 몇 개월 전에 마 이사님하고 출장 다녀왔다는 거.”
“응.”
“갑자기 중국산 원자재랑 중간재들 수입업을 하겠다고 하시더니만, 야, 이제 우리 해운업도 한다.”
“해운업?”
“응. 배 샀어.”
“배?”
“근데 웃긴 건 뭔 줄 아냐?”
“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는 거지. 너 발틱 인덱스라고 알아?”
“아, 들어본 거 같아. 그게 무슨 운임지수인가 하는 거지?”
“오올- 음채영. 그런 것도 알고.”
“왜 이래. 나도 기업 운영하는 사람이거든.”
“맞아. 운임지수. 그니까 일종의 해사 운임 가격을 알려주는 지수인 건데, 그게 우리가 배를 산 다음부터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중국산 원자재랑 중간재들 수입 사업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거야?”
“응.”
수연의 자랑 같은 설명을 듣고 있던 채영은 문득 궁금해진다.
“근데, 언니.”
“응?”
“그 사람은 맨날 뭐해?”
“그 사람? 대표님?”
“응.”
“뭐하긴 뭐해? 신사업 구상하고 재단 일 하고···, 정신없으시지.”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솔직히 지금 <불떡> 체인하고 지금 K-휴게소 프로젝트만 해도 골머리가 아픈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는 거야? 회사에도 회의할 때밖에 안 나온다며, 집하고 광주 괭이밥 공장에만 가 있지.”
“채영아.”
“응.”
“그런 사람들은 우리하고 생각하는 메커니즘이 다른 거야. 너 우리 대표님 하루에 세, 네 시간도 안 자는 거 모르지?”
“진짜?”
“응. 그러다 피곤하면 막 이삼일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무셔.”
“정말?”
“응. 그렇다니까.”
“잠깐. 근데 그걸 언니는 어떻게 알아?”
“야. 내가 모르면 어떡하냐. 내가 비서인데.”
그녀는 모르는 걸 수연이 알고 있다는 점에 괜히 심술이 난다. 채영의 표정이 뾰로통해진다.
“음채영.”
“왜?”
“너 우리 대표님 아직도 좋아하지?”
잠시 고민한 채영은 수연에 그녀의 마음을 인정했다.
“응.”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
“솔직히 나도 우리 대표님 좋아했던 적이 있는데···.”
“좋아했던 적?”
“피플스 그만두고 여기 입사했을 때, 대표님의 그 반짝거리는 눈에 빠졌었지.”
“지금은 아니고?”
“지금은 아니야.”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든다. 채영은 다시 한번 물어본다.
“정말?”
“정말이야.”
“왜?”
“솔직히 지금도 가끔 그분이 회의 때 자기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고 그런 거는 있는데···. 뭐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남자가 아닐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내가 평생 좋아해도 나를 한 번도 여자로 봐주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아니, 그 어떤 여자도 여자로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채영은 수연의 기분을 이해했다.
“난 아니야.”
하지만 그녀는 수연과 달랐다.
“꼭 날 보게 만들 거야.”
그녀를 위해 한마디 더 하려던 수연은 그만두었다. 그녀도 안다. 채영은 그런 아이라는 걸.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공장에 계셔.”
---*---
눈을 뜨니 은은한 ‘숲’의 조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어나셨어요?”
“제가 얼마나 잤나요?”
“얼마 안 됐습니다. 한 시간쯤 됐나?”
잠이 더 없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다.
가끔 이렇게 낮잠을 자고 나면 정신이 맑아진다.
“혹시 꿈을 꾸셨나요?”
“어떻게 아셨나요?”
“잠꼬대를 하시던데요.”
“제가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나무 꿈.
길을 걷다 나무를 만나고,
나무 밑에서 잠시 쉬던 나는 떨어진 지폣잎을 따라 무작정 걸어 그곳에 도착하고.
그 꿈에는 이제 우동익이 등장한다.
“뭐라고 하던가요?”
“자세히는 못 들었습니다. 얼핏 ‘누구야?’라고 하신 것처럼 들렸는데···. 그래서 저는 깨신 줄 알고 다가왔다가 주무시길래 다시 가려는데, 갑자기 눈을 뜨셔서···.”
잠꼬대가 맞다.
꿈에 우동익 외에 다른 이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였을까?
우동익 말고 또 누군가에 ‘숲’을 알려주게 된다는 계시인가?
아니면 ‘숲’을 들키게 된다는 계시?’
우동익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한 번에 느낌이 왔다.
이 사람은 나와 함께 갈 사람이라는 것이.
그래서 드림캐피탈 금고 CCTV 기록에 우동익 책임을 처음 봤을 때,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검은 그림자로 된 꿈속의 남자는 무슨 목적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징징- 징징- 징징- 징징-
“총재님.”
징징- 징징-
“총재님?”
“네?”
“전화···.”
생각에 빠져 전화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아.”
「마승중 이사님」
“잠시만요. 네, 여보세요.”
-대표님, 마승중입니다.
“네. 힝슝해운하고 계약은 잘 됐나요?”
이번에 중국산 원자재와 중간재들을 수입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유통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사업에 있어 해상 운반의 중요성을.
마 이사에게 중국 해운업체들의 배를 사 모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네, 마무리 잘했습니다. 아, 근데,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지 말입니다.
“재미있는 소식이요?”
-이걸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인데요?”
-왕 회장이 죽었다네요.
“네?”
-사이노 쉬핑 왕리싱 회장이 죽었다고 합니다.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뻔뻔하게 외친 그는 총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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