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밥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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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인지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손님한테 받았는데 께름칙해서요.”
“잠시만요. 확인했습니다. 진폐입니다.”
“그럼 이것들도 확인해주시겠어요?”
“모두 진짜입니다.”
*
샤라라라락- 샤라라라락-
KOR▶
₩50,000: 34,800
USD▶
$100: 79
CAD▶
$100: 76
EUR▶
€500: 77
GBP▶
£50: 78
JYP▶
¥10,000: 77
CNY▶
¥50: 76
Counterfeit▶
0
왜 오만 원권일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답을 얻었다.
‘나무’는 해당 국가가 발행하는 가장 큰 단위 지폐를 생산하는 것이다.
MoneyVac을 디자인했을 때, 심도형 대표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이런 기능이 필요한 상황이 올 거라는 걸.
“흐흐흐- 하하하하하-”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의 얼굴에다 대고 괴성을 질렀을 것이다.
환희의 괴성을.
각국의 지폐가 달린 묘목들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신권이네요.”
“언제 발행된 지폐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럼요. 기번호만 보면 다 알 수 있죠. 이건 올해 발행된 거네요.”」
‘이것도 어딘가에 발행번호가 같은 쌍둥이 진폐가 있겠지?’
확인해보지 않아도 확신이 간다.
분명 존재한다.
쌍둥이 진폐.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몇 달 전 기번호가 같은 오만 원권을 발견하고는 지폣잎을 시장에 유통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가상화폐: 콩, 움브라, 그리고 루트.
안타깝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엔 외환이라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국내에서 사용하면 너무 눈에 띄어 쉽게 추적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고, 해외로 송금하려면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불가능이었다.
떡볶이집에서 그 많은 달러, 유로 등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밀반출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하하하-”
하지만, 그걸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방법이 걱정돼서 돈을 조금 벌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
광화문, 그랑 타워.
Tree Limited와 계열사 사무실들을 광화문 쪽으로 모았다. 김앤강도 가깝고 성북동 집에서 가까웠다.
“대표님, 나오셨어요?”
워낙에 빨리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인력 수급이 가장 중요했고, 정수연 이사와 교류할 일들이 빈번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많은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나도 모르게 그녀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고, 빠릿빠릿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비서실장직을 겸하게 되었다.
“네에? 괭이밥 유기농 농장이요?”
보통은 무슨 말을 해도 침착한 그녀인데, 광주 공장에서 괭이밥 농장을 할 거라는 말은 충격이었나보다. 반문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
“아···괭이밥을 도대체 어디다···쓰시려고?”
“네잎클로버를 재배해서 팔려고요.”
“네에?!”
그녀의 표정을 보고 농담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농담입니다.”
“하아- 진짜 저는 클로버 농장을 하신다는 줄.”
“아, 클로버 농장은 진짜인데요.”
“네에?!”
“네잎클로버를 판다는 게 농담이었지.”
일그러졌던 인상이 겨우 펴지려고 하다가 다시 일그러진다. 그러니 예쁜 얼굴도 피카소 그림 속 여인 같아진다.
“클로버를 왜 키우려고 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괭이밥의 줄기와 잎 속에 다량의 옥살산이 들어 있는 줄은 알고 계셨나요? 비타민 A, 비타민 C, 철분 등도 함유하고 있고, 특히 어혈을 풀어주는 데 뛰어난 효능을 지닌 천연 해독제입니다.”
“······.”
“캐나다에 있는 건강식품 회사에 보내, 괭이밥 추출물을 만들어서 팔 겁니다.”
“아···그···그러니까, 그 최신식 공장에서 클로버를 재배하시겠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바로 그겁니다.”
쉽사리 바뀌지 않는 그녀의 표정.
하지만 대표가 워낙 확신에 차 있으니 원···.
“예, 알겠습니다.”
“어젯밤 인세인 테크 심도형 대표랑 이미 이야기했고요. 6개월에 전에 부탁한 무인 자동 재배 프로토타입이 나왔다고 하니까, 수입 절차 밟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예.”
“여기 적힌 나라들의 토양과 클로버를 각 5톤씩 수입해주세요.”
“미국, 프랑스, 캐나다,···태국,···멕시코,···여기 있는 나라 전부 다요?”
“넵! 클로버를 꼭 포함해서.”
그녀는 나를 일론 머스크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
정수연 이사와 회의를 마치고 나 홀로 경기도 광주의 공장으로 향했다.
초록과 노랑으로 칠해진 건물.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 가면 그 크기가 실감 난다.
창이 하나도 없어 뭘 하는 건물인지 겉에서는 알 수가 없다.
트럭들마저도 지하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물류창고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지바겐을 지하에 주차한 뒤, 가장 큰 건물인 A동으로 올라갔다.
입출입 패드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니, ‘삐빕-’ 소리와 함께 「인증 확인」라는 문구가 뜨고 ‘드르륵’ 철문이 올라간다.
파바밧-
자동 센서 기능으로 설정해놓았다. 입장과 동시 건물 안의 조명이 밝아진다.
‘넓다!’
예전 한림사료에 일할 때, 그곳에서 크게 농장을 하시던 분을 따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체감적으로는 그곳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했다.
보잉 747 두 대 정도는 충분히 숨길 수 있는 공간.
‘이 넓은 공간에 무엇을 재배할까? 고추? 양파? 마늘?’
여러 가지 작물들을 상상해봤다.
어차피 지하에 있는 돈나무들을 감추기 위해 만들려고 했던 무인 농장이었기에, 그냥 막연히 좋아하는 작물들을 떠올렸다.
역시 아니었다.
모든 것이 운명적이다.
이곳을 유기농 농장으로 설계했던 이유마저도.
“네잎클로버 농장···.”
지상은 각국의 지폐를 생산해줄 돈나무의 비료가 될 네잎클로버 재배 공간이 될 것이다.
*
지상에는 보잉 747 두 대가 들어갈 수 있는 A동과 그 반만 한 B동, C동이 있다면,
그 밑에는 지상 공간과 견줄만한 크기에 지하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각 동은 지하터널로 이어져 있고 지하공간 출입구는 총 세 곳이었다. (설계에는 여섯 개로 되어 있다.)
설계도면이 있고 정부 허가를 받아 지은 건물이니 숨은 공간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숨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없으면 폭파하지 않은 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삐빕-
「성명과 생년월일을 말씀해주십시오.」
“이민호, 86년 5월 5일”
지문과 홍채 인식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음성인식 절차를 통과해야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이민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환영합니다.」
“응, 너도 안녕.”
몇 번 와봤다고 이제는 AI의 음성이 친근하다.
샤라라라락-
어젯밤 이곳으로 달러 트리와 유로 트리 등 각국의 돈나무 묘목들을 머니백 v. 1.0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왔다.
벌써 시작한 모양이다.
슈르르르르륵-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지난달 대한민국의 외환보유액이 달러 강세 속에서 삼 개월 연속 감소했습니다.
이번 달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달 말 대한민국의 외환보유액은 4,493억 달러로 전월 말(4,578억1000만 달러)과 비교해 85억1,000만 달러 감소한 액수로, 이는 지난 1월에 이어 또다시 소폭 감소한 것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감소 배경에 대해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미달러화 환산액이 감소하였고,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 등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
외환보유액 순위는 지난달보다 한 단계 떨어져 대만, 홍콩, 사우디아라비아에 뒤이어 9위로 떨어졌습니다.」
샤라라라락-
가상화폐 시장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세계는 24시간 화폐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은 해외여행 갈 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싸게 환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어떤 인물은 한 나라의 화폐를 공매도해 그 나라 경제를 흔들기도 한다는 것을.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이 세계에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워런 버핏,
레이 달리오,
조지 소로스
칼 아이컨
······
운용자산들은 몇백조 원에 개인 자산들만 수십조 원인 인물들.
대한민국의 1년 치 예산과 비교할 법한 돈을 움직이는 그들.
슈르르르륵-
머니백이 모아온 돈을 머니건에 넣고 쏜다.
‘돈은 뭘까?’
누구는 하루 10시간 일해서 겨우 몇만 원 받아 가는데, 누구는 클릭 한 번에 몇천억 원이라는 돈을 번다.
아, 물론 그만큼 더 큰 리스크를 건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눈앞에 달러, 유로, 옌 등을 떨어뜨려 주는 나무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순간 결심했다.
이곳을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외환보유 창고로 만들 것이다.
어떻게 세탁할지는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볼 생각이다.
삐빕-
「이민호 대표님, 안녕히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그래, 너도.”
---*---
“대표님, 아무래도 가격을 좀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하 F&B와의 합자를 통해 <현동이네>를 프랜차이즈화면서 육동영 셰프가 총괄하고 있는 <육가네>가 그의 지갑이 되었다.
민호는 동영의 제의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죠?”
한림사료 재직 시절 관리하던 한우 사육 농가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가게에서 파는 한우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입소문이 퍼져 박리다매 형식으로 수익도 나는 상황.
민호는 굳이 가격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장 사장님이 전화가 왔는데, 사룟값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사룟값 저희가 보조해주지 않나요?”
“50% 정도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번에 국제 곡물가가 많이 올라가서 사료업체에서 가격을 많이 올렸다고 합니다.”
“흠···. 한림사료 쓰죠?”
“네.”
일해봐서 안다. 대충 어떤 사정인지.
“그럼 그냥 더 지원해주기로 하죠.”
“근데···.”
해결책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은 여전히 난감한 표정이다.
“왜 그러시죠?”
“사실, 그것 말고도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큰 문제요?”
“뭐죠?”
“경쟁 업체들이 자꾸 민원을 넣습니다.”
“누가요?”
“이게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구청에도 넣고, 식약처에 넣고, 이제는 공정위에도 신고가 들어갔네요. 한두 번 당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니까···.”
편이 생기면 적도 생기는 법.
직거래 방식으로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앴더니 소비자는 만족했지만, 경쟁 업체들은 <육가네>의 성공이 아니꼬웠고 유통 업체들의 불만은 폭주했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 왜 니들만 잘나가냐는 거다.
“흠···.”
이런 건 법적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따라가기에는 분명 이상한 점이 있다.
시스템이 잘못 장착됐다.
누가 잘못한 거냐고 하면 서로가 서로한테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우협회장님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정치적인 힘이 필요하다.
시스템을 뜯어고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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