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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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구청에서 또 나왔어. 자기네도 어쩔 수 없대. 신고가 들어왔는데 조사하러 나오지 않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날 수가 있어서.”
“사장님, 요새 배달 어플 악플이 심해졌어요. 3호점 점장님이 그러시는데, 전에는 없었는데, 요새 맘카페에도 저희 가게에 대한 근거도 없는 악성 글들이 올라온 데요.”
처음에는 그려려니 했다.
불만 있는 경쟁 업체일 수도 있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일 수도 있고.
아무리 관리를 철저히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2주가 넘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받고 눈치챘다.
누가 고의로 <현동이네>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누군지 알아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띠리링- 띠리링-
-네, 대표님.
“정 이사님, 저번에 요식업 경력직들 인터뷰한 분 중에 한우랑 고기 쪽 전문으로 하시던 분 있잖아요? 그분 좀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육 셰프님이요? 아, 물론이죠.
---*---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강남의 술집 안으로 이종태가 들어오자, 부장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지인들이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
“이 사장, 오랜만이야. 아니, 요새 뭐 이렇게 바빠? 얼굴 보기가 힘드네.”
“몰라? 요새 이 사장 바빠. 크큭.”
“몰라. 왜?”
“이 사장 사모님 나오는 동영상 못 봤어? 요새 핫한데.”
“못 봤는데? 왜? 사모님 나오는 동영상 떴어? 핫해? 진짜?”
“어허. 또 이상한 상상 한다. 그런 영상 말고. 자, 이거.”
일행 중 한 명이 휴대폰에서 아내가 욕설하는 영상을 틀어 보여준다.
댓글에는 ‘진상맘’, ‘맘충’ 등 각종 악플들이 달려있다.
“이거 뭐야?”
“아- 꺼. 아주 지겹다. 어딜 가나 하도 말해서.”
“이런 일이 있었어?”
“있었어.”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 마시러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동영상’ 이야기를 들여야 하니, 이종태는 짜증이 났다.
다들 이종태의 눈치를 보고는 더 언급하지 않았지만, 동영상을 처음 본 오 사장은 궁금했다.
“근데 이거 언젯적 일이야?”
“한 3주 됐어.”
“그래? 근데 왜 동영상이 아직도 올라와 있어? 그것도 얼굴 다 나오게.”
“아, 그렇게 됐어. 그만 물어.”
“여기 와이프가 캐나다 국적이잖아.”
“그래서?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변호사는 만나봤어?”
“그만해. 지겨우니까.”
“만나봤대. 안 된다고 그랬대.”
“진짜? 이게 법적으로 처벌이 안 돼? 이상한데. 대형 로펌 가봐.”
“가봤어, 이 새끼야! 가봤어! 율정, 대서양, 세촌. 다 만나봤어.”
“김앤강을 갔어야지.”
“상대가 김앤강을 썼는데 어떻게 김앤강을 가냐!”
눈치 없는 오 사장이 자꾸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자, 이종태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아— 상대가 김앤강을 썼어? 그럼 어쩔 수 없네.”
“이 새끼가 진짜···.”
“이 사장, 진정해. 이거 한잔 마시고 진정해.”
“아니,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그만 하라니까 자꾸···. 쯧.”
“아, 미안해, 이 사장. 처음 듣는 일이라서···. 기분 상했으면 사과할게. 나는 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 그랬지.”
오 사장이 사과의 의미로 술을 따라주자, 이종태는 못 이기는 척 받아 마시며 대꾸했다.
“도움 필요 없어. 나 이종태야. 씨발, 어렸을 때, 푸줏간 집 아들이라고 나랑 내 동생 놀린 새끼들 내가 우리 아버지 가게에서 발골칼 들고 가서 목에 칼 들이대고 내 앞에 전부 무릎 꿇렸어. 어디 감히 내 새끼를 건드려. 죽었어, 씨발.”
“오- 이 사장. 젊었을 때 성깔 나오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이미 조치 들어갔어.”
“그래?”
“그 동영상 찍은 그쪽 삼촌이라는 인간이 이대· 마포 쪽에서 떡볶이 장사해. 내가 그 새끼 석 달 안에 장사 접게 만든다.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밥장사 못 하게 해준다.”
---*---
“이종태 사장님요? 아······.”
다음 날, 민호는 정수연 이사와 일전에 그녀가 소개해준 육동영 셰프를 만났다.
이종태에 관해 계속 물으니 말을 아끼려던 육 셰프는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그분 좀 유명하죠.”
“왜요?”
“솔직히 같은 업계에 있으면 남 얘기하는 거는 좀 그렇지만···.”
이종태는 강남에 큰 한우 전문 식당만 일곱 개를 갖고 있고, 광화문과 마포, 용산 등 강북에 있는 국밥집, 카페 등을 포함하면 스무 개가 넘는 점포를 소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마장동에서 도축업을 크게 했는데, 동생이 소고기 유통과 도축업을 이어받고 형 이종태는 한우 전문 식당을 시작하면서 형제가 큰돈을 벌었다.
다만, 경영과 마케팅에 소질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나, 경쟁 업체를 근거 없는 이유로 고발하고 주방장이나 직원들을 빼 오는 더티한 방식도 서슴지 않게 쓰기로 알려져 있었다.
육동영 셰프도 그렇게 당한 경험이 있었다.
“흠-.”
배경을 다 들은 민호는 잠시 고민했다.
이미 <현동이네>를 공격한 자가 이종태라는 걸 알고 나왔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심술이 나게 만드는 자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어떻게···?”
“육 셰프님 저랑 한우 전문 식당 체인 하나 만들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우주의 기운의 부작용인가, 자꾸 양아치들이 싸움을 걸어온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마음 없었다.
식당은 <현동이네>만으로 신경 쓸 게 많았고, ‘큰 세탁기’도 마련했겠다 <큰나무그늘> 재단이랑 ‘공장’ 설립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양아치가 싸움을 걸어왔다.
돈도 있는데 피할 수도 없고, 이건 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이종태가 하는 식당들 다 문 닫게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아······.”
“이유는 개인적입니다. 하실 수 있으실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육동영의 눈빛이 반짝한다.
듣던 중 반가운 제안.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제일 큰 강남점부터···.”
그럴 수 없지.
“아니요. 그 사람 가지고 있는 식당 전 지점 동시에 진행하죠.”
“네에?”
‘깨끗한’ 천억 원이 생겼는데.
“정 이사님.”
“네, 대표님.”
“언제 저한테 오시나요?”
“네? 아, <피플스>에 사직서 제출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현동이네>로 출근할 수 있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담당해주실 첫 프로젝트로 육 셰프님 한우 체인점으로 정하죠.”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지시에 잠시 머뭇거린 정수연은 곧바로 민호의 의도를 파악했다. 상황 판단이 빠른 여자다.
“셰프님, 그럼 한우 체인점 관련해서는 대표하고 미팅 끝나고 저하고 말씀 나누시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호기롭게 ‘물론입니다’라고 말했던 육동영이 망설이는 표정을 짓자, 민호는 곧바로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게···.”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공평하게 경쟁한다면, 이종태 사장하고 한우로 겨뤄도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이종태 사장 동생이 한우 유통업을 하고 있어서 가격 면에서 경쟁하기가 쉽지···.”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아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하고 가죠. 무조건 그쪽 가게보다 싸게 파세요.”
“네?”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니 어떻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한 푼도 안 벌어도 상관없으니까.”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경쟁에서 밀어낸 다음에 수익을 내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시죠?”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한우 체인점으로 돈 벌 생각 없다.
생각 없는 부모 참교육 한번 시키고,
겸사겸사 고용 창출하면 좋고,
소비자는 싸게 한우 먹을 수 있어 좋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소고기 유통업이 또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서요. 이종태 형제가 이쪽에 발이 넓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만큼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 우리가 공격하는 걸 눈치채면, 한우 수급하는 데 훼방을 놓을 수도···.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일단 강남점부터 시작해서···.”
“수급만 확실하게 보장되면 되는 건가요?”
“네? 아, 네. 수급만 확실하게 보장되면···근데 어떻게 하시려고···.”
“잠시만요.”
민호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회장님, 접니다, 한림사료 이 대리.”
-오- 이 대리! 이 대리가 웬일이야. 퇴사했다고는 들었는데.
“회장님, 요새 소 몇 마리 키우시나요?”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한림사료 때 인맥을 동원하면 한우집 십여 개쯤 물량 대는 건 일도 아니다.
-요새? 300마리.
---*---
넉 달 뒤···
“매출이 왜 이 모양이야?”
여느 날처럼 폐점 시간 가게를 돌던 이종태는 한 달째 급격하게 떨어진 매출에 신경질이 났다.
이미 원인을 알고 있는 그였지만, 괜히 직원에게 화를 낸다.
“그게 새로 오픈한···.”
“새로 오픈한 뭐? 저기 ‘육가네’ 때문에? 그게 말이 돼? 근처에 경쟁 업체 하나 개점했다고 한 달째 매출이 반 토막이 나는 게? 서비스 망치고 있는 거 아니야?! 직원 교육 제대로 시키고 있는 거 맞아?!”
“아닙니다, 사장님. 정말 그런 게 아니라. 가격에서 상대가 안 돼요.”
“서울에서 우리 가게보다 싸게 남품 받는 데가 없어. 어디서 가격 이야기를 하고 있어?”
“진짜예요, 사장님. 저기가 지금 꽃등심 1인분에 만팔천 원에 팔고 있어요. 한우 투뿔 등급을.”
“뭐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진짜에요. 한번 가보세요.”
직원에 성토에 이종태는 건너편에 새로 오픈한 ‘육가네’로 달려갔다.
「한우 투뿔
꽃등심 200g 18,000원
살치살 200g 18,000원
안심 200g 18,000원」
“말도 안 돼···.”
---*---
광화문, 김앤강 사무실.
“변호사님, 부탁드린 거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일단 식약처에 정식으로 고지했습니다. 만약 확실하게 근거 체크하지 않고 무작정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조사했을 경우, 그리고 그것이 경쟁 업체의 악의적인 민원이었을 시에는 정부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동이네> 달린 악플들 출처 확인습니다. 대부분 블랙컨슈머나 인플러언서 들인데, 대가를 받고 악의적으로 작성한 것이었다는 진술서도 확보했습니다. 어떻게 바로 소송 들어갈까요?”
“아니요. 분명 <육가네>를 상대로도 똑같은 짓을 할 겁니다. 그거 모아서 한꺼번에 하죠.”
“알겠습니다.”
“이종태는 내국인이고 한국에서 한 짓이니까, 명예훼손죄로 형사고발이 가능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민·형사 동시에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민호는 김앤강 사무실을 나오며 밴쿠버에 사는 현동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어, 민호야.
“잘 지내지?”
-그럼, 잘 지내지. 왜?
“그 여자랑은 요새는 어떻게 지내? 요새는 찍소리 못하지?”
-누구? 아, 그 여자? 그 여자 이사 갔어.
“진짜? 어디로?”
-몰라. 어렸을 때 한 짓들까지 소문 다 나서 동부 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모르겠네. 아무튼 저번 달부터 안 보여.
나중에 듣게 됐다.
조용히 한국에 들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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