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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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is one of the biggest countries which produce metallurgical coal in the world and the Douglas Creek has about US 12 billion-dollar worth of metallurgical coal buried within its mountain. It has so far produced······.”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점결탄 생산국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더글러스 크릭 탄광에는 미화로 12억 달러 가치의 점결탄이 매장되어 있죠. 현재까지의 채광량은······.)
하얀 털이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주인이 그럴싸한 말들을 늘어놨지만, 실상은 그냥 폐광촌이었다.
1980년대 문을 닫은 폐광.
한 50가구 정도 살았을까?
당시 지어진 집들은 90년대 말 이후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고, 전기며 수도며 제대로 작동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마을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 있다는 거 하나 다행이었다.
캐나다 가장 서쪽에 자리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그 위로는 엘사나 좋아할 것 같은 알래스카주와 유콘주.
<더글러스 크릭 탄광>은 그 세 개 주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했다.
「“변호사님, 조사 좀 해보셨나요?”
“네, 급하게 찾아보느라 좀 더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기는 한데, 12억 불 어치의 점결탄이 매장되어 있는 거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10년 전에 미국 <머레이 콜> 에너지 회사가 더글러스 크릭을 구매하기 위해 조사했는데, 감정 결과 리포트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나와 있기는 한데, 문제는 점결탄 매장 위치가 너무 깊고,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 생산 비용을 고려했을 때, 매력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래서 <머레이 콜>도 인수하지 않았고요.”」
남한만 한 땅에 인구는 대략 대한민국 인구수의 1/10 수준.
최저임금은 한국의 1.5배 정도.
게다가 철강 제조에 사용되는 점결탄은 호주와 미국에도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어 <더글러스 크릭 탄광>은 경쟁력이 떨어졌다.
갑자기 점결탄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 한, 결국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How about it? Are you interested?”
(어때요? 관심이 좀 생기셨나요?)
딱이다!
“Yes, I will take it.”
(네,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세탁기로 돌리기.
---*---
“네, 변호사님. 그럼 계약서 검토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모레 이쪽 변호사들하고 만날 때까지 해주시면 감사하겠지만, 힘드시면 월요일까지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네, 네. 아, 그리고 신용평가 회사 하나만 소개해주시겠어요? 너무 빡빡한 데 말고,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주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네. 네, 그럼. 수고해주십시오.”
딸깍.
“민호야.”
통화가 끝나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현동이 녀석이 불렀다.
“응?”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진짜 사는 거야? 그 탄광?”
탄광에 관해 처음 이야기를 꺼낸 지 2주 만에 캐나다에 날아왔다. 벌써 여러 번 의도를 설명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로또에 당첨되고 주식이 대박쳐서 음식점 몇 개를 운영하는 것과 탄광 사업은 완전 다른 이야기니까.
“응.”
“그걸 니가 사서 뭐 하게?”
“말했잖아. 투자하려 한다고.”
“진짜? 너 석탄 회사 하려고? 나랑 건강식품 파는 거 아니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녀석의 수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너무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 게 나을 듯싶다.
“그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고작 천만 불이라잖아.”
“고작 천만 불? 100억 원이야. 10~20억 원이 아니라.”
“1.2조짜리 탄광이잖아.”
녀석은 1.2조라는 말만 들었지, 생산 비용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선다.
“누구한테 들은 거야? 좋은 투자는 확실한 거야?”
“응.”
“확실한 정보야? 사기일지도 모르잖아. 1.2조 원어치 석탄이 묻혀있는데, 100억 원밖에 안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지. 그래서 김앤강에 물어봤잖아. 개발 비용이 좀 든대.”
“얼마나?”
“응? 아, 뭐 몇천억 원. 좀 더 알아봐야지. 부탁해놨어.”
대충 얼버무리자, 다행히 녀석도 더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걱정돼서 묻는 거였지, 사업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네가 왜 탄광이 필요한 건지?”
지하실 나무들에서 백억 원씩 되는 돈이 매달 떨어진다.
조만간 그 돈은 몇백억 원씩으로 늘어날 거고.
퇴사하고 1년 반밖에 안 된 놈이 몇백억 원이 있다고 하면 누군들 의심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로또랑 주식, 그리고 부동산을 기반으로 커버했지만, 기어를 바꿔야 할 타이밍이었다.
비트코인도 고려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사려면 일단 돈을 어딘가에 넣어야 하는데, 몇십억 원도 아니고 몇백억 원은 리스크가 컸다. (시시각각 들쭉날쭉한 코인 가격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러다 떠오른 것이 탄광이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만한 ‘빛 좋은 개살구’만 있다면, 드림캐피탈의 자본을 계속 내 지갑처럼 사용하면서, 나무에서 나는 돈으로 조용히(?)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으니까.
“현동아, 나랑 사업하지 않을래?”
“이미 하고 있잖아.”
아니, 진짜 큰 사업.
그날 저녁 나는 녀석에게 내가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녀석이 놀라지 않게, 너무 자세하지는 않게.
---*---
늦은 시각.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몇억 원씩 하는 차들이 입구에 서자, 발레파킹 직원이 나와 키를 받는다.
연예인인가 싶어 힐끔 얼굴을 봐보지만,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니다.
“상하치킨 회장님 딸.”
새로 들어온 직원이 방금 차에서 내린 미녀에게 관심을 보이자, 선배가 슬쩍 귀띔해준다.
“아, 네-”
“예쁘지.”
“네. 되게.”
차에서 내린 음채영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너 코인 한다며?”
명성그룹 손자 우일준의 질문에 한재림은 놀라지 않은 척 그를 봤다.
“누가 그래?”
“성혁이 형이 우리 학교 나온 거 잊었어?”
‘그랬던가? 이 멍청이도 칼텍 나왔던가? 아무튼 돈만 있으면 개나 소나···.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 좁다.’
“내가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성혁이 형이 그러던데? 마레 코인 니가 펀딩했다고.”
가상화폐 마레(Mare)는 한재림이 투자하고 기성혁이 개발한 블록체인에서 생성되는 코인이었다.
재림은 우일준이 알고 있다는 게 성가셨고, 기성혁이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게 짜증이 났다.
나중에 단단히 주의를 시켜야겠다.
“잘못 들은 거야.”
“그래? 어- 성혁이 분명 너한테 투자받았다고 했는데.”
“어디 가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다니지 마.”
“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근데, 너 요새 걔 안 만나냐?”
한재림은 누구라고 묻지도 않는다.
솔직히 명성그룹 손자가 아니었으면 상대도 안 했다.
“송지혜 만나냐고?”
송지혜, 대한민국에서 미모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여자 연예인.
비공식적으로 한재림과 만났었다. 이 모임에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안 만나.”
“아, 그래. 걘 어떠냐?”
“뭐가 궁금해서?”
“아니, 그냥. 저번에 무슨 일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잠깐 봤는데, 너랑 아직도 사귀나 해서.”
‘새끼, 괜히 저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야, 너 같은 난쟁이는 돈이 1조가 있어도 걔가 안 만나준다.’
“소개해줘?”
“아, 진짜? 괜찮은···거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소개해주겠다고.”
“응? 아, 아니···좋아. 그래. 소개해줘.”
‘멍청히 같은 새끼···.’
대한민국 총생산량의 90%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자제들이 프라이빗하게 만나는 파티.
우일준이 귀찮아진 한재림의 시선에 이제 막 파티에 도착한 채영이 들어왔다.
재림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
“웬일이야? 니가 여길 다 오고?”
채영은 어디선가 다가와 샴페인을 건네는 한재림을 별 관심 없는 눈초리로 쓱 한번 보고는 귀찮은 듯 대답했다.
“누구 만나기로 했어.”
“누구?”
채영은 재림을 다시 본다.
이번에는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꺼지라는 의미.
그러나, 재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 앞에 서 있다.
“<불떡> 싱가포르에 들어갔더라. 네가 기획한 거라며?”
채영은 파티장 안을 한번 쭉 둘러보고 대답했다.
“응.”
“인터뷰 나온 거 봤다.”
“그랬어?”
“나는 방송에 나오는 거 성가시던데.”
“난 좋아.”
“하긴. 카메라발 잘 받더라.”
시시콜콜한 대화를 받아주던 채영은 더 이상 그럴 마음이 없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데이트라도 신청하려고?”
“그렇다면?”
“흥-.”
그녀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이제 연예인들 데리고 노는 게 지겨워졌나 봐?”
“응. 결혼하려고. 너 나 한번 안 만나볼래?”
“미친···.”
채영의 입에서 대놓고 욕을 튀어나왔지만, 재림은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고 있다.
“만나는 사람 있어? 기다려줄게.”
“꺼져.”
“채영아.”
“너 같은 놈이 부르라고 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아니거든.”
“하하하. 성깔하고는···. 어릴 때랑 똑같네. 근데 어쩌냐? 회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 않던데.”
‘응? 회장님? 우리 아빠? 그게 무슨 말이지?’
“채영아!”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말하려는 찰나, 채영이 기다리고 있던 정수연이 나타났고.
그 바람에 질문할 기회를 놓쳤다.
“그럼, 또 보자.”
한재림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방금 세한그룹 한재림이지?”
“뭐야, 재수 없게.”
“왜? 너한테 집적댔어? 유명하잖아,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걸로.”
“아니야. 헛소리만 지껄이다 갔어. 근데, 언니는 왜 여기서 보자고 했어? 나 여기 싫은데.”
“왜? 미래 대한민국을 움직일 사람들 여기 다 모여있는데.”
“그래서 싫어.”
“야, 너는 아닌 거 같냐? 너도 쟤들이랑 똑같아.”
“그래서 싫다고.”
“참 이상한 애야. 너도 알지, 그거?”
“나가자.”
“알았어. 나 누구 좀 잠깐 만나고. 너 만나러 온 게 아니라 그 사람 만나러 온 거니까.”
“빨리 끝내. 한재림 때문에 정말 여기 1초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졌으니까.”
채영의 투정에 피식 웃는 수연.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기는 해도 수연은 채영이 좋았다.
가끔 못 말릴 정도로 경쟁심이 강하게 발동할 때도 있지만, 그건 재벌 집안에서 곱게 자란 부류들이 대개 그랬으니까. 자기 거라고 생각하면, 꼭 가져야 하는···.
그건 한재림도 마찬가지였다.
“끝났다.”
“끝났어? 그럼, 가자.”
“아, 근데, 채영아. 나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뭐?”
“너? 이민호 대표랑 무슨 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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