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975억 원이라는 돈을 세탁하려면
샤라라라락-
07:45 AM.
MoneyVac v. 1.0이 바닥을 쓸고 돌아다닌다.
보통은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작동하게 세팅해놓지만, 가끔은 이렇게 며칠 모았다가 녀석이 일하는 모습을 보곤한다.
나만의 힐링이자 충전이다.
커피 한 잔.
Jay Z 형님의 ‘99 Problems.’
샤라라라락- 삐빕-
KOR▶
₩50,000: 56,743
Counterfeit▶
0
Total▶
₩2,687,150,000
총 나무 개수: 99
총 가지 개수: 5341
연간 추정 수익: 975억 원 (비고-지폣입 평균 생산 주기가 24시간보다 빨라지고 있음.)
I got 99 trees and a bitch ain’t one.
---*---
“박성준 사장 변호인이 2억을 제시하면서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어떡하실 건가요?”
힘 있는 놈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합의금 2억 원에 원곡자 표시 정정. 플러스, 저작권료 5:5 정산.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혀 나쁘지 않은 조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말은 아니다.
맨 처음 SY 엔터 사무실을 찾아간 날 박성준 대표가 상식적으로 나왔다면 원곡자 표시 정도로 끝냈을 거다.
준수가 원한 것도 그거였으니까, 자기가 쓴 노래에 대한 합당한 크레딧.
근데 그거 하나 정정하면 될 걸 가지고 애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극성팬들을 이용해 허위 정보를 퍼트렸다.
좋게, 좋게 끝낼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저쪽에서 건 싸움, 두루뭉술 끝낼 마음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아니요. 끝까지 싸워주세요.”
이찬동 변호사도 더 묻지 않았다.
슬슬 내 스타일을 파악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한테는 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다음 주에 검찰 조사 들어가면 민사 소송은 급물살을 탈 거고, 그러면 길어야 두세 달이면 판결 나올 듯싶습니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준수 소송 관련 미팅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이찬동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경리팀에서 지난달 청구 비용이 아직 결제 안 됐다고···.”
아차차-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은데, 혼자 하다 보니까, 한두 개씩 놓치는 게 있다.
“죄송합니다. 깜빡했네요.”
“아닙니다. 독촉은 아니고, 이번 달 치와 함께 정산해주셔도 괜찮습니다. 혹시라도 저희 쪽에 착오가 있는 건 아닌가 해서 확인한 것뿐입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현금 계산 가능할까요?”
---*---
광화문, <피플스 파트너스> 사무실.
아침 일찍 출근한 수연은 벌써 두 시간째 명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민호로부터 제안을 받은 지 벌써 일주일.
국내 최대 헤드헌팅 서치 펌 <피플스 파트너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남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자꾸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 두려운 것 없는 자신감 넘치는 그 표정.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엘리트들도 비슷한 표정이 있다. 나는 모든 해낼 수 있고, 실패가 두렵지 않은 듯한 표정.
하지만, 이민호 대표의 자신감은 그들이 표출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알고 싶어. 그 자신감의 근원이 뭔지.’
그녀는 궁금했다.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설명해준 그의 비전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수연: 혹시 시간 되면 오늘 좀 뵐 수 있을까요?]
까톡.
[민호: 물론입니다.]
[수연: 언제가 좋으실까요?]
[민호: 언제든지요. 이사님, 편하실 때.]
[민호: 사실 지금 광화문에 와 있기는 한데. 괜찮으시면 지금 보실까요?]
[수연: 좋아요.]
수연은 이런 타이밍조차 마음에 든다.
---*---
가맹점 수 1,500개가 넘는 치킨 프랜차이즈의 지난해 매출액 4,000억 원이 되지 않는다.
빛의 속도로 점포를 늘리고 있어도 <현동이네>만 가지고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돈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큰 사업이 필요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인사를 관리해줄 전문가였다.
“그래서 생각 좀 해보셨나요?”
한참 뜸을 들였지만,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서 이미 어느 정도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제가 왜 필요하신 거죠?”
“그건 이미 전에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한데, 저한테는 중요한 결정이라서요.”
“그럼 반대로 묻죠. 정 이사님께서는 저한테 기대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녀는 내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음···네.”
“그 기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저는 아직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연봉 10억 달라고 하면 어쩌시려고.”
“드리겠습니다.”
“네에?”
어리둥절한 표정.
믿기 어려운 모양이다.
“정 이사님이 우리 회사로 와주신다면 회사의 인사를 담당하시게 될 겁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저는 10년 안에 트리 그룹을 세계 제일의 기업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안목을 지닌 인사담당자가 꼭 필요하고, 지난 몇 개월간 정 이사님이 보여주신 능력으로 판단했을 때, 정 이사님이 그 자리에 적합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현재 트리 그룹은 공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공간을 적합한 인물들로 채우셔야 하는 분이 이사님이 될 것이기에 업무량은 상당하실 겁니다.
그래서 연봉 10억쯤은 흔쾌히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거침없는 대답에 수연은 하려 했던 수많은 질문을 잊어버렸다.
사실, 결정은 이미 오기 전에 했다. 단지, 그 무모한 결정을 번복하게 할만한 핑곗거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끌었을 뿐.
하지만, 이민호 대표는 정확하게 그녀가 듣고 싶은 말만 한 뒤 입을 다물었다.
‘이런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 곤란하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드릴까요?”
“아니요. 대신, 몇 달 정도 시간을 주시면 좋겠어요. 그곳에 가기 전에 몇 가지 프렙(prep)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너무 오래 걸리지만 말아 주세요.”
마지막까지 너무 완벽한 말만 골라서 한다.
수연은 이미 트리 그룹의 인사담당자였다.
“제 채용 조건들은 이메일로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번에 엔터테인먼트 분야 쪽 사람도 구하신다고 했는데.”
“네, 갑자기 일이 그렇게 됐네요. 가능할까요?”
“그러지 마시고 혹시 작은 엔터 회사를 인수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괜찮은 프로듀서를 알고 있는데.”
그렇게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생겼다.
“얼마죠?”
---*---
“대표님, 오셨어요.”
매일같이 2억 원이 넘는 돈이 지하 바닥에 쌓인다.
다음 달에는 일 3억 원, 그다음 달에는 일 4억 원이 넘을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쓰고 있는 목돈 대부분은 드림캐피탈에서 나왔다.
“대출을 좀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100억이요.”
그 정도 돈은 이미 지하 현금방에 있다.
문제는 세탁을 하지 못한 돈이라는 점.
<현동이네> 22개 점포를 통해 세탁할 수 있는 돈은 월 30억이 맥스였다.
당장 <인세인 테크>에 들어간 투자금을 비롯해 이곳저곳 큰돈 들어갈 때가 많은데, ‘세탁기’가 작았다.
‘큰 세탁기’를 구하기 전까지는 드림캐피탈이 내 가상지갑 노릇을 해야 했다.
“음···알겠습니다.”
차경환 지점장은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사실 이미 담보 대출금 최대허용치까지 받아놓은 상황.
우주의 기운 덕에 사놓은 부동산들의 가치가 올라, 담보 대출로 지출을 충당하고 있었는데 자금이 필요한 속도가 가치 올라가는 속도보다 빨랐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늘 감사하죠. 자금은 언제까지 필요하실까요?”
“다음 주까지 마련해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
7:45 PM.
“I got 99 problems and a bitch aint’ one.”
지하 돈나무 온실.
Jay Z 형님의 땡땡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민호는 생각에 잠긴다.
현재 예상되는 현금 추정지: 연 975억 원.
단순히 현재 지폣잎을 떨구고 있는 나뭇가지 수를 바탕으로 계산한 추정치일 뿐.
현재 속도로 자란다면 내년 이맘때에는 조 단위에 가까운 금액이 떨어진다. 그것도 지폣잎 나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하는 말이다.
“후—.”
그때까지 <현동이네> 점포를 전국에 10,000개를 깐다고 했을 때도 감히 세탁할 수 없는 돈.
큰돈에 무던해졌다고 하는데도 살 떨리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돈을 쌓아놓은 게 현명한 걸까?
그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무가 주는 돈은 그렇게 쓰라고 내주는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 몇천억 원씩 되는 돈을 어떻게 세탁하지? 아니, 당장, 연말까지 975억 원이라는 돈을 어떻게 세탁하지?’
설사 10,000개 점포를 내고 그만한 매출을 잡을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렇게는 지금처럼 절대 혼자 세탁할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한가? 누구? 현동이? 승호?’
아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역시 그냥 부동산을 계속 사는 수밖에 없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데···.’
이런저런 방법들을 연구하며 골똘히 생각하던 순간, 문득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아!”
정부 주도로 해외 광산을 매입했다는 기사.
수십 조를 투자했지만,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아 수익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 도로 매각했다는 내용.
매장량만 고려했을 뿐 생산비용 등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해 발생한 참극.
“여기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정부 때 광물자원공사 주도로 구입한 총 26개 해외 광산 중 11개를 이미 매각했고, 현재 15곳도 조만간 매각할 생각이라고 발표했다.’”
‘이거다! 큰 세탁기.
정부도 제대로 판단 못 하는 데 개인회사야 당연하겠지.’
민호는 캐나다에 있는 광산들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매장량은 많지만, 채굴 단가가 맞지 않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탄광.
장부상의 가치는 수조에 달하지만, 실제 경제성은 제로에 가까운 탄광이 필요하다.
정확할 필요는 없다. 그럴싸하기만 하면 된다.
「<Abandoned Canadian mining town up for sale>
A whole town in British Columbia, Canada’s most wetern province, has been put for sale and for less than $10 million···.」
“버려진 캐나다 탄광을 판매 중입니다. 캐나다 서부 주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마을 전체가 천만 불에 나와···.”
빙고!
띠리링- 띠리링-
-어, 민호야, 무슨 일이야?
걸걸한 목소리. 깜빡했다. 밴쿠버는 이른 아침이라는 걸.
“미안. 아침이지.”
-아냐, 괜찮아. 왜?
“현동아, 나 대신 탄광 좀 하나 보고 와야겠다.”
-탄광?
나의 ‘큰 세탁기’가 되어줄 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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