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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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들어온 전화가 한 통 있었다.
누구는 모르는 번호로 들어오는 전화는 아예 받질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받는다.
영업직에 한 5년 근무했더니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은 받지 않았다.
시차도 있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캐나다까지 가서 불필요한 전화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그런 전화 대부분이 보이스피싱이나 홍보성이기도 했고.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런데···.
-······혹시 이민호 대리님 전화인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역시 이 대리님 전화가 맞네요···저는 윤호성 부장님 안사람이에요.
같은 전화번호로 돌아가신 윤 부장님 부인께서 연락을 해왔다.
“아, 예, 안녕하세요.”
-오늘 장례식장에 오셨었죠.
“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따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여전히 정신이 없으신 듯했다.
당연했다. 남편이 죽었는데···.
말이 두서없고 느렸다.
-지금 이 전화 남편 전화기에요.
“네?”
-남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건 전화.
윤 부장님이 죽기 전에 나한테 전화를 거셨다고?
왜?
-남편이 이 대리께 정말 미안해했어요.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 사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사모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한 것처럼 들렸다.
전화로 들을 말이 아니었다.
“사모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찾아뵙고 말씀을 들어도 될까요?”
-네···흑흑흑···.
“그럼, 장례식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흑흑흑···.
딸깍.
---*---
며칠 뒤, 돌아가신 윤 부장 댁을 찾았다.
“장례식에 불쑥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남편이 좋아했을 거예요.”
다행히 사모는 적어도 장례식 때보다는 많이 진정한 듯했다.
말이 종종 끊기고 어색했지만,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대리님은 많이 서운하셨겠지만,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자상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배신감을 컸다.
“혹시 부장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집에 와서 바깥일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자세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이 대리님에게 못 할 짓을 했다고.”
“못 할 짓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이 대리님에게 용서받고 싶었던 거는 분명해요.”
‘용서받고 싶어 했다라···.’
“왜요?”
“잘은 모르겠는데, 잘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무슨 잘못인지는 말씀하시던가요.”
“아니요.”
생각보다 많은 답을 얻지는 못했다.
꼬치꼬치 물어보면 정보를 좀 더 얻을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살한 남편 장례를 이제 막 치르고 온 미망인이었다.
그나마 하나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윤호성 부장도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점이었다.
“남편이 퇴사한 이유도 그때 저희집에 악재가 좀 많이 겹쳤어요. 제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시댁에서 하는 사업에도 문제가 생겼었고. 돈이 필요했어요.”
돈이란 참···.
그 상황에 있어봐서 알지만, 때에 따라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띵동-
집을 나오기 전, 윤 부장의 막내아들과 마주쳤다.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덩치가 좋았는데, 한눈에 봐도 장애가 있는 게 보였다.
“엄마아아아-”
이모랑 같이 어디를 다녀오는 아이는 내 존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곱 살 아이처럼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중호야, 손님 와 계시잖아. 잠시만. 잠시마안-. 죄송해요. 애가 좀···아직 어려서.”
“아닙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기.”
“네.”
“여기가 제가 아는 복지재단인데,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하시다면요.”
민호는 Tree Limited를 설립하면서 같이 세운 재단의 명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자신과 관계되어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그렇게 풍족해 보이는 집은 아니었다.
윤호성 부장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사모의 말이 그를 씁쓸하게 했다.
‘그날 전화를 받을걸.’
그랬다면 혹시라도 윤 부장이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조금 더 일찍 연락을 주었더라면 어쩌면 오해를 풀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아끼는 가족이 아픈 게 얼마나 힘든 거라는 걸 잘 아는 그였기에 나오기 전 마주친 아들의 얼굴이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징징- 징징-
“응, 승호야.”
-형, 난데, 오후에 박 사장님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형이 좀 대신 가주면 안 될까?
“맛나유통 박 사장님? 돼. 왜? 무슨 일 있어?”
-나은이가 어젯밤부터 열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아무래도 내가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은이가 왜? 많이 아파.”
-아침에 검사했고 결과 나와야 봐야 알겠지만, 일단 의사 선생님 말씀은 그렇게 걱정하지는 말라고 하셨어. 그래도 일이 손에 안 잡히네.
“가 봐, 가 봐. 당연히 가야지. 박 사장님은 내가 전화해서 만나볼게.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주고.”
-응.
“나도 박 사장님도 만나고 바로 병원으로 갈게.”
-그러지 마. 결과 나오면 내가 전화할게.
“알았어. 나도 이따가 전화할게.”
-고마워, 형.
“고맙긴. 얼른 가봐.”
-응.
딸깍.
가슴이 답답하다.
통화를 끊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어보지만,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그런 거였다.
보이지 않는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윤 부장님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윤호성 부장 집에 나온 민호는 곧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잠시 머물렀다.
---*---
맛나유통 박 사장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몸이 피곤했다.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나은이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 전 샤워라도 하고 가려고 들어왔다가, 나무를 확인하러 지하에 들렀다.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며칠간 정신이 없어 정리를 미뤄두었더니 그사이 바닥에 지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릿속 생각도 덜 겸 당장 정리하고 싶었지만, 갈 곳이 있었다.
바로 그때, 마음이 통했는지, 동생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까톡
[형, 나은이 감기래. 병원에 안 와도 돼. 하루종일 피곤했을 텐데 쉬어.]
잠시 고민한 민호는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피곤했다.
기분 좋은 일을 할 때는 힘들어도 의지가 생기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기운이 빠졌다.
죽음이란 그런 거였다.
설사 그게 원망하던 상사의 죽음이었다고 한들.
*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뜬 민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AM 01:21」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것이 그사이 다섯 시간이 지나버렸다.
덕분에 피곤함이 사라졌다.
병원에 가기에는 늦어버린 시각.
민호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돈 쓸어 담기가 최고다.
쓰윽 쓰윽 쓱-
착착착
촤라라라라락- 촤라라라라락-
힙합 음악이 울리고 있는 지하공간에서 민호는 청소(?)를 시작했다.
「AM 03:48」
두 시간 남짓 청소를 마친 민호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눈앞에 길게 늘어선 나무들.
그렇게 쓸고 담았는데 나무에는 새잎들이 자라고 있다.
그 잎들을 멍하니 바라고 있자니, 윤호성 부장이 다시 떠올랐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한들 안 좋게 헤어진 상사의 죽음에 집착하고 그럴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막내아들이 마음에 걸린다.
‘나라면 저런 아들을 아내에게 남겨두고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힘들었을까?
뭐가? 죄책감이?
죄책감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두고 죽는다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유가족을 만나고 와서 더 그런 거겠지?
오늘 밤이 지나면 더 생각나지 않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민호는 생각을 더 깊게 해본다.
죽은 사람의 마음을 추측해보려.
그러다 문득 아까 오전에 사모가 보여주었던 휴대폰 통화목록이 떠오른다.
「이게 그 사람 전화기였어요. ···여기 보면, 그렇게···가기 전에 이 대리님에게 전화한 기록이 나와요.」
‘윤호성 부장은 분명 죽기 전 나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지금 떠오른 번호는 그 아랫것이다.
‘번호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민호는 자신의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 있는 번호들을 확인했다.
‘있다!’
같은 번호가.
민호의 핸드폰에도.
「010-XXXX-1414
최진태 부장」
한림사료 인사팀 최 부장의 전화번호.
동시에 오중석 과장과 차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실 이 대리한테는 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뭐 이렇게 잘 됐으니까 상관없겠지. 안 그래도 자살하신 분 부고 띄우고 직원들에게 가라고 하는 게 이상해서 나도 좀 물어봤는데, 조만간 복귀하실 예정이었대.”
“복귀요?”
“응. 인사팀 박 과장이 그러더라고 최진태 부장이 그렇게 말했었다고.”
“아는지 모르겠지만, 윤 부장님 퇴사하고, 이 대리 나가고, 본사 감사팀이 와서 몇 가지 조사하고 돌아갔어.”
“그거 그냥 형식적으로 하고 돌아간 거 아니었던가요?”
“돌아갔지. 그런데 그때 그 일이 본사에서 지시한 일지도 모르겠다는 소문이 돌았어.”
“본사에서 지시한 일이라고요?”
“응. 회장님 둘째 자제분이 사장으로 오면서 그런 소문이 아주 잠깐 돌았었어.”
“왜요? 본사에서 그런 일을 왜 지시하죠?”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박 과장 말로는 무슨 경영 승계하면서 비자금을 만들려고 짜고 쳤다는 말이 본사에 돌았대. 그 외국 사료 회사 있잖아, 이 대리가 작성한 그 이메일을 보낸 거기. 거기가 신생 회사였는데, 명의는 외국인인데 실 오너가 현 사장인 둘째 한재림이라는 말이 있어. 결국 합의금 조로 회사에서 나간 돈이 한재림 주머니로 들어갔고, 그 일로 한림사료 주가가 많이 내려갔는데, 한재림이 그때 지분을 왕창 샀거든. 그러니까 뭐···증거는 없지만, 사람들이 의심을 하는 거지. 사실이 아니더라도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꼴이니까.”」
이민호는 휴대폰 검색창에 ‘세한그룹 경영 승계’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그다음에 ‘한림사료’를 처 본다.
‘한재림’, ‘한재상’, ‘한경제’, ‘주가 조작’···
검색을 마치고 위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해가 뜬 다음이었다.
---*---
강남 어딘 가에 있는 고급 단란주점.
최진태는 한경제 부사장이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았다.
“사람 인생이 참 새옹지마야.”
끝까지 가득 따라준 술을 단숨에 목 안으로 털어 넣은 그는 티슈로 잔을 깨끗하게 닦은 뒤 부사장에게 권했다.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장애아도 있다며?”
“네.”
“거참-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윤 부장이 원래 좀 마음이 약했습니다.”
최진태가 술을 따르는 사이, 옆자리 노경선 이사가 대답했다.
“그래, 뭐, 그래도 간 사람 이야기를 우리가 나쁘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네, 그렇죠. 김 변호사 말이 검찰 조사도 마무리될 것 같답니다.”
노경선의 말에 한경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표정이다.
어느새 가득 찬 잔.
한경제도 단 숨이 마신다. 그리고는 다시 잔을 최진태에게 넘긴 뒤 술병을 집어 들었다.
“최 부장.”
“네, 부사장님.”
“최 부장이 입사한 지 몇 년 됐지?”
“22년 됐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네.”
“최 부장.”
최진태는 45도쯤 숙였던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 맞은편 한 부사장을 봤다.
“내년에는 이사 달아야지 않겠어?”
“부사장님께서 밀어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네! 부사장님!”
“최 부장.”
“네, 부사장님.”
“윤 부장 일은 마무리 잘 된 거지? 뒤탈 없겠지?”
최진태는 순간 뜨끔했다.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였다.
“없습니다.”
“그렇지, 경력이 몇 년인데 잘했겠지. 마셔.”
최진태는 두 번째 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40도 가까운 술이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 최진태는 윤호성과 만난 일들을 떠올렸다.
‘설마 녹음 같은 걸 하지는 않았겠지?’
설사 그랬다고 해도 지금 와서 최진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 이제 그럼 편하게 마셔볼까?”
“마담 부를까요?”
같은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축배를 들릴 일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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