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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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
-일주일 동안 줄기 둘레가 약 0.3 cm 정도 굵어짐.
-4, 5, 12, 15번 가지에서 곁가지가 생성 중.
-섭씨 29.3도에서도 지폣잎은 같은 속도로 생산.
-1번, 2번 가지 한정, 잎이 나서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단축됨 (21시간 45분).
잎이 자라는 최상의 조건을 찾으려면 비교할 수 있는 실험군과 대조군이 있어야 하는데, 나무가 하나밖에 없어 그러한 비교는 할 수 없었다.
가지를 하나 꺾어 새로운 객체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봤지만, 제일 굵은 가지의 둘레가 아직 1.6 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맨 처음 측정했을 때, 줄기의 둘레가 약 2.2 cm였기에 그때까지는 기다릴 생각이다.
일단 다른 조건들을 그대로 둔 채, 온도만 변경하며 실험 중이었다.
조만간 여름이 다가왔다.
비상으로 에어컨을 두 대나 설치해두었으나, 혹시라도 정전이 발생하거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경우를 대비하여 온도 변화에 대한 저항력을 테스트해봤다.
이동식 히터를 이용해 48시간 동안 반지하 방 실내 온도를 섭씨 29.3까지 올려보았다.
혹시라도 직사열이 나무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해서 라디에이터 방식의 복사열 히터를 사용했다.
섭씨 17도를 기준으로 23도까지는 1도씩 과감하게(?) 올리며 실험했으나, 23도가 넘어가면서 체감적으로 덥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해 그때부터는 0.2도씩 그리고 27도부터는 0.1도씩 변경했다.
다행히도 나무는 고온에서도 지폣잎 생산이나 성장에 문제없는 듯했다.
사실상, 더 잘 자랐다고 볼 수도 있는데, 다만 그게 원래 나무가 성장하는 속도인 건지, 아니면 온도를 바꾸어 줘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비교군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여하튼 비교군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온도, 습도, 조도 등의 변화에 대한 나무의 내성을 실험하는 정도가 고작일 듯싶었다.
그렇다고 과감한 짓을 할 의도는 전혀 없다.
거위가 어떻게 황금알을 낳는지 궁금해서 배를 째보는 우매한 행동 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온도 내성 테스트도 섭씨 31, 2도쯤에서 그만둘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한여름 온도가 폭염 시에는 섭씨 37, 8도까지도 올라가지만, 설사 에어컨을 작동할 수 없어도 반지하 방의 온도가 거기까지 올라갈 이유도 없고.
그런 극한에 상황에서는 대야에 얼음을 넣어서라도 온도를 31, 32도쯤으로 내릴 수 있다는 판단이.
하지만 당장 직면한 문제는 온도나 습도 등이 아니었다.
“흠···.”
줄자로 나무의 높이를 잰 민호의 입에서 나지막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55cm···.’
한발 작 뒤로 물러서 나무의 형태를 지켜본 민호는 조심스럽게 화분 한쪽을 건드려본다.
기우뚱-
살짝 힘주어 눌렀을 뿐인데 나무가 흔들린다.
뿌리를 담고 있는 화분이 나무줄기와 가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겨우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분갈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건 이사와는 레벨이 다른 문제였다.
---*---
화분을 갈려면 화분과 흙이 필요했다.
화분은 구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흙은···.
조심스러웠다.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초보자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아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보통 흙 같은데요.”
동네 꽃가게에서는 내가 보여주는 흙에 별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예 화훼단지를 찾아갔다.
“뭘 찾으러 왔다고요? 꽃? 나무?”
“얼마나 사실 건데요? 저희는 소매는 취급 안 해요.”
오히려 더 불친절하기만 했고, 그나마 관심을 주는 분들마저도,
“흙 필요하세요? 우리 집에 배양토, 마사토, 하이드로볼 다 있어요. 뭐 키우시려고?”
“그걸로는 그게 무슨 흙이 알기 어려울 것 같은데···.”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딱히 그들을 욕할 수도 없는 게, 화분이 작다 보니 내가 가지고 간 샘플이라고 해봤자, 소주잔 크기에 담긴 흙이 전부였다.
“나무인데요. 크기는 한 50~60cm 되고요. 가지는 한 스무 개에서 스물다섯 개 정도 난 상태고. 현재 손바닥만 한 화분에서 자라고 있고요.”
“분갈이해 줘야겠네.”
“품종이 뭔 데요.”
친절히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도 꼭 여기서 걸렸다.
품종이 뭔지도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말할 수 있겠는가.
광합성도 하지 않고 물도 먹지 않는 돈을 떨구는 나무를.
“잘 모르겠어요.”
“허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사진도 없어요?”
“네.”
“그럼 그냥 저거 가지고 가세요.”
“저게 뭔데요? 배양토라고 웬만한 거는 저기서 다 잘 자라요.”
아까 어떤 분도 같은 거를 추천해주셨다.
아마도 집에서 키우는 일반 식물용 흙인 듯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나무는 일반 식물이 아니었기에,
“인터넷 보니까 pH 같은 것도 있고, 진흙이랑 모래 비율, 질소 함량 등 체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던데, 그런 걸 체크해서 확인해볼 수는 없나요?”
좀 더 귀찮게 굴었다. 그러자, 친절했던 아주머니도 인상을 찌푸리신다.
“그런 거는 국과수에 가서 물어봐야지, 우리한테 오면 어떡하나.”
“죄송합니다.”
“산도는 측정해드릴 수 있는데, 해드려? 근데 그 가져온 흙양이 작아서 잴 수 있겠나?”
말씀은 좀 투박하게 하셔도 괜찮은 분이셨다. 내가 궁금해하는 걸 알아봐 주시려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 봐주셨다.
다만, 아주머니의 노력에도 그게 무슨 흙인지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잘못은 없었다.
사실 내가 뭘 기대하고 간 거지도 잘 몰랐다.
그렇게 들고 가면 누군가가 마치 <신의 물방울>의 칸자키 시즈쿠처럼 흙의 색깔과 질감, 맛 등을 체크하고서는,
「이건! 경남 하동군 청암에 있는 지리산 청학동 텃밭의 흙이야!」
떼루아를 맞춰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을지도.
성가신 질문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신 것이 고마워 비싼 화분 몇 개를 골랐다. 지하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하고 나오려는 순간, 칸자키 유타카처럼 생기신 할아버님이 가게 뒤편에서 나오셨다.
“아빠.”
“왜?”
“이 총각이 이 흙이 어디 거냐고 자꾸 묻는데 아빠는 혹시 아시겠어요?”
“흙?”
“네.”
하얀 수염이 하관 전체를 덥수룩하게 덮고 있는 할아버님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가 흙이 담긴 통을 조심스럽게 건네니,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는 자기 손위에 흙을 쏟아부었다.
“헉!”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흙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할아버지는 내 신음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간 손가락으로 흙을 파헤치며 만지던 할아버지는
“괭이밥이나 잘 자랄 흙이네.”
라고 말하고는 손바닥 위의 흙을 바닥에 홱 버린 뒤 가게 뒤편으로 사라지셨다.
‘아---.’
소중한 금가루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괭이밥이나 잘 자랄 흙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냥 흙이라는 뜻이에요. 뭘 섞은 게 아니라 그냥 산이나 들판에 있는 흙. 어떻게 배양토 한 포대 드릴까?”
“아······. 근데 괭이밥이 뭔가요?”
“괭이밥? 클로버.”
클로버!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서둘러 계산하고 나와 곧바로 한강으로 향했다.
예전 여자친구랑 놀러 갔다 발견한 클로버밭이 있는 양화대교 아래로.
---*---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각, 나는 장갑과 모종삽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미 한강에서 퍼온 흙과 화훼단지에서 사 온 화분 등은 준비되어 있었다.
나무가 얼마나 더 자랄지 몰라 제법 큰 화분으로 준비했다. 너무 커도 좋지 않다고 하는 유튜버도 있던데, 일단은 내가 들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큰 걸로 구매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돌려본 분갈이 영상을 옆에 틀어놓고, 작업에 들어갔다.
‘화분 밑에 배수층 만들어야 한다’, ‘배수망을 깔아야 한다’ 등의 조언이 있었지만, 고민 끝에 그건 무시하기로 했다.
배양토를 깔면 더 잘 자란다는 설명도 무시했다.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일단은 객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중에 실험체가 생기면 그때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지금은 클로버가 자라는 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해 볼 생각이다.
즉,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강 둔치에서 퍼온 흙을 새 화분에 담고 나무를 옮겨 심을 예정이다.
새 화분 준비가 끝나고,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무줄기의 제일 튼튼한 밑동을 잡은 채 헌화분의 가장자리를 모종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느낌이 단단했다.
뿌리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마치 유적을 파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얼마나 걸렸을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나무뿌리로부터 헌 플라스틱 화분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 있었다.
“휴우—.”
내 예상이 맞았다.
플라스틱 화분 안에는 배수층 역할을 하는 돌멩이나 스티로폼 등은 없었다.
흙을 움켜쥐듯 꽉 잡고 있는 돈나무의 뿌리.
분명 집을 갈아줄 때가 된 것이었다.
그대로 한강 흙이 담겨있는 새 화분에 옮겨 심고는 그 위로 흙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여섯 시간 동안 공들여 찾은 네잎클로버들을 뿌려준다.
‘어떤 효과가 있을까?’
모른다. 그게 네잎클로버 할머니가 처음 내게 줬을 때 방식이기에 그저 좋은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분갈이 끝내고 도구들을 정리한 다음 환경을 ‘사 분의 삼’ 지하방에 처음 왔을 때 환경과 똑같게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비슷하게) 세팅했다.
“제발 잘 적응해야 할 텐데···.”
그러고는 방을 나왔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밤새 곁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고 다시 헌화분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에 있는 CCTV를 켜놓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씻고 이부자리에 들어가기 전, 모니터를 확인한다.
괜찮아 보인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눈이 자꾸 감긴다.
한 번만 더 보고 자려는데 그럴 수가 없다.
계속 감긴다.
그러다 그렇게 잠이 들은 모양이다.
*
타다다닥.
삐리릭- 철컹.
눈을 뜨기가 무섭게 민호는 지하로 내려갔다.
“오···마이···갓.”
하룻밤 사이 나무가···
엄청나게 자라버렸다!
---*---
성하 F&B, 신사업본부.
“본부장님, 본부장님께서 주시해서 보라고 하셨던 이수여대역 코너 상가 올 7월 말에 계약 완료되면 재계약 안 하고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그럼 건물주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들어간다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랫동안 눈여겨본 자리가 나왔다.
성하 F&B 신사업본부장이자 창업주 딸 음채영은 새로 시작하는 떡볶이 체인 사업의 두 번째 직영점으로 그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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