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평화를 위한 칼 8
처음이라 두려운 맘이 더크고, 부족한 부분이 크게 와닿습니다. 7부까지 기획된 '칼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시놉시스가 완성되어 있었지만 글로 옮긴것은 처음입니다. 무협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또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반대로 그만큼의 새로움을 갖고 탄생한 작품입니다. 모쪼록 많은 응원과 애정어린 질타를 함께 부탁드립니다.
탁준경과 홍진을 마중 나온 이들은 생여진족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하는 완안부의 사람들 이었다.
완안부 사람들은 덩치도 컸지만 날렵해 보였고 강인해 보였다. 하지만 적으로 만나면 굉장히 두려울 것 같았지만..
그런 그들과 함께 말을 타고 따라가며 크게 웃고 떠드는 탁준경과 여진족은 과거에 분명 목숨을 걸고 싸웠을 터인데 어찌 이리 반갑게 맞이하는 것인지 알길 이 없었다.
‘아니 잠깐, 그전에 왜 여진족이 고려 말을 하는 것이지?’
어린 홍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따라가며 커다랗고 웅장한 성문을 지나자, 수많은 크고 높은 궁이 나왔고 길을 들어가 볼수록 마치 신세계인 듯 기이한 것들이 즐비했다.
홍진이 신기한 듯 나귀를 타고 두리번거리자 빡빡머리 아이가 궁금한 듯 완안부의 사람이 물었다.
“탁 장군. 여기 어린아이는 누구요? 시종?”
“하하하! 아니오. 내 둘째 아들이오!”
“엥? 하나도 안 닮았는데? 짝눈에 대머리에.. 잘 보니 이놈 코쟁이네?”
홍진은 자신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을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이나, 고려인과 생김새가 다른 여진족이 고려 말을 하여 이해가 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쪽도 고려 말 쓰는데 뭐가 대수라고.”
“하~ 요놈 봐라? 이놈아! 지금은 우리가 서로 같은 나라에서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뿌리인 발해라는 나라에서 함께 싸우고 지내던 사이인데 어찌 고려 말을 모를까?”
“발해가 뭔데요?”
“...”
생김새로 지적 질을 하자, 뿔이 난 홍진도 맞대응을 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 기가 차 했지만 어느새 궁성 안 가장 높은 자의 공간에 도착했다.
궁성 안에는 모두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은빛의 화려한 갑옷을 차려입고 한쪽 무릎을 꿇은 철기병들이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홍진은 겁이 날 정도였으니깐.
탁준경 장군과 함께 왔던 와난부 사람들이 포권을 취하며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자 홍진도 뒤따라 눈치껏 인사를 했다.
“고려의 무장. 위위시 소경(衛尉寺 少卿) 탁 준경. 각하를 다시 알현하여 영광이옵니다! 그동안 강녕 하시었사옵니까?”
“... 오랜만이오. 탁 장군. 평안은 하지 못하고 형님이신 오아속(烏雅束)을 대신해 나 아골타(阿骨打)가 연맹장이 되었소.”
고개를 숙였던 탁준경은 깜짝 놀라하며 고개를 들어 연맹장을 바라보니 그가 알고 있던 얼굴이 아니었다.
“아골타 각하!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됐고 앉으시오. 이 먼 길을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하군.”
당황해 하는 탁준경을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앉으라 이야기 했다.
홍진은 살짝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는 구멍이 난 둥근 모자를 쓰고 덩치가 매우 컸으며 수염도 멋지게 나있었지만, 그 말끔한 외모와는 다르게 눈에서 풍기는 기운은 사람들을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탁준경은 다시 포권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송구하옵니다. 먼저 각하께 바치는 선물과 이번에 교류할 품목을 가져왔습니다.”
탁준경은 가져온 짐을 내밀자 중간에 있던 병사가 받아 아골타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뭐 이건 연례 있는 일이고.. 다른 사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괜찮으시다면...잠시 주위를 물려주십시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아골타는 눈짓을 주자, 함께 온 완안부 사람들은 홍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기에 저러시지?”
아골타는 몇몇의 호위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꺼냈다.
“주위를 모두 물렸으니 장군은 이야기를 해보시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희 고려의 소식에 의하면 여진연맹에서 요나라를 공습할 것이라는 첩지(諜知:정보가적힌쪽지)를 얻었사옵니다.”
“첩지라.. 역시 고려는 정보가 꽤 빠른 것 같소.”
“혹시 이정보가 사실이온지. 사실이라면 저희 고려가 어찌해야 할지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 직접 각하를 찾아뵈었습니다.”
“...”
아골타는 잠시 턱을 괴며 탁준경을 바라보았다. 동북9성 전쟁 때 사묘아리에 버금가는 최강의 전사 탁준경. 그가 혼자 이곳에 찾아올 정도면 고려에서도 확답을 가져왔을 거라 추측하였다.
“고려와 화친을 한지 얼마나 되었지?”
“4년이 되었습니다. 폐하.”
아골타의 질문에 옆에 서 있던 책사가 대답을 하였다.
“전사답게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맞소! 우리는 요나라를 공격할 것이오!”
“각하! 다시 이곳에 전란을 부르실 계획이시옵니까?”
“탁 장군, 우리는 예전에 형님이 지향했던 여진동맹이 아니오. 그러니 고려군은 요나라와의 전쟁에 참여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고려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겠소!”
“동맹부족들이 모두 승낙한 사안이시옵니까?!”
“...”
아골타의 이야기를 듣자 탁준경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홍진은 어린마음에 혼자 나오게 되니 괜히 불안한 마음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등 뒤에 자아도가 있었기에 크게 겁내 하지는 않았다.
“배고플 터이니 어디 앉아 쉬어라.”
“여기가 여진족의 왕이 계신 궁인건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네?”
“이곳은 원래 발해왕국의 옛 황궁이었고, 지금은 우리 여진족이 쓰고 있는 것이지. 그렇기에 고려 말을 사용하는 것이고.”
“발해의 황궁?”
“왜 여진족이라 하여 뿔 달리고 팔이 넷 달린 괴물이라고 생각했느냐?”
"아.. 아뇨!"
속을 들킨 듯 했다. 하지만 홍진은 내색하지 않고 딴척을 하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신기해하며 뛰어 다녔다.
“저쪽에 앉아 있거라. 마침 씨름을 하고 있으니 가서 구경하고 있으면 먹을 것을 가져다주마.”
그가 가리키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씨름을 하는 곳이 보였다.
홍진도 아이들과 몇 번 해보았는데 항상 씨름은 덩치가 컸던 아이들의 대장이 이겼기에 관심이 크게 가지는 않았었지만, 오늘 막상 다른사람들의 씨름을 구경하니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자~ 이걸 먹어라.”
이곳으로 안내했던 완안부 사람이 내민 것은 고기였다. 그것도 내장을 삶아 누린내가 풍기는 염소고기.
“흐에엑.”
음식을 받기는 받았지만 한 번도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그것도 어디 부위인지도 모를 고기를 받아,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홍진에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 코쟁이가 우리의 음식을 무시하는 것이냐?”
“...?”
이목이 집중되자 홍진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가 사람들의 틈을 만들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냥 코쟁이도 아니고 짝눈에 대머리네? 너 고려인 맞냐?”
“뭐라고? 이 야만인 같이 생긴 게?”
“야만인? 그래서 우리가 내어준 귀한 음식에 손도 안대고 있었구나?”
“그..그게 아니야!”
두 아이가 가까이 붙자 사람들은 재미있는 구경이 난 듯 둘러싸였고, 홍진은 더욱 당황스러워 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안 먹고 인상을 찌푸리는데. 너희 고려인은 얼마나 좋은 것을 먹는다고 잘 난체냐? 아, 고려인은 맞는 거지?”
“하하하하~”
주변사람들이 그 아이의 말에 다함께 웃자 홍진은 모욕감을 느끼며 화를 냈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 것은 지금까지 육식을 해본 적이 없는 행자였기 때문이고, 너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왜 나를 무시하는 것이야?”
“행자? 오호라~ 땡중이었어서 머리가 대머리였구나?”
“땡중?”
홍진은 자신을 욕하는 것 뿐만 아니라 큰스님과 현을 욕하는 것 같아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아이의 멱살을 잡았다.
“뭐라고 했어? 이 여진놈아!”
“이 녀석이 감히 어딜 잡아? 내가 누군줄 알고?”
“네가 누군데? 너도 혼 좀 나봐야겠구나?”
서로 멱살을 잡고 노려보며 한판 붙을 기세가 보이자 주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싸움을 부추기었다. 그 아이는 홍진을 잡은 채로 소리쳤다.
“나 사묘아리의 아들 길리지! 네놈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네놈의 이름을 대라!”
갑작스러운 대결신청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홍진은 어린 호승심에 지기 싫었다.
“난 홍영의 아들 홍진이다!”
멱살을 풀고 주먹을 겨누며 서로를 마주했다.
“오호라~! 네가 탁준경과 함께 온 놈이구나?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탁준경과 함께 왔으니 잘됐다. 덤벼라!”
“네까짓건 한주먹거리도 안되니 먼저 덤비시지!”
두 사람이 당장이라도 죽일 듯 노려보며 마주하자, 자아도는 홍진에게 전음을 전했다.
‘홍진. 도와줄까?’
‘아니 됐어. 이정도 녀석도 못 이기면 어디 가서 사내구실도 못할 거야.’
잔뜩 화가 난 홍진은 자아도의 도움을 거절하고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그만!”
“그만!”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탁준경과 사묘아리였다.
1.첩지(諜知) :적의 형편을 염탐하여 알아냄.
2.단도직입(單刀直入) :혼자서 칼을 휘두르고 거침없이 적진(敵陣)으로 쳐들어간다는 뜻.
참고자료: 여진 철기병의 모습 입니다.
중국 하얼빈(哈尔滨 哈爾濱 합이빈, 흑룡강성) 근교의 아청(阿城 아성)시는 금나라 수도인 상경회령부(上京會寧府)가 있던 곳의 씨름
매일 한편씩 업로드 예정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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