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복수를 위한 칼 3
처음이라 두려운 맘이 더크고, 부족한 부분이 크게 와닿습니다. 7부까지 기획된 '칼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시놉시스가 완성되어 있었지만 글로 옮긴것은 처음입니다. 무협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또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반대로 그만큼의 새로움을 갖고 탄생한 작품입니다. 모쪼록 많은 응원과 애정어린 질타를 함께 부탁드립니다.
“크아앗!”
대장은 솥뚜껑만 한 호랑이의 눈을 바라보고는 놀라 소리를 크게 질렀다. 산군은 대장의 위치를 알고 가까이 다가 와서는 덮개가 열릴 것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대장의 비명소리에 벼락틀에 숨어있던 다른 사냥꾼들은 서둘러 준비했던 화살들을 산군을 향해 일제히 쏘아댔다. 하지만 화살들은 창귀들의 방해에 가로막혀 튕겨나가거나 멀리 빗맞기를 반복했다.
산군은 이빨로 덮개를 물어 멀리 던지고는 놀라 쓰러져 있는 대장과 다른 이들을 향해 포효를 하며 오른쪽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 크허엉”
하지만 다행히 호(戶)를 넉넉히 파 둔 덕분에 놀라 뒤로 나자빠져 앞발에는 걸리지 않았다. 창귀가 화살을 막고 있기에 움직일 수 있었던 대장 일행은 혹시 몰라 옆에 두었던 창(槍)을 집어 산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휘저으며 위협을 가했다.
“으아악~ 저리로 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내 함께 있던 사병의 지휘관들도 함께 창을 들어 산군에게 찔러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춤 뒷발로 일어난 산군은 앞발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창들이 일제히 목이 날아가듯 부러져 버렸다.
“이제 끝장이다..”
사냥꾼들의 대장과 십호장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부러진 창이나마 들고는 산군이 있는 쪽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산군의 포효(咆哮) 소리가 크게 들려 눈을 떠 보았다.
“크아아앙~”
불빛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벼락틀 쪽 사냥꾼들이 준비한 촉(鏃) 아래 기름 주머니에 연결된 심지에 재빨리 불을 붙여 쏘아댔던 것이었다.
아무리 창귀라 하더라도 불에는 어찌 못하고 비명을 질러대자 산군은 구덩이에 있는 인간들을 제쳐 두고 벼락틀에 있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산군이 반대 쪽으로 향한것을 확인하자 대장은 벼락틀 쪽의 사냥꾼들을 도우려 자신의 보따리를 뒤졌다. 기름 주머니가 달린 화살들을 찾아 부싯돌을 붓이려고 했지만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손이 떨려 쉽사리 불이 붙지 못했다.
대신 대장의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뜬 십호장들은 구덩이에서 기겁을 하며 뛰쳐나갔다.
“사.. 사람 살려!”
하지만 뒤쳐 나가든 여기에 있든 지금 산군을 죽이지 못하면 호랑이 밥이 되기는 매한 가지였다.
산군을 겨냥하여 쏘았던 불화살들은 바닥에 수 놓아지며 불길을 만들었지만 그보다 산군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그리고 기름으로 만든 작은 웅덩이에 불화살이 닿기 전 산군은 불에 닿는 웅덩이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그걸 보고 대장은 호를 뛰쳐나가며 떨어진 아직 꺼지지 않은 불화살을 들어 자신의 활로 가져가 시위를 당겼다.
불 웅덩이를 넘어서는 산군의 모습을 보고는 그제서야 산군의 털이 하얀색인 것을 알게 되고는 짐승이라 생각되지 않고 마치 요괴가 연상되었다.
“이 망할 요물! ”
대장의 활은 정확히 산군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마치 벽에 부딪히듯 부러져 튕겨 나갔다.
대장은 놀랐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 다시 산군에게 달려가며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잡히는 대로 쏘아 대며 벼락틀을 향해 달려가는 호군을 밀어 넣기 위해 연신 활시위를 당겼다.
******
“스승님 곧 상인일(上寅日)의 인시(寅時)가 다가옵니다. 화로에 불을 붙일까요”
후정은 올해가 인년(寅年), 인월(寅月)이며, 오늘이 첫 인일(寅日). 그것도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하다는 첫 번째 상인일(上寅日)을 기다리며 준비했다.
도공장은 사실 지난 인년에 만든 검은 황제에게 진상하였으나 황제가 권위가 떨어져 상장군(上將軍)에게 하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화로에 들어서지 않고 병이 들었다는 이유를 핑계를 대고 낙향했었다.
더군다나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마지막 칼의 제작이라 볼 수밖에 없었기에 후정은 눈에 작은 하나라도 담기 위해 혼신(魂神)을 다했다.
“ 그래라. 제강(製鋼)을 시작하자꾸나 ”
그제야 스승은 보자기에 감싼 검은 돌을 꺼내었다. 이 돌은 새카맣고 울퉁불퉁하였으며 괴상하게 생겼다.
아마 숙련된 다른 도공들도 이 돌을 보았다면 이 세상, 이 나라의 돌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공장은 이 돌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정진하며 기다려온 시간 끝에 드디어 오늘! 그 돌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후정이 준비하는 제강(製鋼) 작업은 달궈진 화로에서 불로 달근 철괴는 숯과 불순물이 끼어 있어 조직이 엉성한 상태인데 그때 큰메와 작은 메로 번갈아 두드리면 불순물이 빠져나가게 매질을 하면, 서로 강하게 결합하여 쇠의 질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달련 작업에는 위험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제강 작업도 사실 앞으로의 공정(工程)에 비하면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인시(寅時)까지는 몇 시간이 남았지만, 그전에 제강 작업을 마치고 접쇠까지 마무리를 지어야 인시에 맞혀서 담금질을 할 수가 있으니 미리 서둘러야 했던 것이었다.
사실 도공이 가지고 있는 돌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마 스승이 오랫동안 연구하였다는 것을 후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평생의 역작(力作)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칼을 만드는 후정의 생(生)에 가장 큰 교육일 것이 될 것이었다.
이윽고 화로에 불꽃 색이 황적색에서 백적색으로 바뀌었고 곧, 휘백색으로 바뀌면 칼의 제작이 시작이 된다.
휘백색으로 바뀌기 전, 도공장과 제자 후정은 하얀색으로 된 백포(白袍)를 꺼내 입고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간단한 제(祭)를 올렸다.
“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 정해주신 인년의 인월의 인일에 그리고 인시에 칼을 주조(鑄造) 하오니 신명(神命)이 잘 깃들어 세상과 어둠을 밝히고, 이 나라와 모든 백성들의 안녕(安寧)과 평화(平和)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
제를 올리면서 연신 절을 하는 도공장의 가슴 한편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자신의 일생(一生)에 두 번 다시없는 최강이자 최고의 칼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의 절을 마친 도공장과 제자 후정은 화로가 있는 작업장으로 들어서며 문 위에 달려있는 볏짚에 숯을 꽂아 놓은 곳을 바라보며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리고는 화로로 들어섰다.
******
산군은 마치 동굴 모양을 한 구덩이에서 불을 쏴 대는 인간들을 먼저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불화살 자체로는 자신의 털에 작은 불씨 하나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일족(一族)의 주검에서 맡았던 황(黃)의 냄새와 사뭇 비슷하였기에 가만히 놔둘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산군은 작은 웅덩이에 기름냄새를 맡고는 위험하다 직시(直視) 하여 크게 포효하며 높게 뛰었을 때 그들이 숨어있는 벼락틀 위에 무수한 바위들이 보였다.
‘덫이구나.’
아마 일반적인 호랑이었다면 필시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산군은 신령(神靈)을 받았던 신수(神獸).
벼락틀 바로 앞에 착지하며 더욱 크게 포효하자 잠시 화살을 쏘던 사냥꾼들도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
“일개 호랑이가 사자후(獅子吼)라니..”
대장은 귀를 막으며 생각했다. 평생 사냥을 하며 여러 산짐승과 맹수들을 잡아보았고, 특히 어릴 적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 불곰까지 잡으며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그것은 불곰 자체가 가진 힘과 난폭성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는 따라갈 수 없는 의외성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한낮 생명과 생명의 대결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일개 짐승에게서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사자후라니..
사자후(獅子吼)는 부처님의 위엄(威嚴) 있는 설법에 모든 악마들이 굴복(屈服) 하여 귀의(歸依:믿고따른다.) 하는 소리를 일컫는다.
하지만 난생처음 듣는 신수의 포효를 들은 평민(平民)은 온몸이 굳어 버리며 정신을 잃을 정도의 소리가 사자후라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벼락틀 앞에 선 채 포효하던 산군은 다시 앞발을 들어 벼락틀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을 한 번에 부러트리자 남은 기둥도 부러지며 벼락틀의 위에 있던 무거운 바위들이 사냥꾼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어? 아앗! 크 아앗~”
그리고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일곱 남짓 있던 남은 사냥꾼들이 바위에 깔려 짓이겨지고 말았다.
“아... 이 짐승은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대장은 멈춰 서서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려앉은 벼락틀 위에 쌓여있던 눈 덕분에 하얀 안개처럼 사방의 모습이 구분이 되지 않을 때 대장은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하얀 눈안갯속에서 달보다 더 밝은, 커다란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산군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벼락틀이 등지고 있던 절벽 위에서 시끄럽고 날카로운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불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 한 것이었다.
“와 와 와~~~!!!!!”
산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구덩이의 인간들은 모두 죽었고, 뒤에 서있는 한 놈쯤은 나중에 죽여도 되리라 생각하고 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산군이 떠난 직후, 절벽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대장! 대장! 살아있소? ”
처음 몰이꾼 역할을 하러 갔던 일부 사냥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가 대장을 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대장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그것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대답도 못한채 서있는게 고작 이었다.
******
현은 정신없이 뛰어가다 보니 갑주를 입은 사병들의 사체들로 가득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하얗게 되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또 늦었구나..”
현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은 자가 있소?”
“?!”
현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돌렸다.
“이거 큰일 났구먼 벌써 여기도 끝장이 났네!. 아니 댁은 뉘시오? 우리 쪽 사냥꾼은 아닌 듯한데? ”
“혹시 범을 잡으러 오신 분들입니까?”
모습을 보인 건 십수 명쯤 되어 보이는 일행들이었다. 그들은 자리에 위치하고 효시(嚆矢)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산군을 모는 소리가 없어 기다림에 지쳐 돌아다니다가 무언가에게 당한 흔적들을 보고 이곳까지 오게 된 남은 2개 조의 잔군들이었다.
“그렇소만 보시다시피 이미 모두 산군에게 당하고 우리만 몇 명만 남았소. 아니 산군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반항도 못해보고 다들 머리가 날린 채 죽어있는 건지..”
남은 잔존 사냥꾼은 이미 전의를 잃은 몇몇의 사병들과 함께 다시 돌아가는 중에 현을 만난 것이었다.
“그놈은 악귀(惡鬼)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머리만 씹어먹는 악귀라 평범한 방식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놈입니다.”
분노에 가득 찬 현의 말을 듣고 아직 산군을 보지 못한 남은 잔병들은 조금은 의아해하며 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곳 범바위골 사냥꾼이셨소?”
“네.. 혼자만 남았지만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오. 얼른 본거지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 함께 갑시다.”
이 말을 듣고 현은 작은 희망이 남아 있음에 기쁘면서도, 죽어있는 장졸들과 사냥꾼의 주검을 보니 다시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타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
그리고 그렇게 본거지에 도착했을 즈음 산군의 사자후 소리와 벼락틀이 부서지는 소리에 일단 쇠소리와 불화살을 꺼내어 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 대장! 대장! 정신 차리쇼! 대장! ”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일단 이분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
사람들은 대장을 부축하여 자리를 뜨려고 할 때 호에서 도망친 십호장 몇몇이 불화살에 빛이 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도 넋이 나간 채 휘청거리며 필사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살려 주시오..”
“나도 데려가시오 제발..”
처참하게 죽은 사병들과 벼락틀에 깔린 사냥꾼들의 주검도 수습하지 못한 채 그들은 깊은 패배감을 앉고 밝게 떠 있는 달을 등지고 추운 강풍에 맞서 필사적으로 마을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산군은 이 모습을 멀찍이 산의 정상에서 검게 이글거리는 창귀를 두른 채 그들을 바라보고 바로 정상에서 그들에게 바로 뛰어나갈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 산군.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십니까?’
******
그리고 같은 시각, 운명의 장난인지 도공장의 화로에는 위 백색의 불꽃이 돌며 제강 작업의 시작을 알리며 수차례의 망치질 소리와 함께 그의 필생(畢生)의 역작(力作)이 태어나고 있었다.
1.효시(嚆矢) :날아가면서 소리가 나는 화살이어서 명적(鳴鏑)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싸울 때 적을 두렵게 하거나, 지휘관이 공격신호 또는 공격할 곳을 지시할 때 사용되었다. 또 넓은 들에서 사냥을 할 때에 서로 신호를 하거나, 숨어있는 짐승들에게 겁을 주어 도망하게 하고서 사냥하는 데에도 쓰였을 것이다.
2.접쇠 :제철 과정에서 탄소와 불순물 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법. 가열한 쇳덩이를 단조로 편 다음, 접어서 다시 두들기기를 반복한다.
매일 한편씩 업로드 예정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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