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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걱정꾸러기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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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난정(蘭亭)
작품등록일 :
2015.09.08 04:05
최근연재일 :
2015.11.08 16:3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7,103
추천수 :
214
글자수 :
64,591

작성
15.10.05 15:05
조회
323
추천
5
글자
8쪽

11. 별똥별 이야기

DUMMY

앞에 얘기한대로 외할머니는 아무도 못 말리는 화가이신데요. 요즘은 나무 등걸을 눕혀놓고 장승을 조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십니다. 아마도 마당가를 장승으로 빼곡 채우기라도 할 모양입니다.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퉁퉁한 나무, 가느다란 나무, 그 어떤 모양의 나무든 간에, 할머니는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땅에다 뿌리를 박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니면 시름시름 죽어간 나무들은 그래서 색다른 삶을 경험합니다. 금별이의 할머니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죠. 지하 여장군이 되는 나무도 있고, 천하 대장군이 되는 나무도 있습니다. 가끔씩 나무 꼭대기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의 솟대가 되기도 합니다.

어릴 땐 줄곧 외할머니와 지내던 금별이는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이따금씩만 외할머니를 만나는데요. 장승이 숲처럼 서 있는 외갓집에, 금별이는 마치 소풍가듯 가곤 했습니다. 그럴 땐 엄마가 으레 김밥을 말아가지고 외삼촌 편에 금별이를 태워 보내곤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금별이를 꼭 끌어안으며 그러십니다.

“아이고, 우리 별똥별 왔냐?”

별똥별은 금별이의 별명이고 이 별명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말고는 잘 쓰지 않거든요 아무튼 금별이는 외할머니를 만났다 하면 똑 같은 질문을 합니다.

“할머니, 우리 아빤 누구예요? 나는 왜 아빠가 없어요?”

외할머니는 언제나 똑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아이고 욘석! 별똥별한테 아빠 있단 소린 한 번도 못 들어봤다.”

언제나, 외할머니가 엄마보다 더 좋지만 아리송하기는 외할머니가 엄마보다 더합니다.


외삼촌 금난새 씨가 두랑이를 내려놓았습니다.

“별똥별은 안 왔냐?”

“일부러 별이가 학교 간 틈에 데려 왔는데요 뭘.”

“그랬구나. 고 녀석은 두랑이하고 찰떡궁합이니까 뭐. 그래도 얘, 별똥별이 학교 갔다 오면 같이 오잖고.”

할머니는 손녀딸이 무척 보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시간 없는데 언제 기다려요? 근데 어머니, 두랑이가 누나 흉내를 내지 뭐예요?”

“뭬야?”

참나무 등걸 뚱뚱보 지하 여장군이 이빨을 한 개만 드러내고는 입이 찢어져라하고 웃습니다.

“하이고, 여인천하 신드롬이 아직도 안 끝나셨어요?”

“고이연지고··· 에미한테 심히 무엄하구나.”

할머니는 지하 여장군의 입술을 칠하던 손을 멈춥니다. 문득 지하 여장군의 입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경빈 방에 모란 열 폭 병풍, 그게 화면발을 너무 잘 받았다고 생각 안했니? 그건 아무래도 성공작이었어. 그냥 민화 풍으로 그린 게 아니라서 그런지, 드라마가 확 살지 않디?”

“어머니 그림이니까 애착이 가서 그렇겠죠 뭐.”

“아니야, 두고 보라고. 여인천하 후속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그 병풍이 쓰였지만 현대극에서도 어울리는 소품이니까.”

“아참, 야인시대··· 모란병풍은 거기 어떤 장면에 배치되었었죠?”

“기생방이지 뭘. 병풍이 궁중에서 사가로 내려갔는데, 게다가 빈에서 기생으로 좌천된 셈이었지. 그래도 그게 어디니? 그 모란 병풍이 참, 몇 백 년을 오락가락하는구나. 영원을 살아라, 살아.”

하늘을 한참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누구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두랑이가 세랑이 아이를 자기 아이로 착각한다구?”

두랑이가 온 마당을 쏘다니고 있습니다. 팔짝 팔짝 뛰어다닙니다. 비스듬히 세워놓은 미완성 장승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기도 합니다. 자지라지듯 짖어대기도 합니다. 그러다 머쓱해져서 금별이 외할머니, 아니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옵니다.

“참내, 병이 씻은 듯이 나았구먼.”

외삼촌은 두랑이 병이 나았다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처럼 투덜댑니다.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더니.”

금별이 외할머니가, 아니 두랑이 엄마가 웃습니다.

“어린 것을 안아보고 싶어서?”

“아마도, 세랑이가 낳은 쌍둥이 중에 한 놈은 자기가 낳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에요.”

“하기야, 사람도 일란성 쌍둥이가 각각 다른 배에서 나올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판이잖니? 그래, 네 누난 두랑이를 뭐라고 하면서 구박했대?”

“골 때리는 가짜라나 뭐라나···”

“아이고, 네 누나야말로 골 때리는 청춘이다. 안 그러냐?”

“하하, 그런 셈인가?”

“오죽하면 딸이 어미 짝을 찾겠다고 그럴까.”

금별이가 들었다면 또 아리송하다고 할 게 틀림없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저렇게 아리송한 말씀만 하십니다. 그러니까 대강 알아차리자면 이런 거네요. 금별이가 어쩌면 금보라 씨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금별이는 진짜 쌍둥이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쨌거나, 아빠는 참말로 처음부터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기야,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금별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니까요.


금보라 씨는 어느 날 새벽에 퍼뜩 꿈을 깼습니다.

두 개의 별똥별이 밤하늘에다 금빛 줄과 은빛 줄을 눈부시게 그으며 땅으로 떨어지는 꿈이었는데요. 두 개의 별똥별 중 하나가 바로 연못가 개나리나무 밑에 떨어졌답니다. 그리고 그 별똥별이 바로 금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쯤은 금별이 자신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외할머니는 금별이가 말을 알아듣기 훨씬 전에부터 그 이야기를 해주셨던 거죠. 그렇지만요. 금별이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요. 어딘가에 살고 있을 쌍둥이. 자기와 똑 같이 생긴 다른 별똥별이 이 세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엔 솔깃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 자체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별똥별한텐 아빠가 없다는 할머니의 주장 때문에 더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릴 땐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얼마나 울었던지 모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그 말은, 아빠뿐만이 아니라, 엄마마저도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금별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부터는 비로소 자기가 별똥별은 아닐 거라고 못 박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별똥별 이야기는 그저 할머니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믿기 시작했거든요.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그랬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아이. 병원에서 얻어왔다는 아이. 산에서 백일치성을 드렸는데, 꼭 백 일째 되던 날에 큰 바위 뒤에서 앙앙 울고 있었더라는 아이. 커다란 새가 문 앞에 물어다 놓고 갔다는 아이. 강물에 떠내려 왔다는 아이 등등. 별의별 출생의 비밀을 가진 아이들 중에, 자기의 그 비밀을 믿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보육원에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만 아니라면 아이들은 자기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오히려 자랑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주로 놀림감 삼아 어른들이 꾸며댄 이야기라는 것도 아이들은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에 선물을 주시는 사람은 진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다 아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금별은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언제나 짓궂은 장난을 건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금별은 할머니만 보면 아빠가 누구냐고 장난처럼 보채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도 장난처럼 그러셨습니다.

“별똥별한테 아빠가 있다는 소린 내 머리 털 나고 처음이야.”

또 이렇게도 중얼거리셨습니다.

“엄마라도 있다는 것을 복으로 알아, 요 철없는 녀석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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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3 tulip642..
    작성일
    16.03.10 19:37
    No. 1

    어린 자식이 아버지가 누굴까 찾는 일이 철없는 행동인지 모르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9 난정(蘭亭)
    작성일
    16.03.11 14:30
    No. 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선생님.....
    하하하~ 별이는 좀 철이 든 거 같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 보면 저런 거 아무것도 아니죠^^
    맹랑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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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 꿈같은 방 +2 15.09.25 267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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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 떠날 시간을 미리 안다는 것 +5 15.09.16 255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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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뚱뚱보 푸들아가씨 뽀미 +2 15.09.09 310 11 7쪽
2 1. 걱정꾸러기 +5 15.09.08 305 13 8쪽
1 0. 누군가의 혼잣말 +8 15.09.08 543 2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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