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난정(蘭亭)서재입니다~

걱정꾸러기의 걱정

웹소설 > 작가연재 > 아동소설·동화

완결

난정(蘭亭)
작품등록일 :
2015.09.08 04:05
최근연재일 :
2015.11.08 16:3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7,119
추천수 :
214
글자수 :
64,591

작성
15.09.23 09:13
조회
314
추천
12
글자
8쪽

6. 생각하는 갈대

DUMMY

금별이는 엄청 부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아빠 자랑을 할 때마다 질투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아빤 누구야?”


엄마 금보라 씨는 딸이 물을 때마다 그랬습니다.


“네 아빤 돌아가셨어.”


금별은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가 정말 돌아가신 거라면 무덤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지, 엄마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만 하십니다.


“아빠는 말야, 저 산들바람 속에 떠다니고 있단다. 산들바람이 불 때마다 냄새를 맡아보렴. 꽃향기 같지? 아냐··· 그건 아빠 냄새야. 별이 아빤, 꽃향기, 그래, 꽃향기에 숨어 세상구경을 하고 다니셔. 그러니 무덤이 무슨 필요 있겠니?”


겨울에 함박눈이 내릴 때면 또 그러십니다.


“별이 아빤 저 함박눈 속에 스며들었어. 저기에 숨어서 하늘하늘 땅에 내려앉곤 하지. 하얀 눈 포근히 덮고는 꿈나라를 헤맨단다. 언제까지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금보라 씨의 눈이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어떡하니? 아빠가 빗속에서 울며불며 별아, 별아, 하고 불러. 아빠가 불러. 아빠, 별이 여기 있어요, 하고 얼른 대답해, 얼른.”


비가 개이고 무지개가 ‘복사골아파트’에서 올라가 ‘학마을아파트’에 걸쳐지면 금보라 씨는 금방 또 환한 얼굴이 됩니다.


“별아, 별아, 아빠가 저어기서 손짓하시네. 저 봐, 빨주노초파남보··· 아빠가 무지개를 타셨어. 보이지?”


그러나 금별이는 이제 더는 속지 않습니다.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중얼거리죠.

‘엉터리, 그 누구보다도 예쁜 우리 엄마가 저러실 때 보면 왕 바본 거 같아. 내가 아직도 어린앤 줄 아시나 봐. 어휴, 못 말리는 청춘.’


3학년이 되기 전, 지난 봄방학 때였습니다.

금별이는 마음을 단단히 다져먹고 외삼촌을 졸랐습니다. 외삼촌 금난새 씨는 사실 한번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대학도 다니고 무슨 작곡공부도 한다나요.


“내 이름이 저 유명한 음악가 금난새와 똑 같잖냐? 그러니까 이름값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서 날이 날마다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거 싸고 뒤 닦을 틈도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금별이가 외삼촌을 만나려면 방학 때를 이용하여 꼼꼼하고 빈틈없는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요.

때마침, 그날 아침엔 화장실로 쳐들어갔습니다. 두랑이도 쪼르르 따라 들어갔습니다.


“삼춘, 삼춘, 우리 아빤 왜 무덤이 없어?”


얼굴에다 전기면도기를 왱왱거리던 외삼촌 눈이 왕방울로 변했습니다. 전기면도기를 뚝 끄고 외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이 아가씨가? 안 나가?”


나가라 그런다고 나갈 거면 애초에 남자가 들어있는 화장실엘 숙녀가 왜 들어갔겠어요? 어림도 없는 말씀.

금별이는 팬티도 안 내리고서 변기에 털퍼덕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말괄량이 왈순아지매 두랑이도 금별 언니와 행동을 같이 하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언니의 무릎에 달랑 올라앉은 거지요. 금별이는 두랑이 등을 살살 긁어주면서 배를 내밀었습니다.


“못 나가. 그러니까 말해줘. 우리 아빤 돌아가신 거야? 아님 살아계신 거야? 말해줘 빨랑.”


금난새 씨는 면도기를 다시 켜서 왱왱거렸습니다.


‘밀어낸 털을 또 밀어내려고 그러시나? 얼굴껍질 벗기려고 그러시나?’


금난새 씨는 한쪽 손으론 얼굴 가죽을 이리저리 밀어붙이며 한쪽 손으론 전기면도기를 움켜쥐고 한참 더 왱왱거리고만 있습니다.


“겁난 새! 겁난 새!”


금난새 씨의 별명을 들입다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태평스레 면도를 끝낸 금난새 씨는 물을 쏴아 틀어 푸르륵, 푸르륵, 얼굴에다 물을 받아쳤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무시하다니, 어디 두고 보시라고요.’


금별은 변기에 앉은 그대로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사실은 자는척한 거죠. 외삼촌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안아다가 침대에 누이면, 그때야 와락 매달려 물어볼 속셈이었던 거죠.

그런데, 방에까지 안겨가고 어쩌고 할 필요가 없었지 뭐예요. 자기 별명을 들이대어 데모를 해댄 조카가 겁났는지 어쨌는지, 금난새 씨가 문득 입을 열었으니까요.


“그래, 자거라. 네 아빤 영원히 살아 계시니까 걱정 말고.”


그 말에 금별이는 입이 헤벌어졌어요.


‘아빠가 살아 계시다니, 이게 웬 떡인감? 그럼 그렇지. 무덤이 없다는 건 바로 살아 계시다는 증거겠지?’


금별이는 서둘러서 눈을 떴습니다. 함께 졸던 두랑이를 얼른 바닥에 내려놓고는 언제 졸았나싶게 혀를 날름 내밀어보이고, 가볍게 폴짝폴짝 뛰면서 주방으로 갔습니다. 마침 비번이라 백화점을 쉬는 엄마 금보라 씨가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 중이었지요. 아침이라야 뭐, 계란하고 우유, 그리고 과일샐러드 정도지만요.


“엄마, 엄마, 아빠가 살아 계시다며?”


엄마가 화들짝 놀라 계란을 프라이팬 밖에다 깨뜨려버립니다. 엄마가 놀라거나 말거나 금별이는 계속 쫑알댑니다.


“영원히 살았다고? 우와, 좋아라. 우리아빠가 살아 계시다니··· 근데 왜 한 번도 안와? 왜 안보여?”


금보라 씨의 눈에서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물보라는 금보라 씨의 온 얼굴에서 알알이 뿜어져 나와 식탁에 곤두박질쳤습니다. 금보라 씨는 프라이팬 주걱을 든 채 식탁의자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딸의 등 뒤에 나타난 자기 동생을 잠깐 노려보더니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나가 우는 것을 본 동생이 허둥지둥 누나 앞에 앉으며 우물쭈물합니다. 그리고 떠듬거립니다.


“이제 별이도 컸잖아? 곧 3학년인걸. 알건 다 알지 않겠어? 그냥 존재한다고 그러지···.”

“아니야!”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금보라 씨는 또다시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죽었어. 별아, 네 아빤 죽었어. 죽어서 바람이 된 거야.”


엄마가 그 말씀 하실 때에는 밖에 바람이 불고 있기 마련입니다.


“꽃향기에 숨은 거야.”


밖에 꽃이 핀 모양입니다. 금별이는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은 다음에 엄마의 말을 맞받아서 소리쳤습니다.


“사진도 한 장 없잖아?”


그렇습니다. 금별이는 도통 아빠 사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사진도 없는 아빠를 들먹이며 부득부득 주장하는 그 말만큼은 언제나 어렵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보이다 안 보인다면 죽었다고 칠 수 있지.’


하기야, 있었던 증거라도, 사진이라도 있다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사진은 있어도 실물이 없다는 사실로 죽었다는 걸 증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니잖아? 사진도 없고, 무덤도 없고, 우리아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삼촌 이야기는 또 뭐냐고. 우리 아빠가 뭐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럼 나는 하느님의 딸이고 모든 사람이 내 형제자매라는 거야? 그럼 나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하느님의 딸인 자연이라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 말씀처럼 별똥별이라는 거야 뭐야? 헷갈려, 정말 헷갈려.··· 근데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개똥철학을 하고 있나. 참내···’


금별이는 무서운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할 듯이 엄마보다 한층 크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냐, 살았어. 아빤 살아있다고. 난 찾을 거야. 아빨 찾고 말거야. 못 찾으면 만들어낼 거야.”


금별이는 또 생각의 우물에 빠져듭니다. 금별이가 한 번씩 생각의 우물에 빠질 때면 아무리 힘센 외삼촌도 건져내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금별이 스스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생각의 우물이 메아리를 칩니다. 생각해, 생각해, 생각하는 거야.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면서요?’

%EA%BE%B8%EB%AF%B8%EA%B8%B0_%EC%88%98DF14~1 (2).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걱정꾸러기의 걱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새아미의 혼잣말(음식전쟁/저주받은 사진관/ 또 다른 세계) +4 15.11.15 212 0 -
27 25. 혼잣말을 마치며 +2 15.11.08 225 10 3쪽
26 24. 실어증 작전 15.11.08 246 8 9쪽
25 23. 뉴스에서 15.11.08 134 7 2쪽
24 22. 꿈같은 현실 15.11.08 173 7 3쪽
23 21. 꿈에 15.11.08 208 7 1쪽
22 20. 별똥별인가, 외계인인가 15.11.03 267 5 4쪽
21 19. 걱정과 군것질 15.11.01 328 5 5쪽
20 18. 은별이 15.10.30 242 5 5쪽
19 17. 언니의 아기 15.10.30 188 4 2쪽
18 16. 민들레 아파트에서 15.10.20 266 4 5쪽
17 15. 혼자 있을 때 15.10.16 182 6 8쪽
16 14. 결혼 축하합니다! +6 15.10.13 307 6 6쪽
15 13. 소풍 15.10.07 172 6 4쪽
14 12. 엄마의 외출 +2 15.10.06 218 6 4쪽
13 11. 별똥별 이야기 +2 15.10.05 324 5 8쪽
12 10. 불쌍한 가짜 15.10.04 179 5 7쪽
11 9. 꽃집 하나봐 +2 15.10.02 200 8 5쪽
10 8. 비밀 이야기 +4 15.09.30 325 8 8쪽
9 7. 꿈같은 방 +2 15.09.25 268 9 9쪽
» 6. 생각하는 갈대 +8 15.09.23 315 12 8쪽
7 5. 세랑이는 새침데기 +3 15.09.17 268 8 5쪽
6 4. 떠날 시간을 미리 안다는 것 +5 15.09.16 255 9 4쪽
5 3. 할아버지와 감자칼국수 (2) +10 15.09.15 426 10 11쪽
4 3. 할아버지와 감자칼국수 (1) +4 15.09.11 242 9 10쪽
3 2. 뚱뚱보 푸들아가씨 뽀미 +2 15.09.09 310 11 7쪽
2 1. 걱정꾸러기 +5 15.09.08 306 13 8쪽
1 0. 누군가의 혼잣말 +8 15.09.08 543 21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