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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이른바 이 눈물이란...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보낸 편지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추석 일주일 전에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오늘 이 새벽까지 그냥 맥없이 지냈군요.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이것은 추석 이후로 출간일이 미뤄진 저의 책 이름입니다만,

배워야만 나오는 눈물이라면 지금같이 숙제가 코앞에 있을 땐

눈물구멍을 싹 닫아버리고 안 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습이나 복습 따위는 숙제 한 뒤로 미뤄두면 간단히 해결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배운 일도 없는데 시시때때 흐르는 이 눈물........

 

복지tv. 희망스튜디오 출연했을 때에

내 골동품 핸드폰을 조연출이 가져가서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놨었는데, 

뒤늦게 그 상황을 알아차리고 벨소리를 원상복귀하려고 진동해제를 시도했으나

도무지 되질 않는 겁니다.

일주일 뒤에 꽤 똑똑한 저의 제자가 

"옛날전화는 별(*)표를 조금 길게 누지르면 진동장치가 해제됩니다"라고

알려주더라만.........

애당초 그 간단한 기본상식이 저에겐 없었던 겁니다.

 

그냥 핸드폰을 진동상태로 둔 채 한 일주일 시간 날때마다 코앞에 닥친 원고와 씨름만 하였죠.

저에겐 아주 중요한 그 원고 마감일이 9월말이라 이것저것 신경을 꺼야 했으므로

잘됐다 싶기도 하여

아예 전화를 꺼놓기 예사였지요.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라는 게 제 신조입니다.

어디서 전화가 왔는지는 시간 날 때에 들여다보면 알 수 있었고,

필요한 전화다 싶으면 회신을 보내면 되었으니

별 불편이 없었지요.

그런데 그 일주일 동안 친정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몇 통 있었고,

저는 매번 그 전화를 못 받았지요.

변명 같지만, 전화 온 걸 발견하고 전화를 할라치면 어머닌 마침 외출 중이었습니다.

어머닌 핸드폰이 없어서 집전화로만 통화할 수 있었거든요.

밤중에 걸려온 전화도 있었는데, 그 때는 내 핸드폰이 꺼진 상태....

하지만 무엇보다도 용서치 못할 제 소행을 고백합니다.

'딸이 얼마나 바쁜 줄도 모르고 부질없는 넋두리나 하시려고.....'

그러며 모르쇠로 일관한, 스스로도 괘씸한 제 태도...  

 

그렇습니다.

밤중이거나 새벽이거나 어머니에게 한 번 쯤은 전화를 걸어서 왜 전화를 하셨느냐고, 

제가 좀 바쁘다고,

그렇게라도 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뤘죠. 가뜩이나 늦게 초안 잡은 원고 마감일만 코앞에 내걸고서

딸의 목소리를 애타게 듣고싶어 하시는 어머니의 신호엔 눈을 딱 검았었던 거지요.

 

"내가 죽어야만 네 언니 목소리를 들을란갑다."

제 바로 밑에 여동생에게 이런 말을 남긴 다음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10시 45분. 교회에서 11시 예배 시작 전에 두 손 모두어 기도를 하시다가

그냥 그대로 가셨다는 겁니다.

 

그 기도 내용이 계속,  지금도, 제 귀 안에서 메아리칩니다.

"하나님, 우리 큰 딸 목소리를 듣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보, 미련퉁이, 너무나 몹쓸 딸.......

 

결국 원고 마감일은 넘겨버렸지만, 애당초 마감일 박두하여 글을 쓰는 게 무리였습니다.

어머니가 그 이치를 가르쳐주신 겁니다.

세상을 뭐 그리 바삐 기계처럼 사느냐? 쉬엄쉬엄 가거라. 눈 감으면 그만인 세상이다. 

 

문득 황진이의 즉흥시조가 떠오르는군요.

 


금새(金鳥)야 옥토끼(玉兎)들아 뉘가 너흴 쫓아온다고

구만리장공을 허위허위 다니느냐

이후란 천리에 한 번씩 쉬엄쉬엄 다니려마.

    


무언가를 이루려면, 잊을 건 잊고, 닫을 건 닫고,

살려두더라도 소리는 죽여야만, 그래야만 탈없이 이뤄내리라는 그 원칙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저는 또 주체할 수 없는 눈물도가니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18세기 사람 연암박지원이 "내 슬픈 사설을 짓노라"하고 이런 진리를 남겼었지요.

 

          나는 모르겠네. 정이란 어떤 모양이건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그래도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건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남이 가르쳐주어야만 울 수 있다면 나는 으레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못내겠지.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른바 그렁그렁 이 눈물이란 배워서는 만들 수 없다는 걸.

 

 

                                       ---(주영숙 편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중에서 )

 

2012년 10월 3일에 썼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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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001. Lv.20 최정하

    16.10.17 11:23

    여기에 댓글을 써도 되는지 망설였답니다.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기도하시다 영면하셨다하니 천국에서 난정님을 보고 계실 것 같군요,
    저도 얼마전에 두 분을 잃었답니다.
    일 년 사이로 가셨지요.
    그 생각이 나서 감히 난정님의 슬픔의 공간에 글을 남겨봅니다.
    늘 난정님과 함께 계실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힘 내세요.^^*

  • 002. Lv.49 난정(蘭亭)

    16.10.18 22:15

    아, 최정하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움이 한결 가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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