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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걱정꾸러기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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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난정(蘭亭)
작품등록일 :
2015.09.08 04:05
최근연재일 :
2015.11.08 16:3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7,123
추천수 :
214
글자수 :
64,591

작성
15.09.15 09:26
조회
426
추천
10
글자
11쪽

3. 할아버지와 감자칼국수 (2)

DUMMY

뽀미는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어요.

‘그런데요, 타고난 질서의식을 가진 푸들 체면에, 어떻게 사람을 따라 들어가 사람 변기 옆에다, 거긴 수챗구멍도 없던데, 어떻게 실례를 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끔 거울을 보며 치장만 하는 이런 곳에서,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어떻게 저 멀쩡한 바깥 수챗구멍에다 실례를 한단 말씀이에요?’

아마도, 오늘도 뽀미는 할머니가 꾸중하실 것을 빤히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노상방뇨를 할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금별이는 뽀미를 꼭 안은 채로 휴게소 화장실 근처 잔디밭으로 가서 뽀미에게 오줌을 누도록 하고 화장지로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차에 가서 문을 열자, 무사히 화장을 마치신 할머니가 방긋 웃으십니다.

“아이고, 우리 별똥별이 뽀미 오줌 뉘었어? 노상방뇨 안했니?”

“아 아니, 뽀미가 풀밭에서 막 돌아다니다가 쉬를 했어.”

뽀미를 받아 안고서 할머니가 금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닌 밥 생각 없으니까 너도 후딱 화장실 갔다가 할아버지 칼국수 드시게 해드려.”

“응, 그래. 강아지는 식당에 데려가면 안 되니까. 그럼 뽀미야, 할머니하고 잘 놀아. 언니 밥 먹고 올게.”

뽀미는 다소곳하게 할머니 품에 안기면서 속으로 그럽니다.

‘할머닌 화장실 안 가세요?’

할머니가 뽀미 말을 들은 것처럼 대답하십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소원 풀고 오시면 체인지할거야.”


화장실 문 앞에 할아버지가 딱 지켜 서 계십니다.

할아버지는 금별이가 화장실 안에서 납치라도 당할까봐 그러시는 모양이에요. 그런데요, 금별이가 무사히 볼일을 보고 나온 장면에다 눈도장을 찍으신 할아버지가요, 재빨리 식당으로 걸어가시다 말고 손녀를 돌아보십니다.

“내가 뭘 먹고 싶다고?”

할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시고, 금별이도 그 음식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유 할아버지, 또 까먹으셨넹? 그게 뭐더라···”


금별이는 할아버지가 어정어정하실 동안에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식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시키느라 줄을 서 있거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들 있습니다. 몸집이 작은 금별이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비집고 들어가 메뉴판을 올려다봅니다. 그러다 김밥이 눈에 띈 순간, 할아버지가 “어딜 혼자 다녀!” 하시며 금별이 손을 꼭 쥐십니다.

“별똥별, 너 뭐 먹을래?”

“김밥······ 근데 할아버지는 그거 생각났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셨습니다. 배가 너무 고프셔서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시는 게 분명합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글자를 깨우친 금별이는 높다랗게 붙은 메뉴판을 차근차근 떠듬떠듬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할아버지가 들먹이셨던 음식 이름을 할아버지 대신 알아낼까 해서요. 그러다가 문득 자장면 아래에 적혀있는 감자칼국수라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감자칼국수! 저거잖아?”

“엉? 어디? 아 저기 있구나. 맞다 맞아. 감자칼국수였어.”

“빨리빨리 줄 서요. 할아버지, 나도 자장면 먹을까?”

“그럴래?”

“아아니, 김밥 먹을래요.”


할아버지가 ‘감자칼국수’ 식권을 구입한 뒤에 줄을 서십니다.

금별이도 야채김밥으로 정하고는 김밥 코너 아줌마한테 유리 상자에 적혀있는 김밥 값을 3,000원 내밀었습니다. 김밥코너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김밥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금별이는 자리를 잡고 김밥을 식탁에 내려놓은 뒤에 할아버지에게 손짓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야 여기!”

그리고 기다립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는 감자칼국수의 국물이 도대체 어떤 맛인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금별이는 김밥의 비닐을 뜯지 않고 계속 기다립니다. 감자칼국수 국물을 좀 맛보려고 말이지요.


순서가 되었는지 할아버지가 맨 앞에 서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감자칼국수가 나올 동안에 단무지를 막 집어 드십니다.

‘아이 창피······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좀 참으셔야지. 왜 저러실까?’

할아버지 바로 뒤에 딱 붙어 줄을 선, 어떤 양복 입고 넥타이까지 맨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막 흘겨봅니다. 뒤에서 흘기는 줄도 모르시는지 할아버지는 단무지를 연신 털털 털어가면서 계속 드십니다. 이해할만 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으면···’

드디어 감자 칼국수가 나왔는지, 할아버지는 아줌마한테 단무지를 더 달라 그러셨고 아줌마가 웃으면서 단무지를 듬뿍 주십니다. 할아버지가 국수쟁반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시자, 할아버지한테 눈 흘기던 신사복차림 아저씨가 맨 앞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자칼국수라는 게 참 이상하였습니다. 시커먼 게 꼭 자장면 같습니다. 아니 자장면이 맞습니다. 금별이는 눈이 둥그레져서 말했습니다.

“아니 할아버지, 이건 자장면이잖아요?”

“어? 아니야. 감자칼국수야.”

할아버지는 자장면을 감자칼국수인 줄 알고 잘못 가져오신 겁니다.

“아유 할아버지, 감자칼국수 드신댔잖아? 얼른 바꾸세요.”

그러나 배가 너무 고파 눈앞이 잘 안 보이시는지, 할아버지는 벌써 자장면에다 젓가락을 넣어 휘저으시는가 싶더니 금방 한입 넣고 주루룩 빨아 당기십니다.

금별이는 메뉴판을 다시 올려다보았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사건 터질 일입니다. 감자칼국수는 4,000원이고 자장면은 3,500원입니다.

‘우리 구두쇠 할아버지가 자장면을 500원이나 더 비싸게 주고 드신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휴게소를 몇 곳이나 그냥 스치면서도, 오로지 감자칼국수를 맛보기 위하여 이 휴게소에 차를 쉬게 하신 할아버지십니다. 그런데 그토록 벼르시던 감자칼국수 대신 생각하지도 않던 자장면을 드시는 할아버지.

금별이는 마음이 오마 조마 두근두근합니다. 지금 드시는 음식이 확실히 자장면이라는 걸 알아차리게만 된다면 대판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냥 드십니다. 참 모를 일입니다.

“할아버지, 그럼, 3,500원짜리 식권 사셨구나?”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장면이 거멓게 묻은 입술을 혀로 빨아들이며 그러십니다.

“아냐. 감자칼국수 값으로 4,000원 줬어. 요즘은 감자칼국수가 이렇게 나오는 모양이다. 그냥 먹자.”

여러 번 손가락계산을 해보다가, 금별이는 울먹울먹하였습니다.

“자장면, 그거 자장면 맞는데··· 500원 거슬러 달라고 해야 하는데?”

“아참, 별똥별, 그 김밥, 이 국물하고 같이 먹어라.”

할아버지가 감자칼국수를 드신다고 해서 그 칼국수 국물을 좀 얻어먹으려고 기다렸는데,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시고 자장면을 가져오셔서는 자장면에 딸려온 아주 조금밖에 안 되는 국물을 손녀딸더러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지요. 문제는 두 눈 번연히 뜨고 3,500원짜리를 4,000원에 그냥 드실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어요. 금별이 마음도 이제 할아버지같이 다급해집니다. 말이 막 더듬거려집니다.

“아 아냐, 하, 할아버지. 오, 오백 원 다, 달라고 해.”


그나저나 진짜로 난리가 났습니다. 아까 할아버지한테 눈 흘기던 신사복 아저씨가 주방 아줌마한테 버럭버럭 화를 내지 뭡니까?

“아니, 내 자장면은 언제 나오는 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할아버지와 손녀딸은 두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구먼?’

‘바뀐 거네?’

주방 아줌마도 황당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장면 그거 이미 나갔는데요? 혹시 칼국수 시키신 거 아닙니까? 여기 칼국수···”

카운터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칼국수가 임자 없이 놓여 있습니다.

분명히 음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금별이는 너무 놀라 자기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아마도 싸움이 벌어지기 일보직전입니다.

신사복 아저씨가 막 툴툴댑니다.

“우리 친구들은 벌써 먹고들 나갔소. 하 참.”


싸움을 하지 않으려면 시치미를 뚝 떼야 합니다.

그런데요. 보라아빠, 아니 금별이 할아버지가 누구십니까? 아침도 거른 채로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오신 할아버지의 단 하나의 목표가 감자칼국수 아니었겠습니까. 당당히, 아주 유유히, 할아버지가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니 아줌마, 감자칼국수가 꼭 자장면처럼 생겼다 했더니 이게 그렇게 된 거요?”

신사복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험악한 표정이 되어 눈을 흘기고, 주방아줌마는 멍한 얼굴이 됩니다. 그 앞에서 할아버지의 말발이 변호사 뺨치게 근사해집니다.

“바뀌었단 말인데, 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께서 핏대 올릴 일은 아니지. 줄을 제대로 서야 뭘 얻어먹지 않겠소? 아니 새치기 한 것도 모자라서 남의 쟁반에다 식권을 놨더란 말이오? 내가 내 쟁반이라는 뜻으로 내 단무지를 먹고 있을 때 눈을 막 흘기더라니 쯧쯧······ 줄을 제대로 서야지. 줄을!”

자초지종을 다 알아차린 주방아줌마가 절절 매며 발을 구릅니다.

“아유 이를 어째? 어떡하죠?”

“어쩌기는? 내 칼국수나 이리 주시오. 그리고 내가 휘적거린 자장면은 내가 값을 지불하지 뭐. 에이 우리 손녀딸이 자장면을 되게 좋아하니 망정이지. 참 내, 살다 살다······”

‘잘 됐다. 먹고 싶었는데······ 김밥은 나중에 먹지 뭐.’

할아버지는 자장면 값을 지불하러 가시면서 손녀에게 눈을 찡긋하시고는, 여러 사람 들으라고 주방아줌마에게 큰소리치십니다.

“아줌마가 자장면을 다시 만들면 되잖소?”

그리고 그 아저씨도 들으라고 한 말씀 더 하십니다.

“넥타일 걸기만 하면 뭘 해? 값을 해야지 값을.”

금별이는 딱 한 개만 먹고 남은 김밥을 목욕바구니에 넣고 수건으로 살짝 가렸습니다. 목욕하다가 출출해지면 할머니랑 함께 먹으려고요.



온천장엔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와 금별이는 또 줄을 섰습니다. 한사람이 옷장 열쇠를 갖고나오면 줄을 섰던 사람이 순서대로 그 열쇠를 갖고 욕탕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몇 사람이 열쇠를 갖고 들어간 뒤에 한 사람이 나왔는데, 열쇠 한 개로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옷장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금별이는 열쇠를 자기가 받아들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다시 잡아당겼습니다.

“별똥별, 좀 더 기다리자. 한 사람 더 나올 때까지.”

금별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줄을 제대로 서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줄을 서서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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