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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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 금요일, 능금초등학교 3학년 전체는 ‘무지개만화동산’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어요. ‘무지개만화동산’엔 별의별 꽃이 다 있답니다. 특히 천지사방에 깔린 튤립은 마치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 가있는 느낌이 들게 했지요. 그 나라에 가봤냐 그 말씀 하시려고 그러죠? 참내, 꼭 가봐야만 아나요. 중요한 건 그날 생긴 일이죠.
진정제, 진정제 선생님이 안경을 바꾸신 그 사건 말이에요.
금별이는 그날, 선생님이 안경 바꾸시는 모습을 두 눈에 새길 듯이 또렷하게 보았거든요.
바이킹을 탈 때였어요. 갑자기 웬 여자가 한들한들 선생님께로 다가가지 뭐겠어요. 바로 윤은비였습니다.
진달래빛깔 저고리와 비둘기빛깔 치마를 날아갈듯이 차려입은 윤은비는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내려 모란꽃색깔 댕기까지 차랑하게 드리우고 나타났습니다. 금별이는 바이킹에 쑤악 쑤아악 흔들려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순간순간에 꺄악, 꺄아악! 간이 오그라들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저 언니 참 모델 같네. 멋져! 너무 멋져!’
그런데 윤은비가 어깨 아래 대롱거리던 자기 핸드백에서 안경집 하나를 끄집어내는 거였습니다. 그리고는 진정제 씨의 뿔테안경을 자기 손으로 샥! 벗겼습니다. 뿔테안경의 반절 밖에 안 되는, 테두리가 아예 없는 안경이 윤은비의 손끝에서 햇빛에 반사되며 짱알거렸습니다. 직사각의 멋들어지던 진 밤색 뿔테가 아주 작은 무테안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지요. 하긴, 선생님의 인상이 아주 깔끔해져서 좋긴 하겠지만요. 하지만 그 언니가 문제, 이만저만 큰 문제가 아닌 거예요.
‘저 언니 정체가 뭐야? 아이참, 요놈의 해적선아 빨리 닻을 내려라.’
하지만 금별이는 그만 문제의 그 언닐 놓치고 말았어요. 아이들이 바이킹에서 내리자마자 선생님께 우르르 달려갔지만, 그 언닌 이미 바람과 같이 사라져버린 뒤였거든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 못 챈 아이들은 단지 선생님의 안경이 바뀐 것에만 흥분하여 마구 떠들어댔지요.
“다시 써! 다시 쓰자 안경! 뿔테, 뿔테안경 더 좋아, 좋아!”
참 단순하고 순진한 친구들이지 뭐예요.
아이들의 데모는 선생님이 뿔테안경으로 다시 바꿈으로 무사히 진압되었지만 금별이의 마음은 물음표로 가득 차서 마구 출렁이다가, 끝내 구토를 일으켰습니다. 온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이 아팠어요. 덕분에, 금금별이가 계속 선생님의 등에 업혀 다닌 거 있죠. 황홀 만점!
그러나 금별이는 그 멋진 언니의 정체 때문에 내내 우울했어요.
선생님께 질문을 할 엄두도 안 날 만큼 말이지요. 혹시 그 언니가 선생님의 애인이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 때문에 금별이는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금별이가 추워 떤다면서 점퍼를 척 벗으시더니 그것을 덮어 씌워주셨죠. 남의 속도 모르시고 말이에요.
소풍 다음날인 4월 2일은 토요일. 금별이는 하루 종일 누워서만 빈둥거린 덕인지 밤중에는 오히려 잠이 안 왔는데, 엄마 금보라 씨는 다른 날과 변함없이 습관처럼 밤 아홉 시에 집 현관을 빠져나가는 거였습니다. 마땅히, 물오징어를 군데군데 썰어 넣은 파전 한 접시를 들고 나가셨죠.
금별이는 그저 문소리만 듣고 속으로만 중얼거렸어요.
‘진정제 씨 만나러 슈퍼에 가시우?’
근데 1분도 채 안 되어, 아니지, 5분은 지났나? 금보라 씨가 금방 돌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겁지겁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불을 푹 뒤집어쓰곤 꼼짝달싹 안 하다니!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싶었지요. 하지만 금별이는 왜 그러시냐고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끽소리도 없이 자고 있는 걸로 되어있는데 어떻게 아는 척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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