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전(7)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아베디스 루신에게는 스텔리안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까?”
“일부러 찾아갈 생각은 없다. 제이나에게 말했으니 그녀가 보고했겠지.”
“모후의 시녀말이군요. 그녀와 아베디스 루신의 관계는 아직 정확하게 모릅니다. 만일을 위해 산디아 님이 스텔리안에 관해 귀띔해 주십시오. 아베디스 루신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물입니다. 그와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가능한 한 조심하셔야 합니다.”
토비아스의 충고에 산디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메칼로는 심드렁한 얼굴로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메칼로가 아베디스와 친할 수 있을 거라고는 토비아스도 믿지 않았다. 메칼로는 호불호가 명확해서 싫은 것을 참거나 좋은 것을 양보하지 않았다. 가로막는 것은 밀어젖히고, 계속해 방해하면 부수면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괜찮을 것인가.
메칼로와 그의 용병단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것은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 외에 두려운 게 없는 전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싸움은 다르다.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다. 테리아 인에게는 지나치게 많았다.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였으니 아베디스 루신은 더욱 우리를 경계할 겁니다. 그리고 시험하겠지요. 조만간 메칼로 님에게 곤란한 지시를 내리거나 성미를 건드리는 일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비위를 맞춰줄 것인지 멋대로 할 것인지는 메칼로 님의 자유입니다만, 뭐가 되었든 혼자서 하십시오.”
토비아스의 말에 산디아도, 다른 용병들도 그를 쳐다보았다.
“아베디스 루신이 테리아 인들을 용납한 것은 고작 여섯 명의 외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 때문에 모두의 능력을 마음껏 내보이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런 여섯 명이 열 배로 늘어난다면 경우가 다릅니다. 스텔리안을 구하기 위해 그 이점을 포기했으니 혼자서 시험받는 정도의 대가는 치르도록 하십시오.”
토비아스가 냉정하게 말했다. 메칼로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코웃음 쳤다. 몇 마디 더 잔소리를 할까 했지만, 동료들과 태연히 농담을 나누는 그를 보고 토비아스는 혀 밑에서 간질거리던 말을 꿀꺽 삼켰다.
‘모를 리가 없지.’
그의 무신경한 대담함은 늘 이유가 있었다. 토비아스는 그것을 오래 전, 그와 처음 만난 클레타 북부의 황야에서 이미 알아보았다. 메칼로가 열세 살, 그가 열아홉 살이었던 때의 일이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그 생각에는 변함없었다.
토비아스가 메칼로 용병단에 남기로 한 또 다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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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스와 밀라>
“밀라씨, 그 윗옷 벗어볼래요?”
강가에서 그날 저녁 식사에 쓸 물고기의 내장을 제거 중이던 밀라가 아비스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살인적으로 작열하는 여름 해에 세상이 노릇하게 구워진 8월 중순 오후였다.
남은 햇볕 아래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비린내 나는 생선 배를 따느라 육수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저 백발의 한량은 강물에 몸 담그고 오락가락 들락날락 물놀이나 하더니 문득 강가로 헤엄쳐 와서는 상체만 쏙 내밀고 사람을 위아래로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말 섞으면 바보 옮을라. 정신건강을 위해 무시하고 있던 밀라에게 아비스가 한 말이란 게 바로 저거였다. 윗옷 좀 벗어 봐요. 안에 속옷 안 입었죠?
밀라는 잠시 내가 햇빛을 너무 쬐서 환청을 들었나 아님 저자식이 내장제거 당하는 물고기가 부러워서 메기 송어랑 나란히 도마 위에 눕고 싶어 저러나 헷갈렸다. 일단 회칼로 아가미 두 개만 만들어 놓고 이야기 해볼까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비스의 몸이 절반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저놈이 물에 있을 때는 귀신같이 빠르거든. 그래. 날도 더운데 밀라 뇌찜 같은 거 만들 일 있나. 그녀는 뚜껑 닫고 열 식힌 다음 평소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가 쳐 돌았나. 백주에 여자를 희롱하네? 니 배때지에는 칼 안 들어가는지 궁금해졌냐?”
“앗, 밀라씨. 왜 화를 내세요? 무서워요오.”
맞아. 저거 바보였지. 여자 희롱할 위인도 못돼. 지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는 거야. 물고기 대가리 날리고 사람값 치를 필요 없다. 그녀는 또박또박 상냥하게 다시 말했다.
“너 회접시에 먹지도 않는 물고기 대가리 올려놓는 이유 아냐? 그걸 안 올려놓으면 먹는 사람이 이게 도미횐지 광어횐지 자주 먹는 사람 아니면 모르거든. 그러니 대가릴 버리지 말라고. 사람에게 말을 하려면 대가리부터 들이밀어야 할 거 아니냐? 아니, 니 대가리는 치우고. 확 썰어버리기 전에. 멀쩡한 여자더러 백주 노상 만인환시리에 옷을 벗으라고 했으면 이유부터 설명하는 게 상식이라 이 말이다.”
라는 밀라의 설명을 머리 몸통 다 떼고 꼬리만 주워들은 아비스는 아, 이유를 설명 안 해서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들었다.
“아 그거요, 실은 페리씨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아비스야, 이 한심한 자식아. 지금 전쟁중이라 적이 한 놈이라도 줄어야 할 판에 강에 빠진 적군을 건져서 소생술로 살려내 강 건너편까지 모셔다 드리고 와? 너 정말 우리편 맞냐? 혹시 적군에서 우리 속 터져 죽으라고 보낸 암살자 아니냐?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해요 하고 물으니까 돌려보내지 말고 그냥 쳐 죽이라고요. 그런데 사람은 죽여도 먹을 수가 없으니까 살리는 거 맞지 않나요? 아니 먹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남자들은 질겨서 씹기 힘들 거 같고 여자들은 기름져서 질릴 거 같고 아이들은 별로 먹을 것도 없을 거 같고요. 아, 밀라씨는 기름진 거보단 질길 거 같아요.”
우둑 -
밀라의 오른손에 잡힌 회칼 손잡이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지. 화내면 지는 거다. 바보에게 질 순 없다고 생각한 밀라는 오른손에 집중되는 살기를 복식호흡으로 다스린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래서 사람은 못 먹는데 왜 죽여야 하냐고 물으니까 페리씨가 어금니를 으드득 간 뒤에 내가 먹을 테니 가져오라고 하시더라구요. 한 마리당 동화 닷 푼씩 주시겠다구요. 잉어보다 비싸게 쳐주시는 거죠? 그런데 무게에 비하면 싼 거 같기도 해요.”
페리······ 이 자식은 또 애 데리고 뭔 짓을 한 거야. 밀라는 이마 위로 투둑 올라오는 핏줄을 문지르며 숨을 골랐다.
“그래서어?”
“그래서 일단 용돈도 벌 수 있으니까 잡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전 물고기 말고는 사냥해 본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사람은 대부분의 중요장기가 늑골에 보호되고 있어서 우선 흉부부터 알아야 하는데 역시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발라가면서 보는 게 확실하지만 그럼 아프겠죠?”
그 전에 죽어. 밀라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된소리 발음의 단어들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만져보기만 하려구요. 그런데 밀라씨는 가슴이 절벽이고 근육은 발달한 편이라 흉골체부와 대흉근 파악에 가장 적합한 대상 같······!”
퍽 - !
밀라의 발달한 어느 근육이 아비스를 날려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푸른 하늘에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
- 작가의말
챕터 계산을 잘못해서 어제 분량에 넣어야 할 토막 글이 남았군요. 외전을 붙였는데도 분량이 적어.....ㅜ.ㅜ
이름으로만 잠시 출연했던 밀라와, 이름도 나온 적 없는 아비스입니다. 메칼로 용병단에는 이런 애들도 있어요. >_<
그나저나 9시간 6분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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