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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젠 님의 서재입니다.

콘베르토-conv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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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헤이젠
작품등록일 :
2016.03.15 21:55
최근연재일 :
2016.12.18 15: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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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글자수 :
479,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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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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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방황하는 일행[3] - 오스카 사무엘의 평화란, 이루어질 수 있을가

DUMMY

처음 겪어보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뭐였을까. 기사로서의 삶은 결코 행복한 적이 없었다. 검을 들었을 땐 전장에서 달리고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한 명의 사령관으로서 적들을 베고 승리를 이끌어내었다. 깊고 깊은 어둠속에 숨어 둘 중 유리한 진영으로 도망가려는 녀석을 강제로 끌어내었다.


아마도 그것이 사령관의 역할이고 사령관이 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첫 전투가 어디였을까. 아마 기사 시험에 합격하고 얼마 뒤에 일어난 일이였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괴물이란 소리를 들었고 성력의 발현을 깨우쳤다.


어쩌면 나의 운명은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무뚝뚝한 평범함이 묻어나는 기사로 말이다. 과거에 대해 회상한다고 해서 운명이 변할 리도 없고 말이다.


눈을 떴을 땐 마치 다른 세계 다른 공간이라 해도 좋을 만큼 기시감이 들고 괴상한 곳에 와 있다고 머리가 이해했다.


거기다 장소엔 인기척 하나 들지 않는 자신만의, 혼자만의 장소라고 느꼈다. 사라졌던 고독의 감정이 왜 이제 와서 반응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전혀 외롭지 않다.


보다 중요한 건 아마 이 장소 주변에 있는 ‘것’ 들이다.

성을 건조할 때 쓰는 돌 같은 게 잔뜩 쌓여서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들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으며 그 높이는 성 보다 한참 작은데 일정한 틈을 가지고 여러 개가 수없이 이어져 있었다. 투명한 유리가 곳곳에 껴있는 건 익숙한 광경이다. 성당에는 좀 더 화려한 신의 후광이라는 이름의 유리가 있지만, 칙칙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곳에 건물은 보통의 물건으로 보인다.


“여긴 대체 어디지?”


“현대라고 한다. 너의 눈엔 앞으로의 미래지.”


오스카의 혼잣말에 친구처럼 자연스런 대답을 해준 누군가가 상체는 누더기 망토를 뒤집어 쓴 채로 등장했다. 주변 배경과 매우 흡사한 모습에 오스카는 정체 모를 마을의 주민이라고 생각했다. 것도 잠깐이다. 이상한 낌새를 피부의 오싹함으로 깨닫고 즉시 검을 뽑았으나 줄기를 꺽은 꽃처럼 가볍다고 느꼈다. 허공을 붙잡는 손의 아귀에 눈으로 보았지만, 그 이유는 물체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내 검이.’


없다.


기절한 사이 누군가가 가져간 걸까. 혹은 눈앞에 나타난 수상한 자가 숨긴 걸까.


“넌 누구냐.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데려온 건 맞다만······ 그에 따른 조건이 부합되어 운 좋게 데려온 것이다. 이거 참, 오스카. 자네를 이 세계에 데려오는 건 매우 잘못된 행동이지만 단 둘만의 공간이 필요하단 건 절실히 원했던 참이다. 흥미롭다면 내 얘기를 들을 텐가?”


“듣도록 하지. 단, 이름을 말해라. 보나마나 내가 모르는 자일 터지만 기사에게 있어 성명을 나누는 건 기본예절이다.”


오스카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오른 손을 내밀며 말했다.


“벨리나 영지의 영주이자 기사. 오스카 사무엘 후작이다.”


“내 이름은 들으면 알 것이다. 주신교국을 한때 미워했던 자네라면, 사라카엘이라고 말이야.”


“사라카엘?”


당연히 이름을 듣고 기억해내었다. 주신교국이 신으로서 받드는 세 명의 천사. 인간이 아니며 인간 이상의 존재로 군림하는 신들이다. 주신교국의 교리에 걸맞은 천사들은 신으로서 칼반 대륙을 보살핀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정신적 지주이자 교리로서의 이야기.


오스카는 누더기 남자의 말은 무시하여 듣지 않은 거로 기억을 봉했다. 저런 남자가 설마 화가나지만 한 때, 우리라는 족속들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달라고 염원을 풀고 제물을 바친 존재가 저런 사람, ‘존재’ 가 아니라고.


당초 인간의 형태로 현현하고 있다는 진실에서부터 오스카는 멀어진 상태였다. 이제 와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진정한 평화를 받아드려 즐기고 있는 인간에게 설교를 한들 쓸데없는 짓이다. 싸움이라는 무자비한 단어는 잊은 지 오래이며 옵타이오 제국이 건국되고 급히 정리되기 이전까지도 무력이란 힘을 가진 자들 이외에 사람들은 이미 떠나간 과거이다.


전투도, 전쟁도 사라졌다. 제국이 건국되고 근 3년 동안 도적을 제외한 피를 흘리는 일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도적들은 사냥이라는 목적 하에 결행되는 일임으로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치안을 지키기 위한 행위.


게다가 여태까지도 황궁 꼭대기에 숨어 가면으로 정치를 하는 황제는 또 한명의 교리적 존재라는 사실을 떠나 운명을 괴롭히는 진실이라는 걸 오스카 사무엘은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데카르안의 부하이자 아슈나 제국을 추억으로 간직해 잊지 못하나, 이젠 옵타이오 기사로서의 운명으로 살아가려 하는 오스카에겐 이때야 말로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엘리나와 만난 인연도 옵타이오 제국 이였기 때문이라는 규율 변형 탓이다.


진실을 듣기 전까지는 그리 믿는다. 사라카엘도 뻔히 걱정하는 이유지만 파괴시키는 건 간단하다.


“사라카엘이라 했겠다. 그분은 천사다. 그분은 아슈나를 평화로 이끈 명예로운 천사다. 그에 비해 네놈은 현실에서 벗어나 괴리적 사상을 가져 그분 흉내나 내는, 타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곤 보기 좋게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거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비록 옵타이오 제국의 건국 과정은 암담하다만, 그것이 하나의 역사라고 한다면 나는 겸허히 인정한다. 이 세계가 비틀어지든 사라지든 모든 건 인간이 지켜야 할 운명이다. 천사라는 존재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죽은 영웅이 말했지. 그리고 나의 스승님이 말하셨지. 운명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시간이라고······.”


살짝 화가난 오스카가 자기도 모르게 어수선한 문장을 토로하듯이 말하자 누더기 망토를 쓴 남자는 왼 손으로 얼굴을 덮은 부분을 완전히 들어 올려 맨 얼굴을 보였다. 회색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연분홍빛보다 좀 더 하얀 빛이 감도는 피부가 눅눅하고 칙칙한 배경을 산뜻하게 파괴했다.


마치 신이 강림하기라고 한 것처럼.


건물들이 무너지고 하늘이 돌맹이를 맞은 유리창마냥 깨지면서 불타오른다. 밤에 활동하기 위해 밝히는 횃불 같은 밝은 빛이 아니다. 자체 속성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회색의 불꽃이 물결 문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한 순간에 사라진 불꽃 안에서 광활한 초록색 대지가 길게 늘어진 자연이 나타났다. 시각적으로 좁은 공간이라고 인식한 오스카는 갑자기 넓어진 공간에 대해 의문을 지녔으나, 부드럽게 눈을 뜨며 답을 말하였다.


“이곳은 꿈속이군. 간혹 이런 꿈을 꾸곤 했었지.”


“네가 말한 영웅의 꿈속이다. 나는 이전에 실패했었다. 제루엘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을. 그리고 그 뒤를 뒤바꾸려는 우리엘로부터 정상으로 구해내겠다. 두 번째로 그대를 택하는 것으로 운명을 바꾸겠다.”


영웅의 꿈? 라고 질문하기도 전에 누더기 망토를 전부 벗어던졌다. 손에서 벗어나자 회색 불로 타들어 버린 망토는 공기 중에 사라지고 망토 안에서는 사라카엘의 모습이 완전히 들어났다. 망토가 들려지며 서서히 펴지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웨딩드레스 같은 깃털의 날개가 회색 불꽃에 감싸이면서 온전한 형태로 변화하고 옷은 흑색의 갑옷으로 변했다.


다가 아니다.


다시금 변화한다. 초록색 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타오르면서 허물어진 성벽 비슷한 건축물이 땅에서 솟아나고 작물이 나듯 병사들이 나오더니 갑자기 피를 뿜으며 쓰러져버린다. 어디선가 기사를 태우고 멋있게 등장한 흑마는 옆구리에 화살을 맞고 넘어지고 기사는 홀로 일어나 덤벼드는 병사들을 베어 넘겼지만 이내 소형 발리스타를 맞고 죽었다.


이런 형상 전쟁은 오스카가 감각적으로 멀다고 느껴지는 원근에서도 일어났다. 무기를 들고 죽고 죽이는 행위를 본 오스카 사무엘은 이것이 어떤 꿈인지 알았다.


“과거의 전쟁을 재연한 거군.”


남자, 천사는 말한다. 물결치는 날개는 펄럭거리며 불꽃 잔상을 펼쳐댔다.


“나의 이름은 사라카엘(Saraquael). 천사이자 신. 영혼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신으로서의 사명이다. 그러다보니 가브리엘과 견줄 만큼은 아니 여도 스스로 꿈의 세계를 증축하고 이질 시킬 수 있다. 예전에 내가 본 장면을 기억해 자네의 꿈에서 재현시킨 형상이다. 어떤가. 동경하던 영웅 딜무드 란테라의 꿈속은. 반란군을 처치하기 전 날의 꾼 꿈이다.”


“영웅도 마음 아픈 삶을 살은 건가.”


시점이 돈다. 오스카는 전장과 달리 맑은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한창 싸우는 그곳이 어느 샌가 천장에서 한 편의 그림처럼 생생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이름 모를 병사가 기사의 검에 베여 죽었으나 피는 풀밭으로 흘러갔다.


“시선을 피하지 말거라. 이것이 현실이다. 영락없는 인간계이니라. 평화를 위해 싸우고 평화를 위해 죽는다. 각자 원하는 평화는 분명 다르겠지. 이상의 차이가 분명하게 깃드니 말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오스카는 사라카엘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괴로움을 표현한 영웅의 꿈은 다시 한 번 불타오르고 익숙한 풍경이 생성되었다. 어릴 적부터 영웅을 동경하여 기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 불렸던, 지금도 많은 생도들의 희망이 가득 찬 기사 시험장 이였다.


“이곳에서 꿈을 실현시켰지. 오스카 사무엘······. 그대의 신념과 가치관이라면 그렇겠지. 모든 걸 잃고 누구나 두려워하고 인정하는 최강이 되었지만 정작 공허해진 마음은 채울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동료라는 허울뿐인 이름의 물건만으로 공허함 역시 거짓으로 채우고 있었지. 나를 도와라. 그리고 제루엘을 무찌르고 우리엘을 저리해라. 그럼.”


그럼······.


오스카의 입술은 옅은 음성으로 사라카엘의 끝말을 따라 말하고 있었다.


“그대가 바라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게 해주겠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야 있었다.


“지······ 진정한 평화.”


오스카의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의 중단만이 아니었다. 사회의 이상적 성공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이다. 자신도 알고 있었고 전쟁이 사라진 세계만큼이야 말로 모든 이가 바라는 평화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슈나 제국 말기에도 내부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죽어나갔다. 평화를 구원한 입장에선 옵타이오 제국은 더 없이 감사하겠지만, 오스카는 모든 걸 잃었다.


그는 혈족부터 귀족이기 때문이다. 황제에 의해서 패배하고만 아슈나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카트 공국이 바레타 가문에게 먹히면서 죄 없는 민간인들이 죽어나갔고, 듣기론 언 지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어디 그뿐인가. 도적들은 끝도 없이 나타나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간다.


아니, 애초에 가난한 자가 없기를 바란 평화야 말로 옵타이오 제국 평화에 무릎 꿇은 오스카의 기원이다.


“나는.”


오스카는 다짐했다. 더 이상 희생을 낳지 않겠다고. 순응하고 이대로라도 평화를 유지하자고. 과거의 구 영웅 로칸의 탈옥과 평화를 위한 싸움이라 선언한 전쟁도 무시한 채 지금의 평화라도 간신히 유지하자는 그 신념은 무너진다.


단단한 바위라도 아주 작은 물방울이 스며들어 동상의 과정을 거치면 부셔진다.


“너에게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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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방황하는 일행[4] - 피바람 부는 마을 16.11.06 238 2 14쪽
» 방황하는 일행[3] - 오스카 사무엘의 평화란, 이루어질 수 있을가 16.10.30 325 2 12쪽
110 방황하는 일행[2] - 셈피텔날리스sempiternális 사체르săcer 트라마trāma 16.10.25 269 2 11쪽
109 방황하는 일행[1] - 제 3단계 16.10.16 194 2 9쪽
108 황녀 선택[3] - 1차전 끝. +2 16.10.10 254 2 7쪽
107 황녀 선택[2] - 여자는 무서운 법이다. 16.10.09 204 2 13쪽
106 황녀 선택[1] - 귀족들의 보이지 않는 전투 16.10.03 249 2 7쪽
105 엘프의 숲[5] 16.09.26 1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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