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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베르토-conv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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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헤이젠
작품등록일 :
2016.03.15 21:55
최근연재일 :
2016.12.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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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9,751

작성
16.09.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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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엘프의 숲[2] - 전 황제.

DUMMY

공백의 공간.


공백이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이라는 뜻이다. 즉 공간이란 개념은 그 자리에 존재하되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엇박자 손으로 둥글게 감싸면 공기를 쥔 손 모양이 된다. 살짝 틈을 열어 안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눈으론 안 보이는 공기뿐이다. 그것을 조금 인식이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보일 것이다.


새하얀 공간에 편안히 부유하며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하는, 그 어떤 깨끗함보다 하얀 세 쌍의 날개와 몸에 착 달라붙은 드레스를 입고 세 개의 반지를 한 손에 전부 낀 천사 가브리엘이 보인다. 고정되지 않은 두둥실 떠다니는 창문 밖에는 한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소녀가 낡은 나무집에 홀로 피신해 있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겐 나이와 모습엔 어울리지 않는 창을 들고 있었는데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걸 봐서 쓰는 법을 모르는구나 하고 입모양을 낸다. 그때 뒤편에 창문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책 한권 없는 장, 맨 위에 못으로 고정한 것처럼 반 쯤 눕혀졌음에도 넘어지지 않았던 7개의 못생긴 조각상 중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늑대 이후 또 다시 들린 나서는 안 될 소리에 시늉을 관두고 몸을 조금 돌린 뒤 고개만 뒤로 꺾어 상태를 확인했다. 즐거운 듯한 미소는 변함없이 유지했고 호기심이 잔뜩 묻은 얼굴이다. 공백의 공간에선 중력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깨진 파편 조각들은 그대로 무중력채로 떠 있는다.


한숨과 동시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인간을 지배하는데 배척해야 하는 방해물들인 엘프를 통제에 두기 위해 제루엘을 꼬셔 만든 괴물들 중 하나가 죽어버렸다. 인간보다 강한 성인 엘프조차 진심으로 싸워도 지는 마당에 도대체 왜.


“개들이 죽은 걸까.”


라고 하지만 가브리엘은 간과한 결과다. 겉으론 인간은 엘프보다 약하다는 게 수치상의 진실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세대로서의 성장은 정 반대로 진화했다. 인간은 갈수록 강해졌고 엘프는 약해졌다. 그럼에도 명백한 차이는 있었으나 일부 인간들은 성장의 한계를 넘어 턱없이 강대해졌다.


무려 록시안에게 죽은 괴물은 오히려 마땅한 적이라 볼 수 있다. 잠시 생각 끝에 결론에 도달한 가브리엘은 제루엘이 계획했던 스토리대로 세계가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엘프와 인간이 다시금 만나선 안 되는 것이다.


“큰일인데······ 천사의 비밀을 엘프들은 알고 있잖아. 우리엘 그 개년이 알려줘서 난처하단 말이지. 인간이 오메룸 숲에 발을 들인 계기도 그 년과 관련이 있는 걸까나.”


가브리엘은 한때 4대 천사로서 천상계를 수호하고 관리하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의 속한 대천사다. 우리엘이 선택된 신으로서 지상계로가 믿음이란 소망 아래 실체하는 상징물로 활동하고 있을 때 같이 내려간 제루엘과 악의적인 협정을 맺었다.


인간들을 다스리게 해줄 테니······.


“어······?”


깨진 조각상 바로 옆 조각도 순간 몸통에 금이 났다. 하나 부셔진 것 정도는 미소를 유지했지만 연이어 깨지려고 하는 완성품을 보자니 슬슬 화가 나려 하는 거 같았다.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몸이 반으로 갈라져버린 검은 피부의 못생기고 강한 괴물은 다량의 피를 내뿜으며 숲 바닥에 쓰러졌다. 그 중 반쪽은 늪으로 풍덩하며 가라앉았다. 무게에 의해 역으로 올라온 늪 속에서 뱀이 튀어나왔다가 검사가 휘두른 검에 반으로 잘려 죽어버렸다.


불필요한 살생이다. 같은 검사로서 누구나 그러겠지만 성력을 다루고 자신만의 검의 길을 거닐는 동료이되 아닌 자들에겐 들을 충고다. 소드 유저나 비기너들에겐 작은 걸 베었다 만으로 신기해하겠지만.


“나에겐 적수가 못 되. 무려 회색의 상징이 준 힘이니까.”


조각상은 깨졌다. 무참하게.


검사는 검에 묻은 찐득한 피를 털어내도 안 떨어지자 나뭇잎들을 여러 장 떼어다 닦았다. 그나마 닦여지는 피를 보고는 헛구역질을 할 뻔 했다. 선명하고 털어도 말끔하게 털리는 인간의 피가 차라리 그립다고 먼 옛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그렇지만 ‘그’ 자와 계약한 이상 함부로 사람이란 생명체를 죽여선 안 된다. 그랬다간 자신보다 강한 그에게 형벌을 받는다. 상상하기도 싫은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있어선 안 될 망상들을 잊혀냈다.


이대로 다시 영혼을 잃어버리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된다.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회귀했음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해 아쉽지만 검사는 한때 용병으로서의 각오로 다짐한다.


버텨내리라.


반드시 버텨서 그녀를 다시 만나리라.


괴물의 시체를 넘어 숲 안쪽으로 떠는 기색 하나 없이 집 앞마당인 냥 걷는다. 두려움 따윈 전쟁터에서 버린 지 오래이며 긍정의 선택 덕에 3분 더 오래 산 원한이 성장한 영혼을 탄생시켰다. 다시 살아난 지금, 검사는 더한 각오를 지닌 채 나아간다.


“페르타의 이름을 걸고, 나 황제가 맹세한다.”


젊은 황제는 하늘을 마주한 채 맹세한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도래했다. 멸망한 제국을 다시 세우리라.”


헛된 망상을 맹세했다. 그는 여전히 죽은 영혼이나 다름 업었다. 육신은 새로운 영혼을 얻어 살아 숨 쉬는 세포 활동을 개시했으며 모든 감각이 배 이상으로 애처롭게 움직인다. 왜냐고? 신체를 지배하는 영혼이 더 이상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갈망하는 전쟁터에서 죽어 되살아난 검사는 죽음을 경험하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아 한다.


구세대의 경험이 신세대를 짓누른다는 이론. 어쩌면 이 검사야 말로 그 전부류를 망가트릴 수 있는 유일한 개체일 것이다. 신의 장난이 아닌 진심이자 진실로서 창조한 병기.


전 페르타 제국 황제 제롤린 온 아바즈.


그에 앞에 한 귀인이 있다. 옷차림은 어느 왕국 부럽지 않은 고귀한 재질의 옷을 입었고 맞춤형 옷인지 하의 또한 품격을 자아내었다. 정갈한 머리칼이 수많은 여성을 홀릴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에도 전 황제는 눈 하나 껌뻑이는 모순된 칭찬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나운 얼굴을 지으며 질문하듯이 말했다.


“나의 주인이여. 날 왜 찾아온 것인가.”


주인이되 주인이라 정하지 않았다. 가 된다. 전 황제는 원통함에 주인을 죽이지도 못한 채 황제라는 과업 하에 주인을 인정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지만 전 황제는 강한 자를 주인으로 인정만 했지 진정한 주인으로서 받아들일 무지한 선택은 하지 않았다.


만약 주인이란 자가 페르타 제국을 영광으로 이끌어주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도 있겠지만, 그는.


천사는 그럴 권한은 없다. 애초에 하지도 않겠지.


사라카엘은 선택받은 인간계의 신으로서 믿음을 소망하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지만 우리엘이나 제루엘처럼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싫어하는 어중간한 천사이다. 영혼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천사가 인간이라는 껍질 속에 담긴 영혼은 일절 취하하지 않는다.


영혼 상태로 완전히 변화한 전 황제에겐 은총을 가한 거 같지만 말이다. 그의 눈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기사가 된다.


“너의 영혼은 나에게 있다. 지상계에 생명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신에 은총이 닿은, 일절 생전과 관계가 사라진 영혼은 동조되는 조각상이 있다. 네가 죽인 괴물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부셔져 형체를 잃어서 조각상이 부셔져도.”


전 황제는 체념했다. 결국은 힘으로서 지배하기 곤란한 부하는 목숨을 위협하여 다룬다 이건가 하고 자결하려 했을 때 사라카엘은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고치면 그만이다. 나에겐 누트와 같은 부활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시대에서 말해봤자 모르겠지만 그저 도서관 한편에 남겨져 있는 고대 지식으로 알아두도록.”


어렴풋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신물이 난 사라카엘은 자리를 떠났다. 전신이 갑옷에 방어된 신체를 가진 전 황제, 기사이자 검사는 괴물이 나온 숲 속으로 전진한다.


나아가면 빛이 있을까. 그러면 그 빛은 무엇을 줄 것인가. 그토록 바라던 다섯 왕국의 통일을 이루었건만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세계가 앞으로 진화를 한다면, 운명대로 흘러간다면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헛수고다.


제국을 건국했음에도 운명대로라면 무너지리라.

그렇기에 나는.


“영웅을 모방하고자 한다.”


한때 세상에서 고독히 외친 그 남자를 따라 하고자 한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이뤄가야 한다고 외친 영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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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방황하는 일행[4] - 피바람 부는 마을 16.11.06 238 2 14쪽
111 방황하는 일행[3] - 오스카 사무엘의 평화란, 이루어질 수 있을가 16.10.30 325 2 12쪽
110 방황하는 일행[2] - 셈피텔날리스sempiternális 사체르săcer 트라마trāma 16.10.25 269 2 11쪽
109 방황하는 일행[1] - 제 3단계 16.10.16 195 2 9쪽
108 황녀 선택[3] - 1차전 끝. +2 16.10.10 255 2 7쪽
107 황녀 선택[2] - 여자는 무서운 법이다. 16.10.09 205 2 13쪽
106 황녀 선택[1] - 귀족들의 보이지 않는 전투 16.10.03 249 2 7쪽
105 엘프의 숲[5] 16.09.26 189 2 9쪽
104 엘프의 숲[4] - 기사결의 +2 16.09.25 428 3 10쪽
103 엘프의 숲[3] - 제롤린vs오스카 +1 16.09.22 422 2 9쪽
» 엘프의 숲[2] - 전 황제. 16.09.15 24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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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구조 완료[7] - 16.09.07 292 2 8쪽
99 구조 완료[6] - 돌아온 이혼의 기사. 16.09.05 210 2 9쪽
98 구조 완료[5] 16.09.04 224 2 9쪽
97 구조 완료[4] - 기사의 승리 +2 16.08.31 320 2 8쪽
96 구조 완료[3] 16.08.27 215 2 7쪽
95 구조 완료[2] 테라와 마주하다 16.08.22 206 2 12쪽
94 구조 완료[1] +1 16.08.20 236 2 8쪽
93 정처없는 영혼[4] 16.08.20 180 2 8쪽
92 정처없는 영혼[3] 이종족의 소녀 16.08.17 217 2 8쪽
91 정처없는 영혼[2] - 황제 16.08.16 283 2 10쪽
90 정처없는 영혼[1] 16.08.12 249 2 10쪽
89 랜 성 토벌전[5] 작전! 혼란을 틈타 기습하라! +2 16.08.10 34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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