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0,987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3.02.07 12:02
조회
37
추천
2
글자
11쪽

146. 나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

DUMMY

숲 한 가운데에 난 길.

길 위로 물건을 한 가득 실은 여러 채의 수레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길게 늘어선 수레의 행렬 주변으로는 갑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서있었다.


마치 수레를 호위하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이들의 정체는 기사였다.

상아색의 망토를 두른 그들의 가슴팍에는 나무뿔사슴의 머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나무뿔사슴은 요엠가움 대평원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종으로 순진무구한 눈망울과 다르게 평원을 지배하는 종 중 하나였다.


나무의 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나무뿔사슴의 뿔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방어 수단이며 동시에 공격수단이 된다.

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은 뿔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무뿔사슴은 공격할 때는 뿔을 뾰족하게 모으기도 하고 방어할 때에는 넓게 퍼뜨려 적의 공격을 막기도 한다.


튼튼하고 날렵한 다리와 더불어 무거운 뿔을 자유롭게 놀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목의 근육까지 갖춘 나무뿔사슴은 요엠가움의 수호수 중 하나로 꼽힌다.

왕의 허락도 없이 요엠가움의 수호수를 함부로 기사단의 상징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

즉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다.



한대륙의 통일을 두고 서로 활발한 침략전을 벌이는 3국.

그 중에서 적국 프로토케의 침략으로부터 요엠가움을 수호하는 기사단.

나무뿔사슴단이 바로 이들 기사단의 이름이다.


"디르앤 페룸."


대열 후미에 위치한 기사 한 명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다른 기사들도 체격이 건장한 편이지만 지금 이 남자는 어지간한 기사보다 위로나 옆으로나 두 배는 큰 몸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않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눈치를 본다고 조용히 있었던 탓에 모두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남자의 호명에 다른 기사들이 서둘러 디르앤 페룸을 찾았다.


"네!"


오래지 않아 다른 이들보다 선이 가는 기사 한 명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부단장님. 저를 부르셨다고요?"


투구를 뚫고 튀어나온 목소리는 시도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기사들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귓가를 부드럽게 감싸며 울리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완벽한 악기와도 같았다.


"디르앤. 행군 중 대열에서 이탈하던데."

"그게... 바퀴가 말썽을 부리는 수레가 있어서 그걸 고친다고 잠시... 커억!"


디르앤이 채 대답하기 전에 곰의 앞발만큼 커다란 부단장의 주먹이 그녀의 흉갑을 후려쳤다.

흉갑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 일어나라."


갑옷에서 난 소리를 대충 들어도 그녀가 받은 충격이 적지 않았을 텐데 디르앤은 부단장의 말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나 다시 그의 앞에 섰다.


"우. 우리가 하. 하는 일이 무엇이지?"

"대현자님께 바칠 선물의 운반입니다."

"그래. 그런데."


부단장은 주먹을 들어 다시금 그녀의 흉갑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걸 아. 아는 녀석이."




"대열을 이. 이탈해?"


터어엉


마지막 한 방은 이전처럼 묵직했는지 잘 버티던 디르앤은 다시금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네가 이탈한 자리를 누군가 습격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게..."

"네. 네년의 동료들이 죽. 죽으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 죄송합니다."

"됐다. 가서 쉬어라."


한바탕 디르앤을 상대로 잡도리를 한 부단장은 그녀를 보내고는 주위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어서 쉬어라. 쉬면서 정비하는 거 잊지 말고. 혹여 행군 중 문제가 생기면 그 녀석은..."


말끝을 늘이며 그는 다른 사람 얼굴만한 주먹을 들어 주변에 흔들어보였다.

다른 단원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휴식이고 자시고 수레를 모는 인부들을 닥달하기 시작했다.

숲 속으로 멀어지는 그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쿵쿵 거리며 땅이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


대열에서 빠져나와 숲 속을 한참을 거닐던 디르앤은 적당한 바위 위에 걸터 앉아 투구를 벗었다.

그녀가 투구를 벗자 투구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진한 갈색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웠으며 황금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빛을 내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땀에 절은 그녀의 풍성한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후우..."


혼자 한숨 돌리고 있으니 그녀가 걸어온 길을 따라 누군가 빠르게 다가왔다.

정체는 조금 전까지 그녀를 혼내던 부단장이었다.

커다란 몸이 저렇게까지 가벼울 수 있다는 것도 또 저렇게까지 소리도 없이 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작 이를 지켜본 디르앤은 놀라지 않았다.


부단장은 디르앤이 걸터앉아 있는 바위 앞에 서더니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던졌다.

이리저리 곱슬거리는 흑발이 사방으로 뻗쳐있었으며 부리부리한 이목구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냉랭하기 그지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의 얼굴은 순박한 편이었다.

특히나 그의 갈색 눈동자는 누구 하나 제대로 때리지 못할 거 같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을 하고 있었다.


투구를 벗어던진 부단장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괜... 괜찮아? 아까 내가 너무 세게 때렸지?"


조금 전까지 디르앤을 죽일 듯이 으르렁 거리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인 태도 변화였다.

그런 부단장을 향해 디르앤이 말했다.


"아니야. 페트라."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런 목소리에 꼭 어울리는 차분한 말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훨씬 더 세게 때렸어야 했지."

"그치만..."

"넌 나무뿔사슴 기사단의 부단장이잖아. 그에 걸맞는 권위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계속 말했잖아."


조곤조곤 타이르는 디르앤의 모습에 페트라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나 정말 이런 거 하기 싫단 말이야. 꼭 누구를 때려야 해?"

"하..."


답답함에 디르앤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대화였다.


페트라 으누어.

그는 굉장히 뛰어난 기사였다.

검술은 이미 단장급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그 완성도나 이해도가 뛰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을 초월했다는 상징이자 기사에 오르기 위해서 필수로 다룰 줄 알아야하는 '히펠'.

페트라는 뽑아낼 수 있는 히펠의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히펠을 다루는 기술 역시 정교했다.


실제로 나무뿔사슴단의 단장인 그녀의 아버지와 붙어도 페트라는 지지 않을 정도였다.


"페트라. 잘 들어."


디르앤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조금 더 단호함이 엿보였다.


"기사는 누군가를 지키는 존재가 아니야. 오히려 그 본질은 힘으로 다른 이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약탈자에 가깝지.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은 잘 알지만 네가 기사인 이상 언젠가 넌 누군가를 상처 입혀야 해."


뛰어난 기사 페트라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약점이라고 한다면 그는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이다.

단순히 꺼린다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는 절대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는다.

누군가 부딪혀 오면 막아내기만 할 뿐 절대로 공격하는 법이 없다.


정말 웃긴 것을 이런 어설픈 정신머리로 그가 부단장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저 묵묵히 막는다.

언제까지?

공격해오는 상대방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래서 붙은 이명이 '페룸의 양자'다.

강철을 가문의 상징으로 하고 있는 페룸가의 사람보다도 더 강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면서 사람들이 멋대로 페트라를 페룸에 입양시킨 것이다.


하여튼 상대보다 기량이 뛰어나지 않다면 꿈도 못 꿀 짓을 페트라는 해냈고 그 결과 그는 요엠가움을 대표하는 기사단 중 하나인 나무뿔사슴단의 부단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디르앤은 확신하고 있었다.

소극적으로 상대 검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사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꾸준히 그의 유약한 정신을 단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큰 눈망울에 물기를 가득 담은 거대한 남자가 말했다.


"하. 하지만 난 누. 누구도 해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 걸."


말을 더듬는 페트라.

그가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막기만 했다고 상대가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뿐이지 그의 강철과도 같은 방어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얕은 수, 비겁한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너도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잖아. 우리가 손에 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야만 해.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야."

"..."


그녀의 단호한 주장에 페트라는 아주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여기서 그를 더 설득하려 해봤자 되려 역효과다.

디르앤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래. 꼭 해치고 싶지 않다면 해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적이 나타나면 제압은 할 수 있어야지?"


그제야 페트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치지 않고도 제압하는 연습을 하자. 우리."

"... 응."

"자 그러면..."


말을 이어가려던 그녀는 문득 페트라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를 보는 거야? 하늘에 뭐가 있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새! 새가 지나가길래. 제. 제. 제압! 그거 연습하자며?"


아주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페트라의 얼굴에는 경악이라고 할지 흥미라고 할지 모를 애매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었다.


디르앤은 그가 보고 있던 곳을 살폈다.


"저게 뭐지?"


페트라의 시선이 향했던 하늘을 살피니 그곳에는 뜬금없이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점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디르앤은 히펠을 끌어 올렸다.

눈에 집중된 히펠은 곧 점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반투명한 무엇인가에 올라타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 마법사?"


사람이 하늘에 떠있기 위해서는 최상급의 기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남은 선택지는 마법사라는 뜻인데 저렇게 따로 활동하는 마법사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단이네."


나무뿔사슴단에서 3인자를 맡고 있는 그녀다.

당연히 이단 심문관 경험도 있기에 그녀는 곧바로 그녀가 해야할 일을 했다.


적당한 두께의 나무 줄기 하나를 꺾은 그녀는 곧 히펠을 끌어올려 온 몸에 둘렀다.

몸을 채운 히펠은 곧 나무 줄기 주변을 감쌌다.

붉은색을 띄는 히펠이 둘러진 나무 줄기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했다.


디르앤은 그대로 히펠을 두른 나무 줄기를 정체불명의 마법사들을 향해 던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4.01.09 32 0 -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8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7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