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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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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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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4.09.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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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글자
17쪽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5)

DUMMY

햇빛이라곤 한 줌도 들지 않는 암흑. 그나마 그 무거운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벗겨주는 건 수명이 다해가는 희미한 백열등뿐이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족쇄를 양손과 양발에 하나씩 매단 채로, 드렌턴은 두터운 철창 너머 자신을 찾아온 손님의 얼굴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경계를 감추지 않는 근위병 둘에게 나가 있으라 손짓하며, 마누앙은 헌병대 지하감옥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오랜 친구를 내려다본다.


“그나저나, 내 혐의는 뭐야? 차기 국가원수를 반란으로부터 구해낸 죄?”


“······.”

마누앙의 먹색 눈이 어둠마저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조용히 드렌턴의 조소를 뚫는다. 그는 드렌턴의 입에서 더 이상의 웃음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국가기물파손이다.”


“하! 그건 별 수 없구만! 혐의를 인정하마. 벌금 내면 되나?”


밀폐된 공간에서 드렌턴의 걸걸한 웃음이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간다. 하지만 얕은 불빛 아래서도, 마누앙은 오랜 친구의 눈만큼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네가 믿든 안 믿든, 그날 이후로 너에게 한 가지 말해주고 싶었던 게 있었다.”

섭정은 드렌턴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날. 내가 모든 참상이 끝나고 왕자의 침실로 달려갔던 것은, 그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도,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어. 반쯤 미친, 가슈펠라르가의 그 애송이가 왕가의 씨를 말려야 한다며 발광하는 걸······, 말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드렌턴의 눈이 번뜩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왕자와 바꿔치기한 내 피붙이가 그렇게 난자당한 게 네 책임이 아니라고? 너와는 상관없다고?”

그는 무거운 목소리를 딛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단단한 족쇄는 그에게 단 한 걸음도 허용하지 않는다.

“왕의 목을 내려친 그 자리에, 그 선두에 있던 게 바로 너 아니었나? 그저 귀족의 대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왕은!”

점점 커지는 드렌턴의 목소리를 찢으며, 마누앙의 짧은 호통이 지하를 울린다.

“왕은······, 빛을 잃었었다. 시간을 더 주었다면, 그는 카나반의 모든 걸 자신의 광기와 집착 아래로 끌어당겼을 테지. 그건 근위대장이던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았나······?”

드렌턴은 대답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그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은 마누앙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역시나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그의 광기를 그와 우리의 대에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광기가 귀족들 사이에서 역병처럼 번져나갔지. 특히 왕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가슈펠라르 가문 애송이들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놈들은 왕의 피는 물론 왕의 색과 왕의 냄새가 섞인 것이라면 뭐든지 도륙하려고 하더군. 내가 본궁에 뿌려지는 피가 과하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마누앙이 철창으로, 한 걸음 다가선다.

“그 광기에 네 아이까지 희생될 줄은 몰랐다. 그걸 막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한다. 하지만 동시에, 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왕가의 핏줄을 살려야만 했는지, 나는 너의 그 저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왕이라는 존재가, 왕이라는 혈통이, 너에게, 그리고 이 공화국에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가져야 했나? 여긴 왕국이 아닌 공화국이야. 애초에 왕은 상징성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였잖나?”


“그것은 너희들이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낭. 근위대로서, 그리고 기사로서 우리의 왕을 향한 맹세는 단순히 상징성을 향한 것이 아니야. 대전쟁이 끝나고 그 ‘상징성’에 불과한 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하자고 한 자들은 다름 아닌 너희 귀족들이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표정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드렌턴의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결국 너희들은 애초에 왕에 대한 기대와 각오가 그 정도였다는 것. 그뿐이다.”


“······그런가. 네가 붉은 나무의 씨앗을 ‘그 녀석’에게 보낸 것 역시 도박이기도 하겠군.”


“물론.”

드렌턴의 낮은 웃음소리.

“하지만 너희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오길 기대하고 있다.”


“과연 어떨지.”

마누앙은 몸을 돌려 빛의 입구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의문 한 가지를 떠올리고 다시 뒤돌아섰다.

“그런데, 그 벤이란 녀석은 누군데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준 거냐?”


그에 드렌턴은 낄낄거리며 경박하게 웃기 시작했다. 마누앙의 기분을 충분히 문지를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웃는다.

“벤 말이냐?”

그는 웃음을 계속 곁들이면서, 이렇게 답했다.

“공화국의 친구가 될 녀석이다.”




***




충분히 밝은 달빛 아래로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반짝인다.

군데군데 보이는 인가와 작은 밭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원을 가로지르며, 낡은 군용차량 한 대가 적막을 찢고 달리고 있었다.


“언제쯤 도착하려나아아-?”


“평야만 지나면 이제 곧이라고, 십 분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지루함에 거듭 굴복하여 우는 소리를 하는 지나에게, 운전대를 잡은 오즈카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조수석에 앉았었던 그녀가 비좁다는 이유로 뒷좌석으로 도망친 바람에 오즈카는 덜컹거리는 어둠 속을 홀로 내달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지만, 계속 지나가 징징대는 것을 보며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지겨우시면 어렵지 않은 길이니, 운전 한번 해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이, 무슨 소리야. 명색이 근위대인데, 무면허 운전을 할 수는 없지이! 나도 저엉말 교대로 운전을 해주고 싶은데,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걸 어쩌겠어~? 응?”


“······.”


“아, 오즈카 지금 짜증났지?”


“안 났습니다.”


“짜증 났잖아.”


“안 났습니다.”


“이래도 짜증 안 나?”


“안 났숨뮈다. 구만 하시에요.”

지나가 뒤에서 자신의 양 볼을 구기는 바람에 오즈카는 괴상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만다. 그걸 듣고 또 자지러지며 깔깔 웃는 그녀를 뒷거울로 바라보며, 오즈카는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얘는 이렇게 흔들리고 시끄러운데 잘도 자네.”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그녀의 샛노란 시선이, 오른쪽 뒷좌석에서 머리를 숙인 채 꿈나라를 헤매는 로빈에게 닿는다. 그의 머리는 차체가 덜컹거릴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좌석의 가운데 쪽으로 기울어져 고정된 모양이었다.

지나는 조심스럽게 등받이 가운데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검붉은 로빈의 앞머리가 자체의 떨림에 따라 흘러내려 그의 눈을 가리려고 하자, 지나는 살며시 손빗으로 그것을 넘겨주었다. 그녀의 얼굴엔 어느샌가 또다시 새빨간 혀끝이 없는, 순수한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거친 엔진소리와 흔들리는 진동 안에서도 그녀의 귀엔 로빈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고, 그가 내뱉는 호흡의 파동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속눈썹, 굵게 내려오는 콧날과, 입술을 차례로 바라보던 그녀는,


“그렇게 좋습니까?”


라고 갑자기 들려온 오즈카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무, 뭔, 무슨, 뭔 소리야? 뭔 소리하는 거야, 너어?”


운전석의 뒷거울로 오즈카의 붉은 눈과 마주치고 만다. 모든 것을 그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지나의 하얗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달아오르고 있었다.


“뭘 부끄러워하십니까, 로빈은 좋은 남자입니다.”


오즈카의 입꼬리에, 보기 드문 미소가 걸려있다.


“누가 좋다고?! 뭔 소리래? 좋기는 뭐가 좋아, 이런 약골을 누가 좋아한다고!”


눈빛만큼은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지나.


“하지만 술자리에서 들어보니 동기들도 대충 다 아는 눈치던데요. 파견에서 돌아온 뒤로 지나가 로빈을 보는 눈빛이-”


“우와아악!”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지나가 뒤에서 뛰어들더니 오즈카의 입을 가린다. 하지만 동시에 오즈카의 시야도 가려버렸기 때문에, 당황한 그의 운전대를 잡은 손이 크게 흔들렸고-,


“악!”

갑자기 흔들린 차체 덕분에 유리에 뒷머리를 강하게 박은 로빈이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아오, 뭐야? 뭔 일이야?”


뒤통수를 부여잡고 간신히 눈을 뜬 그의 앞에,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오즈카와 옆에서 잔뜩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고 있는 지나가 보인다. 대답이 없는 그들을 한 번 번갈아 보고는, 로빈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지나 너, 내 얼굴에 뭔 짓 했지? 또 낙서했냐? 너 지금 웃음 참는 거 다 알거든? 똑바로 보시지?”

로빈은 재빨리 지나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 지나의 뺨이 더욱 달아오른다.

“응? 너 열 있냐? 왜 이리-”


“뭐하는 짓이야아 이 새꺄아아!!!”


영력이 실린 손바닥으로 이마를 얻어맞은 로빈이 뒷좌석을 나뒹굴었고, 그사이 지나는 재빠른 몸동작으로 조수석에 넘어온다.


“야이, 너야말로 갑자기 왜 때리고 지랄이야?!”


“닥쳐! 시끄러!”


졸지에 앞뒤를 한꺼번에 얻어맞은 로빈의 신음만이 달빛을 따라 흐른다. 지나는 미세한 웃음을 지으려는 오즈카를 강하게 노려보고는, 발을 위로 올려놓은 채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셋은 어느새 평야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었다.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숲에 들어서자, 더 이상 달빛의 지원은 어려웠기에 오즈카는 전조등을 올리고 속도를 늦추었다. 도로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게 확연하게 느껴질 때쯤, 작은 검문소 하나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바리케이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두 명의 병사.


“정지. 신분증을.”


근위대 제복을 봤음에도 그들은 경례도, 어떠한 존경의 시선도 내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로빈은 그들이 군기가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사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영력처럼 피부로 느껴지는 날 선 경계심.

그야말로 최전방의 전운을 그대로 묻힌 듯한 얼굴.

일찍이 어떠한 병사에서도 저런 얼굴은 보지 못한 로빈이었다.


“통과.”


바리케이드가 열리고, 오즈카가 가벼운 목례로 답했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살벌하네.”


지나의 솔직함이 배어나온 감상. 로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전선을 유지 중인 지역이니깐.”


숲속을 한참 더 달리며, 그들은 같은 표정의 병사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여러 번 통과한 후에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치 숲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지어진 듯한, 거대한 요새.

카나반 최동북단이자 최대의 격전지인 베르달의 중심거점, 바크달룬 성.

숲과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나무들과 바위, 이끼들이 마치 위장막처럼 성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심지어 성벽 중간중간에 성벽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위태한 모습으로 자라난 나무도 보였다.

암흑이 삼킨 숲에서 차량의 진입소리가 들리자,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정체 모를 짐승의 가죽을 갑옷을 대신하여 걸치고 있는, 괴상한 차림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가 운전석으로 다가와 내뿜는 특유의 적의와 분위기는, 밤눈이 어두운 로빈도 그가 기사임을 알게 해주는 예리함이었다.


“신분증과 목적.”


“왕실근위대 소속입니다. 파견요청을 받고 왔습니다만.”


오즈카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남자의 거친 시선이 빠르게 차 내부를 훑는다. 손에 쥔 신분증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보아, 아마도 파견에 대해 미리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성문을 열어라!”


영력이 담긴 우직한 목소리가 숲과 성문을 뒤흔든다. 수도인 아르다르의 것만큼은 못하지만, 충분히 그 역할을 할 것임엔 의심이 가지 않는 육중한 성문이 곧바로 철이 구겨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열리기 시작한다.

로빈은 그 광경을 보며, 고작 자기들 셋 덕분에 이런 소란을 벌였다는 기분이 들어 살짝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던지듯이 되돌려주는 신분증을 받아들고 오즈카는 또다시 가볍게 목례로 답한다. 역시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성을 둘러싼 숲 덕분인지, 성내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고 웅장했다. 하지만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거리 곳곳엔 질척한 웅덩이가 즐비했고, 넓은 길과 광장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같은 표정으로 주변을 순찰하는 병사무리만이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본궁으로 이어지는 언덕의 중간에서, 결국 일행은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차로 올라가는 건 포기해야 했다.


본궁은 가파른 언덕의 끝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언덕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지형인지라, 로빈은 저곳에서 백 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다면 천 명의 병사로도 돌파할 엄두를 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을 둘러싼 뾰족한 첨탑은 대부분이 망루로 사용되고 있었고, 가문이나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그 모습은 흡사 버려진 폐궁과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신분증과 목적.”


“아오, 진짜!”


마침내 폭발하려는 지나를 가까스로 제지하며, 오즈카가 신분증을 내민다.


“파견요청으로 온 왕실근위대 소속 기사입니다.”


마침내 궁으로 들어서자마자 셋은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고 마는데, 대합실의 초입에서 후줄근한 민무늬 셔츠를 입은 노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다짜고짜 앞장서는 노인. 로빈과 지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어차피 대합실을 포함한 음침한 궁내엔 어떠한 볼거리도 없었기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노인이 그들을 끌고 간 곳은 어떠한 치장도 되어있지 않은 작은 나무문이었다. 하지만 그 양옆을 지키고 있는, 짐승의 털을 둘러싼 두 명의 기사를 보아, 일행 모두가 그 안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을 대신 열어준 노인의 덕분인지, 이번에는 신분증과 목적을 요구받지 않고 쉽게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을 서재가 그들을 맞이한다. 그나마도 중앙의 커다란 탁자와 그 위를 덮은 거대한 지도 덕분에 세 명이 들어서기에도 턱없이 비좁아 보였다.

그 끝에서, 책상 위로 발을 올린 채 턱을 괴고 이쪽을 노려보는 남자가 있었다.

덥수룩하게 기른 검은 수염과 그에 못지않게 너저분한 검은 머리. 분명 몸은 다부져 보였으나 늘어진 태도엔 허술함이 엿보인다. 검게 그을리고 거친 피부와 대비되는 시퍼런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리가 핀 듯 한기까지 느껴지는 시선에선 결코 호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수염과 근육으로도 가릴 수 없는 중년의 주름살 사이로 상처 하나 허락하지 않은 그 모습은 마치 완벽을 지향하는 무인의 모습, 바로 그 자체였다.


“왕실근위대소속 소위 아뮤르 지-”


“경례 따위 하지 마라.”

대표로 신고하려는 지나를 목소리만으로 제압하는 남자. 영력이 실리기는커녕 기사라는 판별조차 어려운 완벽한 ‘감추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지나의 혀마저 얼려버린다.

“이곳엔 계급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용사와 그를 지휘하는 자, 그 지휘하는 자를 지휘하는 자,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있을 뿐이다. 계급이 없으니 경례도 필요 없다. 명령과 복종이면 충분하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지나에게 먼저 닿는다.

“네가 아뮤르겠고, 저 뒤의 덩치가 스파인. 그리고 너는······-”


지목을 받은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편다.


“옛, 로빈슨 듀켓입니다.”


“그런가, 네가 로빈슨인가?”

차갑지만, 분명한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

로빈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한 그의 시선을, ‘근위대에 있어서는 안 될 녀석’이라는 식으로 해석한 탓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다시 들려온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로빈은 감히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네 아버지와는 인연이 많았지.”


작가의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비평, 감평받은대로 초반부분을 얼른 수정해야할텐데

연참 후반이나 연참이 끝난 후에야 가능할 것 같네요.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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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6막) 왕의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3) +16 14.09.26 2,864 69 16쪽
42 (6막) 왕의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2) +18 14.09.25 3,032 73 14쪽
41 (6막) 왕의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1) +20 14.09.24 2,442 63 21쪽
40 (막간) 구원 +18 14.09.23 2,469 59 10쪽
39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7) +10 14.09.23 2,258 63 21쪽
38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6) +11 14.09.22 2,655 93 20쪽
37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5) +17 14.09.21 2,540 81 19쪽
36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4) +14 14.09.20 2,619 73 21쪽
35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3) +11 14.09.19 2,643 84 25쪽
34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2) +23 14.09.18 2,692 96 19쪽
33 (5막) 그를 위하여, 그녀를 위하여 (1) +20 14.09.17 2,784 84 19쪽
32 (막간) 붉은 장미 +7 14.09.16 3,094 93 11쪽
31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7) +15 14.09.16 2,898 94 19쪽
30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6) +9 14.09.15 3,030 81 22쪽
»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5) +10 14.09.13 2,838 86 17쪽
28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4) +11 14.09.12 2,942 86 29쪽
27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3) +13 14.09.11 2,869 81 21쪽
26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2) +12 14.09.10 3,051 87 22쪽
25 (4막) 붉은 나무의 씨앗 (1) +9 14.09.09 2,774 86 25쪽
24 (막간) 소녀는 올려다보고, 그는 내려다본다 +4 14.09.08 2,804 93 14쪽
23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7) +5 14.09.07 2,975 83 18쪽
22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6) +5 14.09.06 2,896 83 21쪽
21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5) +7 14.09.05 2,701 87 18쪽
20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4) +11 14.09.04 2,742 85 20쪽
19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3) +16 14.09.03 2,915 95 18쪽
18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2) +8 14.09.02 2,608 85 27쪽
17 (3막) 피로 물든 깃발을 꽂아 넣고, 웃는다 (1) +18 14.09.01 3,313 94 21쪽
16 (막간) 일상생활 속 일상성연구회 +16 14.08.31 2,764 86 12쪽
15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7) +11 14.08.30 2,936 88 20쪽
14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6) +2 14.08.28 3,123 84 16쪽
13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5) +11 14.08.27 2,798 90 25쪽
12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4) +15 14.08.26 3,234 97 18쪽
11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3) +3 14.08.25 2,968 101 15쪽
10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2) +6 14.08.24 3,599 102 21쪽
9 (2막) 그리웠던 악취, 생소한 향기 (1) +14 14.08.23 3,529 102 18쪽
8 (막간) 캉페온 광장의 노을 +4 14.08.22 3,943 102 13쪽
7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6) +9 14.08.22 5,428 158 18쪽
6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5) +6 14.08.21 3,987 128 22쪽
5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4) +11 14.08.21 4,753 123 24쪽
4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3) +6 14.08.21 5,193 141 14쪽
3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2) +26 14.08.21 6,177 164 28쪽
2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1) +32 14.08.20 8,722 152 26쪽
1 (여는막) 그와 그녀의 한방울 +17 14.08.20 15,698 2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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