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바르타무스
쓰러진 바르타무스
바르타무스의 권능이 한 차례 출렁거렸다.
녀석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점점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치열한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악마도 인간과 같이 유흥에 약하다. 거기다 감정의 높낮이 격이 달랐다. 광분과 격노가 구경꾼을 휘어 감자 분위기가 극도로 달아올랐다.
소멸과 탄생이 말하는 진실을 아주 명백하게 실행시킨다.
탐욕에 눈이 멀고 귀가 닫혀 자신의 몸뚱이가 잿가루로 변해 가는 걸 인지하지도 못 한 채 고함을 내지른다.
고위 악마들의 다툼에는 이렇듯 꼬이는 벌레들이 무수히 많다.
이것은 이들에게 죽음의 축제나 다름없는데도 환장하며 달려든다.
휘말리기도 하지만 재수 좋은 놈은 주변에 휘날리는 권능을 뒤집어쓴다. 악령이 1품 악마의 권능을 뒤집어쓰는 순간 단번에 하급 악마로 업그레이드된다.
악령과 악마의 차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1고리에서 가장 하층민 취급받는 것이 악령이다. 악령은 절대 악마의 지휘를 누릴 수 없다.
그런 악령이 1품 악마의 권능을 뒤집어쓰는 순간 하급 악마가 되어 버리니 악령 처지에서 어찌 목숨을 걸지 않겠는가.
게헤나에서 지위가 절대적이다.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놈이 무엇을 하든 하위에 있는 놈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도덕적인 가치관이나 양심적인 생각과 행동의 틀을 벗어난 극악한 상황을 만든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상황을 벗어나려 할 것이다.
이것이 그런 기회다.
권능을 풀풀 날리는 바르타무스 뒤쪽과 양옆에 거의 모든 악령, 악마가 포진되어 있고 권능 따위 일도 날리지 않는 내 주변에는 혹이라는 일말의 기대하고 멍하니 서 있는 녀석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것마저도 고시를 맞고 비명 몇 번 지르다 소멸한다.
이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없다. 소멸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1품 악마의 권능은 차원 에너지를 막아 낼 정도로 막강했다. 그래비티 포스로 중력을 거는 것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놈은 중력을 받을 만큼의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모습은 5m짜리 거구의 몸뚱이지만 생명체가 아니고 단지 본신의 형상을 권능으로 구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의 환경까지 중력의 영향을 받기에 아주 안 받는 것은 아니지만 5m짜리 거구가 받는 중력 밀도치고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솔직히 에너지 낭비가 훨씬 더 큰 비효율적 공격이었다.
연신 번개 줄기가 내려치고 절대 영도의 강풍과 헬오어 금속까지 절단할 수 있는 날카로운 바람이 격투장 안에서 섞여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속에서 인간 몸뚱이로 버틸 확률은 제로보다 더 낮은 확률이다. 격투장에는 고위급 악마는 전혀 없다. 1품 악마와 네필림의 대결은 희귀한 것이 맞긴 하지만 고위급 악마에는 처신과 자존감이 훨씬 크다. 더더욱 교단끼리의 대결에서는 서로의 자존감이 허락지 않아 일부러 결투를 관람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교단임을 증명하기 위해 각 교단에서 특별히 나온 몇몇 1급 악마가 있긴 하다. 그들조차 격투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들 주변에는 잡몹 하나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바르타무스가 공격 위주라면 나는 방어적인 입장만 취했다. 바르타무스도 억울한 입장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천사의 기원을 떠나 이번 일에 말려든 것은 루시퍼가 뒤에서 꾸민 일이었다.
루시퍼의 사주를 받은 멜페르는 바르타무스가 가장 가지고 싶은 아이템을 건네주는 조건으로 나를 유인하게 했다. 사실 그와 나 사이에 기브 앤 테이크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바르타무스가 나에게 정확하게 상하권 모두를 가져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도 나도 상하권이 나누어진 책이라는 사실을 계약 이후에나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루시퍼의 입김이 닿아서 바르타무스가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지만 확증은 없다.
-콰쾅
거대한 번개가 내 몸을 향해 떨어져 내렸지만 이제 느낌도 거의 없다. 포른의 결집력이 자기장으로 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 결집력만 더 높여주는 꼴이었다.
바르타무스는 접근전을 허락지 않기 위해 내가 접근할 때마다 번개와 강풍을 어지럽게 눈앞에 깔았다. 이 회오리바람은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최강의 토네이도 두서너 배 정도 되는 위력이다.
주변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박살 내며 바람의 날은 절대적으로 예리하여 무엇이든 잘라 버린다. 만약 이런 토네이도가 미대륙에 발생했다면 웬만한 중견 도시는 믹서기에 넣어 갈아 버리는 것과 같은 파괴력이다. 이런 토네이도가 지금 눈앞에 대여섯 개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면 이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낌이 올 것이다.
옛날 같으면 펄스 쉴드를 최대로 치지 않았다면 눈도 뜨지 못할 강풍이고 산소는 물론 주변의 기체는 모조리 빨아올려 거의 진공 상태를 만들어 버릴 정도다.
거기에 수억만 볼트의 번개가 내려치는 데다가 닿는 순간 분자까지 냉각돼버리는 절대 영도의 냉기가 지면에 깔려 있다. 그 냉기는 토네이도에 휘말려 주변을 싹 다 얼려 버렸다.
1고리의 환경은 불타는 지옥이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고 수시로 바닥 곳곳에 균열이 발생하고 그곳에는 끓는 용암이 녹은 암반과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가도 가도 끝도 없이 펼쳐진 1고리 환경이다. 진정한 지옥은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1고리의 악령은 늘 이런 지독한 곳에서 영원을 경험한다. 그래서 목숨 걸고 발악하는 것이다. 조그만 기회라도 닿는다면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물론 지상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비관만 수만 년 이상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늘과 같은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다. 소멸 따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죽을지 알면서도 모닥불 안으로 날아드는 불나방과 같은 녀석들이다.
로블룩스의 검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파동을 담을 수 있다. 그것이 권능이든 신성력이든 과학적 테두리 안에서 발생하는 것 이상의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 에너지를 포함해서 모두 품을 수 있다.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검에 전력이 충전되고 전압이 갈수록 치솟아 올라간다. 그런데도 로블록스 검의 외관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건 천사의 무기 글로디 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슬슬 스피드를 올렸다. 바닥을 치고 나는 수준이 아니다. 연결된 동작에서 오는 빠르기이기 때문에 순간 이동과도 다르다. 상대의 측면에서 보면 내 모습이 뱀처럼 보일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니 잔상이 미처 본체를 따라오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인간의 몸뚱이라면 압력에 의해 으스러져 버릴 정도겠지만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내가 움직이는 속도는 빛의 속도에 약 30%에 해당한다. 인간의 몸이라면 몸에 걸리는 압력에 의해 찌그러져 주먹만한 고깃덩어리를 변할 것이다.
거대한 토네이도를 향해 날아간 직후 로블록스에 검에 응집된 전력을 일시에 방출하며 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거대한 번개 줄기가 토네이도를 반으로 갈라 버렸고 번개 줄기는 일직선으로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은 모조리 증발하여 버렸다.
초고압 전력이다. 이는 자연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전압을 가진 사상 최강의 번개였다.
내려진 토네이도 안에는 바르타무스가 있었다. 녀석은 그 번개를 정통으로 맞았다. 검을 들고 돌격해 오고 있었기에 접근전으로 붙는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원거리에서 번개를 날리리라고는 놈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본신이 반으로 갈라지고 권능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반으로 갈라진 바르타무스를 보는 악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미쳐 날뛰던 토네이도도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이며 번개를 내려 뿜던 검은 구름도 순식간에 걷혔다.
'권능이 전혀 줄지 않았다.'
몸이 반으로 갈렸지만, 생각보다 받은 데미지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르타무스는 원소 마법의 대가입니다. 같은 원소 공격으로는 거의 데미지를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놈의 자존감을 밟아 주는 효과는 있었으니까.
반으로 갈린 몸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붙었다. 그리고 몸 주위로 소용돌이가 거세게 치기 시작했다.
【권능 수치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장난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놈은 화가 났고 이제 본 능력을 꺼내려 한다. 주변으로 악령들이 갑자기 벌떼같이 달려든다. 권능이 흩날리기에 한 조각이라도 받아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 것이다.
회오리에 닿은 놈들은 완전히 갈려 나갔다. 그래도 달려든다.
회오리가 걷히고 전혀 다른 놈이 나타났다. 키 30m의 거인이다.
악마는 이처럼 권능을 늘이기 위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신체를 만들 수밖에 없다. 거대화는 악마 본연의 특징이다.
거대해 지면 해 질수록 더 많은 권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거대화하자마자 바르타무스의 몸에서 흩날리는 권능이 저 멀리까지 날려 갔다. 운 좋게 권능의 조각을 집어삼킨 악령은 그 자리에서 악마로 진화한다.
진짜 본신을 가진 완벽한 악마로서다. 이래서 이들이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대한 검은 지팡이는 완벽히 부활했다. 그 끝에 움켜잡힌 검은 구슬에서 진득한 권능이 신경을 거스르게 하고 있다.
난 단지 놈이 거대화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거대화되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질 수밖에 없다.
언노운은 놈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권능이 출렁거리자 나에게 사인을 보냈다.
아크 입자포는 출력 시간이 필요하다. 놈이 느긋하게 회오리로 몸을 감싸고 있을 때 허공으로 날아올라 차원 에너지를 고압축 시켰다. 지금 모인 차원 에너지는 전략 핵폭탄의 두 배 정도 위력을 내는 양이다.
아크 입자포가 왜 악마에게 치명적인가 하면 폭발할 때 원자가 플라즈마를 넘어선 고 이온화 되면서 방출하는 에너지는 태양의 코로나에서 뿜어지는 에너지의 4배 정도가 된다.
그 에너지는 모든 것을 정화 시키는 불꽃이 된다. 악마가 왜 태양 빛을 싫어하는지는 과학적으로 분명히 설명된다. 플라즈마 급 온도 앞에서는 권능도 버티지 못하고 타기 때문이다.
종이가 타듯 권능도 탄다. 인간이 핵폭탄을 발명했을 때 제일 골치 아파했던 것이 바로 악마들이다. 그런데 반대로 천사의 신성력은 태양의 플라즈마에는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반대로 빛이라고는 일절 없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는 신성력이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한다. 각자의 장단점이다.
녀석이 거대한 지팡이로 나를 가리키려 할 때 바로 디멘션 아크 입자포가 발사됐다.
나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줘 버렸다. 언노운이 위치를 잘 계산해서 아크 입자포가 바르타무스를 통과해 뒤쪽 지혜 교단의 악마가 모인 곳을 정확히 관통하도록 했다.
거대한 태양이 떴다. 게헤나 제 1고리에서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거대한 태양은 일순 찬란한 밝은 빛을 내질렀고 그 빛에 닿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초고압을 넘어선 위력에 원자는 이원화되었고 다시 이온화되는 순간 플라즈마 이상급의 절대적인 에너지를 방출했다.
인간이 만든 핵폭탄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전략 수소폭탄에 거의 2배 이상의 폭발력을 지닌 거대한 에너지가 1고리에서 터져 나왔다.
주변에 모인 악령과 악마는 깨끗이 증발했고 지혜 교단이 모인 곳에서 거대한 물방울 고리처럼 둥근 에너지 구체가 형성되더니 엄청난 폭음 소리와 함께 땅거죽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깡그리 뒤집혔다.
수초 뒤 후폭풍이 대지의 용암을 허공으로 퍼 올렸고 하늘에서 곧 수박만 한 용암의 소나기가 지면을 강타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차원 에너지의 반을 한꺼번에 방출한 효과다.
아크 입자포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언노운은 즉시 바르타무스의 권능을 찾았다.
【녀석은 아직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맞고도 버텼나?'
【워낙 가까운 거리라 바르타무스의 몸을 관통해 버렸기에 오히려 피해가 적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은 폭발 폭심지에 있었던 악마들입니다】
언노운이 정확히 계산해 입자포가 닿는 곳을 지혜의 교단 악마들이 모인 곳으로 했으니 그곳은 이미 초토화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주변이 증발한 상태였다.
심판관인 악마는 살아 있었다. 그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권능이 타면서 나오는 연기였다.
그는 9고리 출신 악마답게 다소 태연한 모습이었다.
"승패가 난 것 같지 않습니까?"
담담한 내 말이 심판관이 말했다.
"지금 확인하고 있다. 네가 만약 신성력을 사용했다면 이 경기는 너의 패배다."
"그렇다면 더욱더 확실하게 조사해 주십시오. 전 신성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속에선 바르타무스가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한 번 쓴 기술이 다시 통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러진 바르타무스 가슴 부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검은 연기가 계속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도 큰 타격을 입긴 입은 모양이다.
심판관이 쓰러진 바르타무스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바르타무스 주위에 여러 개의 소환진이 그려지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