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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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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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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_미사랑_갈등

DUMMY

천군훈련소 수애천에서는 세 명의 무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최종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은 세 명은 누구를 주인으로 모실지 결정할 수 있었다.


진유는 일찌감치 자신의 주인을 진백성으로 정했다.

“완벽주의자에다 절대 선(善)을 주장하는 자네에게 딱 맞는 분일세.”


마로가 맞장구쳤다.

그는 딱히 누구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울은 수애천에 온 첫날부터 오로지 미사랑 바라기였고, 진유는 진백성단으로 마음을 굳혔으니 자연스레 영진성단이 남았다.


여라함도 품격 높고 위대한 선신인 것은 알지만, 영진성의 막중한 임무를 잘 보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마로의 시선이 말없이 검을 닦는 한울에게로 움직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뻣뻣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썩은 고기라도 먹은 얼굴이로군.”

“파소연랑님이 곧 대명천으로 가신다네.”


“뭐? 그렇게 빨리?”

마로 역시 파소연랑을 스승으로 삼았었기에 몹시 서운했다. 존경하는 무사였고, 영진성 우지개와 여라함 다음으로 좋아하는 천인이었다.


파소연랑과의 인연은 보충 훈련을 받을 때부터였다.


스승을 선택하는데 진유는 진백성단의 호위대장를 찾아갔다. 한울은 당연히 암흑성단의 호위대장 파소연랑을 찾아갔다.


영진성의 호위대장은 수애천에서 나간 이후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않았으므로 누구를 가르칠 형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영진성 우지개를 수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인간세와 요귀의 공간까지 감시해야 하므로 여력이 없었다.


파소연랑은 마로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런 스승이 곧 대명천에 든다니 가슴에 찬바람이 휭하니 지나갔다.


*


수애천의 작은 응접실에서 파소연랑과 한울이 마주 앉았다. 한울의 결심을 확인하는 자리이므로 마로는 문밖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미사랑님은 곧 암흑성이 된다. 여전히 그분을 연모하나?”

한울은 주먹 쥔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아무것도 갖지 못해. 마음이 커지면 자네만 힘들어질 거다.”

“알고 있습니다. 지켜드릴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혼이 소멸하는 한이 있어도 지킬 수 있느냐?”

“네. 제 혼이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한울은 당당하게 약속했다. 끝까지 미사랑을 지키겠다고.


파소연랑은 미사랑에게 닥칠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태왁의 시간도, 파소연랑의 시간도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암흑성 태왁이 알려준 단서는 미미했다.

‘미사는 힘든 결정을 하게 될 거야. 그때 자네가 있으면 좋으련만. 나도 없고, 자네도 없으니 그 애를 위해 혼을 걸만한 무사를 찾아야 하네. 후계자를 위해 능력 있는 비서와 출중한 호위무사를 맺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


한울이 나가고 마로가 들어왔다.

파소연랑에게는 마로도 아끼는 제자였다. 그는 진중하고 조용하며 기다릴 줄 알았다.


살아있을 때도 신선도를 수련하던 인물이었고 힘의 균형과 중용을 중시했다. 영진성단에 걸맞은 인재였다.

그래서 파소연랑은 마로에게도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었다.


“자네는 영진성단에 꼭 맞는 무사일세.”

“고맙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셔서.”


“지금까지 영진성의 호위무사가 관찰자였다면, 자네는 체탐인을 맡게.”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천선계와 인간세의 소식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특히 진유를 잘 살펴보게.”

“진유를요···?”


파소연랑이 염려하는 무사는 진유였다. 다른 호위무사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생의 경험이 지금의 성품을 만들었다.


진유는 사랑하던 여인이 죽게 된 것도, 왕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도 모두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는 진백성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주군을 완전한 빛으로 모시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마음이 여린 율명에게는 필요할지 몰랐다.

율명은 맑고 여리고 순수해서 누가 곁에 있느냐가 앞날을 결정지을 것이다.


마로가 진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파소연랑은 진유보다 더 염려되는 존재를 떠올렸다.


율명이 지나치게 아유라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렇다 할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어도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듯 답답했다. 그것을 옮길 방법도 없었다.


이대로 미사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


“저도 시험을 정했습니다.”


미사랑의 말에 태왁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박수염이 가리고 있어 표정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등골을 따라 찌릿 긴장이 흘렀다.


“그래, 뭘 하려고?”

“인간세의 정귀를 봉인하려고요. 정귀를 봉인하면 궤네도 안전할 테니까요.”

“봉인? 소멸이 아니고?”


“비록 사람에게서 태어났지만 정화되면 사람을 위해 쓰일 수 있을 거예요. 사람에게서 힘을 얻으니 사람을 위해 그 힘을 쓰게 될 때까지 봉인하겠습니다.”

“정귀와의 싸움이라···, 대단한 싸움이 되겠구나. 어디에 봉인하려고?”


“갈피를 만들었어요. 여기 봉인하면 암흑성단의 힘이 아니면 아무도 열 수 없습니다.”

미사랑은 갈피를 꺼냈다.


두 개의 삼각뿔을 하나로 맞물려놓은 모양으로 장구와도 비슷했다. 그 안에서 미사랑이 불어넣은 힘이 뭉클거렸다.

미사랑이 만들었으니 그 힘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태왁이 걱정하는 것은 봉인한다는 결심이었다.

‘무릇 잠긴 것은 풀리려고 하지. 빌미를 남기면 안 좋은 것을···.’


정귀라 해도 인간세를 무너뜨릴 만한 힘은 아니었다.

제대로 봉인한다면 더 이상 궤네가 힘을 잃지 않을 테니, 인간세가 파멸로 들어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암흑성 태왁은 미사랑을 축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암흑성단에 빛이 잠들고 밤이 찾아왔다.

해밀은 저녁 식사를 준비해 미사랑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넋 놓고 별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의 잔해가 띄엄띄엄 반짝이는 불씨처럼 보였다.


“저녁 드시지요.”

문 여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미사랑은 움직이지 않았다. 별의 무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너무 걱정하지 마, 암흑성단 식구들에게도 말해줘. 최대한 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일이 생기나요?”


미사랑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듯 꼼짝하지 않았다.

해밀이 가까이 다가가 헛기침하니 그제야 미사랑이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언제 들어왔어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미사랑이 벌떡 일어났다. 배를 쓰다듬으며 이마를 찌푸렸다.


“배가 많이 고팠단 말이에요.”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은 무언가요? 일이라니요?”

“응? 무슨 말? 내가 무슨 말 했어요?”

미사랑은 맑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해밀을 보았다.


해밀은 뭔지 모를 위기감에 목덜미가 시렸다.

“혹시···, 뭔가 보이시나요?”

“뭐가요?”


“천선계의 미래라든가, 차원 너머의 세계라든가···.”

“그럴 리가요. 내가 무슨 차원의 정수도 아니고.”

미사랑은 자신이 ‘차원의 정수’라는 말을 뱉고도 흠칫 놀랐다. 태연한 척 국물을 떠올렸다.


해밀은 눈썹 사이에 힘을 주고 미사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이상했어요. 멍하니 다른 곳만 쳐다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불러도 모르고 말이에요.”


미사랑에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부녹을 찾아냈을 때도 여라함님께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지를 않나, 시험이 끝나면 삼신성님이 부르실 테니 기다려야 한다는 둥 앞날을 아는 것 같단 말이죠.”


“그건 누구나 알 수 있죠. 시험이 끝나면 무결의 고리에 들어가시니 당연히 작별 인사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어감이 아니라니까요!”

해밀은 불안이 사라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동글동글한 체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통통 튀어 오르니 거대한 붉은 과일처럼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뭔가 어렴풋이 보이는 건 맞아요.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고 가끔 나도 모르게 알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돌아올지 흘러가는 방향이 보인 달까···.”


“그, 그건 혜안! 미사랑님! 축하드립니다! 누구도 갖지 못한 미래의 눈을 얻으셨군요.”

해밀이 넙죽 큰절을 올리며 꿇어앉았다.


“미사랑님은 어릴 때부터 용감하고 총명하셨습니다. 현명하기도 하셨죠. 이제 혜안을 얻으셨으니! 과연 역대 암흑성 중에서 가장 강력한 암흑성이라는 소문이 틀리지 않았군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미사랑은 쟁반에 담긴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일어났다.


해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감격에 겨워하는 동안, 미사랑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별의 무덤 저 건너편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려고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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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계_미사랑_갈등 22.07.22 3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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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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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천계_미사랑_훈련생 한울 22.07.21 34 1 12쪽
142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22.07.21 33 1 9쪽
141 천계_미사랑_기우 22.07.21 34 1 7쪽
140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22.07.20 34 1 8쪽
139 천계_미사랑_영천옥 22.07.20 35 1 8쪽
138 천계_미사랑_차원의 정수 22.07.20 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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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사로잔_무성산 은신처 22.07.18 42 1 12쪽
130 사로잔_빛의 환상 22.07.17 42 1 11쪽
129 사로잔_선사 하날 22.07.17 4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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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사로잔_새날호와 다찬호 22.07.15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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