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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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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
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7.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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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DUMMY

암흑성단의 초록 숲에 빛이 환하게 비쳐들었다.


어린 미사랑의 맑은 기합 소리가 잠든 아람바를 깨웠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도 수련을 거를 수 없었다.

그녀가 검과 창을 휘둘러 황금빛 궤적을 만들어내면 천인들도 즐겁게 바라보았다.


태왁의 호위무사인 파소연랑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제자의 기합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에 앉아서도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잘 들렸다.


미사랑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암흑성단을 지킨 무사답게 머리카락이며 수염이 하얗게 빛났다. 눈가에는 주름이 새겨졌다. 깊은 주름은 웅숭깊은 삶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오늘도 힘이 넘치시는군.’


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차를 따르는데, 기합 소리는 사라지고 새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요 속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언제 들어왔는지 미사랑이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을 숨기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기척도 없이 다니시는군요.”

“스승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지요.”

“어떤 스승인지 참 좋은 분을 두셨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승님!”


파소연랑은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저 눈빛은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반짝거릴 테니까.


“오늘 수애천에 가시죠?”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천군훈련소에는 구경거리가 없을 텐데요.”

“마음먹기 따라 다르죠. 어디서나 찾으면 재미가 있더라고요.”

미사랑이 싱긋 웃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어떤 구실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미사랑이라면 바닥을 뚫고라도 그곳에 나타날 테니까.

차라리 조용히 데려가는 편이 나았다.


“스승님이 수애천에 가시는 건 차기 호위무사를 탐색하는 거잖아요. 그럼 제 호위무사가 될 테니 저도 봐야죠.”

“어련하시겠습니까. 출발 준비를 하시죠.”


“전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사랑이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제야 그녀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수애천에서 사용하던 훈련복이었다. 낡아서 헤진 데다 빛도 바랬다.


‘대체 저런 옷은 어디서 구하셨담.’

파소연랑은 낡은 훈련복에서 시선을 돌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


천군훈련소 수애천은 장엄관문 가까이 있었다. 노각부줄에서 천선계로 이어지는 장엄관문을 지키는 역할도 함께 했다.


수애천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훈련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영력이 깃든 무기를 사용하기에 훈련받지 않은 천인에게는 위험한 곳이었다.


미사랑은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달라진 것이 없나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자주 오지는 않아도 이전 모습을 기억하기에 실망하여 콧잔등을 구겼다. 열 명 안팎의 훈련생이 새로 왔고, 수련장이 조금 더 넓어진 정도였다.


수련장 담장을 따라 두리번거리다가 옷 짓는 천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새로 온 훈련생들을 위해 훈련복을 지어오는 길이었다.


“미사랑님, 오늘은 수애천에 뜨셨네요?”

“응. 여긴 어떤가 하고.”


천인들은 미사랑이 입은 옷을 보고 쿡쿡 웃음을 흘렸다.

“미사랑님, 옷을 지어 입으시지요. 그게 언제 적 훈련복인가요?”

“왜? 이거 낡아 보여도 길들어서 편해.”


“미사랑님은 편하실지 몰라도 제 눈과 마음이 안 편해요. 저희도 손을 움직여야 사는 재미가 있지요.”

“그런가? 그럼 생각해볼게.”


그 시각, 수련장에서는 신입 무사들이 무시궁을 배우고 있었다.

무시궁은 줄도 없고, 화살도 없는 무기였다. 영력으로 화살을 만들어낸다. 화살의 세기와 속도는 모두 활을 쏘는 주인이 조절했다.


처음 무시궁을 접한 훈련생들은 가늘고 짧은 화살을 만들어냈다.

빛이 되다 만 화살을 보이지 않는 시위에 얹는 것도 어려웠다. 어쩌다 성공해도 화살이 픽픽 발 앞으로 떨어졌다.


계속된 연습으로 화살이 조금 길어졌으나 위력은 제자리였다. 과녁까지 닿으려면 멀었지만 제법 모양을 갖추어갔다.


미사랑이 새 훈련복을 구경하고 막 몸을 돌렸을 때 한 개의 화살이 당겨졌다.


순간적인 영력의 폭발로 화살은 창검처럼 거센 모양이 되었다. 영력도, 방향도 조절하지 못하니 빛의 창검은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했다.


미사랑은 재빨리 옷 짓는 천인들을 밀어내고 화살을 잡으려 돌아섰다. 힘과 힘이 맞지 않아서였을까.

창검 같은 화살을 잡았지만 이미 귓바퀴를 스쳐 간 다음이었다. 그녀의 귀에 피가 맺혔고, 손바닥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수련장에 있던 모든 천인과 훈련생들이 숨을 멈추었다. 장차 암흑성이 될 미사랑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화살을 쏜 훈련생은 사색이 되어 얼어붙었다.


미사랑은 손에 잡힌 굵직한 빛의 화살을 내려다보았다.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와! 처음인데 이렇게 강한 영력을 끌어내다니···!’


그녀의 손에서 화살은 빛으로 돌아갔다. 미사랑은 옷 짓는 천인들을 살펴보았다.

“괜찮아?”

“예, 예. 저희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사랑님 귀가···.”


“이거? 스친 거야. 금방 사라져.”

그 정도는 잠시 기다리면 말짱해질 것이다. 구태여 신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미사랑은 스승 파소연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스승이 걱정하지 않을 테니까.


연단에 앉아있는 파소연랑을 발견하기도 전에 훈련생 하나가 끌려왔다.

잔뜩 겁에 질려 끌려온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책임자인 훈령사도 한쪽 무릎을 굽혀 앉으며 허리를 숙였다.

“송구스럽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제 책임이 큽니다.”


미사랑은 괜찮다고 말하려다 잠시 멈추었다.

그의 엄청난 영력에 감탄한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넘어갈 문제도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 없었다면 옷 짓는 천인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암흑성이라는 위치는 천계의 기대와 자부심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훈련생을 내려다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오늘 처음 무시궁을 써본다고?”

“예.”

넋이 나간 훈련생을 대신해 훈령사가 대답했다.


미사랑은 이마를 긁적였다.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사이 귀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대로 놔두면 다른 누군가 벌을 내릴 텐데···. 어쩐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드니 연단에 앉은 파소연랑과 눈이 마주쳤다. 스승은 태연한 얼굴로 제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았다.


‘제가 결정하라고요? 과연 스승님답군요.’

미사랑은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점잖게 뒷짐을 지고 목을 가다듬었다.


“내게 상처를 입혔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내일모레 무시궁 시합에서 최고점을 내 거라.”

“예? 시, 시합이라고요?”

훈련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오늘 처음 배운 무시궁으로 최고점을 내라니. 그것도 단 이틀 만에.


훈령사도 어리둥절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일 미사랑님이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훈령사가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미사랑이라면 터무니없는 조건은 걸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훈련생도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다리만 떠는 것이 아니라 손까지 떨었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일그러졌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걷는지 끌려가는지 모를 정도로 비틀거렸다.


연단에 앉아 미사랑을 지켜보던 파소연랑이 일어섰다.

“내일모레 시합이 기대되는군.”


나란히 앉아 함께 지켜보던 수련관이 빙긋이 웃었다.

“여하튼 못 말린다니까요. 무슨 생각이신지.”

“저 신참에게 좋은 약이 될 것이오. 그럼 우리도 내일모레 봅시다.”


수련관이 파소연랑을 배웅하며 미사랑을 돌아보았다.


미사랑은 이미 연단 아래로 옮겨와 무시궁을 살폈다. 불쌍한 훈련생은 정신을 반쯤 내려놓고 수련장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신참의 마음이야 어떻든 내일모레 시합이 기대되는 것은 수련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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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6 0 10쪽
144 천계_미사랑_차원의 방문자 22.07.21 34 1 11쪽
143 천계_미사랑_훈련생 한울 22.07.21 35 1 12쪽
»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22.07.21 34 1 9쪽
141 천계_미사랑_기우 22.07.21 34 1 7쪽
140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22.07.20 35 1 8쪽
139 천계_미사랑_영천옥 22.07.20 35 1 8쪽
138 천계_미사랑_차원의 정수 22.07.20 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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