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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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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3,745

작성
22.07.2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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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천계_미사랑_영천옥

DUMMY

‘영천옥이라···. 지도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미사랑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암흑성단의 지도를 허공으로 불러냈다.


해밀이 저녁 식사를 갖고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검소하게 차린 밥과 나물이었다.

미사랑은 밥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일단 한 수저를 입에 퍼 넣고 해밀의 소매를 붙잡았다.


“해밀, 율과 여하는 무슨 벌을 받아요?”

“율명님은 선대 삼신성이 남긴 지혜서를 베끼고 있지요. 여라함님은 시련의 동굴에서 침묵 수련한답니다.”

“시련의 동굴? 거기는 보기에는 예뻐도 아주 쓸쓸하던데. 언제 끝난대요?”

“글쎄요. 스스로 나올 때까지가 아닐까요?”


해밀은 쯧쯧 혀를 차며 어린 미사랑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장난을 좋아하는 삼신성은 어떤 역사서에도 찾지 못했다. 움직이면 사고이니, 그때마다 여라함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벌써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해밀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라함님이 시련의 동굴이라니···. 그렇게 아름다운 분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무슨! 여하가 아름답다고요?”

미사랑은 밥을 떠먹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체구를 가진 해밀이 보일 듯 말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미사랑은 과장된 움직임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아, 그렇죠. 영진성 후계자니까 여하도 아름다워야죠. 그렇지만, 난 우지개님이 제일 멋져요. 그분만큼 아름다운 분은 어디서도 못 봤어요.”


“그야. 영진성님이니까요.”

“해밀, 영진성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요?”

“그렇게 태어나셨잖아요? 당연한 걸 왜 물으십니까?”

해밀은 입술을 작게 오므리고는 삐죽거리며 방을 나갔다.

어린 미사랑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아름답다고?’

우지개가 한 말이 숟가락에 담겨 미사랑 앞에 놓였다.


영진성 우지개를 처음 보았을 때 숨이 막힐 정도였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니.

그 후에도 미사랑은 눈을 빛내며 우지개를 보고 또 보았다.


우지개는 호탕하게 웃었다.

‘미사. 영진성이 왜 아름다운지 아니?’

‘그렇게 태어나셨잖아요?’


‘그렇지 않아. 영진성은 균형과 조화를 다루는 신성이야. 암흑성과 진백성의 사이가 좋고, 삼신성이 서로 아끼고 도우면 영진성의 모습도 조화를 이루지.

빛과 어둠이 조화롭다는 건 이 세계가 균형을 맞춘 거니까. 하지만, 암흑성과 진백성이 대립하면 영진성도 일그러진단다.’


‘그럼, 주다님과 태왁님의 사이가 좋아서요?’

‘그래. 그러니 너도 여하가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도와주렴.’

‘네. 약속할게요. 여하의 모습이 내 손에 달렸네요! 헤헤.’

어린 미사랑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우지개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렇게 부탁하셨는데, 여하를 곤란하게 했구나. 나란 녀석은 참···.’


미사랑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멍하니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미사랑은 아침 일찍부터 해밀을 찾아 문이란 문은 다 열어보았다.


파소연랑의 방을 정리하던 해밀을 발견하자 다짜고짜 뛰어들었다. 파소연랑은 암흑성 태왁을 수행하느라 미리내로 떠나고 없었다.


“해밀! 나 영천옥 입구 좀 알려줘요.”

해밀은 책과 문구를 정리하며 미사랑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직접 알아내야 합니다. 설명해도 찾을 수 없어요. 미로 같은 곳이라.”

무엇이든 보여주는 지도에도 영천옥 입구는 나오지 않았다. 입구도 모르는데 어떻게 슬픈 영혼을 찾지?


미사랑은 해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해밀도 영천옥에서 왔어요?”

“아니오. 날 때부터 천인이어서 아쉽게도 못 가봤네요.”


“음. 그럼 많이 쓸쓸하겠네요.”

“쓸쓸하다니요?”

“추억이 별로 없을 거 아녜요? 천사로 파견된 적도 없잖아요? 노각부줄도 지난 적이 없고, 영천옥에도 머문 적이 없고, 오로지 여기서 그 긴 세월을 지냈잖아요?”


미사랑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눈빛이 반짝 빛났다.

해밀은 오랜 경험으로 그런 눈빛은 지극히 경계해야 할 신호임을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미사랑이 따라서 한 발 다가갔다.

“같이 추억거리를 만들어볼까요?”

“오, 아니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하지만 파견 나가는 천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잖아요. 그럴 때 무척 쓸쓸해 보이거든요. 한 번쯤 천사가 되고 싶죠? 그렇죠?”


미사랑이 다른 장난을 치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험, 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해밀은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


‘여하튼 못 말린다니까. 언제 보셨대? 내가 그렇게 쓸쓸해 보였나.’

천사를 동경하긴 했지만 그런 속마음까지 보였다니.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으로는 미사랑이 어떤 추억거리를 만들까 상상해보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괴한 일일 것이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지금이 가장 안전하다. 결론은 언제나 똑같았다.


*


영천옥은 거대한 혼의 집합소였다. 정화의 기간을 거쳐야 할 영혼이 모여 있었다.


씻김을 끝내고 정화된 혼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염라부에 머물기도 하고, 인간세에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영천옥 꼭대기 대명천에서 수행하는 영혼도 있었다.


어린 암흑성이 찾아야 할 슬픈 영혼이란 정화 기간이 필요 없는 깨끗하고 맑은 혼임에도 스스로를 영천옥에 가둔 혼이었다.


‘언제까지 입구를 찾느라 헤맬 수는 없지!’

미사랑은 호기롭게 영천옥 담을 훌쩍 넘었다.


우람한 개심수가 빼곡히 자리 잡았고, 그 가지마다 혼이 매달렸다.

사시사철 잎이 넓고 푸르러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선선하고 맑은 기운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개심수는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았다.

마음을 열게 하는 이름의 나무들은 영천옥을 지키며 혼의 정화를 도왔다. 침입자를 곤궁에 빠뜨리는 역할도 함께 했다.


영혼도 아니며, 암흑성의 열쇠도 없이 뛰어든 미사랑은 곧 침입자로 인식되었다.


미사랑은 슬픈 영혼을 찾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영혼이 매달렸는지 나뭇가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더 깊이 들어가려니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나무 기둥도 검은빛으로 바뀌었고 안개가 시야를 완전히 덮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신력을 써서 안개를 흩트리려 했으나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손을 더듬어 나아가려니 걸음마다 나무 기둥에 부딪쳤다. 몸을 돌려도 바로 그 자리에 다른 나무가 있었다.

‘개심수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자랐나? 거리가 꽤 있었는데···.’


검은 안개 위로 별의 무덤이 겹쳐졌다. 위도 아래도 없이 펼쳐진 허공 속에 멀리 별의 무덤이 보였다.

‘환영? 영천옥이 환영도 보여주나?’


미사랑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 안개, 어디선가 본 것 같아. 거기 다른 내가 잠들어 있었어. 뭔가 다른 것도 있고···. 아주 많은 것들이 뒤섞여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걸 언제 봤지? 어디서?’

몇 번이나 되물어도 알 수 없었다. 검은 안개 속에서 별의 무덤만이 꿈틀거렸다.


머릿속에서 헝클어지는 환영을 떨치기 위해 손을 털었다. 지금은 길을 찾는 것이 먼저야. 생각은 나중에 하자고.


눈을 감고 왔던 길을 그려보았다.

“얼마 들어오지도 않았어. 분명 누가 안개를 만든 거야, 영혼은 안개 따위 상관없으니 영혼 때문일 리 없고. 설마 나?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살아있는 나무에게 물어봐야지. 개심수라면 말해줄 것이다.

손을 내밀어 휘저으니 나무껍질이 만져졌다.

미사랑은 기둥에 이마를 대고 나무의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나무가 미세하게 쿨렁거렸다.


‘내가 침입자라고?’

그녀는 웃으며 나무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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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천계_미사랑_갈등 22.07.22 34 0 10쪽
146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부녹 22.07.22 34 0 13쪽
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5 0 10쪽
144 천계_미사랑_차원의 방문자 22.07.21 34 1 11쪽
143 천계_미사랑_훈련생 한울 22.07.21 34 1 12쪽
142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22.07.21 33 1 9쪽
141 천계_미사랑_기우 22.07.21 34 1 7쪽
140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22.07.20 34 1 8쪽
» 천계_미사랑_영천옥 22.07.20 35 1 8쪽
138 천계_미사랑_차원의 정수 22.07.20 38 1 11쪽
137 천계_미사랑_금지된 벽 22.07.20 35 1 12쪽
136 사로잔_얼음섬의 초대 22.07.19 38 1 13쪽
135 사로잔_이어지는 추측 22.07.19 37 1 11쪽
134 사로잔_미완성 작전 22.07.19 37 1 10쪽
133 사로잔_모퉁이를 돌아 22.07.19 35 1 12쪽
132 사로잔_소환 명령 22.07.18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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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사로잔_작전회의 22.07.15 4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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