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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숨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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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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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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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천계_미사랑_기우

DUMMY

진백성단은 밝고 찬란했다.

나무와 꽃이 가득하고, 새와 짐승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은 다른 성단과 비슷하지만, 화려하고 발랄해서 더욱 경쾌해 보였다.


암흑성단이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세계라면 진백성단은 우아한 빛의 세계였다.


찬란한 진백성단의 분위기와는 달리 율명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지혜서를 베꼈다.

금지된 벽에 갔던 벌로 스스로 정한 일이지만,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진백성 주다는 율명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저 어린아이가 이번에는 무슨 고민을 안고 있으려나.’


그녀는 어린 율명이 걱정스러웠다. 영혼이 너무나 순수하고 맑아 더욱 불안했다. 지금처럼 깨끗해서는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진백성단을 이끌려면 지혜도 필요하지만, 강인함과 결단력도 있어야 했다. 지극한 사랑만이 아니라 단호한 정의의 칼날도 필요했다.


‘분명 무언가를 보았을 텐데···.’

율명은 금지된 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예의바르고 조심스러웠다.

지금의 율명에게 과연 지혜서가 도움이 될까.


주다의 기운을 알아차리고 율명이 문을 열었다.


“주다님! 언제 오셨어요?”

율명은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서둘러 서탁 위를 정리했다.


“지혜서에서는 많이 배웠느냐?”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집니다. 알아갈수록 저는 비어있습니다.”

율명이 주먹을 꼭 쥐고 자신의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지혜서에 시선을 놓았지만, 눈빛은 계속 흔들렸다.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느냐?”

“예?”

율명이 고개를 들어 주다를 바라보았다.


진백성 주다의 아름답고 인자한 눈빛을 마주하자 율명은 참지 못하고 울먹였다.

주다는 율명이 울음을 다 쏟고 속을 털어놓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금지된 벽에서 환영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빛이 어둠에 잡혀 모두 사라졌어요. 주다님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고요. 저는···, 저는 주다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율명을 바라보며 주다는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영이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무리 다짐해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율아, 금지된 벽은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준단다. 내가 떠나고 난 뒤 진백성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구나. 그래, 진백성의 무게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

주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금지된 벽이 보여주는 환영은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한 거다. 나도 수련기에는 똑같은 고민을 했단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우지개나 태왁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마 너도 그렇겠지. 그래서 그런 환영이 보인 게지.”


율명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래도···.”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안다. 진백성으로서 미사나 여하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겠지. 하지만 삼신성끼리 지고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한 영혼인데.”


“하지만 저 때문에 진백성님이 가시는 거잖아요?”

“호호, 그것 때문에 고민이냐?”

”저도 언젠가는 무결의 고리에 들어야 하는 거죠?”


”그게 두려웠구나. 무결의 고리가 어둠이라 믿어서. 그건 휴식이고 안식이란다. 우리는 무결의 고리에 들고 싶어서 너희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단다.”

율명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진백성 주다가 하는 말이니 진실임이 틀림없었다.


쭈뼛거리며 주다를 바라보았다.

“환영이 예언이 되지는 않는 거지요?”


주다가 맑은소리로 웃었다.

“아무리 환영이라도 네게 영향을 주는 건 맞아.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니까. 미혹되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지. 거기 묶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금지된 벽에서 본 것은 예언도, 미래도 아니지만, 사로잡히면 믿는 자의 뜻에 따라 실제가 될 수 있었다.


“율아, 이것만은 꼭 기억해라. 너희 셋이 말썽을 부려도 사랑스러운 이유는 사이가 좋기 때문이란다. 늘 함께하고 서로 도우니까. 앞으로도 고민이 있으면 혼자 있지 말고, 함께 나누어라.

우리 세계는 삼신성이 하나가 되어 지키는 곳이란다. 진백성, 암흑성, 영진성을 따로 부르지 않고 삼신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거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율명은 환영을 잊겠다고 다짐했다.


주다가 원한다면 깨끗하게 잊고 이전처럼 지낼 것이다.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


영진성단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화려한 꽃과 풀이 아련한 향기를 내뿜었다.


영진성 우지개는 여라함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미사랑을 못 만나게 하는 것.


담월곡의 대기를 뚫고 태어나는 순간에도 여라함의 혼은 미사랑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 기울어진다는 의미였다.


미사랑과 율명을 둘 다 좋아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우지개도 느꼈다. 영진성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이었다.


‘하긴, 그렇게 활기차고 재미있는 아이를 안 좋아할 수가 있나.’

미사랑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함박웃음을 짓는 미사랑을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 근심이 씻겨 나갔다.


미소를 흘리던 영진성이 헛기침을 했다.


‘여하가 제대로 수련하고 있으려나? 얘들아, 제발 마음 편히 무결의 고리에 들어가게 해주렴.’

우지개는 간곡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


시련의 동굴, 혼자만의 침묵 속에서 여라함은 마음을 다졌다.

‘영진성에 걸맞게 행동해야지. 언제까지 걱정을 끼칠 수는 없어.’


무념무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결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참선과 명상을 하면서도 불현듯 금지된 벽에서 본 환영이 떠올랐다. 그럴 때는 더 깊은 호흡으로 망상을 날려 보내려 애썼다.


하루는 버텼지만, 이틀째는 허사였다.

여라함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주먹을 꼭 쥐었다.


‘왜 금지된 벽에 가면 안 되는지 알겠어.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잊히지 않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잖아?’

미사랑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다니. 암흑성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헛것이야. 빨리 잡념을 떨쳐내야 해.’

여라함은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두 손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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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천계_미사랑_소명 22.07.22 34 0 13쪽
147 천계_미사랑_갈등 22.07.22 34 0 10쪽
146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부녹 22.07.22 33 0 13쪽
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5 0 10쪽
144 천계_미사랑_차원의 방문자 22.07.21 33 1 11쪽
143 천계_미사랑_훈련생 한울 22.07.21 34 1 12쪽
142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22.07.21 33 1 9쪽
» 천계_미사랑_기우 22.07.21 34 1 7쪽
140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22.07.20 34 1 8쪽
139 천계_미사랑_영천옥 22.07.20 34 1 8쪽
138 천계_미사랑_차원의 정수 22.07.20 37 1 11쪽
137 천계_미사랑_금지된 벽 22.07.20 35 1 12쪽
136 사로잔_얼음섬의 초대 22.07.19 38 1 13쪽
135 사로잔_이어지는 추측 22.07.19 37 1 11쪽
134 사로잔_미완성 작전 22.07.19 37 1 10쪽
133 사로잔_모퉁이를 돌아 22.07.19 35 1 12쪽
132 사로잔_소환 명령 22.07.18 40 1 11쪽
131 사로잔_무성산 은신처 22.07.18 41 1 12쪽
130 사로잔_빛의 환상 22.07.17 42 1 11쪽
129 사로잔_선사 하날 22.07.17 41 1 10쪽
128 사로잔_중독 22.07.16 57 1 11쪽
127 사로잔_변경된 계획 22.07.16 43 1 13쪽
126 사로잔_작전회의 22.07.15 43 1 11쪽
125 사로잔_새날호와 다찬호 22.07.15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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