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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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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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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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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로잔_미완성 작전

DUMMY

무성산에도 밤은 일찍 찾아왔다.

포로와 물건을 맡은 대원들이 떠나 인원이 반으로 줄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남은 은신처를 처리할 때는 서내을에서 올라온 대원들과 합류한다.


내일 오전이면 아티재에 도착할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는데 사로잔은 잠이 오지 않았다.


다루영도 계속 뒤척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모닥불을 피웠던 곳으로 다가갔다.


모닥불 앞에는 이곤과 아순치가 앉아있었다. 조금 전에 깨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여어, 다루가 올 건 예상했지만, 사로까지 깨어날 줄이야.”


아순치가 긴 나뭇가지로 재를 쑤시다가 돌아보았다.

다루영이 불꽃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올 줄 알았다고?”


“음. 찬이 없는데 잠이 오겠어?”

“아우, 느끼하다. 느끼해.”

사로잔도 다루영 옆에 앉으며 물통을 집어 들었다.


아순치가 따뜻하게 데운 물을 건넸다.

“잠이 안 와?”


“생각이 많아지네. 가락국에 가면 서늬 언니를 찾을 거라 믿었는데, 그건 물 건너갔고, 어리도 걱정되고. 나침반도 움직이지 않아.”

“어리는···.”

다루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수리호에서 보았을 때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돌보는 사람도 없는데 잘 버텨줄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아순치가 부채 끝으로 사로잔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조급해하지 마.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보면 마음대로 된 일이 거의 없었어. 방향도 속도도 제멋대로였다고. 사로, 네가 말했잖아? 우리가 거대한 장기판 위의 말이라고. 그러니 마음 편하게 눈앞의 일만 잘 처리하자고.”


“아티재에서 되도록 빨리 일을 끝내자. 마을로 돌아가야지.”

“지금쯤 해오름들이 은둔지를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그 유령선 같은 배도 같이 처리할 거고요.”

이곤이 모닥불 아래 재를 긁어내고 나뭇가지를 새로 넣었다.


“그 배. 유령선처럼 꾸며서 접근한 거군요. 다들 그걸 보고 유령선이라고 했거든요. 하긴 그 정도 낡고 부서진 배라면 그럴 만도 해요.”

다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곤이 유령선에 얽힌 이야기를 꺼냈다.

“유령선 행세가 먹히진 않았을 거예요. 바다에는 어디나 유령선 소문이 있지만, 진짜 유령선은 두 개랍니다. 하나는 주련국에, 하나는 탁라국 근처에요.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령선이라던데요?”


“맞아. 나도 들었어.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더 최근 일이야. 탁라국 근처에 있던 것은 사라졌거든. 완전히.”

“진짜 유령선이라면서 어떻게 사라져?”

아순치의 말에 사로잔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곤도 눈을 빛냈다.


“막개가 탁라국으로 가던 길이었지. 그 배에 타고 있어서 자세히 보았다는 거야. 갑자기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멈췄는데 뿌연 안개가 드리우고 답답한 공기가 폐를 옥죄더래. 그 어둑한 안개를 뚫고 유령선이 다가왔다는 거야.”


아순치가 부채를 펼쳤다.

이야기꾼이 말하듯 소리를 작게, 크게 바꿔가며 앞에 앉은 관객을 둘러보았다.


“배에 타고 있던 한 여인이 노래하니까 유령선이 희미한 연기로 바뀌더니 하늘로 올라갔대. 그러자 눈앞의 탁한 기운이 깨끗이 씻겨나갔다는 거야. 더 이상한 건, 그 사람은 눈가리개를 했는데, 앞이 보이는 것처럼 다녔다지. 신기하지 않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직 못 들은 소식이네요.”

“우리가 모르는 일이 너른벌에 얼마나 많다고.”

아순치와 이곤이 말을 주고받는데 사로잔이 턱을 괴고 불길을 바라보았다.


“노래 부르니까 유령선이 사라졌다고? 그 사람이 혹시 유령을 부리는 거 아냐?”

“아마 귀령송환사일 거야.”

다루영이 불길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가 접으며 찬 기운을 달랬다.


아순치의 눈이 빛났다.

‘귀령송환사라고?’

그의 손은 어느새 유리구슬 목걸이로 향했다.


청옥선원에서 수련장 새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대. 이상한 건 거기 있던 귀령송환사와 그녀의 시동도 함께 사라진 거지.’


설마. 그 여인이 그 귀령송환사? 그럼 온설지도? 허벅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탁라국으로 가는 배라고 했지? 그 녀석이 탁라국에?


‘아니야, 밤이 되면 호랑이로 바뀌는 녀석이 배를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아순치는 고개를 저으며 황당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아순치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사이, 이곤은 잿더미 속에 묻어놓은 열매를 뒤적였다. 잘 익은 마를 찾아 사로잔에게 건넸다.


그의 눈에 휼의 손잡에서 반짝이는 보석이 들어왔다.

“이 보석 원래 있던 건가요?”

“으응. 갑자기 생겨났어.”

사로잔은 휼을 둘러보았다.


손잡이 끝에 박힌 하얀 보석이 불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렸다. 마치 땅에 내려앉은 별빛 같았다.


“갑자기 생겨나요? 신기한 일이네요.”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이 이것뿐인가?”

아순치가 부채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하늘의 성물이니까 독특한 취향이 있나 보지. 갑자기 사라진 나루뫼처럼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루뫼는 어디 간 거야?”

도적 두목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나루뫼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까지 같이 있었는데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더라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어. 그래도 하날은 인사는 했는데 말이야.”

하날이 순순히 인사한 것은 아니지만 아순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루뫼도 어딘가 수상해. 보통 사람은 아닐 거야.”

다루영은 마른 협곡에서의 나루뫼를 떠올렸다.

무성산에서는 어땠는지 못 보았으나 분명 사로잔이나 해무찬에 버금갔을 것이다.


사로잔은 대답하지 않았다.

반인반천이라는 단어가 진유의 것인지, 나루뫼의 것인지 헷갈렸다. 어느 쪽이든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


아티재 부근의 은신처를 정리하는 일은 물 흐르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늘참은 미조에게 뒷일을 맡기고 서둘러 가농으로 내려갔다.


이곤도 해오름 대원들이 기다리는 은둔지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끝냈다. 일행을 찾았으나, 움막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순치 뿐이었다.


“우리도 내려가죠. 다음 행선지가 있어서요.”

“다음 행선지라니? 해오름과 함께 돌아가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쉽게 다니면 해오름이 아니죠. 그런데 다들 어디 계십니까?”

“내 말이···.”


아순치는 부채를 펼쳐 잡고 천천히 손목을 움직였다.

온가을 서늘한 바람이 부는 때라 다른 사람이 부채질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가 들고 있으니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찬과 다루를 방해하러 가볼까?”

아순치가 싱글거리며 돌아섰다.


해무찬과 다루영은 너럭바위에 앉아 숲을 내려다보았다.

겨우 사흘 만에 보는 데도 몇 년이나 따로 지낸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다른 곳은 보지도 않았다.


사로잔은 바위 아래까지는 큰 걸음으로 다가갔으나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팔뚝을 벅벅 긁었다.

“겨우 사흘이야. 너희 둘, 누가 보면 십 년이나 떨어져 지낸 부부인 줄 알겠어.”


“사로. 누리예 대장 얘기를 듣고 있었어. 그 사람이 장공거에서 수련했다잖아?”

다루영의 말에 사로잔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물어보려 했거든. 서늬 언니를 알 것 같은데 벌써 떠났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해무찬이 바위 아래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다루영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사로. 익족 본 적 있어? 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익족이라는 소리에 천천히 걸어오던 아순치가 반달음으로 뛰어왔다.


“익족? 그래, 익족이 정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어? 몸통은 새이고 다리는 사자와 비슷하다던데?”

“무슨. 아름다운 황금새였어. 커다란 날개는 맞지만, 그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새는 처음 봤어.”


“뭔가 이상하네. 익족이 아닌가?”

아순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익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어. 모습이 바뀌는 거야!”


“그때는 황금새의 모습이었군요. 저는 웅크린 털북숭이만 보았는데.”

이곤도 익족의 신비한 소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시조새와 같은 종족이라는 말도 있던데요.”


“시조새와는 달라.”

아순치가 즉시 말을 받았다.

시조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숨이 끊어질 뻔한 순간에 구해준 존재를 어떻게 잊겠는가.

“보는 순간 알아.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신비롭거든.”


사로잔은 익족을 부러워하던 비르삼을 떠올렸다. 광검국에도 있는 익족이 용각국에는 없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익족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아니.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본 사람이 없다고.”

다루영이 자상하게 말을 고쳐주었다.


“이러지 말고, 이번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보자고. 궁금한 게 아주 많거든.”

해무찬이 사로잔에게 손짓했다.


“나도 그래. 이상한 게 아주 많았어.”

“그럼, 내려가면서 얘기하시죠.”

일행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짐과 나귀, 말이 있는 곳까지 적어도 이틀은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바람이 앞서가며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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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로잔_미완성 작전 22.07.19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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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사로잔_소환 명령 22.07.18 40 1 11쪽
131 사로잔_무성산 은신처 22.07.18 42 1 12쪽
130 사로잔_빛의 환상 22.07.17 42 1 11쪽
129 사로잔_선사 하날 22.07.17 42 1 10쪽
128 사로잔_중독 22.07.16 58 1 11쪽
127 사로잔_변경된 계획 22.07.16 43 1 13쪽
126 사로잔_작전회의 22.07.15 4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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