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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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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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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로잔_선사 하날

DUMMY

아침이 완전히 밝기 전, 도적의 은둔지는 그들을 위한 수용소로 바뀌었다.


휼과 모얀의 위력에 아순치의 부채 계로가 합세했으니 다른 무기를 찾기까지 몇 걸음 걸리지 않았다.


선사 하날은 도적들이 도망갈 수 없도록 임시 감옥에 결계를 쳤다. 들어갈 수 있으나 나갈 수 없는 결계였다.


하날은 이곤의 검을 결계의 열쇠로 삼았다. 해오름 부대가 곧 도착할 것이니 일이 끝나면 그가 결계를 풀 것이다.


나루뫼는 숨을 고르며 하날의 어깨를 두드렸다. 툴툴거리는 선사를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은신처를 찾아 무성산 북쪽으로 간다잖아? 거기 말고 은신처가 또 있는지 알아봐야지.”


“내가 왜···.”

하날은 거칠게 나루뫼의 손을 떨쳐냈다. 씩씩거리면서도 사로잔을 찾아 마구간으로 향했다.


악사들의 짐과 나귀 두 마리, 말 두 마리도 은둔지 한쪽에 자리를 마련했다. 참수리호의 선장은 떠나기 전 고맙다며 뱃삯을 돌려주었다.


산곡으로 찾아오면 후하게 답례하겠다 했지만, 악사들이 거기까지 찾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귀 어리는 기운이 달려 축 처져있었다. 마구간에 여물이 쌓여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로잔은 어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금방 돌아올게. 그때까지 잘 참고 있어.”


어리는 촉촉한 눈으로 사로잔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볼에 콧잔등을 비볐다. 히힝 우는 소리는 떼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소연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날은 마구간 기둥에 기대어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은 사로잔의 왼쪽 손등에 박혀있었다.


‘분명 미사랑님의 것이야.’

하날의 눈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


날이 밝기 전까지만 해도 하날은 관찰자였다.

선실 벽에 귀를 대고 옆방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선실 문이 벌컥 열렸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람이 만든 자물쇠 따위는 모얀에게 상대가 안 되었다.


성큼성큼 들어온 나루뫼는 여섯 명의 장사치들 중에서 단번에 하날을 알아보았다.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아끌었다.

“왜, 왜 이러시오?”

“엿듣는 건 그만하고, 직접 부딪치지.”


나루뫼는 그 이상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날을 끌고 복도로 나왔다.


사로잔과 아순치는 이미 달려 나갈 태세였다. 이곤은 하날을 돌아보고 싱긋 웃었다.

“새로운 동료군요.”


하날이 손목을 빼내려 팔을 비틀자 나루뫼가 턱으로 사로잔의 손등을 가리켰다. 장갑이 찢어진 이후 그녀는 손등을 그대로 내놓고 다녔다.


“저 무늬를 보라고. 누구의 것인지.”

선사 하날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미, 미사랑님?”

손등의 무늬는 회색이 짙어졌지만, 선사의 눈에는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황금빛이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암흑성의 혼이 인간세에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아유라가 새로운 암흑성이라서 미사랑이 천계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그 존재는 다른 의미였다. 겨우 사람으로 태어날 리 없다고 믿었다.


‘미사랑님이 어떤 분인데, 저렇게 힘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다니.’

하날은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떠돌이 악사를 쫓아온 이유는 하늘의 성물과 비범한 용족 때문이었지,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적들을 가두고 무성산으로 진격하자고.”

나루뫼는 짧은 막대기를 꽉 쥐었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해야지.’

나루뫼 역시 저만치 앞서가는 일행을 쫓아 뛰었다.


뒤얽히는 마음과 다르게 하날의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어느새 나루뫼를 도와 갑판 위에서 도적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도적들을 가두기 위해 결계를 펼치거나 무성산에 함께 오르지 않았다. 지금쯤 참수리호를 타고 산곡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날이 결계까지 채운 가장 큰 계기는 선사 니무 때문이었다.


은둔지에 나룻배를 대자마자 사로잔의 휼과 모얀에서 빛이 뿜어나왔다.

아순치의 부채 계로가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도적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나루뫼의 검은 해무찬의 주공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감이었다.


싸움은 그들의 일이니 하날은 조용히 구석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인간세의 일에 더 얽히지 말고 참수리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저 나룻배를 타면 되겠군.’


구태여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판이었다.

이리저리 피가 튀는 싸움판을 바라보는데 아득한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날은 왼쪽 주먹을 가볍게 쥐고 뺨 가까이 갖다 댔다.

‘하날 선사님! 이게 되네요. 노각부줄을 통하지 않고도 연락하다니. 정말 좋네요.’


“한가하게 그런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슨 일인가?”

‘이제 돌과자는 그만 팔고 다른 걸 팔아보려고요. 하날님이 아만상단에 계신다니 조언 좀 해주세요.’

“내가 그럴 정신이 아닐세. 암흑성 문양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거기에도 있어요?’

“뭐? 자네도?”

‘저도 미사랑님의 혼 조각으로 태어난 여인을 도왔죠. 아랑누님인데, 쇳디를 깨끗이 처리하더라고요.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역시 미사랑님이에요.’


“그럼 여기 있는 저 사람은 누구지?”

‘미사랑님의 혼 조각이 두 사람으로 태어났대요. 한쪽은 영력이 전혀 없다던데요?’


“가만, 니무 선사가 인간세의 사람을 도왔다고?”

‘예. 아랑누님한테 끌려가서 쇳디와 싸우는 내내 보호 결계를 쳤죠.’


“그래도 아무 일 없었나?”

‘조마조마했는데, 노각부줄은 그대로였어요. 미사랑님을 돕는 일이니 천계의 일이잖아요?’


“그런가···. 니무, 나중에 다시 부르겠네.”

하날은 구부렸던 손가락을 튕기며 주먹을 풀었다.


‘어떻게 된 거지? 사람을 돕다가 몸을 잃은 천인이 있지 않은가. 이건 다른 경우인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사로잔이 움직이자 자동인형처럼 그녀를 따라갔다.


*


아순치는 이곤과 함께 선두에 서서 무성산을 올랐다. 너른벌의 북쪽 끝이라 해도 무성산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숲이 우거졌다.


그 뒤로 사로잔과 나루뫼가 따랐다. 하날은 다른 곳에 은신처가 또 있는지 도적의 기운을 찾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아순치와 사로잔을 보며 이곤의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저렇게 사슴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는 없다.


그들은 울창한 숲속을 무게가 없는 듯 날쌔게 달렸다. 더구나 사로잔은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한 줄은 알았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움직이지?’


나루뫼 역시 이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가끔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늘의 성물이 주인을 제대로 훈련시켰군.’


이 속도라면 밤이 되기 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도적들이 몇 명이든 거뜬히 상대할 테니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루뫼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과 초조가 그득했다. 그가 사로잔을 따라온 원래의 목적 때문이었다.

‘사로잔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겠지.’


나루뫼는 가슴이 답답해져 숨을 들이마셨다.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돕고 있으니 언제 진유에게 공격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한 걸음씩 뒤처지는 사로잔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북쪽으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동쪽의 울창한 숲을 향해 돌아섰다.

삐죽삐죽 솟은 바위 사이로 나무가 휘어지고 엉켜 산짐승도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한울?”

사로잔이 중얼거렸다.


나루뫼도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무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한울 맞지?”

사로잔은 한울을 부르며 길도 없는 숲속으로 뛰어갔다.


나루뫼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하날을 불렀다.

“아순치를 도와주게. 난 사로잔을 맡을 테니.”


하날의 대답을 확인하고 그는 있는 힘껏 바위투성이 숲으로 뛰어들었다.

거기 서 있던 형상은 결코 한울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


사로잔은 그림자를 쫓아 낭떠러지까지 이르렀지만, 한울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울!”

그녀의 목소리가 깊고 음침한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쳤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여기로 왔는데···.’


“한울! 어디 있어!”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귓가로 돌아오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울을 이토록 기다렸던가? 머리로는 냉정해야 한다면서도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더욱 빨리 뛰었다.


나무 뒤에 있던 형상이 앞으로 나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사로잔은 낯선 모습을 보자마자 속삭이듯 휼과 모얀을 불렀다.

“누구냐, 넌!”


“이런. 그 주술을 한울로 받다니 전혀 예상 못 했는데요.”

“주술?”

“역시 사람의 몸이라 기억 못 하시는군요. 진백성단을 지키는 진유입니다.”


진유가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바로 다음 순간, 그의 검이 사로잔의 목 앞까지 파고들었다.


“그만 사라지시죠, 나의 주군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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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천계_미사랑_갈등 22.07.22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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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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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사로잔_소환 명령 22.07.18 40 1 11쪽
131 사로잔_무성산 은신처 22.07.18 42 1 12쪽
130 사로잔_빛의 환상 22.07.17 42 1 11쪽
» 사로잔_선사 하날 22.07.17 42 1 10쪽
128 사로잔_중독 22.07.16 5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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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사로잔_작전회의 22.07.15 4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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