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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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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6
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7.2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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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DUMMY

암흑성의 노래를 흥얼거리자 나무에서 나무로 떨림이 전해졌다. 노랫소리에 맞춰 개심수들이 일제히 가지를 흔들었다.


안개가 걷히고 맑은 공기가 되살아났다.

‘영혼에 반응해 길을 만들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고? 그래서 지도가 없구나. 이제 알았어.’


미사랑은 친절하게 설명해 준 나무를 쓰다듬고는 안쪽으로 나아갔다.

‘난 슬픈 영혼을 찾고 있어. 혹시 여기 들어왔니?’


개심수들이 번갈아 움직이며 길을 만들었다. 나무 전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를 영천옥의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미사랑은 구석에 숨어있는 혼에게서 맑은 기운을 느꼈다.

개심수에 붙어있는 다른 영혼과 전혀 달랐다. 형상이 없는데도 그 영혼에 어울리는 모습이 보였다.


“왜 울고 있어?”

“모르겠어요. 가슴이 아파요. 몸이 없는 데도 통증이 느껴져요.”

“씻김이 필요 없는 혼인데 왜 여기 있지?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돼.”

“어디로 가야 하죠?”


미사랑이 슬픈 영혼을 불렀다. 영혼이 동그란 모양으로 뭉쳐지더니 손바닥 위로 내려와 앉았다.


“네 슬픔을 이야기해봐. 들어주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이 뭐야?”

“아쉬운 것···.”

둥근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전 누명을 쓰고 죽었지요.

사람을 죽인 건 그 귀족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목격자가 나타났지만, 그들은 목격자도 저도 죽였어요.


다시 태어나서는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았어요. 가난해도 책을 사고 땔감을 마련할 정도는 되었죠.

소문을 듣고 재상이 찾아왔어요. 어쩌면 세상은 살만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따뜻한 집과 돈이 있어도, 신선이 되고자 열심히 수련했어요. 선도와 의술을 공부하고 책도 썼지요. 하지만 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재상은 반역을 일으켰고 결국 실패로 끝났죠. 그가 모함하는 바람에 고문을 받다가 죽었답니다. 어디로 가야 이 슬픔이 씻기나요.“


그가 가진 삶의 굴곡이 미사랑의 눈앞으로 지나갔다.

가슴이 아렸다. 슬픔이 전염되었는지,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이 아프니까 태왁님이 벌칙으로 내리셨구나. 너무 슬퍼서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네. 두 번이나 자기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다니. 이렇게 맑은 영혼인데.’


미사랑이 다른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암흑성단의 신비한 힘이 아지랑이처럼 그 손으로 모여들었다.


“신선이 되고 싶다고?”

“예. 선도와 의술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디서?”

“어디든 상관없어요. 공부만 할 수 있다면.”


“그럼 천계로 가자. 질리도록 책을 볼 수 있으니까.”

아지랑이처럼 모여든 암흑성단의 힘이 슬픈 영혼을 감쌌다.


춤추듯 영혼 주위를 맴돌던 아지랑이가 영혼을 천인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반듯하고 수려한 모습이 영혼의 결과 잘 어울렸다.


“난 미사랑이야. 네 이름은 뭐야?”

“이름이 없어요. 지금은···.”

“그럼 무아라고 부를게. 넌 내가 구한 첫 번째 영혼이란다.”


천인의 모습을 갖춘 무아가 미사랑 앞에 섰다.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도 믿지 못했다. 미사랑이 그의 몸에 심어놓은 암흑성의 문양이 소리 없이 그를 가르쳤다.


“천인 무아. 미사랑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무아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미사랑이 생긋 웃었다.

“나한테 충성할 필요는 없어. 너 자신에게 충실하면 돼.”


미사랑이 무아의 팔을 잡자 그들의 공간이 영천옥 바깥으로 바뀌었다. 무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암흑성단이야. 해밀을 찾아가렴. 네 몸에 새겨진 표식이 길을 알려줄 거야. 천천히 둘러보면서 와.”

미사랑은 말을 마치자 곧 사라졌다.


무아는 어리둥절하여 서 있었으나 곧 암흑성단의 지리와 가야 할 곳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필요한 지식이 숨결과 함께 흘러들었다.

미사랑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어디서 공부하는지 알아냈어!’

무아는 날다시피 뛰었다.

걸음이 익숙하지 않아 걷는지 뛰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


미사랑은 가볍게 날아 암흑성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서재에서 책을 정리하는 해밀을 발견했다.


“해밀, 새로운 천인이 찾아올 테니 잘 가르쳐줘요.”

“미사랑님, 슬픈 영혼을 찾으신 거예요?”


“신선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암흑성단 식구로 만들었어요. 선인으로 만들려면 영진성단에도 가야하고 복잡하잖아요?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고 했으니 상관없겠죠.”


해밀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영천옥에 처음 들어가서, 그것도 이렇게 빨리 슬픈 영혼을 찾아냈다니? 게다가 신선이 되고 싶다는 영혼이라···.’


깨끗하고 맑은 영혼도 희귀하지만, 대부분 대명천으로 가고 싶다거나 환생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것이 보통이었다. 환생은 가능해도 부귀영화는 보장 못 하지만.


“그런데 왜 하필 접니까?”

“그야 해밀 만큼 암흑성단을 잘 아는 천인이 없으니까요.”


해밀이 헤벌쭉 입을 벌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흠흠, 그렇다면야···. 어떤 녀석인지 보고 싶네요. 미사랑님이 처음 찾아낸 천인이라.”


미사랑은 새로 들어온 책을 뒤적이다가 이내 책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말해봐야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해밀은 콧잔등을 한번 구기더니 정리하던 목록을 꺼내 들었다.


*


해밀은 암흑성단의 입구에 나와 서성거렸다.

‘올 때가 되었는데?’

처음으로 맞이하는 조수를 어떻게 가르치나 고민이 가득했다.


저 멀리 아름누리를 두리번거리며 한 천인이 다가왔다.

맑은 눈동자와 반듯한 어깨, 깔끔하게 묶은 머리카락과 진중한 걸음걸이. 처음 보는 천인이었다.

“자네가 무아인가?”


무아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을 부르는 천인을 바라보았다.

문지기인가? 수문장과는 다른 인상이었다. 후덕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보이지 않는 암흑성의 표식이 움찔거리며 그에 대해 알려주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해밀님이십니까? 제가 무아입니다.”


“기다리고 있었네. 천인이 되었다고?”

“예. 미사랑님이 몸을 주었습니다.”

“자네 운이 좋구만. 미사랑님이 처음으로 구한 영혼이라니.”

해밀이 껄껄 웃었다.


무아는 앳되어 보이던 미사랑을 떠올렸다.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분이 암흑성이 될 분이었구나.


무아가 생각에 잠긴 동안 해밀도 그를 살펴보았다.

암흑성단의 조수로 딱 맞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가볍고 단단한 몸집, 서글서글한 눈매, 웃을 때마다 파이는 보조개. 영혼의 빛깔에 잘 어울렸다.

‘미사랑님이 슬픈 영혼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시군. 쓸 만한 혼을 골라오셨네.’


해밀이 말없이 서 있으니 무아는 손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그닥 가르칠 것은 없네. 이곳의 대기가 자네를 도울 걸세.”

“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잘 배웠다가 미사랑님이 새로운 천인을 데려오면 자네가 도와주게.”


“천인이 되는 영혼이 많은가요?”

“보통은 환생하고 싶어 하지. 천인의 삶도 마냥 편한 것이 아니니까. 요즘은 슬픈 영혼을 만나기가 어려우니 걱정하지 말게.”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요?”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우리에게 시간은 미리내의 모래알보다 많으니까.”

무아는 해밀의 뒤를 따라 암흑성단으로 들어갔다. 푸르른 생기가 넘쳐 발을 들이자마자 신선한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찼다.


‘이런 곳에서 살다니! 미사랑님을 만나면 감사드려야지. 아니, 인사로는 부족해. 꼭 은혜를 갚을 거야.’

무아의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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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아랑누_소천국 말리항 22.07.23 38 0 11쪽
148 천계_미사랑_소명 22.07.22 35 0 13쪽
147 천계_미사랑_갈등 22.07.22 35 0 10쪽
146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부녹 22.07.22 34 0 13쪽
145 천계_미사랑_회복 22.07.22 36 0 10쪽
144 천계_미사랑_차원의 방문자 22.07.21 34 1 11쪽
143 천계_미사랑_훈련생 한울 22.07.21 34 1 12쪽
142 천계_미사랑_파소연랑 22.07.21 33 1 9쪽
141 천계_미사랑_기우 22.07.21 34 1 7쪽
» 천계_미사랑_슬픈 영혼, 무아 22.07.20 35 1 8쪽
139 천계_미사랑_영천옥 22.07.20 35 1 8쪽
138 천계_미사랑_차원의 정수 22.07.20 38 1 11쪽
137 천계_미사랑_금지된 벽 22.07.20 36 1 12쪽
136 사로잔_얼음섬의 초대 22.07.19 39 1 13쪽
135 사로잔_이어지는 추측 22.07.19 38 1 11쪽
134 사로잔_미완성 작전 22.07.19 38 1 10쪽
133 사로잔_모퉁이를 돌아 22.07.19 36 1 12쪽
132 사로잔_소환 명령 22.07.18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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