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소련 아프간 전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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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핌은 건물 근처 골목에서 허리를 숙이고 신호를 기다렸다. 그 때 맞은편 도로 건물 창가에 어린 애새끼가 이 쪽을 보고 있었다.
'!!!'
세라핌이 그 꼬맹이를 쳐다보자 꼬맹이는 황급히 숨었다.
'시발 이거 뭔가 이상한데?'
90프로의 확률로 저 꼬맹이 새끼는 세라핌과 다른 소련군의 존재를 여기저기 떠벌릴 것 이었다. 저 꼬맹이의 가족이 무자헤딘과 같은 편이면? 그렇다면 소련군의 진입 경로는 그대로 무자헤딘의 귀에 들어갈 것 이었다. 저 꼬맹이 외에도 이 어두컴컴한 시가지 여기저기서 시커먼 얼굴의 아프간인들은 두 눈으로 이를 주시하고 있을 것 이다.
다른 소대원들 또한 자신들을 주시하는 아프간인들을 발견했다. 아프간인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소련군을 늘 바라보았다. 와실리는 그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중얼거렸다.
"봐서 어쩔건데 시발아..."
세라핌은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무자헤딘이 매복하고 있는 1고지, 2고지 사이를 지나가기 직전과 비슷한 예감을 느꼈다.
'이렇게 대놓고 작전을 한다고?'
"1분대! 앞으로!!"
잠시 뒤, 그리고르예프 중사는 고참병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동시에 건물에 진입했다. 그리고르예프 중사는 고참병과 함께 건물의 모퉁이와 천장, 옷장 등을 스캔했다.
"확인 완료."
그리고르예프 중사는 옷장, 심지어 가구와 천장 사이도 총으로 빠르게 스캔하며 건물을 점검했다. 확인 결과 건물에 이상은 없었고, 세라핌 일행은 별 탈 없이 무사히 3층짜리 건물을 점거했다.
"안 쓰는 문은 쇠사슬로 묶어놔!! 1층 입구에 지뢰 설치해!! 3층과 옥상에 저격수 배치!"
무자헤딘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기에 세라핌과 동료들은 신속하게 1층의 문을 쇠사슬로 묶어두고는 지뢰를 설치했다. 가장 사격 솜씨가 좋은 녀석들이 3층 창문과 옥상에 저격수로 배치되었고, 정찰팀은 창문을 통하여 외부를 정찰했다.
세라핌은 니키타와 함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안팀 역할을 맡았다. 1층으로 진입하려는 적이 있으면 세라핌이 제일 먼저 알려야 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르예프 중사는 무전으로 본부에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명령을 내렸다.
"일단 여기서 대기한다! 이봐! 자네! 1층 방 구석구석 수색해!!"
보안팀이었던 세라핌은 니키타와 함께 1층을 손전등으로 구석구석 수색하기 시작했다.
"뭐 있냐?"
"없어!"
1층에는 주방이 있었고 이 건물을 썼던 사람들이 썼을 법한 컵, 설탕, 소금 등이 있었다. 그 때, 고참 병사가 내려와서 세라핌과 니키타에게 외쳤다.
"이봐 자네들!! 커피 끓이게!!"
세라핌과 니키타는 커피를 끓이려고 했다. 그 때, 니키타가 탁자 위에 특이하게 배치되어있는 성냥갑들을 발견했다.
"오! 이거 챙겨가자!!"
니키타가 성냥을 챙기려는데, 세라핌이 니키타를 막았다.
"건드리지 마!!"
세라핌은 손전등으로 탁자 위에 배치된 성냥갑들을 살폈다.
"이거 배치가 이상하지 않냐?"
성냥갑에는 구불구불한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뭔 뜻이냐?"
한 성냥갑에는 크게 0표시가 되어 있었다. 잠시 뒤,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내려와서 테이블을 확인했다.
'이건?'
그리고르예프 중사는 방금 전까지 인근 건물들을 쌍안경으로 정찰했기에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0표시가 된 성냥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현재 우리가 위치한 건물이..."
그 때, 옥상에서 무전이 들렸다.
"1시 방향!! 산양(무기를 든 것으로 추정되는 자를 뜻하는 암호) 셋!!"
시커먼 어둠 속에서 총기를 들고 이동하는 무자헤딘을 발견한 것 이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총격이 벌어졌다.
탕! 타앙! 탕!
3층에서 저격수가 총을 쏘았지만 어두워서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그 때, 건물 옥상에 저격수로 있던 로만은 3시 방향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쉬잇!!!
퍼억!!
총알은 건물 옥상 난간에 박혔고 파편이 떨어졌다. 로만이 외쳤다.
"9시 방향!! 적 저격수!!"
그 때, 다른 쪽 건물에서도 무자헤딘의 총성이 들렸다.
탕! 타앙! 탕!!
시커먼 도심 속 곳곳에서 총성과 함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무자헤딘의 총성은 현재 세라핌이 있는 건물을 향해 집중되었다.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사방에서 포위되었다!! 지원 요청한다!!"
현재 소련군이 점거한 건물 옆에 세 건물 모두 무자헤딘이 장악한 상황이었다. 아까 전에 보았던 아프간 꼬맹이가 소련군의 움직임을 전달한게 틀림없었다.
"이런 시발!!"
탕!! 타앙!
그 때, 옆 건물에서 이 쪽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쿠과광!!
수류탄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파편이 튀어서 마트베이의 엉덩이에 박혔다. 마트베이는 엉덩이를 두들겨맞는 듯한 충격을 받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나 맞았어!! 나 맞았어!!!"
위생병이 마트베이에게 달려가서 긴급하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세라핌은 자기가 맞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피를 보는 순간 엄청난 오한과 함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으...으아아아...'
뇌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그 때 위생병이 외쳤다.
"별거 아냐!! 궁둥이에 파편이 박혔을 뿐이야!!"
고참병이 정신 못 차리는 세라핌의 대가리를 치고 외쳤다.
"보안팀이 제대로 안 하면 위에 저격팀까지 다 뒤진다!!"
세라핌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총을 들고는 계단 쪽 창가를 지키고는 사격을 했다.
탕! 타앙!
어둠 속에서 무자헤딘은 빠른 속도로 쏘고 튀는 것을 반복했기 때문에 조준 사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은 적을 정확히 맞추기보다는 접근을 못 하도록 총알을 뿌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세라핌은 창가 뒤에 몸을 최대한 숨기고 팔만 뻗어서 총알을 발사했다.
탕!! 탕!!
고참병이 와서 외쳤다.
"총알 아껴!!"
탕!! 탕!!
고참의 목소리는 도심 곳곳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완전히 묻혔다. 총소리를 통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 커다란 총성이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통에 적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총알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파편이 떨어졌다. 아군의 저격총과 기관총 소리가 위층에서 크게 울렸다.
세라핌은 퍼뜩 철모에 자신의 혈액형을 쓰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떠올렸다.
'아! 내 혈액형!!'
세라핌은 서둘러 자신의 철모에 크게 혈액형을 썼다.
[B+]
그 때, 쇠사슬로 묶어서 잠가둔 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무자헤딘은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퍽!! 퍽!!
"시발!!"
"놈들이다!!"
세라핌은 문을 향해서 토카레프 권총을 발사했다.(참고로 이 당시 기준 토카레프 권총은 존나 구려서 자살용이나 적을 향해 던지는 용도로나 쓸 수 있다. 아마 독소전 당시에 장교가 쓰다 버린 권총이라고 병사들끼리 농담을 하며, 쓸모없었기에 신병들이 이걸 쓰기도 한다.)
탕! 탕! 탕!
총알 자국이 남은 문이 덜컹거리는 것이 멈추었다. 그 틈을 타서 소련군은 가구를 이용하여 무자헤딘이 진입할 수 있는 다른 입구를 모조리 막았다. 그리고 세라핌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 때, 머리에 터번을 두른 무자헤딘이 옆 건물 창문에서 점프를 해서 이 쪽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으아악!!!
세라핌은 창문으로 달려든 무자헤딘을 향해 토카레프 권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탕!!
"2층 창문도 막아!!!"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무전을 받고 외쳤다.
"6시!!! 방향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이다!!"
지금 유일하게 퇴각할 수 있는 방향이 6시 방향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쪽에는 문이 없었고 완전히 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외쳤다.
"폭약으로!!! 벽을 폭파하고!!!"
그 때, 3시 방향 건물에 무자헤딘이 현재 소련군이 있는 2층 건물의 창가 쪽으로 RPG를 발사했다.
투킁!!!! 쉬웅!
RPG탄이 짧게 연기자국을 남기며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쿠과광!!
고막을 폭발시키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2층에 있는 가벼운 물건들이 모조리 한 쪽으로 휩쓸렸다. 실내는 순식간에 먼지로 가득차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 새끼들 어떻게 우리 무기를 갖고 있는거야!!"
니키타는 멍하니 먼지 구덩이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르예프 중사가 뭐라고 악을 썼고 병사들이 6시 방향 벽에 폭약을 설치했고 모조리 3층으로 올라갔다.
"폭파!!!"
모든 병사들이 귀를 막았다. 그리고 발 밑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한 충격에 몸이 흔들렸다.
쿠과광!! 콰과광!!!
잠시 무자헤딘의 총성이 조용해졌다. 로만과 플라톤은 0시 방향을 향해서 AK를 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면서 엄호하는 동안, 나머지 병사들은 6시 방향 외벽에 생긴 구멍을 통해 모조리 빠져나갔다.
"앞으로!!"
잠시 뒤, 시커먼 밤하늘에 Mi-24 헬기가 비행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핌과 동료들은 이제 Mi-24가 비행할 때마다 들리는 커다란 저음과 고음이 겹쳐진 소리만 들어도 안심이 되었다.
트으으으으으으으(씨이이이이이이이이)
Mi-24 헬기는 놀라울 정도로 저공 비행하고 있었고, 건물에 있던 민간인들은 모두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라핌이 속으로 생각했다.
'두흐(무자헤딘을 비하하는 단어) 새끼들이 옥상에서 RPG 쓰면 격추될 수도 있을텐데...'
Mi-24가 얼마나 저공비행을 했는지, 온갖 먼지를 일으키며 도심 속에 작은 허리케인을 만들고 있었다. 잠시 뒤, Mi-24는 방금 전까지 무자헤딘들이 점거하고 있던 건물을 향해서 로켓탄을 발사하고는 다시 돌아갔다.
콰광!! 쿠구궁!! 콰과과광!!
도심 속에 엄청나게 커다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Mi-24가 멀어짐에 따라 도심 속을 울리는 헬기의 비행음 주파수 또한 낮아졌다.
트트트트트트트트
헬기는 정확하게 조준해서 로켓탄을 발사했지만 두 민간인이 사망했고, 소련군은 사망한 민간인의 가족에게 식료품 등을 지불했다. 마트베이가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두흐 새끼들한테 뭔 쓸데없는 짓을..."
로만이 말했다.
"우리가 죽였으니 보상은 해야지."
마트베이가 말했다.
"죽은 새끼가 무자헤딘인지 알게 뭐야?"
다음 날 소련군은 목표로 했던 지역을 점령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어제 전투를 경험한 이후로 세라핌은 지나가는 아프간 인들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했다. 시커먼 얼굴의 수염을 기른 아프간인들은 지금 소련군의 움직임과 무기 등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두흐들에게 전달하고 있을 것 같았다. 와실리가 말했다.
"저기 저 노인네 보이냐? 아까부터 계속 이 쪽 왔다갔다 하던데..."
와실리와 로만이 가서 노인네에게 말을 걸었지만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아서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라핌은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했다.
"사방이 적이군..."
그 날 저녁, 세라핌이 속한 소대는 식량, 간식 등이 담긴 자루를 가지고 마을의 원로에게 전달해주었다. 그 원로가 한 말을 아프간 군이 통역해주었다.
"모두 마을 사람들에게 잘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다음 날, 세라핌과 니키타는 아프간의 상점에서 자신들이 나누어준 물건들이 모조리 판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을의 원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상점에 팔아서 돈을 벌었던 것 이다. 마트베이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시발...그 마을 원로 새끼는 우리가 준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자헤딘을 지원하겠지..."
세라핌이 말했다.
"아닐세! 그래도 우리한테 무자헤딘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줬다고!"
"이중첩자인지 알게 뭔가! 이런 좆같은 나라 같으니..."
아프간에서 머물면서 이들은 마을 사람들은 전부 마을 원로의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마을의 원로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으며, 마트, 주유소 등 주요 시설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원로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다른 마을로 갈 수도 없었다. 물론 다른 마을로 가더라도 상황은 똑같을 것 이다.
세라핌은 솔직히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아프간의 꼴을 보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공산주의가 낫겠군...'
아프간 정부군은 전혀 싸움에 대한 열의도 없었고 애국심도 없었다. 진짜 한심하기 그지없는 새끼들이었다. 와실리가 물었다.
"지금 몇 시냐?"
그 때, 아프간 정부군들이 엎드리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걸 본 로만이 말했다.
"오후 6시인가보군..."
정부군들은 모두 한 방향을 통하여 엎드리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라핌과 동료들은 속으로 비웃었다.
'미개한 두흐 새끼들...'
그 때, 한 고참 병사가 세라핌을 불렀다.
"이리 달려 온다!!"
세라핌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이유도 없이 얻어 맞기 때문이다. 그 고참 병사는 세라핌에게 돈을 주고는 근처 상가에서 먹을 것을 사오라고 했다.
"달린다!!"
세라핌은 돈을 받고는 부리나케 상가로 달려가서 이런 저런 먹을 것들을 잔뜩 사왔다. 세라핌은 상가에 진열된 미제 담배를 보았다.
'미...미제 담배?'
한번 피워보고 싶었지만 일단 지금은 심부름이 급했다. 세라핌이 부리나케 간식을 사왔고, 고참은 기분이 좋았는지 세라핌에게도 사탕 몇 개를 던져주었다. 왠일로 맞지도 않고 사탕도 받아서 세라핌은 기분 좋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꼬맹이들이 세라핌이 들고 있는 사탕을 바라보았다. 세라핌은 별 생각없이 그 꼬맹이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이거나 먹어라!"
어린 애새끼들하고도 기왕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이었다. 마침 오늘은 맛있는 청어 통조림도 배급 받았고 세라핌은 잠시 책을 읽으며 휴식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세라핌은 어제 자신이 사탕을 나눠준 꼬맹이가 위생병한테 업혀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꼬맹이의 양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고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
위생병이 외쳤다.
"출혈이 심해!!"
소련군한테 사탕을 받았다는 이유로 양손이 두흐에게 잘린 것 이었다. 그 날 이후로 부대에서는 더 이상 어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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