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템킨 사건도 자세하게 보자면, 러시아 해군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통조림과 각종 야채 및 과일 공급으로 많이 변하였음에도 범선 수준에서 조금 나은 대우를 받았다고 하네요 그것도 일본 똥군기와 나란히하는 데도브시나도 겪고 장교들의 간극과 멸시도 당하면서죠 그러던 중 러일전쟁에서 태평양함대를 보충하고자 제2 태평양함대로 명칭을 바꾼 발틱함대가 쓰시마 인근과 대한해협에서 전멸하면서 흑해함대가 제3 태평양함대로서 출동할 건가 하는 불안도 엄청났는데 하필 먹는 것에서 문제가 터졌던 거예요 당시 최신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포템킨 함장 예브게니 골리코프 대령의 지시로 소형 어뢰정 이즈마일의 정장인 클로트 폰 유르겐스부르크 대위가 항구의 푸줏간에서 쇠고기를 샀으며 그것을 건조시키기 위해 외부 갑판에 쇠꼬챙이로 꿰어 두는 작업을 하였는데, 다음날 출항을 할때 식사당번들이 구더기가 들 끓으며 섞는 것을 발견한거죠 물론, 미국에서 냉장고가 처음 만들어졌던게 나중이라 함상 건조기슬은 부족하였고 날도 여름이어서 납득은 가능한데 고기가 하루만에 썩는다는 건 납득할 수 없죠 그것도 함상에서 근무하며 고기 썩는 것도 본 수병들입장에서는 황당하죠 근데, 위생병보다 높은 군의관 중 함내 최선임 군의관인 군의장이던 스미르노프 군의대위가 부식 검수를 하면서 고기상태는 좋고 식초로 소독가능하다는 말을 하였다네요 결국 병사들은 화가 나서 그 소고기로 만든 수프인 보르시를 먹는걸 거부하고는 장교들 외엔 식사 및 휴식 공간이 별도로 없던 사정탓에 평소처럼 갑판 위에 접이식 탁자를 펼쳐 놓고는 물과 빵만 먹었답니다 이에 평소 가혹한 대우를 하며 인간이하 대접을 하면서 원성을 쌓았던 부장 이폴리트 길리아롭스키 중령이 보르시를 안 먹으면 항명으로 간주하겠다 하였으나 야유만 들었고 이에 함장에게 보고하자 함장이 육지로 고기 시료를 보내 검수하겠다며 달랬는데 그런 관대함을 못마땅하게 여겨서는 본보기로 총살을 하고자 절차에 따라 갑판에 피가 안 묻도록 방수포를 깔도록 지시한 것에서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거죠
딱 그 사례가 조선말에 벌어졌던 임오군란이죠 기존에 존재하던 오군영 체계에서 임진왜란 중 이순신과 함께 언급되는 명재상 류성룡의 건의로 임시군사조직으로 시작하였으나 오군영 최초의 군조직이 되어서는 직업군인들을 중추로 삼아 두차례 혼란과 각종 반란을 제압하며 조선왕조 종묘사직의 방패가 되었고 세도정치기에도 군축속에서도 군을 유지하며 세도정권의 물리적·재정적 기반이 될 정도로 중앙군 중추였던 훈련도감과 궁궐과 국왕 경호를 맡으며 금군으로도 불리는 용호영과 역시 국왕 친위대 목적을 가지면서 인조반정 당시 동원된 사병들이 중추를 이룬 호위청을 통합하여 궁궐과 국왕 경호를 담당할 무위영과 한양 방어가 목적임에도 반란 토벌과 미국의 침공인 신미양요 같은 국경분쟁에 동원되는 어영청과 남한산성 방어를 맡았으나 정조시기에 처음으로 오군영중 폐지된 수어청과 달리 계속 북한산성 방어를 담당한 총용청과 영조시기 군비 절감 목적에서 훈련도감 병력을 빼와 국왕 경호를 담당하게 하였던 금위영을 통합하여 도성을 경비하는 장어영으로 구성한 2영으로 통폐합하였습니다 근데, 그후 오군영에서 지원자들을 받아 무위영 소속으로 일본과 중전 민씨의 외척 민겸호 지원속에 장교 양성소였던 별기군이 만들어졌죠 일본 공사관 무관이던 일본 육군 공병소위 호리모토 레이조가 훈련을 맡았고 훈련소장인 교련소 당상에는 친청 온건 개화파로서 명성황후의 조카이자 고종의 외사촌 동생이며 보빙사로 아서 체이스 미국 대통령과도 만났던 21세 민영익이 올랐고 별기군 생도들은 소위에 해당하는 참위계급을 받았죠 또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이자 급진개화파면서 친일파로 중전민씨가 살해당한 을미사변 가담자중 하나였던 우범선이 소령에 해당하는 참령으로서 군개혁 묵적을 위해 참가하였죠
아무튼, 다른 걸 떠나서 가장 중요한 본론은 녹색 군복등 피복과 급료에서 엄청난 특혜를 받은 것과 다르게 장어영과 무위영 병력들은 급료가 13달은 밀렸고 양반 생도들과 격차도 큰 탓에 불만은 쌓여갔죠 급료가 밀렸던 것을 그나마 현대용어로 투잡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였으며 그런한 군기문란 탓에 어영청을 합쳐 그 역할을 한 무위영을 어영군이라고 하였는데 어영군은 군인도 아니라는 어영비영이 나돌았으며 그게 어영부영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하여간 그러한 상황에서 보리농사도 망하였고 그 정도로 흉년이 벌어졌던 탓에 강화도 조약에 따라 체결한 조일무역규칙에 따라 무제한 양곡 유출이 가능함에도 1881년에 45만석 이상이 유출된 후 1년만에 3천석도 안되는 양만 유출될 정도로 쌀이 부족하였죠 도리어 4년후에는 일본으로부터 약 25만여담, 4담 = 1석이니 6만석 이상을 수입할 정도였답니다 그러던 중 전라도에서 올라온 조미가 대동법 시행후 쌀을 담당하던 선혜청으로 올라왔고 그에 따라 1달 군료 지급이 결정되었는데, 그렇게 지급한 급료로 나온 쌀 중 반을 모래와 겨 혹은 물에 불려지는등 썩은 쌀이었던 거예요 비유하자면 회사에서 13달동안 월급도 안 주다가 1달 월급 준다고 하였더니 유통기한 지난 식품, 더 쉽게 말하면 1달 급여에 해당하는 돈이 아닌 파산하여 현금화 못하는 파산수표나 위조수표로 주었다고 하여야죠 그에 불만을 품었고 조정도 나름 납득하였으나 사건 담당자가 그 선혜청을 담당하던 선혜청 당상 민겸호였고 민겸호는 관대한 처벌을 요구한 고종 명을 무시하고 주동자를 자바들였죠! 민영익의 숙부였던 민겸호는 10만석을 횡령하였는데 이는 한성 인구 20만명 중 2만명, 전체 한성 인구 10%의 1년치 쌀을 착복하였다고 봐야합니다 게다가 명성황후는 4명의 아들을 잃은 후 낳은 순종이 병약하자 금강산을 돌며 전국 곳곳 명산과 무당을 찾아가 기도를 드렸던 것은 좋으나 고종과 명성황후는 군인 월급 담당을 그 민겸호에게 맡았고 국방비 증액 없이 당시 일본군의 주력소총이던 영국제 스나이더 엔필드 단발 소총을 수입하며 별기군을 우대한데다가 조선왕조에서 어린 세자와 세자빈 혼례를 하는 전통에 따라 순종의 혼례를 준비하는데 일본회사에서 엄청난 비단을 수입하는 상황에 처하였죠 그거야 왕조가 곧 국가 운명과 같은 만큼 문제가 그렇게 클 수 없겠으나 그렇게 검소하게 살던 마리앙투아네트와 루이16세도 선대왕들과 본인이 만든 전쟁빛 감당못하여 죽은 마당에 검소하게 안 산 건 문제가 클겁니다 거기다 고종은 당백전등 경복궁 중건 후유증에서도 화폐개혁을 무턱대고 하다가 디플레이션을 화폐가치가 더 추락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모은 국고를 몇달만에 다 날렸고 그 결과탓에 운요호사건에서 일본군 공격을 대응못하였고 그게 강화도조약으로 연결됩니다 아무튼, 무엇보다도 개항 성과가 적고 경제난에다가 이렇다할 대책도 없이 부정부패가 퍼져났기에 민심이 폭발하였고 군인에다가 민간인을 합쳐서 반란으로 퍼졌죠 그 숫자는 최대로 잡았으면 한성인구 5%에 해당하는 1만으로 잡는다고 하더라고요
요렇듯 포템킨에서도 그동안 쌓였던 고통과 불만이 또 발발하였고 그것에 관한 대처도 미흡한 탓에 결국 폭발할 수 밖에 없었죠 그에 따라 부장 길리아롭스키 중령은 주모자인 7명 중 하나인 그리고리 바쿨린추크 수병 공격을 반격하여 중상을 입혔다가 다른 주모자 아파나시 마튜셴코 어뢰수병장이 쏜 소총에 즉사하였고 숨었던 군의장 스미르노프 대위는 함장과 함께 부상을 당한채 잡혀와서는 그가 한 헛소리를 그대로 되돌려 받아 썩은 고기가 억지로 입에 처박힌 채 수병들의 욕설과 구타를 당하다 얼마 안 가 사살당해 바다에 버려졌으며 함장은 관대한 처분탓에 선원들간 논란도 많았으나 결국 얼마 전에 사소한 잘못으로 이등수병으로 강등하는 엄벌을 받았던 드미트리 시로프 수병 손에 사살당하여 바다에 버려졌다가 근처에 있던 어뢰정 이즈마일에서 인양됩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산 함장이 있던 어뢰정 이즈마일 또한 함포 위협 탓에 수병들 봉기에 따라 항복하며 합류하였죠 그렇게 많은 장교가 죽거나 억류당하면서 협력을 하며 포템킨 반란은 난겁니다 해병대 창설한 것도 바로 그러한 함상 반란을 막고자 하는거예요 함선에서 도망은 못가더라도 반란나면 정말 답 없죠 그탓에 과거 전열함 보면 헤병들은 전열보병처럼 군복을 차려입었고 전투와 함께 함상 감시하는 헌병도 겸합니다 그러나 떼에 따라서는 함께 반란을 하는 경우도 많았죠 그후에 포템킨은 자침하였고 주동자등을 교수형 당하며 다른 인원들은 유형을 살았으나 그중 형수들은 1905년에 형이 집행되었다. 유배형을 받은 이들 중 펠트만 수병과 파블로 수병은 시베리아를 탈출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달아났죠 여담으로 전함이나 순양함 등 큰 함정들과 달리 구축함이나 어뢰정 등 작은 함정에선 장교나 사병이나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함께 근무하여 신분 간 갈등이 적었고 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편이었으며 남북전쟁에서도 육군과 다르게 해군은 남군 또한 흑인들을 동등한 전우로 대하였다고 하네요 여튼, 훗날 소련에서는 세계최초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는등 영화사에서 중요한 요소를 넣은 프로파간다 영화 전함 포템킨을 촬영하였고 페트로 수병도 혁명에 따라 귀국후 영화에 참가합니다 오데사 반란은 역사와 다르고 제정 러시아 군인들이 잔인하게 시위대들을 진압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특히 유명하게 되는등 선전영화의 목적과 함께 몽타주 기법과 시퀀스 기법 등을 거의 처음으로 사용하여 영화제작의 교범과도 같아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네요 많은 작품들에서도 장면들을 오마쥬 하였죠
그냥 영상과 나무위키 항목 참고하면 좋겠네요 제가 고른 건 다음과 같아요
https://namu.wiki/w/%EA%B1%B4%EB%B9%B5
https://namu.wiki/w/%EC%97%BC%EC%9E%A5%EA%B3%A0%EA%B8%B0
https://namu.wiki/w/%EA%B7%B8%EB%A1%9C%EA%B7%B8
https://www.youtube.com/watch?v=3rbKgLjLTVE
https://www.youtube.com/watch?v=uptbwM-Z0mQ
https://www.youtube.com/watch?v=fwxV4RoJMcM
https://www.youtube.com/watch?v=XdAScWwzODc
https://www.youtube.com/watch?v=dDQxYOxpF_U
https://www.youtube.com/watch?v=heU1sRnyGhQ
https://www.youtube.com/watch?v=0L-R5Dc7w1A
포템킨 사건
https://namu.wiki/w/%ED%8F%AC%ED%85%9C%ED%82%A8%20%EB%B0%98%EB%9E%80
https://namu.wiki/w/%EC%A0%84%ED%95%A8%20%ED%8F%AC%ED%85%9C%ED%82%A8
https://www.youtube.com/watch?v=-bDFM8jrCB4
https://www.youtube.com/watch?v=ZGOg4vi-NUw
https://www.youtube.com/watch?v=OoX3B2HEQLc
여담으로 얼마나 함상 어려우면 일본 해군 군가중에 엄청난게 나오죠 한번 보세요 그러한 결과로 나가토 전함 2번함 무츠가 폭발하는 사고도 났다고 하네요 무츠사건과 함께 일본 수병 관련 영상도 첨보할게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2819427
https://namu.wiki/w/%EB%AC%B4%EC%B8%A0(%EC%A0%84%ED%95%A8)
https://namu.wiki/w/%EB%82%98%EA%B0%80%ED%86%A0%EA%B8%89%20%EC%A0%84%ED%95%A8
https://www.youtube.com/watch?v=B78osIdgAq8
https://www.youtube.com/watch?v=UpiuC7_0SV8
https://www.youtube.com/watch?v=iXYFPP8HBHA
https://www.youtube.com/watch?v=YZxYST9VC-A
https://www.youtube.com/watch?v=gVqZdf4I0Uo
https://www.youtube.com/watch?v=GXesb2BskJI
https://www.youtube.com/watch?v=_mg_DEbHv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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