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이첼 님의 서재입니다.

서브라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1,231,920
추천수 :
2,226
글자수 :
613,860

작성
07.05.25 22:52
조회
6,084
추천
23
글자
11쪽

가장 위대한 전사(3)

DUMMY

해가 높기 뜨기 전의 아침이다. 바쁜 손길이 마차 위에 짐을 올렸다. 추적기간 중에 일행이 먹을 식량과 무기를 비롯한 일체의 짐이었다. 일행은 모두 다 합쳐서 50명 정도였다. 작은 규모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전투를 생각한다고 치면 큰 규모도 아니었다. 노예상인 일행의 무장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투자해야한다는 원칙은, 거기 들어가는 거래물 중 하나가 ‘자신의 목숨’일 때 한결 잘 지켜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행은 별로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는 들개들의 집합이라는 걸 생각하면 한층 이상하다.


“역시 오기사 중 한 명이 끼어있어서 그렇겠지.”


보급품을 챙기고, 각자의 무장을 정비하는 부산한 광경을 한 눈으로 살피며 엘이 말했다. 이어 그는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말 위에 올라타고서 말고삐를 잡았다. 수우 족에서 이번 추적을 위해 제공한 말이었다. 물론 대여였다. 옆에서 이미 다른 말을 타고 있던 카린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오기사 중 한 명이었던 하베디온 씨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지.”


하베디온은 마나로 검을 완전히 휩싸고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강자였다. 그가 전력을 다했던 상대가 엘이었기 때문에 볼품없는 꼴을 보였었을 뿐, 그는 정말로 강했다. 엘이 생각하기에 평범한 기사라면 수십 명도 간단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장이 빈약한 전사라면 어쩌면 세 자리까지도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이어가 그만한 실력자라면 일행의 여유는 그럴 만도 했다. 소규모 국지전에서 압도적인 강자는 판도를 완전히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 아루스에서 총병이 발달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다. 오 기사 수준이 아니라도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전사를 생각하면 총병은 너무 허점이 많은 병력이다.


엘은 시선을 돌렸다. 마차에 타고서 짜증스런 인상으로 주변의 다른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가 마이어, 세키리아 출신의 오기사 중 한 명이다. 그의 주변에 몰린 남자들은 그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춰 주고 있는 것 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러했다. 강자는 어디서든 대우받기 마련이고, 지금과 같은 경우라면 한결 더 그러하다.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래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저런 광경은 곧장 이런 작은 그룹 내에서도 다시 강자와 약자의 계층을 만들어내게 되니까.


“좀 재수 없는 성격인 거 같지만.”


“원래 저런 걸까, 아니면-”


카린은 그러면서 엘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엘은 “훗.”하고 웃어 보였다. 카린은엘의 폼 잡는 꼴이 어울리지 않아서 피식 비웃어 줬다. 위기감을 느낀 엘은 화제를 돌릴 겸 턱짓을 하며 말했다.


“그보다 나는 저쪽이 더 신경쓰이는걸.”


턱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수우 족의 추장과 쿠틴 족 출신이라고 하는 소년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확실한 이질자로서 이 그룹 가운데서 겉돌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심하니 신기할 것은 없는 모습이지만, 엘은 단지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고 여겼다. 이곳 일행들은, 그들 두 사람은 어쩐지 ‘깔보고’ 있는 것 처럼 여겨졌다.


“저 두 사람이? 흐응-”


그때 준비가 끝난 듯,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이제 출발합시다.” 하고 외쳤다. 치안부대의 중간 간부로 테리아라는 사람이었다. 이번 추적대의 공식 감독이자 인솔자였다. 보급을 담당하는 사람까지 70에 달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두,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흥!”


마이어는 거칠게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마나에 휘감긴 그의 검은 녹색 오크의 갑주와 피부를 간단하게 베어냈다. “크에에엑!” 길게 비명을 내지르며 오크는 절명했다. 붉은 피와 내장이 대지에 불쾌하게 흩뿌려졌다. 다음 순간, 마이어는 몸을 돌리며 검을 회전시켰다. 그에게 접근하던 다른 오크의 배가 절단 나며 죽었다. 그의 주변은 이미 무장한 오크의 시신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다음 어느 놈이냐!”


마이어는 거칠게 외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비명과 기합이 철과 철, 철과 피육이 부딪히는 소리와 뒤섞여 소나기처럼 쏟아 지고 있었다. 상황은 난전이었다. 길을 가던 중에 오크가 일행을 습격했고, 전투에 돌입한 것이 십분 전이었다. 상대의 수효가 적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조금 위험했지만 마이어가 두목 오크를 잡아 죽이고 맹공을 가하면서 상황을 점차 역전됐다.


“상당하군.”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하던 엘은 곁눈으로 마이어를 바라보며 감평했다. 마이어의 검은 패도적이어서 전장을 압도하는 기백이 있었다.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단체전에서 섬세한 검보다 나은 것 같았다. 일행의 사기는 그 덕분에 많이 올라 있었다.


그때 막 엘에게 한 마리 오크가 달려들었다. 엘은 검을 들어 오크의 공격을 어려운 듯이 방어해 냈고, 오크는 신이 나서 더욱 강한 동작으로 엘을 공격했다. 엘은 쯧쯧 혀를 차며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엘의 검이 간단하게 오크의 목을 뚫었다. “끄르륵...”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오크의 눈이 뒤로 넘어갔다. 엘은 검을 빼내며 중얼거렸다.


“사람 볼 줄 모르긴.”


최초에 오크 도적단의 대장이 노리던 것은 어리고 약해 보이는 엘이었다. 하지만 그는 엘의 웃음을 보자마자 꼬리를 말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엘을 피했던 것이다. 엘은 그의 반응을 접하고 머리가 나쁜 보람이 있다고 감탄했었다. 기세를 숨긴 엘의 힘을 간파하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하지만 다른 오크들은 역시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엘이 다른 오크를 상대하기 위해 몸을 옮겼다. 그러나 더 이상 오크들은 덤벼오지 않았다. 그들은 퇴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겼다!”


마이어가 피에 물든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는 이번 전투의 최대 공로자다운 모습으로 판을 정리했다. 주변의 다른 용병들도 같이 환호했다. 엘은 검을 품으로 수납했다. 전리품을 정리하고 부상자를 치료도 할겸, 일행은 그날 전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터에서 묶기로 했다.





노예상인을 추적하는 여로는 간단했다. 결국 노예를 팔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되지 않고, 어느 노예상인이 수우족의 부족원을 납치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수우족의 부족원들 가운데 몇몇은 정령을 통해 위치를 추적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여정 자체는 간단한 것이 될 수 없었다. 추적하는 입장이니 만큼 빨리 이동해야 했고, 그래서 지름길을 이용해야 했는데, 이게 꽤 위험했다. 몬스터 조우율이 높은 탓이다. 오늘 만난 오크 떼 같은 경우도 그런 위험한 길을 이용한 댓가였다. 신대륙은 아직 인간의 대지가 아니었다. 이 땅은 완고하게 인간을 거절하는 대지였다.


“후, 피곤하네.”


엘이 모닥불 앞에서 불을 쏘이며 중얼거렸다. 모닥불에 걸쳐 세운 걸이로는 냄비가 걸려있었다. 그 안에서 끓고 스튜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카린이 엘에게 핀잔을 줬다.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피곤은! 나야말로 오늘 고생했단 말야. 사람들 치료부터 시작해서 맥주 좀 시원하게 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들 해대는데 음, 일이 많았어!”


카린은 이미 여기서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로 알려져 있었다. 천으로 가려진 얼굴과 드러난 외모의 아름다움이 신비롭게 조화되며 벌써부터 수작부리는 놈들이 한가득 있었다. 물론 몽땅 다 걷어찼다. 엘은 고소를 지으며 변명했다.


“피곤해서 피곤하다는 게 아니라, 숨기면서 싸우려니 피곤하다는 거야. 죽는 사람이 안 나오는 선에서 적당히 싸우고 있긴 하지만-”


엘은 시선을 돌렸다. 이쪽 모닥불과 달리 여러 사람이 모여 술과 음식을 들고 있는 왁자지껄한 그룹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마이어가 있었다. 그는 막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카린이 마법으로 온도를 낮춘 시원한 맥주였다. 그가 한 번에 맥주를 모두 들이키고 컵을 내려놓자 주변에서는 환호했다.


“와아아! 역시 오기사! 검만큼이나 술도 쎄구려!”


“흥! 당연하지! 내가 바로 장래 대륙 제일의 기사가 될 몸이니까! 너희 들 같은 하류잡배들과 같은 줄 아나?!”


분위기가 일격에 식었다. 대놓고 모욕을 당하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테리아에게 물어보니 치안부대 대원들이 마이어를 아주 싫어하는 것은 그의 저러한 오만한 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치안부대 대원들을 연무모습에 대한 그의 첫 마디는 ‘병신 춤추는 연습이군.“이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을 깔아뭉개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나 마이어는 주변의 분위기는 전혀 모르고 말을 계속 이었다.


“젠장. 나는 누구보다 빨리 소드 마스터가 될 거다. 로시테아를 능가할 거야! 어디서 소드 마스터랍시고 사기 치는 개새끼가 나타나서 마스터 두빌을 꺾었다고 하는지 몰라도, 이 몸에겐 어림도 없다! 내가 가장 강해!”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악에 받쳐 있었다. 그 사이에 벌써 엘이 두빌을 꺾었던 것이 신대륙까지 퍼졌던 모양이다. 하기야 스물도 되지 않은 젊은 소드마스터라니! 무척 충격적인 소식이기는 했다. 마이에는 자기 또래에 그런 강자가 나타난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엘은 시선을 돌려 카린을 바라봤다. 그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쪽을 의식하고 싸우려니 이것도 꽤 힘들잖아. 눈썰미가 있으니까 제대로 연기를 해야 하고 말야.”


“흐응, 그것도 그런가.”


카린은 엘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어로 인해 엘은 전투에 좀더 세심한 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목적은 그가 소드 마스터급의 그 이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두빌 장군을 쓰러뜨린 젊은 천재 검사의 등장이 여기까지 전달될 정도로 화제가 된 이상 더 이상 꼬리를 길게 만드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소드 마스터란 정말 예외적인 존재라서, 계속 소문이 퍼져나간다면 숨기고자 해도 정체를 숨기게 어렵게 될 우려가 있었다.


“-이 겁쟁이들이!”


소란이 일어났다. 술과 밤이 엮이는 곳에 자주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엘과 카린은 함께 시선을 소란으로 돌렸다. 소란은 용병 가운데 세 사람과 쿠틴 족의 소년의 대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다음 주 중에 출판될 모양입니다. 책 받으면 감상 이벤트 같은 거나 해 볼까요. 아쉽지만 연재도 끝날 예정입니다.


*각종 감상 주시면 감사~


*아, 물론 책 사주시면 더 감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브라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3) +74 08.11.22 10,218 56 10쪽
117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2) +36 08.11.09 3,937 13 16쪽
116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1) +18 08.11.03 4,457 18 13쪽
115 다시 아루스로(2) +18 08.10.27 4,273 37 13쪽
114 다시 아루스로(1) +15 08.08.22 4,227 21 12쪽
113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8) +29 08.08.18 4,561 56 15쪽
112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7) +22 08.08.15 3,730 7 15쪽
111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6) +13 08.08.10 3,877 15 13쪽
110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10 08.08.07 3,960 18 16쪽
109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4) +15 08.08.03 3,962 11 16쪽
108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3) +11 08.07.31 3,929 11 18쪽
107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15 08.07.28 3,992 9 15쪽
106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1) +12 08.07.25 4,763 28 12쪽
105 가장 위대한 전사(4) +44 07.05.28 8,460 27 10쪽
» 가장 위대한 전사(3) +35 07.05.25 6,085 23 11쪽
103 가장 위대한 전사(2) +30 07.05.22 7,223 101 11쪽
102 가장 위대한 전사(1) +32 07.05.20 9,442 47 11쪽
101 신대륙(14) +42 07.05.19 5,383 21 11쪽
100 신대륙(13) +37 07.05.18 5,738 30 12쪽
99 신대륙(12) +34 07.05.17 5,287 8 11쪽
98 신대륙(11) +37 07.05.16 5,434 26 12쪽
97 신대륙(10) +35 07.05.15 5,300 13 12쪽
96 신대륙(9) +28 07.05.13 6,106 19 11쪽
95 신대륙(8) +36 07.05.10 5,892 36 11쪽
94 신대륙(7) +36 07.05.09 5,463 15 10쪽
93 신대륙(6) +34 07.05.08 5,516 18 13쪽
92 신대륙(5) +39 07.05.07 5,741 12 9쪽
91 신대륙(4) +45 07.05.06 6,074 20 13쪽
90 신대륙(3) +55 07.05.05 6,744 14 10쪽
89 신대륙(2) +38 07.05.03 6,277 1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