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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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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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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신대륙(8)

DUMMY

그날도 오우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에 한 번씩 나타났었다고 한다. 하기야, 매일 나타났다면 벌써 마을은 끝장났을 테니, 이틀 정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확인해봐야 할 마을이 여럿 있었다. 엘과 카린은 마음을 느긋이 먹고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감이 결여되어 모두 풀죽은 인상이라는 점을 제하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아이들은 맑고 밝은데다 실비 양의 음식 솜씨는 무척 괜찮은 수준이라 거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엘은 오늘 카린을 먼저 멸망한 마을로 보냈다. 자기가 가도 상관없었지만 아무래도 카린이 먼저 확인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가 무작정 특무기관에서 얻은 정보를 기준으로 마을을 찾는 것 보다 시간을 덜 잡아먹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 수 없는 존재의 설움이다. 뛰어오르면 꽤 높은 곳 까지 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용과 같은 정진정명한 비행체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고로 위치확인에 그만큼 불리하다.


“후.”


마지막 검격으로 허공을 가르고, 엘은 디 세리온을 허리춤에 수납했다. 이로서 아침 수련은 끝났다. 엘은 걸음을 옮겨 교회 앞마당으로 나왔다. 실비가 나무그늘 아래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저런 평화로운 모습 이면에, 이곳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잃었다고 하는 슬픈 사실이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다. 엘은 아이들 뒤에 풀썩 앉았다. 실비와 엘의 눈이 마주쳤다. 엘은 살짝 윙크했다. 실비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다. 때문에 그녀는 읽던 책의 흐름이 조금 흐트러뜨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읽기를 계속했다. 엘은 그녀의 이야기에 아이들과 함께 집중했다.


“-그렇게 모두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실비는 상냥한 목소리로 책의 마지막을 읽었다. 아이들은 아득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실비를 바라봤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엘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비는 책을 덮으며 아이들을 향해 “자, 그럼 점심때까지 다들 자유롭게 놀렴.” 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다 함께 “예!”하고 힘차게 답하고는 끼리끼리 모여 교회 곳곳으로 흩어졌다. 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실비 양의 목소리도 듣기 좋았고.”


“후후, 저도 좋아해요. 마지막에 모두 다 행복하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지요. 어렸을 때 처음 읽고 감동받은 뒤로 지금까지 좋아하는 동화랍니다.”


약간 수줍어하는 기색을 보인 다음, 실비는 꺼리낄 것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엘은 한번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진중하고 슬픈 표정을 보였다.


“후, 좋으시겠네요. 저는 처음 읽은 동화책이 ‘고결한 노래’ 宣僊?이었던지라 책에는 좀 거부감이 있지요.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여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달까요. 음.”


“후후, 확실히 ‘고결한 노래’는 처음 읽는 동화로는 좋지 않지요. 실버 라이트는 고귀하지만, 그와 별개로 냉혹한 사람이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읽혀줄 글로는 좋지 않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대 놓고 말하긴 뭐 하지만, 완전 ‘개아들내미’죠.”


엘이 귀중한 비밀을 누설하듯, 주변을 경계하며 실비의 귓가에 속삭였다. 말하는 내용이며 태도가 웃겨서, 실비는 입을 가리고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그녀의 유쾌함을 맞이해 엘은 뒷말을 추가했다.


“하여간 모두가 행복해 진다는 그 동화의 결말은 여기 이곳에서도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그러기 위해서 이런 머나먼 타향까지 왔던 것일 테니까요. 저도 큰 도움이야 되겠습니까마는, 몬스터나 때려잡아 거기 일조하겠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패튼님께 기도한답니다.”


간절하기에 더욱 쓸쓸함이 묻어나는 대답이라고, 엘은 느꼈다. 그가 이제 실비에게 무얼 말하면 좋을까, 하고 이리저리 말을 골라보고 있을 무렵, 동쪽에서 긴급한 소리가 났다. 카린이 호루라기에 걸어놓은 마법의 소리로 엘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다. 엘은 얼굴빛을 바꾸었다.


“에? 갑자기-”


“설명은 나중으로!”


엘이 말을 끝냈을 때, 그의 몸은 이미 동쪽 숲 사이로 스며들었다.




엘은 달렸다. 날듯이 달렸다. 그의 뒤로 숲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걸리적거리는 나무는 베였고, 발돋움을 하기 위한 지지대로 사용된 바위는 박살났다. 깊은 계곡도, 높은 바위도, 엘의 이동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날 수 없는 인간이지만, 동시에 삼좌의 후계자다. 엘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의 이동 경로는 거의 완전한 직선이었다. 곧, 그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현장에 도착한 엘은 혀를 차며 얼굴을 한층 어둡게 바꾸었다. 사냥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엘을 부른 것은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와 조우했기 때문이었다. 검은색의 자이언트 베어였다. 보통 곰의 두 배는 되는 덩치를 가진 몬스터로, 오우거와 힘으로 대결해도 밀리지 않을 괴물이다. 두 발로 서서 우워어- 하고 고함을 내지르는 자이언트 베어의 모습은 보통사람이라면 당장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들 정도의 박력이 있다. 그러나 엘의 얼굴을 어둡게 한 것은 그 몬스터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 때문이다. 엘은 그를 안다. 그는 엘과 카린을 마을에 초대했던 촌장, 세트였다. 최대한 빨리 왔지만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역시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죽어, 이 괴물!”


그때 장전을 막 끝낸 한 사람이 들고 있던 총으로 곰을 쏘았다. 탕! 소리가 숲을 울렸고, 곰은 총알에 맞았지만, 우어어! 하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총을 쏜 쪽을 노려보았을 뿐, 이렇다할 타격은 입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일반적인 사냥용 총 따위로 자이언트 베어를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해군이 발달한 아루스이기 때문에 대포류의 무기도 자연히 발달했고, 대포를 소형화하려는 시도 끝에 ‘총’이 나왔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전사들의 존재로 인해 전투용으로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려져 거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총의 장점은 훈련이 간단하고, 착탄시 적의 전투력을 빼앗기 쉽다는 것 뿐이다. 가격, 무게, 속도등 다른 모든 면에서 이전 무기에 밀린다. 현재, 총은 활이 없을 때나 활을 사용할 줄 모를 때 사용하는 무기다. 사냥에는 사용할 수 있어도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몬스터는 전투의 대상이지 사냥의 대상이 아니다.


-끄어엉!


곰이 울부짖으며 몸을 굽혀 총을 쏜 남자를 향해 달렸다. 집채만한 덩치의 곰이 침을 흘리며 난폭한 눈빛으로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며, 남자는 죽음을 예감했다. 비명이 혼 대신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듯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다.


“아악!”


그때, 남자의 앞으로 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 디 세리온을 뽑고 곰과 대치했다. 곰은 엘을 보고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듯, 몸 전체를 움찔 떨었다. 본능의 경고. 하지만 잠시였다. 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결 광폭하게 움직이더니 오른발을 들어 엘을 향해 날렸다. 맞는다면, 거대한 나무라도 일격에 작살나고 마는 공격이다.


“미안.”


하지만 엘은 간단히 곰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검을 움직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곰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리와 뜨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곰의 의식이 꺼졌다.


-찰칵.


엘은 검을 허리춤에 수납했다. 그에게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두 조각이 된 곰이 붉은 피와 뜨거운 내장을 대지에 널어놓고 죽어 있었다. 살점이 여기저기 튀어있는 모습은 베였다기 보다 포탄에 맞아 터져나간 것 처럼 보였고, 상처의 일부는 불에 탄 것처럼 익어 있었다. 엘의 검이 지나치게 빨라 대기와 마찰하여 발생한 충격파와 마찰열의 흔적이다. 엘은 얼른 촌장에게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손톱에 상반신 거의 전체를 대각선으로 그렸다. 하지만 운이 좋게 깊게 베이진 않았다. 스친 정도였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완전히 피부가 갈라져 속의 것들을 다 내보였을 테고,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만, 아직은 괜찮다. 엘은 자신의 마나를 그의 몸속으로 흘려보내 생명활동을 유지하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사람들이 근처로 와서 도왔다.




“아저씨!”


소식을 들은 실비가 새파란 얼굴로 촌장 집 문을 열었다. 집안에는 촌장의 아내와 자식이 엘과 함께 주변에 앉아 침대에 누운 촌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의 다른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촌장은 상반신을 하얀 천으로 둘둘 말아 상처를 봉하고 있었다. 얼굴이 새파란 것이 지금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어, 어떤가요?”


“할 수 있는 한의 치료는 모두 했습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분이 의사를 부르러 말을 다고 떠났으니 이제는 간호하면서 기다리면 되겠지요.”


당황하며 묻는 실비에게 엘은 웃는 얼굴로 답했다. 엘은 촌장의 가족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엘이 마나를 흘려보내는 한 촌장은 죽지 않을 테고, 응급처치도 나쁘지 않게 되었다. 촌장은 최악의 경우라도 카린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으니 적어도 죽을 걱정은 없는 셈이다.


“아아, 패튼님 감사합니다...”


실비는 근처의 벽에 몸을 기대며 흘러내리듯이 주저앉았다.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안도로 변하며 무너지듯 이완되는 모습은 깊은 절실함을 느끼게 했다. 다른 마을사람들에게도 그랬지만, 실비에게는 한층 촌장이 중요한 존재인 모양이다. 그리고 한 동안의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침착을 찾게 되었을 때, 촌장의 아내가 실비를 향해 다가갔다.


“실비야,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니?”


“예.”


실비는 다소곳하게 답했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빠져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쯧쯧, 하는 안타까운 혓소리를 냈다. 엘은 그들의 반응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요즘 많이 쓰고 있군요. 스스로가 대견.


*다년간의 경험상 인터넷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댓글에 참여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가령 저는 아루스의 여권을 설명하면서 비교대성으로 현대 한국의 여권이 아루스보다 강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저를 가부장제 옹호의 극렬마초로 모는 어처구니없는 리플을 본적도 있습니다. 잡담으로 만족해 주시길.


*영감이 번뜩인다거나, 쓰고 싶다는 욕망에 몸이 달아오른다던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출판 되는 글을 우선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줄리엣 님의 '생계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이라는 말이 참 안습. 뭐 주변 대여점에 추천이라도 해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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