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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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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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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신대륙(6)

DUMMY

아침밥을 먹은 카린은 음산한 경고와 함께 떠나갔고, 혼자 남은 엘은 교회 앞 정원에 애들 데려다 놓고 한동안 골목대장 놀이를 하다가 이제 공연을 하나 한답시고 애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아이들의 뒤에서 실비도 같이 앉아 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은 괜히 그녀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가, 그녀가 풋, 하고 웃어보이는 것을 신호로 삼아 입을 열었다.


“그럼 이 형이 재밌는 거 보여줄 테니까 다들 잘 봐.”


아이들은 모두 “예!”하고 힘차게 답했다. 오우거라는 무서운 괴물을 물리치러 온 사람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남녀 따질 것 없이 다들 엘에게 호의적이었다. 활달한 아이들은 활달한 대로, 조용한 아이들은 조용한 대로. 얼마냐 세냐느니, 어디서 왔냐느니 하는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건 피곤한 일이었지만, 순결한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자신을 향하는 걸 바라보는 일은 꽤 유쾌한 일이었다. 엘은 아이들에게 주변의 자갈을 두 개씩 줍도록 하고는 왼쪽 끝에 앉은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자 형한테 던져봐!”


아이는 기대에 부푼 얼굴로 손에 쥔 돌을 던졌다. 고사리 손을 벗어난 우둘투둘한 돌이 어긋나는 궤도를 그리며 엘을 향해 날았다.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 엘에게 닿지 못하고 덜어질 것 같았다. 엘은 성큼 걸음을 걸으며 그 돌을 손안에 집어 놓고 돌리기 시작했다. 와! 하고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엘이 웃으며 옆의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아이는 눈을 빛내며 돌을 던졌다. 이번에도 엘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손안에 품고 돌렸다. 그의 두 손이 복잡하게 운동하며 4개의 돌을 돌리고 있었다. 다시 엘이 지시했다. 아이는 던졌다. 그렇게 다섯 명의 아이들이 엘에게 돌을 던졌다. 엘은 묘기 같은 동작으로 10개의 돌을 돌렸다. 현실 같지 않은 장면이었다. 높이 떠올라 원을 그리는 돌들이 다시 엘의 손으로 들어가고, 들어간 다음 다시 공중에 떠오르는 광경은- 놀라웠다. 꿈의 한 장면 같은, 비현실적인 리듬운동. 하지만 그것은 이어진 엘의 선언에는 비길바가 못 되었다.


“뒤쪽의 아가씨들 다 함께!”


다섯 명의 여자 아이가 어린 새처럼 조잘대며 돌을 던졌다. 10개의 돌이었다. 서투른 궤도로 날아드는 그 돌을 도무지 한 사람이 다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물며 10개의 돌을 이미 손안에 돌리면서는 말이다. 그렇지만 엘은 침착하게, 신속하게 걸음을 걸리며, 손으로 잡았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은 제기를 차듯 발로 차 올리며 하나씩 받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큰 원에 들어갔고, 돌이 추가되는 만큼 원의 궤도는 한층 커졌다. 성장하는 원은 살아있는 것처럼 엘의 동작을 따라 기묘하게 움직였다. 엘이 손놀림을 조정할 때마다 원은 좁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했고, 비틀어지거나 가늘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꿈을 꾸는 것 같은 시선으로 엘의 묘기를 바라봤다. 뒤쪽에서 앉아 있던 실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곧 엘은 그 돌들을 하나씩 하나씩 튕겨내듯 아이들을 향해 던졌다. 아이들이 흠칫흠칫 몸을 좁혔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자기 앞에 두 개의 돌이 고스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엘에게 던져내었던 바로 그 돌이었다. 이어 10개가 남은 시점에서, 받았을 때 처럼 엘은 한번에 그것을 공중에 훠이, 하고 던져냈다. 그것들은 복잡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고, 여자아이들의 앞에 내려앉았다. 물론, 그 아이들이 던졌던 바로 그 돌이었다. 엘은 허리를 숙이며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와!!”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간단한 공연을 끝내고 엘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디 세리온을 손질하고 있었다. 엘의 전력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좋은 마법 검이라 기본적으로 세세한 관리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검을 다루는 자로서 이렇게 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의외로 직접 전투능력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엘은 이런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다. 실제로 검날을 닦으면서 엘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


한참 검날을 닦아 거울처럼 맑게 만들고 있는데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실비라는 아가씨였다. 엘은 친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무언가 간단한 간식이라도 가져다주려 온 것 같았다. 엘은 검을 옆으로 치우고 웃는 얼굴로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아, 실비 양,”


“저, 멋진 것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도 다들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 보는 화려한 볼거리였구요. 여기 감사의 뜻도 겸해서.”


“뭐 이런 걸 다. 자자, 여기 앉으세요.”


“아, 아니요.”


실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엘은 웃는 얼굴로 삐졌다.


“에이, 묻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있고 하니,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시구요. 아이들이라면 다들 저글링 한다고 바쁘던걸요.”


엘이 너무 너머를 슬쩍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은 모두 저글링에 열중해 있었다. 엘이 보여준 묘기가 너무 경이적이라 아이들은 홀딱 반해버렸다. 물론 현실은 냉혹해서 두 개를 넘어가는 아이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엘은 열심히 먹고, 열심히 놀고, 누나 말 잘 들으면 된다는 교훈적 충고를 했다. 실은 정답에서 두 개가 빠졌는데, 그것은 첫째로 인간 같지 않은 사부와, 둘째로 지옥 같은 수련이다. 단지 지옥같다고 하면 감이 잘 안 오는데, 수사를 조금 붙이면 수련 과정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미성년자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될법한 수련이다.


“미, 미워하다니요, 결코-”


“아, 그럼 결정이군요.”


강하게 고개를 젖는 실비를 보며 엘을 유쾌하게 말했다. 실비는 곧 피식 웃어 보이며 수긍했다는 듯이 엘의 옆 자리에 앉고는 바구니에 올려둔 천을 치웠다. 잘 구워진 빵과 와인이 들어 있었다. 실비는 천을 바닥에 놓고 거기 음식을 먹기 좋게 정리한 다음 엘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먹으라는 뜻이다. 엘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빵을 하나 잡아 물었다. 거친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지만 실비의 솜씨가 좋은지 맛있었다. 실비가 물었다.


“그러면, 물을 거라는 건 어떤?”


“별건 아니고, 이 마을이 신앙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고 촌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교회에 있는 고아 아이들도 모두 패튼교의 신자입니까?”


“예. 성직자였던 저희 5대조 할아버지께서 신자 분들과 함께 건너와서 세운, 신앙 공동체로 시작한 마을이 맞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경우도 특별히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통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 까지 많은 이들과 함께 올 필요가 있었나요? 지금도-(엘은 저글링에 열중한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렇게 위험한 곳입니다만, 전에는 한층 더 하지 않았습니까? 아루스에서 종교박해 같은 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여기에 올 이유가 있었습니까? 저는 그게 의아했습니다.”


아루스 본국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가난과 굶주림과 실업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그래도 법을 지킨다면 죽을 걱정을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신대륙은 아루스 본국보다 살기 빡빡하면 빡빡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은데도 이민은 끊이지 않았고, 제공받았던 정보를 돌이키자면 이런 마을의 형성도 많았다.


그래. 그러고보면 지금이야 마을도 있고 도시도 있다. 정말 맨땅에 헤딩해야 했을 초기 개척자들의 고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처절하지 않았을까? 무슨 매력이 있어서 이런 행렬이 지속되는 걸까? 엘은 박해받지 않은 신앙공동체의 이주에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5대조라는 말도 그렇고, 마을의 모습을 보니 처음 이 마을을 세운 이들은 1세대 이민자에 속할 듯 싶었다. 이는 어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대륙에 와서 시간을 보내며 줄곧 의문시하던 문제였다. 실비는 답했다.


“신대륙은... 말씀하신 것 처럼 아루스보다도 훨씬 고통스런 대지입니다. 하지만 고통과 더불어 기회의 땅입니다. 아루스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기회가 없습니다. 패튼교는 약자들을 위한 종교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이 언제나 패튼의 자비를 염원하게 됩니다. 결국, 종교적인 박해는 없었지만, 패튼교가 약자의 종교라면, 신앙 자체가 박해를 받는다, 그렇지 않다는 것보다는 중요성이 덜해도, 신자들의 고통은 실제적으로 돌보아져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희 5대조 할아버지는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여기까지 온 거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 기회란 게 대체 뭡니까? 개척하는 만큼 개인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정도는 압니다만, 이렇게 치안이 나빠서야 상당수의 지역에서 사실상 무의미한 특권 아닙니까? 배삯을 생각하면, 도리어 남아 있는 쪽이 훨씬 이득이지 싶은데. 초창기라면, 정말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엘이 물었다.


“지적하신대로입니다. 그래서 초창기 이민자들을 이 대지로 끌어들인 것은 땅이 아니라, 황금이었습니다.”


“황금요?”


엘은 눈에 이채를 띄고 반문했다. 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루스는 강제적인 수단까지 사용하면서 전세계의 금은광을 왕실이 완전히 독점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그것을 명시하고 있을 정도지요. 개발해서 쓰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가지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녀의 말 대로였다. 아루스의 황실은 채광하지 않는다. 단지 권리를 가지고만 있는다. 의아하게도 이는 아루스의 헌법이 명시하고 있다. 금은광의 소유권은 황실이 가진다. 그러나 채굴은 금지한다. 황당한 ‘헌법’이다. 그래서 타국의 금은광을 봉인함에도 심한 갈등상황을 빚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아루스는 자국의 것도 그리하기 때문에 굳이 심각한 외교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생각하게 된다. 아루스를 포함해서 황금으로 인해 강해지거나 손해를 보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그들의 짓이라는 건 공식적으로 증면된 적이 없다. 실비는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그 때문에 화폐로서의 금은의 가치는 상업규모가 커지는 만큼 상승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예전에 국제 무역 부분의 성장이 그 때문에 수백년은 늦춰졌을 거라고 화를 내며 말씀하신 적도 있었지요. 그러던 차에 신대륙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의 대지는 아루스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골드 이터는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든 금광을 발견한다면,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쥐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수한 이들이, 금을 찾아서 이 땅으로 왔고, 그 가운데 저희 할아버지도 계셨던 거지요.”


“그렇군요...”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의 말은 무척 적대적인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런건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다시 ‘황금’이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황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엘의 주머니에는 아직도 안바르디 가문이 저열한 짓을 해서 만들었던 그 황금이 남아 있다. 끔찍한, 악몽같은 황금이다. 하지만 그걸로 쭉 사람들을 도와왔다. 그러니 만든 과정이야 추악해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일시의 치기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버리는 것은 병신같은 짓이다.


하나, 그걸 생각하자니 이것이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살렸고, 절망과 기쁨의 근원, 마침내는 욕망 그 자체가 된다- 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황금은 정말로 저열한 금속이었다. 하지만 그 금속을 부정하는 것은 한층 더한 저열함인 것 같았다. 정말로 부정하고 싶다면, 부정되어야 할 것의 토대를 먼저 부숴야만 한다. 그러고 보면, 아루스에서는 왜 그렇게 황금에 집착하는 걸까? 쓸 것도 아니면서.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벤은 아루스에 의한 평화(Pax Arus)를 국제 무역 부분의 압도적인 성공에 따른 것이라고 했었는데---


-히히힝.


교회에 마차가 들어섰다.





*숨겨도 소용없다! 고 단언하시는 분이 많군요. 글 스타일이 그렇게 특이한가;;


*의견 주시면 감사~


*성원 열심히 하면 복 받습니다.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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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10 08.08.07 3,960 18 16쪽
109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4) +15 08.08.03 3,962 11 16쪽
108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3) +11 08.07.31 3,929 11 18쪽
107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15 08.07.28 3,992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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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신대륙(10) +35 07.05.15 5,300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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